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8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 자녀 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2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3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4 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NIV

Children, obey your parents in the Lord, for this is right. “Honor your father and mother”--which is the first commandment with a promise--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and that you may enjoy long life on the earth.” Fathers, do not exasperate your children; instead, bring them up in the training and instruction of the Lord(1-4절).

 

[오늘의 묵상]

오늘은 5월 8일 어버이 날이다. 

오늘 말씀은 어버이 날에 최적화된 말씀이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그분들께 순종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예외가 있다. 

그것은 학대하는 경우다.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 이것이 학대다. 

자녀를 주님의 가르침으로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하지만, 그 가르침이 도리어 자녀들에게 분노를 들끓게 하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학대와 매한가지다. 

학대에 대해서는 거부해야 한다. 

문제는 어렸을 때에는 부모가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지 사랑으로 훈계하고 있는지 분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 

혼자 키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요사이는 인터넷에 온갖 종류의 육아 상식이 떠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거라 믿기도 하지만, 너무 많아서 결정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나누면서 믿음으로 양육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순종함이 더욱 옳다. 

결국 연세가 있으신 부모님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자녀들에게 있다. 

돌봄은 직접적일 수도 간적접일 수도 있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다. 

자신의 아이를 돌보듯, 이제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때가 온다. 

그 순간에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과 존경으로 돌보길 원한다. 

심력과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두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만족스런 돌봄을 실천하기 어렵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순간적인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과 감정에 집중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당신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저에게 부모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끝까지 존경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그분들의 육체는 약해지고 그만큼 의지도 약해지기에 그분들을 돌보는 일을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그분들의 삶과 헌신과 희생을 항상 기억하며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기 원합니다. 

그분들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았습니다. 

감사의 마음이 가득한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5월 07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21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22 아내 된 이 여러분,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십시오.

23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구주이십니다.

24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5 남편 된 이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십시오.

26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27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자기 앞에 내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28 이와 같이, 남편도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29 자기 육신을 미워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육신을 먹여 살리고 돌보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그렇게 하시듯이 합니다.

30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입니다.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32 이 비밀은 큽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33 그러므로 여러분도 각각 자기 아내를 자기 몸 같이 사랑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중하십시오.

 

주석

21-25절. 이 단락은 신자들에게 상호 복종을 요청하며 시작된다. 물론 바울은 뒤이어 아내들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자녀와 종들에게는 순종하라고 요구하지만, 이 첫머리 요구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 남편과 부모, 상전도 복종과 존경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복종이라는 원리의 기초는 ‘그리스도에 대한 경외’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그리스도가 가르쳐 주신 것 혹은 그 배후에 그분의 권위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시사한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1.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

성도들 속에는 성령 하나님이 거하신다. 

예수님의 영이 성도들의 마음 속에서 활동하신다.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예배 드리는 성도들의 마음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바라 볼 때, 우리는 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이다. 

형제 자매를 대할 때, 사랑과 존중의 마음을 갖는 것이 관계의 기본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형제 자매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서로 순종한다는 말은 쉽게 이해되는 말은 아니다. 

순종은 위계 관계상 하위자가 상위자의 말을 따르는 것이 상식처럼 들린다. 

그런데 서로 순종은 상하 관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의미다.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믿어야 한다. 

주인과 종,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이… 사회적으로는 상하 관계에 놓여 있던 고대 사회에서 평등한 관계로 믿고 인식하는 것이 “서로 순종”의 전제 조건이다.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은 하늘에 앉아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위엄과 영광을 바라볼 때, 경외의 마음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분이야 우리를 친구처럼 여겨주시기도 하시지만, 그래서 12 제자들의 발을 다 씻겨 주시기도 하셨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분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 

그분은 온 우주를 통치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2. 남편과 아내

남편과 아내는 서로 순종함이 기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것도 기본이다. 

바울이 아내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또한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내만 순종하고 남편만 사랑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순종하고 서로 사랑해야 함이 맞다. 

상대방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순종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비유한다. 

유사점이 있기 때문에 비유한다.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한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다. 

남편과 아내가 기본적으로 서로 순종하고 사랑해야 하지만, 가부장제 속 남편과 아내의 역할과 관련해서 모범이 될 만한 사례는 남편이 아내를 자기 목숨만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여 순종하는 일일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전쟁이 언제나 일어나고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버려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조차도 버릴 각오로 아내를 보호한다면, 그 아내와 자녀들이 그 남편과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피를 흘리며 아내를 지켜내는 그 사랑을 경험한 가족은 그 남편의 말에 적극적으로 순종할 것이다. 

바울이 보는 그림은 이런 그림이다. 

이 이상적 관계 모델은 어디서 분명하게 드러났는가? 

그렇다. 예수님과 교회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니 이 둘의 유사성을 가지고 비유를 든 것이다. 

그렇다고 관계이 기초인, 서로 순종과 서로 사랑이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그거대로 더 분명해져야 한다. 

하지만, 육체적, 사회적 힘과 권력이 더 많았던 시대, 남편들이 해야 할 역할은 아내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 놓을 정도의 진정한 사랑이다. 

그 사랑이 있다면, 아내와 아이들은 남편의 말과 뜻에 적극적으로 따라 존경하고 순종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서로 순종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계급 관계는 청산되었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면서 상대방을 위해 헌신한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기에 상대방의 뜻과 말에 적극적으로 순종한다. 

이것이 현대 가족의 모범적 모델이 된다. 

일방적으로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개념은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 

남편이든 아내이든 상대방을 위해 목숨을 내놓기까지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3. 자기 사랑 

29절의 말씀이 이 본문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게 여겨진다. 

 

29 자기 육신을 미워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육신을 먹여 살리고 돌보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그렇게 하시듯이 합니다.

 

누구나 자기 육심을 위해 산다. 

육신을 먹여 살리고 돌보기를 그치지 않는다. 

이것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유사하다. 

자신이 자신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기까지 사랑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자신의 의지에 대해 존중하고 순종한다. 

그래야 그 몸, 그 자신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기 사랑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개념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의 안위에 대해서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다 망가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선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할 수 없다. 

 

운동을 하고, 건강식을 먹고, 몸을 관리하고, 정서를 관리하는 것은 단순히 나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내가 건강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다 건강하면 금상첨화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회복을 위해 도울 수 있다. 

그런면에서 자기 사랑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는 없다. 

자기를 부러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 남을 온전히 사랑할 수는 없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제 자신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죽음으로 사신 제 자신을 아끼고 보살피고 돌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하지만 거기에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도 조금씩 더 넓혀 보고 싶습니다. 

제 몸과 마음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으로 타인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그런 기회를 주시고, 그런 마음을 허락하소서.

 

저와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더욱 밝히 드러나게 하소서. 

서로 순종하고 서로 사랑하게 하시되, 

때로는 제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아내를 위해 최대한의 희생을 감당하도록 하소서. 

그렇게 주님을 드러내는 가정이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5월 06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1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주님께 부르짖는 내 음성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2 내 기도를 주님께 드리는 분향으로 받아 주시고, 손을 위로 들고서 드리는 기도는 저녁 제물로 받아 주십시오.

3 주님, 내 입술 언저리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 앞에는 문지기를 세워 주십시오.

4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어울려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않게 해주십시오.

5 의인이 사랑의 매로 나를 쳐서, 나를 꾸짖게 해주시고 악인들에게 대접을 받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나는 언제나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6 그들의 통치자들이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면, 그제서야 백성은 내 말이 옳았음을 알고서, 내게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7 맷돌이 땅에 부딪쳐서 깨지듯이 그들의 해골이 부서져서, 스올 어귀에 흩어질 것입니다.

8 주 하나님, 내 눈이 주님을 우러러보며, 주님께로 내가 피하니, 내 영혼을 벌거벗겨서 내쫓지는 말아 주십시오.

9 내 원수들이 나를 잡으려고 쳐 놓은 덫에서 나를 지켜 주시고,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함정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0 악인들은, 자기가 친 덫에 걸려서 넘어지게 해주시고, 나만은 안전하게, 빠져 나가게 해주십시오.

 

[오늘의 묵상]

1. 시인의 기도

시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도한다. 

먼저 주님을 부르는 기도를 드린다. 

주님을 부르는 것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작은 소리 혹은 신음으로 부르는 방법, 큰 소리로 부르짖어 부르는 방법이 그것이다. 

주님께 드리는 기도를 성전의 분향처럼 받아주시길 바란다. 

손을 들어 기도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주님께 마음을 모으고 주님과 소통하고 사귀기 위한 모든 방법들이 기도라고 할 수 있다. 

걸으면서도 달리면서도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일상의 모든 영역은 기도의 소재요 방법이다. 

성령님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과 접속할 수 있는 기도로 우리를 안내하신다. 

특히 악인이 우리 앞을 가로 막을 때 우리는 더욱 기도하게 된다. 

 

2. 악인을 만날 때

시인은 악한 자들과 어울려 악을 도모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악인들이 대접하는 진수성찬을 먹는 것은 독배일 뿐이다. 

그 순간은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결국 나를 꼬꾸라지게 만드는 일이다. 

그들과 어울리면 마음이 악한 일로 기울게 된다. 

그들과의 대화도 중요하다. 

3절에서 시인이 왜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고, 문지기를 세워달라고 기도했는지 이해가 간다. 

악인들과의 대화에서는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된다. 

개인정보도 쉽게 흘려서는 안된다. 

악인들은 그 어떤 정보로도 나를 해치는 자들이다. 

그들 앞에서는 말을 아끼는 것이 제일 좋다. 

악인을 분별하는 것도 핵심이다. 

 

3. 보호를 위한 기도 

결국 나의 능력으로 악인을 완전히 분별하거나 분리해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주변의 의인들을 통해 분별력을 길러 주신다. 

더럽혀지지 않은 의인들이 있어야 그들을 통해 나의 분별력도 올라가게 된다. 

의인들은 때로 엄하게 꾸짖는다. 

그들은 나에게 바른 길을 알려주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기도해야 한다. 

의의 길, 선한 길,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길을 많이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들과 더욱 많이 교제하고 싶다. 

이렇게 주께서 보호하셔야 악인으로부터 피할 수 있다. 

 

오늘도 악한 생각과 악한 길로부터 보호해주시길…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악인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주님께 다양한 방식으로 기도합니다. 

생각으로 기도합니다. 

소리내어 기도합니다. 

달리면서 기도합니다. 

악한 생각으로부터, 악인들로부터 보호해주세요. 

 

어제 말씀처럼 제 자신이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주님께 올려지는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성령님과 참 진리되신 예수님 안에서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나를 위한 예배를 너머 이웃을 위한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픈 사람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주께 올려드립니다. 

주님의 치료의 손길을 구합니다. 

병고치는 은사를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05월 03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6 여러분은 아무에게도 헛된 말로 속아넘어가지 마십시오.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과 짝하지 마십시오.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습니다.

10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

11 여러분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여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십시오.

12 그들이 몰래 하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13 빛이 폭로하면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14 드러나는 것은 다 빛입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서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어 주실 것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1. 빛의 자녀답게

5장 1절에서는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살라고 권면했던 바울이 8절에서는 빛의 자녀답게 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받는 자녀는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다. 

빛을 경험한 사람은 빛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다. 

예수님의 빛을 경험하기 전 사람들은 어둠에 갇혀 있었으며, 어둠과 매 한가지였다. 

무엇이 진실인지, 참인지, 선인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전쟁과 살생과 쾌락이 주를 이루었다. 

사회는 주인과 노예로 나누어졌으며, 그 계급을 유지하기 위한 살해와 억압이 기본 값이었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어둠에 묻히고 그 스스로 어둠이 되었다. 

예수님의 빛이 세상에 비추었으니, 그 빛은 생명의 빛이었다. 

그 빛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스스로 빛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빛의 자녀들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다. 

빛은 거짓을 폭로하고, 진실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을 건다. 

빛은 하나님의 기준을 모두에게 드러낸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준다. 

이것이 빛이다. 

빛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헛된 말에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사탄의 속임수, 사람들의 욕망에서 비롯된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하나님의 기준,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 선함과 의와 진실을 끝까지 따라간다. 

 

2. 빛의 폭로

어둠의 일들이 환히 드러난다. 

빛은 어둠을 폭로한다. 

죄악은 켜켜이 숨겨져 있다. 

한꺼풀을 벗긴다고 다 드러나지 않는다. 

죄악은 구조적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지속적인 폭로가 필요하다. 

빛은 계속해서 켜켜이 쌓인 구조적 죄의 꺼풀들을 발가벗긴다. 

육체의 욕망을 몰래 숨어서 계략을 짜고,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린다. 

경쟁자의 죽음으로 부와 영광을 차지하려고 한다. 

몰래 숨어서 저지르는 죄악을 빛은 폭로한다. 

그들의 숨은 의도와 거짓을 폭로하고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한다. 

죄인들은 부끄러움과 수치에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랑받는 자녀들은 빛의 자녀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빛으로 살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빛으로 살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랑이 곧 빛이다. 

삼위 하나님은 사랑으로 연합해계시기 때문에 그 자체로 빛을 발산하신다. 

사랑의 연합이 곧 빛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죄, 한국 교회의 구조적인 죄, 그리고 우리 가정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죄. 

그 죄의 구조를 폭로하고, 드러내고, 도려내어 선, 의, 진리를 선포하자. 

교회 세습은 욕망이 작동하는 구조다. 

힘들고 어려운 자리, 누구도 마다하는 자리에 희생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누가 세습이라 하겠는가? 

미자립 개척교회의 세습을 누가 반대하겠는가? 

중대형 교회들이 세습을 시도하니 반대하는 것이다. 

특히 대형 교회들의 세습은 그 욕망의 구조가 참으로 지저분하고 더럽다. 

세상 기업과 다르지 않다면, 교회는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작고 미약한 교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결정들이 더는 나와서는 안되겠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사실을 오늘도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더 깊이 누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그 사랑 때문에 빛으로 환히 빛나게 하소서. 

성격이 밝고 쾌활해서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져서 나오는 빛이 있습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빛이 있습니다. 

그 빛을 비추게 하소서. 

빛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제가 속한 공동체에 그런 빛을 비추게 하소서. 

서로에 대한 원망과 비난을 멈추고 사랑으로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희생의 마음으로 서로를 세워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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