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30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12 그 때에 너희의 수효가 극히 적었고, 그 땅에서 나그네로 있었으며,
13 이 민족에게서 저 민족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나라 백성에게로, 떠돌아다녔다.
14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무도 너희를 억누르지 못하게 하셨고, 너희를 두고 왕들에게 경고하시기를,
15 "내가 기름 부어 세운 사람에게 손을 대지 말며, 나의 예언자들을 해치지 말아라" 하셨다.
16 그 뒤에 주님께서 그 땅에 기근을 불러들이시고, 온갖 먹거리를 끊어 버리셨다.
17 그런데 주님은 그들보다 앞서 한 사람을 보내셨으니, 그는 종으로 팔린 요셉이다.
18 사람들은 그 발에 차꼬를 채우고, 그 목에는 쇠칼을 씌웠다.
19 마침내 그의 예언은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은 그의 진실을 증명해 주었다.
20 왕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하였다.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의 몸이 되게 하였고,
21 그를 세워서 나라의 살림을 보살피는 재상으로 삼아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관하게 하며,
22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게 하며, 원로들에게 지혜를 가르치게 하였다.
23 그 때에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내려갔고, 야곱은 함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다.
주석
예언자(15절) 성경에서 맨 처음 아브라함이 예언자로 불렸다(IVP 성경주석).
함의 땅(23절) 이것은 노아의 아들인 함의 자손들 가운데 일부가 정착했던 이집트를 가리키는 말이다(IVP 배경주석).
이스라엘의 조상은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국적 없는 유목민으로 떠돌아다녔습니다(12-13절). 하지만 주님께서 보호하셨습니다(14-15절). 주님은 가나안 땅에 기근이 오게 하셨지만, 요셉을 앞서 보내십니다(17절). 요셉은 종살이와 누명으로 인한 감옥살이의 고난을 겪었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이집트의 재상이 되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18-22절). 그리고 야곱의 가족들은 이집트로 내려갑니다(23절).
이스라엘의 조상은 약속받은 땅에서조차 나그네로 떠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드러낼 예언자였기 때문입니다. 대기근 전에 요셉을 앞서 보내서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앞서 보내신 곳은 어디입니까?
[오늘의 묵상]
시인은 자기 민족의 역사를 읊는다.
자기 민족의 상황을 꿰뚫고 있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셨는지 노래한다.
이스라엘은 예전부터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아브라함부터 요셉과 야곱에 이르기까지, 창세기의 이스라엘은 나그네 삶의 연속이었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집트로 그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그리고 다시 이집트로…
매번 떠돌아 다녀야 하는 유목민의 삶을 살았다.
나그네는 언제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터줏대감들의 텃새를 잘 이겨내야 한다.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아야 한다. 혹은 너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
둘다 위험하다. 불가근불가원…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지도 않아야 안전을 보장받는다.
너무 약해도 위험하고, 너무 강해도 위험하다.
약하면 쉽게 제압당하고, 너무 강하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매년, 매월, 매일 실연해야 한다.
피곤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근심된다.
언어도 다르고, 복장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다.
딱 봐도 이방인이다. 나그네다. 이질적이다. 눈길이 간다. 위아래로 훑는다. 어린이들이 몰린다. 신기하게 쳐다본다. 그게 나그네다.
오래 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영구적인 것을 만들지 않는다.
천년 만년 무너지지 않을 집을 짓는 일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기후에 따라,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또 다시 움직인다.
유목민의 삶, 나그네의 삶이다.
하나님은 이런 나그네 민족을 도우셨다.
어딜가든 약자로 남지 않도록, 강자로 교만하지 않도록 인도하셨다.
겸손하지만 약하지 않은 나그네가 되게 하셨다.
그 나그네 덕분에 세상이 구출된다.
세계적 기근으로부터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요셉의 활약은 전 세계인에게 인상적이다.
기근으로 고통받던 모든 민족, 종족들이 하나님의 사람, 요셉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나그네 가문에서 세계의 구원자가 등장한 것이다.
하나님은 위기를 극복, 돌파할 수 있는 리더를 세우셨다.
그것도 힘없는 나그네 민족을 통해서 말이다.
떠돌이, 유랑하는, 부유하는, 떠다니는 나그네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만드신다.
충남지방회 IVF의 부제는 “나그네를 섬기는 나그네”이다.
자기 스스로 나그네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나그네의 마음을 잘 알기에 다른 나그네를 섬기려고 노력한다.
아브라함, 이삭, 요셉, 야곱을 닮았다.
충남IVF 공동체를 통해 많은 대학생들이 복을 누린다.
나는 언제부턴가 움직이지 않는 정주형 인간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왠만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이사도 거의 안하고 있다.
사역지도 바꾸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진다.
나그네가 아니라 점점 터줏대감이 되어간다.
나그네의 심정이 아니라 기득권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실제 삶의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지 않더라도 마음만이라도 생각만이라도 변화에 뛰쳐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왔다.
어쩌면 그 한계에 봉착했는지도 모른다.
내 안에 혁신의 정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현실을 잘 관리하는 것도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혁신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든다.
그렇다고 혁신이 능사, 정답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니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진다. 변화보다 현실감각을 키우는 일에 노력을 기울인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내 나이라면 어느 정도 그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그 관성을 깨야 하는 순간에 주저할 수 있다.
나의 프레임과 나의 관성을 깨야 하는 순간에 머뭇거릴 수 있다.
나그네를 이해하고 도와야 하는데, 그들을 밀치고 멀리하며 눈에서 치우려고 한다.
하나님이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할 때, 저항이 더욱 강하다.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 망한 거다. 순종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가 없다.
그게 슬픈 존재로 전락하는 길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여기까지 왔다고 믿는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렇게 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기에 더욱 주님께 집중한다.
나의 삶의 환경에 매몰되지 않기를 구한다.
시인의 고백이 나의 삶으로도 증명되길…
오늘 나의 삶이 나그네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인도로 채워지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께 더욱 부드러워지고 싶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인도에 더 적극적으로 따르게 하소서.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가 아니라, 주님의 역사에 대한 감탄과 기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지난 개인사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청소년기, 대학 시절, 군대 시절, 유학 시절, 저도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 그 시기에 저를 도우시고 인도해주셨던 것을 다시 기억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도 주님의 인도를 구하며 도움을 구하며 살길 원합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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