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5 20 목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뒤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그들을 굴복시키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았다.

2 다윗은 모압 쳤다. 그는 모압 포로들을 줄을 지어 세운 다음에, 그들을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중에 줄은 죽이고, 줄은 살려주었다. 모압 사람들은 다윗의 종이 되어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3 르홉의 아들, 소바 하닷에셀 유프라테스 유역에서 자기 세력을 되찾으려고 출정하였을 때에, 다윗이 그를 치고,

4 그에게서 기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다윗은 병거를 끄는 가운데서도 필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모조리 다리의 힘줄을 끊어 버렸다.

5 다마스쿠스의 시리아 사람들 소바 하닷에셀을 도우려고 군대를 보내자, 다윗은 시리아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쳐죽이고,

6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주둔군을 두니, 시리아도 다윗의 종이 되어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다윗이 어느 곳으로 출전하든지, 주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다.

7 때에 다윗은 하닷에셀의 신하들이 가지고 있는 금방패를 빼앗아서, 예루살렘으로 가져 왔다.

8 다윗 왕은, 하닷에셀의 성읍 베다와 베로대에서는, 놋쇠를 아주 많이 빼앗아 왔다.

9 하맛 도이는, 다윗이 하닷에셀의 군대를 쳐서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10 그는 자기의 아들 요람을 다윗 왕에게로 보내서 문안하게 하고, 다윗이 하닷에셀과 싸워서 이긴 것을 축하하게 하였다. 하닷에셀은 도이와 서로 싸우는 사이였다. 요람은 은과 금과 놋으로 만든 물건을 많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다.

11 다윗 왕은 이것들도 따로 구별하여서, 이미 정복한 모든 민족에게서 가져온 것에서 따로 구별하여 은금과 함께 주님께 바쳤는데,

12 그것들은, 그가 에돔과 모압과 암몬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과 아말렉에게서 가져온 은금과, 르홉의 아들인 소바 하닷에셀에게서 빼앗아 물건 가운데서, 따로 떼어놓은 은과 금이었다.

13 다윗은 돌아오는 길에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팔천 명을 쳐죽이고, 이름을 떨쳤다.

14 때에 다윗이 에돔에 주둔군을 두기 시작하여서, 에돔에 주둔군을 두니, 마침내 에돔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었다. 다윗이 어느 곳으로 출전하든지, 주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다.

15 다윗이 왕이 되어서 이렇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 그는 언제나 자기의 백성 모두를 공평하고 의로운 법으로 다스렸다.

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역사 기록관이 되고,

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지휘관이 되었다. 다윗의 아들들은 제사장 일을 보았다.

 

다윗은 블레셋과 모압을 치고 조공을 받았습니다. 소바와 시리아를 종으로 삼고 하맛으로부터 자발적 조공을 받습니다. 다윗 왕국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확장됩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다윗의 승리가 아닌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1-10절). 다윗 또한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여호와께 드리며 영광을 돌립니다(11-14). 다윗은 공평과 의로 왕국을 다스렸습니다(15-18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다윗은 다윗의 일을 온전히 수행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승리하게 하시고, 공평하고 의로운 다윗 왕의 통치는 온 백성에게 평화로운 일상을 선물했을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우리도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삶, 공평과 의로 이웃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합시다.

 

——

주님의 통치

 

감사기도를 드린 다윗은 이제 본격적인 주변국 정리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약속도 받았겠다 나라의 내부 상황이 정리되고 안정되니, 이제 외부로 눈을 돌려 그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주변국들의 항복을 받아낸다. 조공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언제 이스라엘이 이렇게 주변 민족에게 조공을 받았는가?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통일 왕국의 위엄이 이곳에서 드러난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다윗은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2 다윗은 또 모압을 쳤다. 그는 모압 포로들을 줄을 지어 세운 다음에, 그들을 땅에 엎드리게 하고, 매 석 줄 중에 두 줄은 죽이고, 한 줄은 살려주었다. 모압 사람들은 다윗의 종이 되어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성경 저자는 다윗이 살육 장면을 자세히 묘사했다. 마치 매우 지혜롭고 정당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같다. 

물로 다윗 시대에는 이와 같은 방식이 나름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포로들을 학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끔찍하게 죽어나가는 동족들을 보면서 전의를 상실했으며 혹은 미쳐갔으며 이제는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참혹한 일이다. 

이런 전쟁을 수행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이 무조건 좋게만 들리지 않는다. 

 

14 다윗이 어느 곳으로 출전하든지, 주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다.

 

전쟁없는 통치는 불가능한가?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하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다윗의 전쟁 이야기를 지금의 현실 전쟁의 합리화로 연결시키는 것은 참으로 염치 없고 게으른 행동이다. 

다윗의 전쟁 이야기는 악에 대한 예수님의 대항과 전쟁의 프레임으로 봐야 한다. 

예수닝의 통치가 임하는 그날, 자칭 세상의 통치자들은 저항할 것이다.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자신들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의와 공평의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리기 시작하는 예수님에 대해 사단의 잔존세력들은 계속해서 저항하고 방해한다. 

예수님은 그들을 괴멸시키시고, 복종시키신다. 

프레임이 오늘 이야기 플롯에 접목되어야 한다. 

단순하게 나라 간의 전쟁은 불가피하다거나 자신들의 전쟁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노력은 쓰나미에 쓸려 나가야 한다. 

예수님은 결코 그런 폭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 저항하는 사탄의 무리, 졸개들은 결국 패퇴하여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세상은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와 공평의 나라를 받아들인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한 분이시다. 

그분의 영을 받은 우리도 예수님으로 가득한 사람들이다. 

 

주변에 악이 여전히 예수님의 통치를 거부한다. 

미얀마의 군부 세력이 그렇다. 

인도의 정치권력은 계급제를 타파할 개혁의지가 없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무자비한 폭격을 가하고 있다. 

북한의 인권은 여전히 최악이다. 

전쟁의 소문이 끊어지지 않는다. 

살인과 악마적인 범죄가 여전하다. 

 

우리 주님의 강력한 전쟁이 수행되길 소망해본다. 

어딜가나 승승장구하시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를 희망해 본다. 

그리고 최종 승리가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바란다. 

 

——

 

주님, 

장군이 되어 주십시오. 

세계에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사단의 세력들,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는 사단의 권세들, 

예수님께서 괴멸시켜 주시고, 

세상에 온전한 하나님 나라 이뤄주소서. 

당신이 다시 세상에 오셔서 진정한 왕이 되시길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5 19 수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8 다윗 왕이 성막으로 들어가서, 주님 앞에 꿇어앉아, 이렇게 기도하였다. " 하나님, 내가 누구이며 집안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나를 이러한 자리에까지 오르게 해주셨습니까?

19 하나님,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것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시고, 주님의 종의 집안에 있을 장래의 일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이것이 어찌 주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일상적인 방법이겠습니까?

20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을 아시니, 다윗이 주님께 무슨 말씀을 드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21 주님께서 세우신 뜻과 목적대로 주님께서는 이렇게 크나큰 일을 하시고, 그것을 종에게까지 알려 주셨습니다.

22 하나님, 주님은 위대하십니다. 우리의 귀로 들어 보았습니다만, 주님과 같은 분이 계시다는 말은 들어 적이 없고, 주님 밖에 다른 하나님이 있다는 말도 들어 적이 없습니다.

23 세상에서 어떤 민족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겠습니까? 하나님이 직접 찾아가셔서, 이스라엘을 구하여 내시고, 주님의 백성으로 삼아서, 주님의 명성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하여 내시려고 일을 하셨고, 주님의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른 민족들과 신들에게서 그들을 친히 구원하시려고 이렇게 일을 하시었고, 주님의 땅에서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24 주님께서는 이렇게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튼튼히 세우셔서, 영원히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25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과 종의 집안에 약속하여 주신 말씀이 영원히 변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26 그래서 사람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하고 외치며, 주님의 이름을 영원토록 높이게 하시고, 주님의 다윗의 집안도 주님 앞에서 튼튼히 서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27 만군의 ,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께서 몸소 계시를 종에게 주시고 '내가 너의 집안을 세우겠다!' 하고 말씀하여 주셨으므로, 주님의 종이 감히 주님께 이러한 간구를 드릴 용기를 얻었습니다.

28 그리고 이제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참으로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님의 종에게 이와 같이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29 그러므로 이제 주님의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셔서, 나의 자손이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대를 잇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직접 그렇게 약속하여 주셨으니, 주님의 종의 집안이 영원토록,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에 다윗은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받은 사랑과 은혜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집안에 은혜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18-21절).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자신의 백성 삼으시고 구원하여 주신 여호와를 찬양합니다(22-24절). 하나님의 언약이 신실하게 이루어지길 간구합니다(25-29절).

 

세상 어디에도 주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우리를 직접 찾아와 주시고, 티끌과도 같은 우리를 그분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환란 날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 깊은 수렁에 빠진 우리를 건져주시는 하나님, 진실로 그분만이 나의 주 하나님이십니다. 당연하게 받아 누렸으나 당연하지 않은,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묵상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려 드립시다.

 

——

기도의

 

그리스도인에겐 기도의 날이 필요하다. 

그날만큼은 다른 것을 접어두고 오롯이 기도에 집중한다. 

기독교 전통에서 피정이라고 부르는 기도의 날은 말수도 줄이고 침묵하면서 하나님만을 묵상한다. 

때로는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그렇게 기도의 날을 지킨다. 

 

아마 다윗은 이날, 온종일 기도의 날로 지켰을 같다. 

물론 침묵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침묵이 대수인가!

오롯이 이날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하다. 

은혜를 받은 ,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마음의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19 주 하나님,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것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시고, 주님의 종의 집안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 이것이 어찌 주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일상적인 방법이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일상적인 방법을 넘어서서 역사하시는 것을, 일하시는 것을, 대우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혜의 깊이가 달랐던 것이다. 

은혜의 누림이 남달랐다. 

비록 자신의 뜻인 성전 건축이 거부 당했지만, 도리어 하나님의 위대한 언약의 상대가 되어 미래의 약속을 받았다. 

성전 건축을 허락받았더라도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것을 뛰어넘는 은혜요 축복이다. 

영원히 다윗의 집을 보호하시고, 다윗 집안의 통치권을 영구히 하셨다. 

그리고 약속은 그대로 이어져 우주와 세상의 왕이신 예수님의 탄생이 다윗 집안의 혈통에서 나온다. 

 

다윗은 넘치는 은혜에 감사로 기도한다. 

다윗의 언약이 예수님을 통해 나와 교회로 이어진다. 

나는 언약의 후손이다. 

사실을 깊이 인식하면 감사가 흘러나온다. 

예수님을 통해 그분의 제자들과는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다. 

마치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셔서 특별한 관계를 맺으신 것과 같다. 

 

23 이 세상에서 어떤 민족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겠습니까? 하나님이 직접 찾아가셔서, 이스라엘을 구하여 내시고, 주님의 백성으로 삼아서, 주님의 명성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하여 내시려고 큰 일을 하셨고, 주님의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른 민족들과 그 신들에게서 그들을 친히 구원하시려고 이렇게 큰 일을 하시었고, 주님의 땅에서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24 주님께서는 이렇게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튼튼히 세우셔서, 영원히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또 주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구절은 이렇게 다시 있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와 같겠습니까? 하나님이 직접 육신으로 찾아가셔서, 그들을 구하시고, 주님의 백성, 자녀로 삼아서 주님의 명성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을 사단과 죽음의 권세로부터 구하여 내시려고 일을 하셨고, 제자들 앞에서 그들을 사단과 죽음과 세상 통치자들에게서 친히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니 다윗의 기도는 나의 기도일 있다. 

다윗의 감사는 나의 감사이다. 

 

——

기도의 날을 가지고 싶습니다. 

저에게 기도의 날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1 05 18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1 주님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원수에게서 다윗 왕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으므로, 왕은 이제 자기의 왕궁에서 살게 되었다.

2 하루는, 왕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

3 나단이 왕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슨 일이든지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

4 그러나 바로 밤에 주님께서 나단에게 말씀하셨다.

5 "너는 다윗에게 가서 전하여라. ' 주가 말한다. 내가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6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에서도 살지 않고, 오직 장막이나 성막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다.

7 내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닌 모든 곳에서,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라도, 나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한 적이 있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다윗에게 전하여라. ' 만군의 주가 말한다.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은 것은, 바로 나다.

9 나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서, 모든 원수를 앞에서 물리쳐 주었다. 나는 이제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빛나게 해주겠다.

10 이제 내가 곳을 정하여, 거기에 백성 이스라엘을 심어,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자리잡고 살면서, 다시는 옮겨 다닐 필요가 없도록 하고, 이전과 같이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는 일도 없도록 하겠다.

11 이전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 때와는 달리, 내가 너를 너의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서, 평안히 살게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주가 너의 집안을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

12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저의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15 내가, 사울에게서 나의 총애를 거두어, 나의 앞에서 물러가게 하였지만, 너의 자손에게서는 총애를 거두지 아니하겠다.

16 집과 나라가 앞에서 영원히 이어 것이며,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있을 것이다.'"

17 나단은 모든 말씀과 계시를, 받은 그대로 다윗에게 말하였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짓고자 합니다(1-3절). 이전에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감동하셨습니다. 비록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그의 마음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다윗과 함께 있어 모든 원수를 무찌르고 다윗이 이름을 빛나게 할 것을 약속하십니다(4-10절). 영원히 이어질 다윗 왕조를 약속하십니다(11-17절).

 

하나님의 약속 속에서,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어떤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의 사랑스런 자녀와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지금껏 나를 지켜 주시며 선하게 인도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합시다.

 

——

일상 구원

 

요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주제는 일상 구원이다. 

삶의 리듬이 깨어지고, 생각이 혼란스럽고, 열정이 식고, 루틴한 삶이 무너질 , 

빛나던 일상이 갑자기 잿빛이 되고, 화창한 햇빛도 감흥을 일으키지 않은 무감각이 찾아올 , 

사람들은 일종의 죽음을 경험한다. 인생의 무의미를 경험한다. 

 

속에서 구원을 갈망한다. 

무력함에서 탈출하기를 욕구한다. 

갈망과 욕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후한 점수를 있다. 

 

일상 구원을 경험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있다. 

중에 독특한 것이 바로 그분의 개입이다. 

그분이 삶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될 , 우리의 일상은 새로운 빛을 띄게 된다. 

 

오늘 다윗이 경험한 것은 매우 독특한 측면이 있다. 

다윗은 자신의 궁궐을 걷고 있었다. 아름다운 백향목과 수많은 귀금속으로 장식된 공간엔 자신의 신하들과 사랑스런 아내와 자녀들이 머물고 있다. 

그에게 갑자기 하나님의 언약궤가 떠오른다. 천으로 만들어진 휘장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다.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그동안의 곤경에서 구출해주신 하나님의 도움에 감사의 마음이 항상 가득한 다윗에게 하나님의 언약궤, 임재의 상징, 그분의 통치소가 허름한 천막 안에 있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은 충동이 밀려 왔다. 

다른 나라의 신전들을 이미 알고 있었던, 최소한 블레셋 민족에게 망명했던 시절에 블레셋의 신전을 보았던 그에게 하나님의 집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일석이조. 

 

다윗 왕은 나단에게 자신의 열망과 계획을 말했다. 

나단의 대답은 이랬다. 

 

3 나단이 왕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슨 일이든지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

 

나단은 왕의 계획이 맘에 들었다. 

성전이 멋있게 세워지면, 오랫동안 섬기던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된다. 

나단의 입지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나단은 왕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도움이 다윗에게 넘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왕의 열정과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하나님도 원하시고 왕도 원하고 자신도 원하는 삼박자가 맞는 제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는 왕이 계획하는 것은 뭐든지 하나님의 뜻과 의지라고 생각했다. 

대실수. 

 

이런 태도가 나의 태도였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니, 나를 구원하셨으니, 나에게 소명을 주셨으니, 나와 함께 하시니, 내가 지금 그분을 위해 계획하고 실행하려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거니 하는 생각 

그렇게 고민하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당신이 원하는 하시면 됩니다

이런 말들을 들어왔다. 

 

그러나 이는 대단한 착각일 있다.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하나님은 성전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한 사람을 원하셨다. 

사울은 실패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다윗은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언약에 신실했다. 작은 약속에 신실했던 다윗을 대상으로 하나님은 언약을 맺길 원하셨다. 

 

그동안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때문에 다윗 언약이 체결되었다고 생각하며 믿어왔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인과 관계에 의해 다윗 언약이 체결되었다는 생각이 약간 피상적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다윗의 생각과 행동을 보아왔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하나님과의 작은 약속에도 충실했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항상 공동체 전체를 돌아보며 전체의 유니티를 위한 행동을 선택했다. 

하나님은 다윗과 영원한 언약을 맺길 바랬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과는 별개이며,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생각한 것과 말을 꺼낸 것과도 별개로 보인다. 

 

다윗이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해서 그의 열망과 생각이 곧바로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아님이 드러났다. 

나단도 알게 되었다. 

조심해야 한다. 

나단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한다고 해서 아무거나 선택해서는 안된다. 나의 열망이 흐른다고 하나님의 뜻이 아닐 있다. 그런 겸손함이 항상 필요하다. 

 

하나님은 이렇게 개입하신다. 

나의 뜻과 다른 하나님의 뜻이 있다. 

대의가 같다고 가는 길이 같은 것이 아니다. 

길을 고집하다가는 대의를 이루는 싶지만, 하나님의 길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 

결국 대의를 이룰 없다. 

 

일상 구원은 하나님의 일상 개입을 경험할 일어난다. 

습관적 결정, 논리적 결정, 마음의 열망을 따르는 결정, 상식적인 결정 

모든 것이 어떤 순간엔 틀릴 있다는 겁나는 현실 

하나님의 개입이 일어나는 순간. 

 

나는 하나님의 개입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에서 개입에 따른 순종의 삶을 있을지에 대해서도 걱정이 밀려온다. 

그게 나의 한계다.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시편이 그래서 필요하다. 

시편이 없었으면 어쩔 했나 

구원의 호소. 

죄인됨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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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개입을 원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개입을 원치 않습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개입에 따라 살 용기가 저에게 없습니다. 

습관과 관성에 따라 살고 싶습니다. 그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제까지 잘 살아왔는데, 이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라고 생각해는데,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제 일상을 구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허무함에 굴복하지 않고, 충만한 의미로 채우시는 당신을 기대합니다. 

저의 두려움을 가져가시고 당신의 의지와 용기로 채워주소서. 

마음의 투젱과 갈등을 주님께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5 13 목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7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블레셋 사람이 다윗을 잡으려고 올라왔다. 다윗이 말을 듣고서, 요새로 내려갔다.

18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몰려와서, 르바임 골짜기의 평원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19 다윗이 주님께 아뢰었다. "제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그들을 저의 손에 넘겨 주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다윗에게 대답하셨다. "올라가거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반드시 너의 손에 넘겨 주겠다."

20 그래서 다윗이 바알브라심으로 쳐들어갔다. 다윗이 거기에서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이기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홍수가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듯이, 주님께서 나의 원수들을 앞에서 그렇게 휩쓸어 버리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고 한다.

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온갖 우상을 곳에 버리고 도망하였으므로,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신상들을 치웠다.

22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의 평원을 가득 메웠다.

23 다윗이 주님께 아뢰니,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정면으로 그들 쪽으로 올라가지 말고, 그들의 뒤로 돌아가서 숨어 있다가, 뽕나무 숲의 맞은쪽에서부터 그들을 기습하여 공격하여라.

24 뽕나무 위쪽에서 행군하는 소리가 나거든, 너는 진격하여라. 그러면, 주가 너보다 먼저 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겠다."

25 다윗은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게바에서 게셀에 이르기까지 쫓아가면서, 블레셋 군대를 무찔렀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블레셋은 위협을 느낍니다. 르바임 골짜기를 가득 메운 엄청난 규모의 블레셋 적군 앞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의 응답 속에 다윗은 승리를 거두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또다시 올라온 블레셋과의 전투에서도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번에는 자세한 전술까지 말씀해 주십니다. 다윗은 명령대로 행하고 승리합니다.

 

전쟁 전에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왕이 되기 이전에도 그랬고(삼상 23:11; 30:8 참조), 왕이 이후에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에 상관없이 모든 일에 겸손히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안에서 행할 때라야, 일의 결과를 통해서도 주님께 영광을 돌릴 있습니다. 오늘 하루, 삶을 두고 하나님께 묻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

뜻을 묻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일종의 전쟁과도 같다. 

예수님도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셨지만, 때부터 대적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고, 사두개인들이 그랬다. 자신들의 권한과 권력이 약화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대적 태도로 다가왔다. 빈틈 하나라도 발견하려고 달려들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통치를 땅에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오랫동안 기울여 왔다. 

당연히 당시의 상황에 갇힌 하나님 나라이긴 하지만, 주변의 나라들과는 다른 통치 원리들을 지켜내려고 했다.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께 묻는 것이다. 공동체의 중대사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오늘 본문을 보니 상당히 구체적으로 그분의 뜻을 묻는 것을 있다. 

 

19 다윗이 주님께 아뢰었다. "제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그들을 저의 손에 넘겨 주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다윗에게 대답하셨다. "올라가거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반드시 너의 손에 넘겨 주겠다."

 

23 다윗이 주님께 아뢰니,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정면으로 그들 쪽으로 올라가지 말고, 그들의 뒤로 돌아가서 숨어 있다가, 뽕나무 숲의 맞은쪽에서부터 그들을 기습하여 공격하여라. 24 뽕나무 위쪽에서 행군하는 소리가 나거든, 너는 진격하여라. 그러면, 주가 너보다 먼저 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겠다."

 

전쟁이 일어났다. 

블레셋이 공격을 감행한다. 

같은 장소다. 번째 전투에서 주님의 뜻을 묻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전투를 시작했으며, 결과가 대성공이었다. 그렇다면 같은 전쟁의 번째 전투는 굳이 물어보지 않고 진행해도 싶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번째 전투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묻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주 구체적으로 대답해 주신다. 

도대체 이런 구체적이란!!

 

전쟁은 묻고 전투는 알아서' 아니다. 

전쟁도 묻고 전투도 물어라이다. 

많은 경우 ' 뜻이 같으면 세부적인 것은 알아서 하라라는 메시지가 있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더욱 강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런 문화가 좋다. 개인의 자율성이 극대화되는 환경이다. 

대의에 동의하면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진행하면 된다. 그것이 대학생 운동이 가진 장점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에게 스스로 실패할 여백을 남겨줄 필요가 있다. 설혹 실패한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소명과 대의를 주신 하나님을 저리로 멀리 , 일상의 작은 영역 혹은 보다는 조금 영역에 대해서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선택을 의지하곤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일상의 아주 작은 것까지 결정해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인생의 소명 하나만 주님께 묻고, 소명을 이루기 위한 작은 선택들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 경향이 고착화되면, 자칫 정말 물어야 때를 놓칠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연습삼아 아무거나 매일 물어보는 것도, 하나님께 실례이거니와 우리 자신을 너무 과소 평가하는 행동일 거다. 

중간 어디 답이 있겠다. 

자신만의 기준을 정해서 적절한 중요도의 선택의 순간엔 주님께 묻는 과정을 겪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회사에서도 자신의 권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위의 결제를 넘긴다. 

자신이 결제할 있는 한도가 100만원인데, 150만원짜리를 결제하려고 하면 당연히 상위 권한자에게 결제를 맡아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화장실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같은 것을 굳이 물을 필요는 없겠다. 변의를 느끼면 가면 된다. 밥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도 비슷하다. 

그러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할 , 나와 공동체의 어떤 변화를 만들어야 , 의미있는 만남을 가져야 그럴 주님께 묻는 것은 참으로 도움이 일이다. 하나님도 질문 받는 것을 싫어하시지 않을 것이다. 

 

질문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는 것은 도움이 되겠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질문을 던지면 좋을까?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중요도를 어떻게 판단할 있을까? 

 

1. 하나님 나라를 유지, 확장, 발전 시키는 일에 동참할 사람을 만나서 설득하는

2. 하나님 나라의 원리들을 구현할 새로운 정책이나 제도를 입안하는

3. 하나님 나라의 원리들이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상황을 다루는  

 

일단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분의 인도를 받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당장 나에게 주어진 일들이 이런 기준에 부합되는 것이 상당히 많다. 

가능하면 많이 주님의 뜻을 묻고 주님의 뜻에 부합하며 살고 싶다. 

그분의 나라를 세우고 유지하고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더욱 구체적으로 하고 싶다. 

많은 정보도 그분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 

 

 

——

 

섬세하신 예수님, 

어떻게 모든 일에 주님의 뜻을 물을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하루에도 번씩 주님의 뜻을 물을 밖에 없습니다. 

영향력을 미치는 리더십의 위치에서는 더욱더 그래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더욱 민감해져야 합니다. 

 

주님, 뜻을 민감하게 분별할 있는 능력과 지혜를 공급해 주세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도와달라는 기도 뿐 아니라, 

정말 할지 말지 수정할지 말지를 주님께 묻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도록 저의 몸과 마음을 살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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