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2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

3 음행이나 온갖 더러운 행위나 탐욕은 그 이름조차도 여러분의 입에 담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성도에게 합당합니다.

4 더러운 말과 어리석은 말과 상스러운 농담은 여러분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감사에 찬 말을 하십시오.

5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음행하는 자나 행실이 더러운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 숭배자여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몫이 없습니다.

 

 

주석

3-5절. 이 부분은 신자들 가운데서 발견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한 진술이다. 성적 부도덕과 음란, 탐욕은 용인될 수 없는 행동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죄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즐기는 방편이 된다면, 이런 것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 마치 예수님이 욕정에 물든 생각 자체가 그런 생각을 부도덕한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 동일한 죄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다(마 5:27-30). 이런 범죄는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자격을 누리는 것과 양립할 수 없다(참고. 고전 5:9-11)(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1.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바울이 제시하는 윤리 덕목의 근저에는 사랑받는 자녀라는 정체성이 놓여 있다. 

구원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윤리적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애 윤리적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윤리적 행동이 뒤따른다. 

1, 2절이 그 부분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래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주셨다. 

이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으로 살아가게 된다. 

받은 사랑 떄문에 존재가 변하고, 존재가 바뀌니 삶의 윤리와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이 윤리를 만들어낸다. 

의지나 결심이나 성공이나 목표달성 때문에 윤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공공선을 위해,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윤리적 행동이 나오기도 한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인간의 악한 습성을 전제할 때, 이런 윤리적 논의는 합리적이고 합당하다. 

그러나 그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의 윤리는 사랑받는 자녀라는 깊은 자각과 감사가 기초다. 

그 사랑이 다른 윤리적 덕목과 행동 양식을 낳는다. 

 

2. 우상숭배자 OUT

사랑받는 자녀라는 확신은 성령님이 제공하신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닮도록 우리를 이끄신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 밝혔듯이 육체의 욕망과 육체의 행실은 성령님의 인도를 방해한다. 

성적 부도덕과 음란, 탐욕은 성령님의 인도를 거부하게 된다. 

성령님의 인도를 거부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불가능하다. 

사랑받는 자녀의 개념은 가정에서 확립된다. 

가정에서 자신이 사랑받는 자녀의 경험이 많은 사람은 그 개념에 대해 빠르게 이해한다. 

그리고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도와주었던 것을 하나님께도 투사한다. 

가정에서의 경험이 그래서 중요하다. 

온전한 용납의 경험이 필요하고, 그것의 최종적인 완전한 형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온다는 것을 경험할 때, 비로소 육체의 욕망을 이길 힘을 얻는다. 

육체의 욕망의 근저에는 온전한 용납(사랑)에 대한 욕망이 놓여 있다. 

이것이 충족될 때, 심리적으로 과도한 육체의 욕망을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근본적 욕망과 필요를 채우신다. 

 

바울은 음행이나 행실이 더러운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숭배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조각품을 만들어 절을 하는 사람만이 우상숭배자가 아니다. 

로마 시대 곳곳에서 행해지던 수많은 음행이나 더러운 행실, 그리고 탐식을 비롯한 부에 대한 욕심들 모두 우상숭배의 한 형태란다. 

구약 시대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던 그 죄악이 신약에서도 여전히 만연되어 있었다. 

성도들은 그 죄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 시작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에 기반하여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삭개오가 좋은 본이다. 

 

 

[오늘의 기도]

깨끗한 삶, 정결한 삶을 원하시는 예수님, 

오늘도 수많은 생각과 말과 행동 속에서 정결한 삶을 살도록 이끄소서. 

죄악을 즐기지 않게 하시고,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우소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면서 이겨내길 원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죄악의 생각들이 점점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하소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분의 삶을 인도하소서. 

주께서 기적으로 역사하소서. 

주님의 일하심을 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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