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입니다.

 

6 그런데 빌라도는 명절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 주곤 하였다.

7 그런데 폭동 때에 살인을 한 폭도들과 함께 바라바라고 하는 사람이 갇혀 있었다.

8 그래서 무리가 올라가서, 자기들에게 해주던 관례대로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9 빌라도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그 유대인의 왕을 여러분에게 놓아주기를 바라는 거요?”

10 그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차라리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12 빌라도는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그 사람을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13 그들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14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그들은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15 그리하여 빌라도는 무리를 만족시켜 주려고,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다음에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넘겨주었다.

 

주석

14절. 빌라도 재임기의 유대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떠올려 보면, 빌라도가 예루살렘에 따르는 이가 많았던 갈릴리 출신의 유명한 예언자를 그렇게 공개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처형하기를 주저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제거하면 폭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 빌라도는 바로 그것을 피하고 싶어 했다(IVP 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빌라도는 영리한 총독이었다.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었다. 

명절 때마다 백성들이 원하는 죄수를 풀어 주곤 했다. 

이건 정치적으로 장단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정치적 인물이 풀려나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물을 풀어주면 정치적 반대파가 늘어나고 또 다른 폭동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었다. 

물론 한 번 붙잡혀서 여러 고문과 심문을 받은 사람이 다시 정치적으로 재기하여 군중들의 규합하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에 대한 정보가 치안 담당자에게 다 노출되었을 것이고, 그와 연관된 사람들도 충분히 조사했을 것이다. 

출옥된다 한들 감시가 심하고 만약 그와 접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의 안전도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저런 유익들을 재가며 그를 풀어 주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이득이 있다고 본 빌라도는 유대인의 명절 때마다 죄수 중 한 명을 풀어주었다. 

 

빌라도는 눈치가 빠른 총독이었다. 

예수를 대제사장들이 고소한 이유는 그들이 예수를 시기했기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10 그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들의 고소는 예수가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사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기보다는 유대인의 진정한 목자로 활동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백성들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위로하고 회복과 평화를 선언했다. 

원래는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었는데, 그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틈에 예수님의 활동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원하고 있었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그 열망의 절정을 연출했다. 

빌라도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예수가 입성할 때 백성들이 어떻게 환영했는지, 성 안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었는지, 빌라도는 자신들의 정보원들을 통해 다 듣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를 고발하면서 그의 말과 행적인 유대인의 왕 같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그 어떤 왕보다도 더 나았다. 

빌라도는 예수가 사형을 받을 만한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 모든 것은 대제사장들의 시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그러니 백성들에게 직접 물어본다면 예수가 풀려날 수 있을 거라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백성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보다 예수를 더 잘 따를 것이라는 내심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의 영악함과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 

그들은 백성들 사이에서 언론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영악함을 가졌다. 

생각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빌라도는 당연히 예수를 풀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이상하게 흘러갔다. 

백성들, 군중들이 갑자기 바라바를 풀어달아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폭동을 일으킨 적이 없으며, 사람들을 해한 적이 없었다. 

예수는 사형을 받을만한 죄가 없었다. 

빌라도는 예수를 사형시키라는 군중들의 함성을 듣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재차 묻는다. 

“그러면, 당신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그 사람을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람, 예수 그 자신이 그렇게 주장하기보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별명을 붙여서 불리웠던 사람, 그 예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무죄방면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중들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던, 정치적 감각을 가진 빌라도는 이 시점에서 결단을 내린다. 

 

예수님은 이 모든 과정을 조용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저주를 내릴 수도 있었고, 이상한 기적을 행하실 수도 있었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게 할 수도 있었고, 엄청난 돌풍을 불게하여 거대한 메뚜기 떼가 들이닥치게 할 수도 있었다. 

그 어떤 기적과 이적도 행하지 않으셨다. 

그동안도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기적과 이적을 행하신 적이 없다.

사람들을 위해 병고치는 기적을 보여주셨다. 

사람들을 돌보고 보호하기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셨다. 

자신의 필요가 아니라 사람들, 제자들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평온하게 사람들을 응시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리어 그들을 죄에서 구원해야 할 자신의 소명을 더 깊이 묵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못 박으라”는 외침을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듣고 계셨다. 

그들의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예수님의 슬픔은 더욱 깊어지고 그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도 더욱 커져갔다. 

그들에겐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시킬 단 하나의 방법만이 남았다.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이었다. 

 

빌라도는 최선을 다했다. 

그는 백성을 이길 힘이 없었다. 

정치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중들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여론을 무시해서는 통치를 이어갈 수 없다. 

빌라도가 이해가 된다. 

 

백성도 사실 이해가 된다. 

그들은 쉽게 현혹되는 사람들이다. 

제대로된 정보를 획득하기 어렵다. 

냉철하게 현실의 문제를 분석하기 어렵다. 

군중심리에 현혹되기 일쑤다. 

 

문제는 권력을 가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시기한 셈이다.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고 싶었다. 

하나님을 빌미로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었다. 

백성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예수님이 그토록 비판했던 그룹이다. 

 

이제 내가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쇠락해가고 부패해 가는 한국교회에 어떤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부르시고 있나? 

계속 묻고 또 물어야 할 질문이다. 

 

[오늘의 기도]

본받고 싶은 주님, 

주님의 길은 침묵의 길입니다. 

군중들의 외침은 당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구원을 갈망하는 부르짖음입니다. 

그렇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면서 주님은 그 길을 걸으십니다. 

한국교회의 실태는 참담합니다. 

지도자들 중에 진실함으로 무장한 자가 많지 않습니다. 

생존이 급급하고 명예가 소중하여 타협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죄와 멀지 않고 사람들을 죄로 안내합니다. 

 

지금도 슬퍼하시는 주님, 

한국교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이제까지 한 단체를 섬기면서 그 길을 찾아왔습니다. 

지금부터는 단체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길을 도모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주님의 인도를 받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예수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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