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8. 

 

[본문_로마서 12:1-3] 

새번역_1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2여러분은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3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라이트 번역_1그러므로 사랑하는 가족이여,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런 예배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됩니다. 2더욱이 여러분은 시대가 강요하는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마십시오. 도리어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무엇이 선하고 합당하며 온전한지 분별할 있도록 하십시오. 3내게 주신 은혜를 통하여 여러분 각자에게 이것을 말합니다. 자신에 대해 마땅히 생각해야 이상으로 높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정해 주신 참된 기준인 믿음에 따라 냉철히 생각하십시오. 

 

[참고본문_요한복음 17:15-19]

새번역_15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16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17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19그리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설교]
0.
들어가며
3
월에는 신앙의 딜레마라는 주제로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이 되겠습니다. 다루어야 주제는 많지만, 3월에 숙고한 주제들을 돌아보니, 마음과 육신, 성령의 법과 죄의 , 예수님의 육신 속에 정죄하심 , 결국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끝에는 /죄책감의 해결과 은혜에 대한 책임이 놓여 있음을 보게 됩니다. 지난 말씀의 결론 부분이었는데요. /죄책으로부터는 자유하지만, 은혜로부터는 부자유하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은혜로부터 부자유하다는 말이 생각보다 딜레마적인 어구더라구요. 그래서 딜레마도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로마서 말씀을 통해 은혜로부터 부자유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나아가 은혜에 대한 책임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로마서의 전환, “그러므로

로마서는 크게 부분으로 나눌 있습니다. 1-1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이방인과 유대인의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는지를 다룹니다. 그리고 12장부터 마지막까지는 죄의 문제가 해결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구분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오늘 주제와 관련해서 로마서를 이렇게 구분해 봤습니다. 12 1절의그러므로 8 1절의그러므로 견줄 있는 위대한그러므로입니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인류에게 8 1절의그러므로 반전의 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경험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12 1절의그러므로 우주적 사건으로서의 죄의 해방에서 일상의 삶으로의 전환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로마서의 그러므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하심을 힘입어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이 성도들에게 강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입은 성도들은 이제 자신을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제물로 드려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 삶의 예배인데요. 세상의 주류 사상과 틀에 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냉철하게 세상의 프레임을 분별하고 과감히 절연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그런데 말을 전하는 바울도 자신이 은혜를 입은 자이며, 은혜를 힘입어, 은혜를 통해 권한다고 반복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추론할 있는데, 은혜를 입은 성도들도 은혜를 힘입어 은혜를 통해 거룩한 제물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임을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책임(은책감)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계기입니다. 

 

2. 은혜에 대한 반응, 은혜를 갚다, 은혜에 대한 책임. 

여러분, 많은 설교자들이 값싼 은혜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 왔습니다. ‘천국 티켓을 사기 위한 죄의 고백 문제에 대해 말해 왔습니다. 죄를 용서받고서는 실제로 죄에서 돌이키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불완전한 회심이라고 저격했죠. 맞습니다. 은혜에는 그에 합당한 반응이 요구됩니다. 오늘 저는 가지 개념을 들고 왔습니다. 하나는 은혜에 대한 반응, 둘은 은혜를 갚다, 셋은 은혜에 대한 책임입니다. 비슷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릅니다. 은혜에 대한 반응이 가장 포괄적인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은혜에 대한 반응하면, “감사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감사를 표현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럼 은혜를 갚다는 어떨까요? 은혜를 갚는 것의 이미지는 받은 은혜에 동일한 수준 혹은 이상으로 되돌려 주는 장면입니다. 100만원의 은혜를 100만원 혹은 이상으로 갚는 것이죠. 이것은 갚을 능력이 있는 경우에 있는 말이겠습니다. 저는 개념이 성경에서 말하는 것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말을 만들었습니다. 은책(은혜에 대한 책임) 단순히 감사하는 느낌과 말전달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은책은 은혜를 갚는 식의 동일 행동 이상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은책은 은혜 받은 사람이 모종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책임의 범위는 감사를 표현하는 것보다는 무거운 것이며 죽음으로 갚는 것보다는 가벼운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표현에 의하면, 시대가 강요하는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는 , 도리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무엇이 선하고 합당하며 온전한지 분별하는 ”(2)입니다. 

 

3. 당위의 메커니즘 

그런데 은책이 바울만 사용한 개념이 아님을 우연히 큐티를 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목소리를 통해서죠. 오늘 참고 본문 요한복음 17:15-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직전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힘을 다해 제자들을 축복하시면서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을 세상 말고 다른 곳으로 옮겨주시기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세상 속에 있기를 그러하기에 악한 자들에게서 보호받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기도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진리로 거룩하게 달라고 간청입니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는 , 이것이 거룩함입니다. 바울의 말과 통합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이것이 바로 은책입니다. 

 

죄책도 당위(해야함) 만들어 냅니다. 죄책을 느끼는 사람들은 죄에 대한 책임감으로 사회규범 이상의 과도한 기준을 설정하고 지켜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 합니다. 그렇게 해야할 일이 늘어납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무거운 마음이 두려움으로 발전하고 두려움은 온갖 부정적 행동의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은책은 이와 다릅니다. 은책도 당위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감사가 원인입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는 사랑으로 이어지며, 사랑은 과도한 책임감에서 벗어나 사랑의 대상이 가장 원하는 소원에 집중합니다. 당위의 메커니즘이 상반됩니다. 은책감은 당위를 애호로 바꿉니다. 따라서 은책감은 부담감이 아니라 즐기기로 점차 변모합니다. 은혜가 우리의 사고 구조와 행동 방식을 바꾸는 것이죠. 

 

4. 나가며_죄책감에서 벗어나 은책감으로 살아가기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당위를 요구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사회적 규범 아니라 가정에서의 규칙들, 나아가 부모 선생님의 개인적 기호나 성격에서 비롯된 숱한하지말라와 해라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규범, 규칙, 해라/하지마라는 자연스럽게 죄책감의 사고구조와 행동방식을 낳았습니다. 거기다가 종교적 도덕률이 추가되어 많은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죄의 본질보다 죄의 곁가지에 얽매여 스스로 가중처벌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제 죄책감에서 벗어납시다.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와 넓이를 경험하고 새로운 사고 구조와 생활방식을 장착합시다. 이것이 마음이 새롭게 변화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유와 기쁨, 감사 속에서 새로운가벼운 부담감’, 은책감으로 살아갑시다.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거룩함을 추구하되, 억지로 함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자연스러운/우연한/특별한 도움으로 거룩함까지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은책감으로 주를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함께 생각해 문제 & 기도] 

1. 은책/은책감은 무엇일까요? 과연은혜에 대한 책임이라는 개념이 온당한가요?   

 

2. 값싼 은혜, 피해자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가해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없이, 죄의 고백만으로 용서받는다는 개념은 무엇이 문제인가요? 은책은 값싼 은혜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요?  

 

3. 은책/은책감으로 살아갈 , 여러분에게 가장 걸리는 부분/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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