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8

요한계시록 바로 읽기#1

2019. 10. 6. 김혁수 

 

0. 들어가며 

- 헤롤드 캠핑

미국의 패밀리라디오 설립자였던 해롤드 캠핑 목사는 1994 96 세상의 끝이 것이라고 처음 예언했지만 틀렸습니다. 새롭게 예언했던 2011 521일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죠. 캠핑 목사는 예언이 틀릴 때마다계산이 잘못됐다 변명했으며, 마지막으로 예언했던 2011 1021일마저 빗나가자 예언이 틀렸다 인정하게 됩니다. 세대주의자들의 시대 계산은 이렇게 어긋났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언제 끝나는지에 대해 알기 원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이단 교주들의 교활함도 계속 늘어가고 있습니다. 

 

- Left Behind 

2014년에 영화가 하나 나왔습니다. 이름은 레프트 비하인드입니다. 라헤이와 제리 젠킨스가 시리즈로 편낸 것을 영화로 만들었죠. 휴거 이후의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영화는 사실 한국에서는 거의 폭망했습니다. 2016 9 개봉당시 66명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Left Behind라는 소설책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관심은 아주 당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습니다. 무언가 힌트를 찾을 있을 거란 기대를 걸고 말이죠. 기대는 요한계시록에 이르면 폭발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미래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미래에 벌어질 이야기들이 곳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두려워합니다. 두려워서 읽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피합니다. 덮어둡니다. 해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10 동안 요한계시록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함께 살펴보고 싶습니다. 함께 본문을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1. 계시, 묵시, 예언, 증언, 대언(1-3)

오늘 본문은 요한계시록 전체의 머릿말입니다.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편지의 성격에 대해 설명하고 무엇보다 편지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이 담겨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권위를 부여합니다. 

 

요한계시록 1 1-3절에는 특별히 편지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편지의 성격을 드러내는 단어들을 찾아볼까요? 한번 동그라미를 볼까요?

 

1) 계시_Revelation

가장 먼저 찾을 있는 단어는 계시라는 단어입니다. 계시라는 단어는 숨겨져 있는 것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알지 못했던 진실이 드러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시는 진실이라는 의미도 있고, 예수님 안에 숨겨져 있는 진실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원래 소유격은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합니다.

 

2) 묵시_ἀποκάλυψις

그런데 Revealation 헬라어가 바로 아포칼립스입니다. 묵시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아포칼립스는 일반적으로 세상의 끝을 의미합니다. 많은 영화와 이야기들이 아포칼립스를 말합니다. 시간적으로 세상의 끝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런 질문에 쉽게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묵시 혹은 아포칼립스가 세상의 종말에 대한 것만을 의미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콜린스라는 학자는 이렇게 묵시를 정리했습니다. 

 

묵시는 내러티브 틀을 가지 계시 문학의 장르다. 다른 세계에 있는 존재는 묵시를 통해 사람인 수신자에게 계시를 전달하고 초월적인 현실을 알려준다. 현실은 종말에 있을 구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간성을 지니며, 초자연 세계인 다른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간성을 지닌다.”

 

그렇습니다. 단순히 세상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월적인 현실 알리는 일종의 문학 장르입니다. 안에는 일정한 내러티브 존재하고, 일부 종말에 대한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그렇다고 종말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초월적 시공간을 넘나 들면서 현재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걸 간파해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런 묵시 문학은 예수님 탄생 200 전부터 유대교 안에 번져나갔습니다. 예를 들면, 에녹서, 아브라함의 계시, 모세의 승천, 엘리야의 계시, 에스라의 계시 같은 책들입니다. 유대교 묵시문학 아니라 기독교 묵시 문학도 상당히 다양한데요, 예를 들어, 베드로묵시록, 헤르마스의 목자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이 유일무이한 묵시는 아니죠. 

 

3) 예언_Prophecy

3절에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 요한은 책이 예언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언은 구약의 예언서 전통을 따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있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은 구약의 다니엘, 에스겔, 스가랴 같은 책들을 인용하기도 하고 상상을 따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언서의 재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성경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겁니다. 

 

4) 증언_Witness 

동시에 책은 요한의 증언입니다. 자신이 것을 실제로 봤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 그리고 그가 것을 책을 통해 증언 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5) 대언_Speaking for 

가끔 어떤 분들은 대언한다는 단어를 쓰기도 합니다. 사실 예언의 일반적인 의미가 미래의 일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서 사용되는 예언의 의미와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에서의 예언이란 하나님 말씀의 대언이라고 말하는 것이 좀더 낫습니다. 그분의 공식 대변인이 되어 공식적으로 그분의 뜻과 의지를 밝히는 역할입니다. 따라서 대언에는 미래적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상태의 묘사와 원인 분석과 미래의 전망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대언은 현재의 수신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 과정입니다. 

 

이런 단어들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단어를 무심코 사용하지 마시고 의미를 재규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을 바르게 읽을 있습니다. 때때로 개념규정을 무시하면 우리는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불편에 쉽게 휩쓸립니다.  

 

2. 수신자(4-5) 

1) The Churches and The CHURCH

요한계시록이 편지라는 사실을 4-5절이 보여주고 있는데요. 수신자에 대한 인사가 나옵니다.

요한은 소아시아 지금으로 말하면 터키 지역의 7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그의 사역 거점이었던 에베소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끝납니다. 그런데 지역에 7교회만 있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골로새, 드로아 교회를 비롯해서 여러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7교회들에게만 편지를 보냈을까요? 그것은 7이라는 완전 숫자를 통해 편지가 단순히 소아시아의 7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려주려는 겁니다. 편지는 모든 교회들을 위한 편지입니다.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을 위한 편지입니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우리도 해당합니다. 우리 교회도 편지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생각보다 여러분이 요한계시록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에 약간 충격을 받습니다. 여러분, 창세기도 중요합니다. 마태복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요한계시록도 중요합니다. 왜요? 편지는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2) 축복과 근원 

요한은 수신자들을 축복하는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축복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축복의 근원에는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있습니다. 많은 찬양에도 들어가 있는 문구이기도 한데요. 역사와 시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도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6절에 보니 그분의 보좌 앞에 누가 있습니까? 7영이 있습니다. 7 완전수 입니다. 죽은 사람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왕들을 지배하십니다. 다시 말해, 모든 역사의 왕이시요 주인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의 은혜와 평화를 빌고 있는 겁니다. 스케일이 다릅니다. 그냥 단순한 인사가 아닙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은혜와 평화를 구하는 겁니다. 

 

우리는 축복이 일상화되어 있나요? 세상을 놀라게 하라 저자, 마이클 프로스트는 삶으로 전도하는 기독인의 다섯 가지 생활 습관을 제시했습니다. 그중에 첫째가 바로 축복하기입니다. 이렇게 제안합니다. 나는 이번 주에 사람을 축복한다. 최소한 그중 사람은 우리 교인이 아니어야 한다.” 이겁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총리요, 왕의 대리 통치자로서 세상에 보여주어야 태도는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축복입니다. 우주의 근원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나누는 겁니다. 다양한 언어로 축복합니다. 상대방의 장점을 읽어주고 장점이 어떻게 앞으로 쓰이게 될지 예언적인 어투로 축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대화 속에서 불쑥 불쑥 튀어 나오도록 평소에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식사 시간에 기도로 축복할 있으면 좋지만 그게 여의치 않으면 밥먹기 전에 상대방을 축복하는 말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에 대해 축복하고 그의 관계를 축복합니다. 한번 연습해 볼까요.

 

3. 초대 교회의 송영(5-6)

5 후반부부터 6절까지는 초대교회가 외우고 노래부르던 찬송의 가사입니다. 한번 여러분이 가사를 가지고 노래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사랑하시네,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해방하시네.

우리가 그분의 나라가 되게 하시어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삼아 주셨네 

예수 그리스도, 그에게 

영광과 권세, 영원무궁하리, 영원무궁하리

아멘.

 

그렇습니다. 그냥 이런 노래가 매번 모일 때마다 불려졌을 겁니다. 요한도 에베소 교회에서 찬양할 때마다 노래를 불렀을 겁니다. 그들의 고백이요, 그들의 찬양입니다. 노래에는 다섯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사랑

2) 해방

3) 나라

4) 제사장

5) 영원한 영광 

 

하나하나 살펴볼 내용들입니다. 노래의 가사 중에 가장 닿는 소절이 있나요? 저는 제사장으로 삼아주셨다는 말이 닿습니다. 그동안은 유대인들만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제사장은 선택받은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노래는 지금 소아시아 지역, 이방인들로 가득한 땅의 교회들이 부르고 있습니다. 이방인들도 이제 제사장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의 화해의 예식을 거행하는 사람들이 제사장입니다. 막힌 담을 허물고 관계를 서로 개선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역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를 확인시켜주고 확신하게 만드는 역할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을 제사장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 부름 앞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학교의 교수님이 어떤 역할을 맡겨도 우리는 충실하게 하려고 합니다. 직장의 상사가 어떤 역할을 맡기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우주의 주인께서 우주의 왕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제사장의 역할을 맡기고 계신 겁니다. 어쩔 없습니다. 우리의 자아가 확장됩니다. 팽창됩니다. 물론 겸손해져야 겠지요.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섬겨야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의 자아상은 우주적으로 팽창됩니다. 우리의 역할을 전지구적입니다. 우리의 지위는 전세계적입니다. 이걸 받아들이면 저와 여러분은 전혀 다른 삶을 꿈꿀 있습니다. 9 한달동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총리의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총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지구적, 전세계적, 전우주적 역할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만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겁니다. 마음으로 축복하는 겁니다. 전우주적 총리가 제사장이 축복하는 겁니다. 

 

4. 초대 교회의 확신(7-8)

초대교회의 노래가 불려졌습니다. 그럼 이제 그들의 확신이 기도로 표현됩니다. 7-8절입니다. 

 

1) 예수님의 재림 

그들을 예수님의 재림을 확신했습니다. 인자가 구름타고 다시 내려올거라는 천사의 말을 그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 천사가 장면을 지켜보던 제자들에게 말입니다. 너희가 그대로 다시 오실 이라고 말입니다. 말을 초대 교회 성도들을 믿었습니다. 믿음의 확신이 그들의 예배와 그들의 편지에 계속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겁니다. 

 

2) 예수님의 심판

예수님의 재림은 그를 신실하게 따르던 제자들에게는 축복이요 기쁨입니다. 하지만, 그를 따르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땅을 치며 슬픔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냥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행동과 행위에 대가에 대해 물으실 것입니다. 때에는 분명한 그분의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걸 부정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너무나 많은 성경 본문이 그분의 마지막 심판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때까지는 언제든지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십니다. 초대에 응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분이 다시 오시는 날은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알곡과 가라지를 나눌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만인구원론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3) 알파와 오메가 

8절은 요한계시록이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임으로 어떻게 드러내십니까? 그렇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라는 상징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이제도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새로운 이름이 붙습니다. 그것은 처음과끝이라는 이름입니다. 한자로는 시종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를 통해 새롭게 부여된 예수님의 이름은 시종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처음과 끝입니다. 시종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처음과끝이신 영원한 왕이신 분이 이제, 우리를 제사장으로 부르신 그분이 이제, 현재의 교회와 미래의 교회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그분의 현실을 알려주시기 원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초월의 시공간으로 진입하기 직전입니다. 

 

5. 나가며 

- 요한계시록 여행을 위하여 

여러분, 요한계시록은 매우 독특한 문학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현실로 우리는 이제 여행을 떠납니다. 사실 저도 긴장이 됩니다. 마치 블랙홀 여행을 떠나는 같습니다. 블랙혹은 빛을 빨아들입니다. 그리고 빛은 모든 시간의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모든 빛의 순서를 재현할 있다면 그것은 모든 역사를 다시 있다는 말입니다. 블랙홀은 우주의 빛이 빨려들어가는 곳입니다. 따라서 모든 역사가 뭉탱이로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렇게 신비한 공간입니다. 이건 저의 추론이고 상상입니다. 그런 공간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해보세요. 결코 만만치 않을 겁니다. 요한계시록 여행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구약의 예언서, 신구약 중간기의 유대 묵시 문학, 신약 시대의 기독교 묵시 문학이 뒤섞여 있습니다. 게다가 시간과 역사의 주인 되신시종예수님의 초월적 현실이 속에 녹아 있습니다. 그러니 쉽게 읽으려하지 않습니다. 읽더라도 너무 제멋대로 해석해버립니다. 사람들을 속이기 가장 좋은 성경입니다. 그렇지만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함께 요한계시록을 통해 예수님의 뜻과 생각을 그분의 계획을 조금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성령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이필찬, 마이클 고먼, 리차드 보컴, 유진 피터슨 같은 분들이 여행을 하는데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이상한 영화나 이상한 이단들의 말들을 분별할 있는 힘을 같이 길러갑시다. 

 

 

 

 

** 기도회 

1. 세상의 현실과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우리 주님에 대해 무관심했다면 주님께 회개하는 기도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2.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알파요 오메가이신 예수님을 깊이 알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계시, 묵시, 예언, 증언, 대언을 통해 드러난 예수님과 그분의 생각을 깊이 알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떤 생각을 주로 하고 계신지 알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특히 요한게시록을 통해 깊이 알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3. 우리가 가진 권위와 지위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축복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의 기도를 드립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총리요, 제사장입니다. 우리의 축복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선하게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축복의 권위와 권한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번 한주 축복의 사람이 되겠다고 기도합시다. 

누가복음 9:1-6

복음의 얼개#4_새로운 통치_Disciples

2019. 9. 22. 김혁수

 

0. 들어가며 

복음의 얼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세상을 통치, 다스리고 싶어하셨습니다. 사람을 2인자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나라의 초대 총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사단의 말을 따른 것이죠. 하나님 나라의 총리로서 절대 있을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총리가 다스리던 세상은 저주를 받아 생존의 경쟁과 죽음의 공포를 낳았습니다. 인간사는 미움과 전쟁으로 가득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완벽한 총리인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새로운 통치를 시작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회복의 강물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와 교회를 통해 세계로 흘러가는 원대한 꿈이 시작됩니다. 

 

오늘은 네 번째 시간입니다. 새로운 통치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우리는 통치의 어느 시점에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럼 본문을 같이 읽어볼까요? 

 

1.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

1) 권위(1-2) 

8장에서 예수님은 12제자들에게 사역의 본을 보여주십니다. 풍랑을 잔잔하게 하십니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십니다. 또한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을 고치시죠.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사역들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연을 다스리시고, 사단의 세력을 쫓아 내시며, 병을 고치시고 죽음을 정복해가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다시 세상에 내려온 겁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원래의 통치와 다스림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스림을 이제 제자들에게 맡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 자신만이 아니라 그분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권위 부여하십니다. 권한을 주시고 그에 걸맞는 능력 부여해주십니다. 그것이 1, 2절의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열둘을 자리에 불러놓으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주시고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게 하시려고 그들을 내보내시며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놓으시고 그들에게 원하셨던 것은 단순히 좋은 교육을 받고 지식이 많아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가르치시고 본을 보이신 이유는 그들도 예수님 처럼 세상을 회복시키는 다스리는 , 총리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아담과 하와로 그들을 세우시는 겁니다. 다스림의 위치로 사람들을 올리시고 세우시는 장면이 여기에 등장합니다. 

 

아담  사람의 범죄 때문에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예수 그리스도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_로마서 5:17

 

2) 신뢰(3) 

이제 제자들은 , 새로운 총리들은 아담, 하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 , 순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3절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합니다. 지팡이도, 빵도 은화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속옷도 벌씩 가지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돈을 가지고 다니면서 물건을 사고 숙식을 해결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돈을 주더라도 받지 말라라는 의미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서 세상에 다니는 겁니다. 현재 돈이 없어도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겁니다. 그분을 신뢰함으로 회복의 다스림을 실천합니다. 이게 원래 아담과 하와가 가져야 태도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아담과 새로운 하와가 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3) 확산(4) 

신속하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다닐 것을 예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합니다. 굳이 부잣집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마을이건 제자들을 환영하는 집이면 족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다스림은 빠르게 선포됩니다. 

 

4) 심판(5)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집과 마을이 있을 겁니다. 마음을 닫고 제자들을 환영하지 않는 집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마을이 있을 겁니다. 때에는 먼지를 떨어버리면서 마을을 벗어납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했기에 미래에 심판을 받게 것입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마을을 떠날 , 신발의 먼지를 털어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거부하는 것은 마치 이방인의 땅이 되는 처럼 하나님의 백성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 하나님 나라의 확산의 일등공신(6)  

이렇게 제자들은 여러 마을을 두루 다녔습니다. 그들은 복음(6) 전했습니다. 그리고 병을 고쳤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복음은 무엇인가요? 이들이 전한 복음은 무엇인가요? 십자가의 복음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았다는 복음입니까? 부활의 복음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소식입니까? 아닙니다. 이들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소식입니다. 오래전부터 예언되어왔던 메시야가 가운데 왔다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소식을 누가 전달하고 나르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말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을 내어쫓습니다. 병자를 낳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임한다는 말도 했겠지요. 

 

2. 새로운 총리들_제자

그럼 이제 새로운 총리들이 어떤 힘으로 그들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지 살펴봅시다. 

 

1) 총리의 확신 

가장 먼저, 새로운 총리들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자신들의 권위가 무엇인지 확신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거죠. 훈련소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훈련 하나는 관등성명말하기 입니다. 127 훈련병 김혁수, 조교가 말할 , 지시할 마다 소리로 외치게 합니다. 자신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지금은 훈련을 받고 있음을 계속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총리로 부름받은 제자들은 계속 반복적으로 자신들이 그러한 존재임을 확인합니다. 어떻게 합니까? 

 

- 십자가와 부활

십자가와 부활이 입니다. 죄의 권세,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원한 절대적인 사건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자신들을 얽어매던 죄의 고리가 끊어졌음을 확인합니다. 부활을 통해 죽음의 권세를 이겼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상 아담과 하와에게 내려졌던 저주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아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돌려주지 않는 상황, 그래서 정글같은 세상에서 경쟁하며 살아야 하는 상황, 게다가 생명의 나무 열매를 먹을 없게 되어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상황, 그래서 죽음의 공포를 항상 느끼며 살아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한 저주가 깨졌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이걸 매번 공동체가 모일 마다 확인합니다. 그것이 성만찬이요. 주일 예배입니다. 성만찬은 십자가 사건을 상징합니다. 새로운 언약이 체결되는 순간을 기념합니다. 주일 예배는 부활을 상징합니다. 유대인의 예배는 안식일이라 불리던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예배는 주일입니다. 그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이 재정된 것입니다. 

 

- 사랑의 승리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했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승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십자가와 부활에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과 의도를 신뢰하고 의지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겁니다. 속에서 확신을 갖고 새로운 총리의 삶을 시작하는 겁니다. 12제자 아니라 선교여행을 했던 70명의 제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제자, 그리고 초대교회의 수많은 제자들이 사랑의 승리를 믿었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완승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세계에 흩어질 있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것이 확신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우리에게 이런 의미를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 사랑의 승리로 인해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나를 하나님 나라의 총리로 임명하셨구나 이런 확신말입니다. 

 

2) 다스림의 방법 

그럼 총리가 우리가 사용하게 다스림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려나가야 할까요? 

 

- 산상설교_하나님 나라의 헌법(마태복음 5-7) 

먼저, 하나님 나라의 헌법과 법률인 산상설교에 힌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선포하시고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가르치신 내용이 바로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설교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부터 시작해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헌법 조항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죽음의 세력이 다스리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식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슬퍼하고 의를 위해 살고 온유하며 자비롭고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시공간입니다. 그런 시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새로운 총리들이 해야 일입니다. 

 

회복적 써클 교육 받고 왔습니다. 써클은 대화방식을 의미합니다. 회복적 써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시에 회복될 있도록 돕는 대화모임입니다. 대전에서 있었던 2 3일간의 회복적 써클 교육은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합니다. 경청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깨닫게 됩니다. 사실 확인과 자기 정당성 주장만으로는 서로의 상처가 아물지 않습니다. 복수심만 증폭시킵니다. 그래서 많은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일어나서 학폭위가 일어나기 전에 회복적 써클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저도 그렇고 우리 모두 대화법을 배우고 몸에 익히면 좋겠습니다. 

 

- 예수님의 _섬김(발을 씻기심과 십자자)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 다스림의 방법을 가르쳤다면 뒤로는 직접 자신이 본을 보입니다. 가장 드라마틱하게 나타난 곳은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과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중동 팔레스타인의 길거리는 모래먼지, 흙먼지로 가득합니다. 날씨도 더워서 주로 슬리퍼 형식의 신발을 신고 다닙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발이 더러워집니다. 종들은 주인들의 발을 씻겨줍니다. 그게 종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허리춤에 수건을 두르시더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겁니다. 충격입니다. 제자들은 이렇게까지 섬겨야 되는지는 몰랐을 겁니다. 결국 십자가의 죽으심도 제자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총리들은 아담과 하와 처럼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돌리는 책임회피의 죄를 짓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안고 갑니다. 이런 섬김과 희생으로 세상을 다스립니다. 세상을 돌봅니다. 이웃을 회복시킵니다. 

 

3) 총리의 안식_삼위일체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섬기는 새로운 총리들은 어떻게 일을 지속시킬 있을까요? 이게 중요합니다. 이걸 배우지 않으면 어느 순간 총리의 직분을 망각하고 방식대로 살게 됩니다. 경찰, 검찰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갑자기 시민을 섬기지 않고 자신들을 위해 일할 , 사회는 엉망이 됩니다. 새로운 총리들도 언제든지 그런 잘못을 저지를 있습니다. 새로운 총리들도 충분히 쉬면서 그들의 역할을 감당할 새로운 힘과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시공간이 어디입니까? 

 

- 예수님과의 식사 

먼저는 왕이신 예수님과의 식사입니다. 총리들은 왕과 자주 식사를 나눠야 합니다. 회의만 자주해서는 안됩니다. 식사를 나누고 사적인 대화도 나누고 세상 섬김의 고충에 대해서도 함께 나눠야 합니다. 부활후 갈릴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시고 그들의 아침밥을 챙겨주셨습니다.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심지어는 저주까지 퍼부었던 수제자 베드로에게 번이나 사랑 고백을 하게 하심으로써 그의 영혼을 회복시켜주십니다. 그것이 식사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통해 제자들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총리들은 바로 예수님과의 식사시간을 즐겨야 합니다. 예수님이 공급해주시는 음식과 말씀을 자주자주 먹고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매일 큐티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매주 공동의 식사를 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교회 공동체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끼라도 같이 밥을 먹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성만찬을 진행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 예수님의 기도 

특히 제가 사랑하는 본문인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삼위 하나님께로 초대하는 장면 나옵니다. 그분의 사랑의 연합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연합하여 삼위 하나님께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야 우리는 세상을 섬길 있습니다. 그런 연합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세상을 섬긴다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나를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게 됩니다. 

 

3.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

총리의 확신과 통치의 방식, 그리고 총리의 안식에 대해 같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그건 예수님 시대의 제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거지 과연 나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건가? 맞습니다. 저도 그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것이 우리에게도 해당된다고 말합니다. 

 

1) 70명의 총리들(10:1-2) 

성경에서는 처음 12명의 제자들을 세상을 회복시키는 총리의 일로 부르셔서 세상에 보내십니다. 이것이 오늘 누가복음 9장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가보면 12명이 아니라 70명을 보내십니다. 

일이 있은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일흔[] 사람을 세우셔서, 친히 가려고 하시는 모든 고을과 모든 곳으로 둘씩 [둘씩] 앞서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_누가복음 10:1-2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이제는 70 혹은 72명을 보내십니다. 그러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추수할 일꾼이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많은 추수꾼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추수꾼이 있습니다. 

 

2) 모든 제자들의 파송(1:8) 

게다가 누가복음과 원래 묶음이었던 사도행전에서는 어떻게 됩니까?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끝에까지 이르러 증인이 것이다.”_사도행전 1:8

부활 후에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하신 말씀이십니다. 성경에는 말씀에 순종하여 전세계를 다니면서 총리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사도 바울이 대표적이죠. 바나바도 있습니다. 실라와 마가도 그러합니다. 그런 동역자의 이름이 빼곡하게 들어 있는 곳이 로마서 마지막 장입니다. 로마서 16 대부분이 그런 총리들의 이름으로 가득합니다.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4. 나가며 

- 송청제자 공동체를 통한 새로운 통치

세상을 섬기는 송청제자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봤습니다. 할일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과 관련해서 가지만 제안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경청입니다. 영혼의 갈망을 들을 있는 경청입니다. 상대방의 진심을 들을 있는 경청의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회복이 일어납니다. 서로 연결되는 경험은 서로의 존재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의 갈망을 들을 비로소 일어납니다. 회복적 써클 프로그램 경청 훈련이 있었습니다. 상대방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이 말하면 아무말 하지 않고 따뜻한 주목 속에서 듣습니다. 그러다 침묵이 흐르면 침묵도 언어임을 받아들이고 잠시 기다립니다. 그리고 다시 묻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이렇게 3-4번을 묻습니다. 물을 때마다 깊은 자신의 갈망을 말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서로의 영혼의 갈망을 경청하고 함께 갈망을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기도회 

1.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총리로 부르십니다. 그분과 공동통치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두렵고 떨리고 긴장되는 일이지만, 세상을 회복시키시고 아름답게 다스리는 총리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이런 의식을 조금씩 조금씩 많이 갖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2. 총리로서의 확신 중요합니다. 다스림의 방법을 아는 중요합니다. 동시에 저는 총리의 안식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총리는 너무 많은 일에 시달릴 밖에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학교와 직장에서 많은 일들로 시달립니다. 그러면 그럴 수록 총리는 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과의 식사가 필요합니다. 특히 삼위하나님과의 연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쉼을 누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일을 위해 기도합시다. 예수님 주님 안에서 안식하게 주세요. 

 

3. 섬기기 위해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상대방 영혼의 중심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있도록 훈련받아야 합니다. 정보와 정당성의 근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영혼의 갈망에 집중하는 겁니다. 그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던지고 또한 듣는 우리가 되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누가복음 19:1-10

복음의 얼개#3_완벽한 총리 Jesus 

2019. 9. 15. 김혁수 

 

0. 들어가며

- 명절 증후군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 보내고 오셨습니까? 명절 풍속도가 많이 바뀌었더군요. 예전에는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사이는 근처 음식점에서 함께 식사하고 카페에서 마시고, 영화관에서 영화보는 경우도 많이 늘었더라구요. 추석 당일 샤브샤브 레스토랑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영화는 보셨나요? 우리 옆에 있는 사람과 명절에 영화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나눠볼까요? 

 

- 무가베의 생일 케이크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대통령이던 로버트 무가베씨가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1980 짐바브웨를 통치하던 백인 독재정권으로부터 민족해방운동을 펼쳐서 결국 정권을 가져오고 1980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집권한 뒤에 그는 37년간 독재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였으며, 무리한 정권이양 과정을 진행하다가 2017년에 반대 세력의 쿠테타로 권좌에서 내려오게 되었죠. 그는 자신의 생일만 되면 특별한 케이크를 제작했는데요. 89 생일에는 89kg짜리 생일케이크를 만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계속해서 자신의 나이에 따라 그와 같은 무게의 케이크를 만들어 왔다는 겁니다. 물가 상승률이 너무 높아서 100 단위의 짐바브웨 화폐로도 한조각을 없는 지경으로 경제를 파탄냈습니다. 국민들은 경제 파탄으로 고통받는데 무가베 자신만 사치스런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싱가포르 병원에서 95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민족해방운동에 헌신했지만 독재자로 악명을 떨친 무가베를 생각해볼 , 세상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1. 총리 공석

1) 제국과 황제 

아담과 하와라는 하나님 나라의 총리가 하나님께 반역하여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았고, 그들은 생명을 잃을 운명이 되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를 매일 매순간 경험했어야 합니다. 그들이 다스리는 세상은 더이상 에덴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자손들이 다스리는 세상 또한 에덴이 아니었습니다. 무한 경쟁의 살벌한 정글의 세상이었고, 살인과 전쟁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사람이 최고였습니다. 전쟁에 능한 사람이 최고였습니다. 전쟁의 승리자는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돈과 명예와 여자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전쟁에 능한 사람이 왕이 되었으며, 왕들 중에 제국을 형성한 사람이 바로 황제가 되었던 겁니다. 

 

2) 폭력과 전쟁의 역사

2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 독일 ,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을 이긴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은 전쟁의 역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역사의 장을 펼치자 마자 우리는 인간 사회가 전쟁으로 얼룩져 있는 것을 보게된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으로 가득합니다. 아주 작은 부족간의 싸움에서 1, 2 세계 대전 같은 전세계적인 스케일의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내전으로 고통받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전쟁에 동원되는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자원과 기술과 인력이 동원됩니다. 아주 집약적으로 국가의 능력이 집중될 , 사람을 죽이는 무기의 개발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총리들이 서로 사랑함으로 세상을 돌보고 다스리는 그림이 망가져버렸을 , 총리가 공석이 되었을 , 세상은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립니다. 이것이 죄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반역자들은 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반역자들은 사단에게 끌려다니는 존재가 되고 것입니다. 

 

2. 완벽한 총리

여기서 끝나면 세상에 대한 분석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고통 받는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하신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를 대신하는 예수라는 하나님이자 인간을 내려보내 주신 겁니다. 그래서 완벽한 총리의 역할을 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완벽한 총리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살펴봅시다. 

 

1) 여리고의 삭개오

- 여리고, 삭개오, 세리장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도중에 당시 교통의 요지였던 여리고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리고는 헤롯 대왕의 웅장한 겨울 궁전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산지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도시였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곳에 당연하게도 세리장이 있었습니다. 통행세를 걷어서 로마에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바로 삭개오라고 합니다. 로마는 세금관리원을 입찰제로 뽑았습니다. 대부분 로마로부터 급여를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로마에 보내야 세금 이외에 걷힌 돈을 가졌습니다. 세리장이다 보니 밑에서 근무하던 세리들보다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였을 겁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하나 같이 세리장 삭개오를 미워했습니다. 그는 로마에 부역하는 민족 반역자였기 때문입니다. 세리와 창녀를 동급으로 생각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리장은 창녀들을 관리하는 포주격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절대 같이 해서는 안됩니다. 

 

- 예수님에 대한 기대 

그런데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의 기이한 행적에 대해 들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통행료를 걷는 세관원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에 정보에 빨랐습니다. 갈릴리로부터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메시야 일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소문 퍼져나갔습니다. 병자들을 고치고 여리고 근처의 눈먼 사람을 낫게 했다는 이야기로 사람들이 수군댑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 있었습니다. 문제는 150센티 이하의 작은 키로는 예수님의 얼굴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리적으로도 작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사람들 사이로 용감하게 들어갈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냥 멀찌감치 떨어져서 군중과 함께 계시는 같은 예수님을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나이가 제법 많을 법한 세리장이었던 그는 뽕나무라고도 하는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이번에는 정말 예수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몇번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셨을 겁니다. 유명해지신 다음에도 여리고에 오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마다 제대로 본적이 없었을 텐데, 이번에는 제대로 보고 싶었습니다. 

 

실은 자신의 권한을 갖고 예수님을 오라고 수도 있었습니다. 통행세를 내라고 하면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세무서로 오라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자리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럼 자신은 갑이 되고 예수님은 을이 되니까 쉽게 대화가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 돼지 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던 자신을 구원할 자로서의 메시아가 맞는지 그저 보고 싶었습니다. 

 

2) 삭개오의 회심 

- 회심의 증거

예수님은 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속히 내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5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말에 예수님 주위에 있던 여리고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 세리장, 그를 몰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세금 공무원이니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동네의 왕따였습니다. 죄인이었습니다.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에는 뭐라 못하지만 뒤에서는 엄청 뒷담화를 했던 삭개오입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머물겠다고 하시다니요. 

 

예수님의 갑작스런 청유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어떻게 생각하면 쭈뼛쭈뼛 주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얼른 서둘러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아주 기쁘게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그의 회심의 첫번째 증거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의 대화를 기뻐했습니다. 그분과의 만남을 고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연 그분과의 대화, 그분과의 기도, 그분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나요? 정말 그런 열망이 우리에게 있나요? 

 

최근 저의 모습을 보니 그런 열망이 조금 식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겠다고 다짐도 하고 복음을 전해야한다는 사명감은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수님과의 저녁식사, 그분과의 대화를 과연 기대하고 고대하고 열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기도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순간이 충만하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사역으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너무 많은 프로젝트들로 마음이 분주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돌아가야 회복의 쉼터는 바로 그분과의 저녁식사입니다. 예수님과의 대화의 시간입니다. 고요히 앉아서 혹은 고요히 걸으면서 우리는 그분과의 대화에 집중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역이 아니라 식사가 필요합니다. 프로젝트가 아니라 티타임이 필요합니다. 

 

삭개오의 기쁜 마음이 첫번째 회심의 증거입니다. 두번째는 그의 결단 있습니다. 8절입니다.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불법적으로 착복하거나 과도하게 세금을 징수하여 누군가의 돈을 빼앗은 적이 있다면 배나 갚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삭개오가 이미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판단할 충분한 근거를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는 그동안 느꼈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한 겁니다. 이런 결단을 쉽게 있겠습니까? 

 

우리라면 과연 이런 정도의 결단을 내릴 있을까요?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엇인가의 절반을 포기할 있을까요? 사회적 명예도, 민족적 자존심도 버리고 모았던 돈입니다. 돈이 있기에 그는 그나마 살아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돈의 절반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의 절반을 포기하며 있을까요? 

 

초대교부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증언에 따르면, 삭개오는 후에 가이사랴의 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회심의 이유

여기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같습니다. 그것은 삭개오가 회심하게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주목과 다가오심, 그리고 제안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삭개오를 주목하십니다. 그리고 내려오라고 먼저 말을 건네십니다. 죄인임에도 먼저 다가오신 겁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 하룻밤을 지내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제적 말과 행동이 삭개오의 회심을 낳았습니다. 그분의 다스림이, 그분의 돌봄이 삭개오의 마음을 녹인 겁니다. 

 

3. 완벽한 총리의 활약

1) 사람을 회복시킴

여러분, 예수님은 완벽한 총리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시는, 아니 그것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아담이 실패했던 바로 일을 완벽하게 성공하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셔서 마음의 병을 고치십니다. 육신의 질병을 고치십니다. 사회적 관계를 회복시키십니다. 사람들이 은혜를 누리도록 은혜를 흘려보내십니다. 에덴의 개의 강물이 흘렀던 것처럼 이제는 사방으로 예수님의 은혜의 강물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돌봄과 다스림의 사역이 세계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강물을 접한 사람들은 더이상 생존 경쟁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위협과 공포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다른 가치가 그들에게 부여됩니다. 다른 존재의 이유가 생깁니다. 소명이 주어집니다. 예수님과 함께 은혜의 강물을 흐르게 하는 작은 시내가 됩니다. 대지를 적시는 강줄기가 됩니다. 

 

2) 섬김을 통한 다스림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어볼까요? 10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자는 예수님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아담과 하와가 아니겠습니까? 그의 자녀들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들을 찾아오신 겁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_마가복음 10:45

 

여러분, 이런 자기 인식을 가지고 세상을 살다가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자신의 욕구와 욕심에 이끌려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놓을 정도로 잃어버린 자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돌보신 겁니다. 세상의 권력자들, 독재자들, 정치가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분을 높이 세우셔서 우주적 왕권을 그에게 주신 겁니다. 

 

빌립보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위와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_빌립보서 2:8-11

 

총리가 드디어 왕이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우리에게 총리직을 다시 맡기고자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번이나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명령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니가 나를 사랑한다면 이제 양을 먹이고 떼를 먹이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에게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보고 하나님 나라의 총리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4. 나가며

- 예수님을 따른다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가르침과 그분의 방식에 따라 우리의 창의성을 덧붙여서 세상을 돌봄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돌봄으로 다스리는 겁니다. 예배도 중요합니다. 기도도 중요합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따라서 잃어버린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세상을 회복시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도 삭개오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삭개오처럼 여겨진다면 그분을 초대하십시오. 혹시 여러분 주변에 삭개오가 많다면 그들에게 제안하십시오. 예수님과의 저녁식사를 한번 보면 어떻겠냐고 말입니다. 이번 동안 그런 기회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회 

1. 언젠가부터 자신도 모르게 사회에서 삭개오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살펴봅시다. 외톨이로 루저 취급받으면서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돈이나 다른 것에 목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삭개오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는 기도를 드립시다. 

 

2. 삭개오에게 찾아오셔서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의 인생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저와 함께 식사를 나눠달라고 기도합시다. 예수님과 한번 정말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씀드려봅시다. 

 

3. 우리 주변에 수많은 삭개오들에게 예수님의 돌봄과 섬김의 모습을 소개할 있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매력적인 예수님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할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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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1-13

복음의 얼개#2_총리의 반역

2019. 9. 6. 김혁수 

 

0. 들어가며 

- 썩은 복숭아

역겨운 느낌 하나가 썩은 과일, 그것도 곰팡이가 생긴 과일을 자기도 모르게 움켜쥐었을 때입니다. 최근에 복숭아 가격이 싸서 상자를 사다 놓은 적이 있었어요. 아이가 둘이니까 금방 먹게 알았습니다. 냉장고에 넣지 않고 그냥 식탁 한쪽에 놔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안가더라구요. 그저 자리에 계속 있었습니다. 어느날 복숭아가 먹고 싶어서 상자에서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아랫부분이 물컹거리는 겁니다. 한쪽은 물렀고 주변으로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이렇게 관리가 안되면 과일이 썩어 버립니다. 누군가는 돌보고 애정을 갖고 보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돌아가고 생명이 유지됩니다. 그런 사소해보이지만 위대한 일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겁니다. 

 

- 왕과 총리 그리고 에덴

우리는 지난 주에 하나님은 왕이시고 아담과 하와는 총리에 가깝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왕과 총리는 함께 세상을 통치합니다. 왕은 총리에게 세상을 다스릴 권한 책임을 부여하셨죠. 개의 강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세계로 뻗어나갑니다. 에덴은 단순히 나무와 숲이 우거진 숲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세계 통치의 중심지였습니다. 총리는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깊이 사랑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되어 세상을 다스립니다. 그림을 하나님은 그리고 계십니다. 너무나 조화롭고 너무나 평화롭게 자연만물을 돌보고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끝나지 않죠. 문제가 발생합니다. 오늘은 문제가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나눠보고 싶습니다. 본문을 읽어볼까요? 

 

1. 총리의 반역 

1) 말의 왜곡 

먼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창세기 2:16-17)

 

왕은 모든 권한을 총리에게 일임했습니다. 한가지는 위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총리는 왕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총리는 총리의 자리가 있고 왕은 왕의 자리가 있습니다. 둘이 혼합되어서는 안됩니다. 총리가 왕과 똑같이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한계를 어떻게 확인할 있을까요? 맞습니다. 바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제한을 둠으로써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부정적인 명령, 하나를 어기게 되면 그것은 왕에게 반역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매우 강한 어조로 부정적인 명령을 내리십니다. 

 

무엇이라고 표현되어 있나요? 그렇습니다. 그것을 먹게 되면 반드시 죽는다. “Surely Die”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아담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 표현입니다. 그렇게 다정하신 분이, 그렇게 아담을 위해 가장 좋은 에덴 동산을 만들어서 선물하신 분이 갑자기 반드시 죽게 된다고 정색을 하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말씀을 하실 하나님의 표정을 그냥 상상해 봅시다. 어조를 상상해 봅시다. 웃으면서 장난기 있는 얼굴과 어조로 말씀했겠습니까? 아마도 세상 진지하게 말씀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분의 말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봅시다. 먼저 하와는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입니까? 3 3절입니다. 무엇이 달라졌나요? 일단 하나님은 만지지도 말라라는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아담이나 하와가 추가적으로 집어넣은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먹지 않으려면 만지지도 말아야 한다고 추가적인 조항을 스스로 만들었을 있죠. 어쨌든 달라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는다 했는데, 하와는 부사를 생략합니다. 죽는다고 하셨지 정도의 늬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뭔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강조가 빠져버립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뱀의 말을 들어볼까요? 너희는 절대 죽지 않는다 맞습니다. 뱀이 아주 강력하게 부정합니다. 왕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게다가 왕의 의도를 부정적으로 설명합니다. 왕과 총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굳이 인간이 왕이 필요가 없습니다. 충분히 총리로서 만족할 있습니다. 그러나 뱀은 사람들의 마음에 총리가 아니라 왕이 되라고 부추깁니다. 

 

2) 누구를 신뢰하는가? 

대목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를 신뢰하는지의 문제에 봉착합니다. 에덴을 만드시고 세계 통치의 기회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지 아니면 일개 피조물이며 사람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존재인 뱀의 이야기를 신뢰하는 것이 옳은지 결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때때로 하나님 말씀보다 세상의 소리를 훨씬 쉽게 믿어버립니다. 마치 우리가 왕이라도 있는 우리를 속이는 세상의 음성에 쉽게 귀기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게 우선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추구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세상에서 구현되는지 찾고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 그러니까 인격으로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언약을 충족시키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예수로 구현된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우리의 삶의 자리를 혁신하고 우리의 교회 공동체를 혁신시켜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그런데 일은 항상 뒷전입니다. 당장 공부와 생계에 너무 매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과감한 도전이 필요합니다. 때로 기도하면서 그런 도전으로 가득차 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신뢰하시나요? 왕이신 하나님이신가요? 아님 지혜로운 음성으로 찾아온 사단인가요? 

 

3) 선악과의 의미

번만 이야기 해봅시다. 선악과는 나무 자체에 마술적 힘이 있는 아닙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가장 기능은 왕과 총리를 구별하는 겁니다. 최종적인 선과 악의 판단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인간은 영역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고유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면 안됩니다. 그게 바로 왕의 자리를 노리는 반역입니다. 쿠데타입니다. 반란입니다. 

 

2. 반역의 결과 

1) 다스림의 반전

그러나 결국 사람은 사단의 음성에 기울이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선악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었습니다. 순간 그들은 더이상 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총리의 역할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오히려 그들은 뱀의 유혹을 받는 존재가 됩니다. 총리로서의 능력과 자격도 상실합니다. 정통성도 잃어버립니다. 다스리라고 했더니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반역의 결과 그들은 왕이 아니라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총리자리를 뺏앗기고 죄의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2) 관계의 훼손

확연한 반역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훼손입니다. 그들은 더이상 하나님을 면목이 없었습니다. 숨고 싶었습니다. 더이상 세계 공동통치의 그림은 사라졌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도 이제는 사랑을 말할 없게 되었습니다. 서로 남의 공방만 합니다. 아담은 하와 탓을 합니다. 그러면서 아주 교묘하게 하나님 탓을 합니다. 12절을 잃어볼까요. 그럼 하와는 누구 탓을 합니까? 그렇습니다. 탓을 합니다. 물론 그것도 근원에서는 아담과 하나님 탓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를 살중의 , 뼈중의 뼈라고 노래 부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한테 뒤집어 씌우네어이없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서로 한마음 몸이 되어 부끄러움이 없이 사랑하며 세상을 돌보고 다스리던 그들은 하염없이 무너집니다. 

 

3) 자연만물의 훼손

거기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다스리던 땅도 덩달아 저주를 받습니다. 땅의 소출이 줄어듭니다. 아니라 오히려 노동에 반하는 결과물들이 나옵니다. 땅이 엉겅퀴와 가시 덤불을 냅니다. 3:17-19절을 읽어봅시다. 

 

“17남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서,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 땅이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있을 것이다. 18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것이다. 너는 들에서 자라는 푸성귀를 먹을 것이다. 19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있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자연은 사람 때문에 저주를 받습니다. 인생의 수고로움은 노동에 대한 충분한 댓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자연 만물에 퍼져있는 저주때문입니다. 인간은 생존의 위협을 느낍니다. 죽음의 공포를 경험합니다. 

 

3. 반역자의 후손들 

우리는 반역자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니 방금 나열했던 저주가 우리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1) 다스림을 받다 

먼저, 다스림을 받습니다. 특히 우리가 세상을 다스리기 보다 세상이 우리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돈이 그렇습니다. 돈에 의해 움직입니다. 때문에 행동합니다. 돈이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자체야 가치 중립적이죠.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은 자체로 강력한 뱀입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옵니다. 돈만 있으면 이것도 있고, 이것도 있고, 저기도 있는데…. 인류역사의 많은 전쟁은 사실 경제적 이권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식민지 개척의 주요한 동력도 식민지 경제 수탈때문입니다. 자국의 낮은 생산력을 만회하기 위해 식민지의 자원과 노동력을 값싸게 가져오기 위해 전세계에 식민지 전쟁을 벌였습니다. 석유 때문에 중동은 언제나 화약고 입니다. 명분은 다양하지만 속내를 보면 대부분 경제적 이유가 있습니다. 돈이 전쟁을 부른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돈이 인간을 다스립니다. 

 

쾌락이 인간을 다스립니다. 중독을 보면 있습니다. 마약 중독, 중독, 포르노 중독, 알콜 중독, 게임 중독중독에 빠지면 쉽게 빠져 나올 없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시작하게 됩니까? 우리를 기분좋게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고통과 아픔을 잊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쾌락이 우리를 다스립니다. 

 

2) 관계를 버리다

둘째로 반역자의 후손들인 인간들은 관계를 제대로 맺을 모릅니다. 이기적인 존재로 바뀝니다. 수치를 가리는데 급급합니다. 투명함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포장하여 자신을 멋진 존재로 사회화 시킵니다. 관계를 소중이 여기지 않습니다. 성공을 위해 관계를 버립니다. 자신을 보호하고 성공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배신합니다. 우리는 모두 투명하고 자신을 온전히 받아주는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는 거부합니다. 공동체에 사랑이 없어 이런 이야기는 자주 하지만 내가 공동체의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일은 거부합니다. 겉으로는 친절한 처럼 보이지만 형제 자매의 마음 깊은 고통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그렇게 서로 멀어집니다. 그렇게 하나됨은 멀어집니다. 

 

3) 정글 생존게임

셋째로 반역자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참으로 곤혹스럽습니다. 노동에 댓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생존 자체가 걱정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됩니다. 한국 만큼 경쟁이 심한 나라가 없습니다. 어떤 입시 제도를 가져다 놔도 과도한 경쟁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수시가 정시로 바뀐다고 경쟁이 줄어들겠습니까? 사회가 경쟁 사회입니다. 정글입니다. 번만 헛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옆의 친구를 이겨야 내가 승진할 있습니다. 정글 생존게임에 처절하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모든 고통은 성경에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다가 반역을 저지른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반역의 결과가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겁니다. 

 

4. 나가며

- 에덴 

여러분, 사랑하는 여러분,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우리의 자리를 그분의 공동통치자로 다시 승격되어 서로 사랑하는 한몸과 한마음으로 세상을 조화롭고 평화롭게 돌보고 다스리는 에덴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 저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단순히 상상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교회가 회복된 에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은 우리가 새로운 에덴에서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다스림을 실시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18-23

18[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19또한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0하나님께서는 능력을 그리스도 안에 발휘하셔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셔서 21모든 정권과 권세와 능력과 주권 위에, 그리고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일컬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22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아래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23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입니다. 

 

어떻습니까? 교회가 예수님의 다스림의 중심입니다. 새로운 에덴은 사실 교회를 통해 드러납니다. 말씀도 같이 봅시다. 

 

에베소서 2:19-22

19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20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그리스도 예수가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21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22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교회로 세워집니다. 그리고 교회가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실행하는 겁니다. 바로 교회인 우리가 일을 수행하는 겁니다. 교회가 우리가 새로운 회복된 에덴입니다. 

 

사실을 아는 자들은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다스림의 지역 센터가 바로 교회인 겁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9월입니다. 우리가 일은 기독 공동체가 새로운 에덴으로 기능하도록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멋진 새에덴이 있을지 기도하면서 은혜를 구하면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일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기독 공동체의 미래에 여러분의 의견을 더해주세요. 기도로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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