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08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져서,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되어 보거나 세어 볼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이 너희를 로암미라고 부른 땅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를 것이다.11 그 때가 되면,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통일을 이룩하여, 한 통치자를 세우고, 땅에서 번성할 것이다. 그렇다. 이스르엘의 날이 크게 번창할 것이다.

1 이제 너희는 형제를 암미라고 하고, 자매를 루하마라고 하여라.”

 

NIV

In the place where it was said to them, ‘You are not my people,’ they will be called ‘sons of the living God.’(10절)

 

주석

10절.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져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상기시키면서(창 22:17; 32:12), 언약이 회복될 것임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말한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언제일지 모른다. 

회복의 예언이 내려왔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 다시 주어진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가득하고, 하나님을 버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회복의 메시지를 주신다. 

모세와 맺은 언약, 다윗과 맺은 언약이 여전히 살아있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고, 위대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다. 

땅에서 번성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다. 

예수님은 새로운 이스라엘 자손을 만드시는 분이시다. 

혈통에 의한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여 순종하는 정신과 영을 가진 새로운 이스라엘이다. 

이들은 온 땅에 크게 번성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암미요, 하나님의 루하마이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가 되는 것이다. 

 

회복의 약속을 믿고 그 날을 기다리는 것. 

이것은 구약의 신앙인이나 신약의 신앙인이나 동일하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을 믿고 그 날을 기다린다. 

더 이상 전쟁이 없고, 평화가 가득하고,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주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린다. 

새로운 땅을 건설하고, 그 땅에서 번성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 다시 오시면 우리는 진정으로 회복하게 될 것이다. 

난 그날을 기다린다. 

비록 지금의 세계는 전쟁으로 물들었고, 기후 위기로 위험에 처해 있더라고, 그 마지막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지고 오는 온전한 회복이다. 

그날을 사모한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어서 오셔서 이 땅을 회복시켜주소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 

피로 물어들 있는 흙, 

비정한 자들이 생명을 앗아가는 땅 

주님, 

당신이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사람들의 노력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통치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1월 23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1 너희는 주님께 감사하면서,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2 그에게 노래하면서, 그를 찬양하면서, 그가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전하여라.

3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을 찾는 이들은 기뻐하여라.

4 주님을 찾고, 그의 능력을 힘써 사모하고, 언제나 그의 얼굴을 찾아 예배하여라.

5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을 기억하여라. 그 이적을 기억하고, 내리신 판단을 생각하여라.

 

6 그의 종, 아브라함의 자손아, 그가 택하신 야곱의 자손아!

7 그가 바로 주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가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

8 그는, 맺으신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신다. 그가 허락하신 약속이 자손 수천 대에 이루어지도록 기억하신다.

9 그것은 곧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요, 이삭에게 하신 맹세요,

10 야곱에게 세워 주신 율례요, 이스라엘에게 지켜 주실 영원한 언약이다.

11 "내가 이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물려줄 기업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석

이삭에게 하신(9절) ‘하신’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자르다’(cut)는 의미로, 공식적 언약 제정을 나타내는 전문 용어다(IVP 성경주석).

율례(10절) 변치 않는 헌신을 의미한다(IVP 성경주석).

 

시인은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그가 하신 일들을 전하라고 촉구합니다(1-2절). 주님을 찾아 예배하고, 그의 능력을 사모하며, 주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기억하라고 합니다(3-4절).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은, 맺으신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십니다. 주님은 허락하신 약속을 아브라함에서 수천 대가 지난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8-10절). 하나님은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11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고 성취하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이야기가 곧 이스라엘의 역사이고, 아브라함의 소명이 곧 이스라엘의 소명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갈 3:7) 우리의 이야기와 소명입니다. 내가 기억해야 할 주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그 약속의 성취를 신뢰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의 묵상]

시편의 직설적 명령이 맘에 든다. 

크게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감사하라, 찬양하라, 예배하라.

시인의 존재에서 터져나오는 저 명령에 정신이 확 든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이 그분의 백성들의 당연한 의무다. 

이것 저것 재지 않고, 이리 저리 머리 굴리지 않고, 그저 그분의 영광과 성품을 찬양하고 경배한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적 행동이 되어야 한다. 

예배적 존재, 경배적 존재.

단순히 생존을 넘어선다. 

본능적 욕구를 넘어선다. 

식욕, 수면욕, 성욕을 넘어선다. 

 

1. 기억하라

특별히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분이 하신 일, 그분이 행하셨던 이적, 그분이 내리셨던 판단. 

이 모든 것을 세밀하게 기억하는 것이 찬양의 중심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기억의 종교다. 

정신을 혼미하게 하든지, 혹은 마음을 비우든지 하는 수행이 핵심이 아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어떤 생각과 판단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 판단으로 실제 행한 일이 무엇인지 기억해 내는 것이 핵심이다. 

기독교와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다. 

기독교와 성경의 역사성은 밀접하다. 

성경의 뼈대는 역사서다. 

히브리 민족의 구원 역사, 이스라엘 백성의 대안적 나라 건설의 역사, 그리고 인류 구원의 역사… 

그 역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행하셨는지 기억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에 놓여 있다. 

기억에 없는 신을 찬양할 수 있는가! 기억에 없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가!

 

성경을 통독하고 매일 말씀을 읽는 것도 우리의 기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함이다. 

매 사건마다 그분이 하신 판단에 대해 듣는 것, 

매 예배 때마다 그분이 하신 이적과 기적에 대해 듣는 것, 

무엇보다 매 찬양마다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인류 구원의 놀라운 기적에 대해 듣는 것, 

이것이 기억의 종교 기독교의 중심이다. 

 

감동이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그것이 없다해도 일단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기본은 하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니, 매번 예배 때마다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은 언제나 할 수 있다. 

시간이 들더라도 그분의 판단을 면밀히 살펴보고 기억하는 것, 

우리의 뇌 근육을 풀어서, 신경 세포들을 활성화해서 그분이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예배 때 일어나야 할 일들이다. 

 

2.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우리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야말로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분이시다. 

특히 사람들과 하셨던 언약, 약속, 결정, 합의, 논의를 세밀하게 기억하신다. 

그 때의 감정과 생각까지도 다 기억하신다. 

그 기억이 하나님의 판단과 행동의 근간을 이룬다.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심을 그 스스로 증명하신다. 

아담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신다. 

모세, 다윗, 솔로몬,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의 약속을 기억하신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하신다. 

그 분 스스로 이 땅 위에 오신다. 

사람들을 살리시고 귀신을 내쫓으신다.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다. 

그렇게 사단의 권세를 깨부수신다. 

더이상 사단은 권위와 권세는 깨지고 만다. 

사단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짓말과 위협이다. 

 

그리고 다시 약속을 주셨다. 

다시 오시겠다고. 

언젠가 다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겠다고.

그리고 그 약속의 징표로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성령님은 그렇게 우리 안에서 속에서 역사하신다. 

 

이런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언약을 기억하시는 그분의 성품을 닮아 우리도 언약에 더욱 성실하게 살아간다. 

신실하신 분, 믿을 만한 분, 의지할 분을 닮아 우리도 더욱 신실하게, 믿을 만하게, 의지할 만하게 살아간다. 

 

명절 연휴.

다른 것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 

쉬는 것이 도가 지나쳐 몸을 망치지 않아야 한다. 

쉼은 회복을 위한 것이지, 몸의 흐름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늘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당신의 생각, 판단, 일, 이적… 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싶습니다. 

제 기억을 새롭게 하소서. 

저는 기억이 세밀하지 못합니다. 

자꾸 잊어버립니다. 

이름도 까먹습니다. 

사건도 잘 기억 못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역사의 순간 순간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더욱 기억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더 기억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신을 더 기억하고 싶습니다. 

도와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6 19 토요일

여는 기도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피난처는 오직 주님뿐입니다.

 

31 때에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도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왕이 요단 강을 건너는 일을 도우려고, 요단 가에 이르렀다.

32 바르실래는 아주 늙은 사람으로, 나이가 여든 살이나 되었다. 그는 부자였으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왕에게 음식을 공급하였다.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말하였다. "노인께서는 나와 함께 건너가시지요. 나와 같이 가시면 내가 대접하겠습니다."

34 그러나 바르실래는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얼마나 오래 산다고, 임금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겠습니까?

35 나이가 지금 여든입니다. 제가 나이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어떻게 가릴 알겠습니까? 종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신들, 맛을 알기나 하겠습니까? 노래하는 남녀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들, 제가 나이에 알아듣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니 종이 높으신 임금님께 다시 짐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36 종은 임금님을 모시고 요단 강을 건너려는 뿐인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이러한 상을 저에게 베푸시려고 하십니까?

37 부디 종을 돌아가게 하셔서, 고향 마을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덤 곁에서 죽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신에 종의 아들 김함이 여기에 있으니, 그가 높으신 임금님을 따라가게 하시고, 임금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그에게 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38 그러자 왕이 약속하였다. "물론, 내가 김함을 데리고 가겠소. 그리고 노인께서 보시기에 만족하도록, 내가 그에게 대하여 주겠고, 나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이루어 드리겠소."

39 드디어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넜고, 왕도 건너갔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복을 빌어 주니, 바르실래가 자기의 고장으로 돌아갔다.

40 왕이 길갈로 건너갈 때에 김함도 왕을 따라서 건너갔다.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따라서, 요단 강을 건너갔다.

41 그런데 갑자기 이스라엘 사람이 왕에게 몰려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우리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이 우리와 의논도 없이, 임금님을 몰래 빼돌려 임금님과 임금님의 가족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를 모시고 건넜습니까?"

42 그러자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임금님과 가깝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런 일로 그렇게 화를 이유가 무엇이냐? 우리가 임금님께 조금이라도 얻어 먹은 것이 있느냐? 임금님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주신 것이 있어서 그러는 아느냐?"

43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은 유다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께 요구할 권리가 너희보다 갑절이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는 우리를 무시하였느냐? 높으신 임금님을 우리가 다시 모셔와야 되겠다고 먼저 말한 사람이, 바로 우리가 아니었느냐?" 그래도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강경하였다.

 

다윗이 마하나임에 머무를 때 음식을 공급했던 바르실래가 왕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다윗을 도운 공적으로 그의 가문 전체가 왕의 곁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합니다. 왕에게 짐이 될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바르실래는 아들 김함을 왕에게 부탁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31-40절). 북이스라엘 지파들과 유다 지파는 왕을 사이에 두고 논쟁을 벌입니다(41-43절).

 

아첨과 속임수로 권력에 빌붙기 위해 혈안인 사람들 속에서 바르실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순수하게 다윗을 돕고자 했고 욕심 없이 물러설 줄 알았습니다. 모함과 배반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사람, 나를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을 진실하게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길 기도합시다.

 

 

——

반역은 진압되었다. 

왕의 귀환이 시작되었다. 

행렬이 뒤따른다. 많은 사람들이 왕을 축하하고 축복한다. 

왕도 나이가 들었지만, 나이가 많았던 바르실래가 왕을 배웅한다. 

요단 강을 건너는 일을 도우려고 함께 간다. 

왕은 그동안 바르실래의 재정적 섬김을 통해 유익을 누렸다. 

그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예루살렘으로 같이 가자고 요청한다. 

그러나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나이가 많고 몸이 쇠하여 조용히 고행에서 죽고자 한다. 

대신 자신의 아들 김함을 추천한다. 왕의 통치에 쓸모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거한 것이다. 

바르실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알고 있었다.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할 , 사람은 추해진다. 

노욕은 더욱더 그렇다. 

누릴 만큼 누린 사람이 죽을 때까지 보이는 욕망은 그야말로 욕이 나온다. 

그러나 인간은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먹을 것에 대한 의지도 끝이 없고, 잠자는 , 섹스 하는 것의 욕망도 끝이 없다. 

 

절제를 배우는 ,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많이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절제다. 

그런데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욕구하는 것이 심리적 현실이다.

쾌락은 강도 높은 쾌락을 낳는다. 

경험은 높은 농도의 경험을 욕구한다. 

그러니 나이가 많을수록 절제를 장착하기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아는 이상, 굳이 욕망을 절제해야 이유가 별로 없어진다. 

돈과 권력이 주는 달콤함을 알고, 게다가 끝의 허망함을 경험한 사람들은 순간의 쾌락을 굳이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이는 그렇게 절제를 멀리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언약이 더욱 절실하다. 

세대를 넘어 가르쳐야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욕망 추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라면, 오랫동안 절제가 주는 유익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참고 인내할 있는 능력을 발휘할 있겠다. 그게 언약의 힘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세대를 넘어서 전달되어야 한다. 언약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인간 관계의 언약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언약은 신실함을 전제한다. 그러니 언약을 알고 언약을 오랫동안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도 추해질 있는 것이다. 

 

약속을 깨는 것이 너무 쉬워지는 세상이다. 

사소한 약속도 소중하지만, 중요한 약속에 대해서는 정말 목숨 걸고 지켜내겠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요사이 군인들의 이야기를 종종 보고 듣는다. 

강철부대 군인들의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배운다. 

대의를 위해 여전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여군 특전사의 모습에 감동이 된다. 

군인정신의 핵심은 대의를 위한 자기 헌신이요. 국가 공동체와의 약속을 목숨을 바쳐 지켜내는 충성이다. 

어찌보면, 기독 공동체가 잃어버린 정신이 바로 군인 정신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군대 문화의 불의함을 모르지 않으며, 대의에 의해 개인이 말살되는 현실이 옳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다만, 때로 기독인들이 보이는 절제에 대한 나약함은 안쓰럽다. 

끝까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지켜내는 . 언약에 충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감당해야 일이 많은데 기도의 자리에서 나의 욕망을 확인하고 때로 절제하는 훈련을 하고 싶다. 

나의 욕망을 하나님께 두는 훈련. 

때로 불가능해 보이는 훈련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감당하고 싶다. 

 

——

주님, 

제어하지 못하는 여러 욕망들을 봅니다. 

주님께 마음을 집중하고 다시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으로 성장할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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