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의 야베스를 포위하였다. 그러자 야베스 사람들이 모두 나하스에게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우리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하고 제안하였다.
2 그러나 암몬 사람 나하스는 “내가 너희의 오른쪽 눈을 모조리 빼겠다.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는 조건에서만 너희와 조약을 맺겠다” 하고 대답하였다.
3 야베스 장로들이 또 그에게 제안하였다. “우리에게 이레 동안만 말미를 주셔서,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역으로 전령들을 보내도록 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구하여 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우리가 항복하겠습니다.”
4 전령들이, 사울이 살고 있는 기브아에 가서 백성에게 그 사실을 알리니, 백성들이 모두 큰소리로 울었다.
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백성이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야베스에서 온 전령들이 한 말을 그에게 일러주었다.
6 이 말을 듣고 있을 때에,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세차게 내리니, 그가 무섭게 분노를 터뜨렸다.
7 사울은 겨릿소 두 마리를 잡아서 여러 토막으로 자른 다음에, 그것을 전령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스라엘 모든 지역으로 말을 전하라고 보냈다. “누구든지 사울과 사무엘을 따라나서지 않으면, 그 집의 소들도 이런 꼴을 당할 것이다.” 주님께서 온 백성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시니, 모두 하나같이 그를 따라나섰다.
8 사울이 그들을 베섹에 모으고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에서 삼십만 명이 왔고 유다에서 삼만 명이 왔다.
9 기브아 사람들이 야베스에서 온 전령들에게 말하였다. “길르앗의 야베스 사람들에게 가서, 내일 햇볕이 뜨겁게 내리쬘 때쯤에는 구출될 것이라고 전하여라.”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그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10 그래서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 사람들에게 회답하였다. “우리가 내일 당신들에게 나아가 항복하겠습니다. 그 때 가서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11 다음날 아침 일찍 사울은 군인들을 세 부대로 나누어 가지고, 새벽녘에 적진 한복판으로 들어가서, 날이 한창 뜨거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쳐서 죽였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다 흩어져서, 두 사람도 함께 있는 일이 없었다.
주석
2절. 나하스가 모두의 오른눈을 빼는 조건으로 내건 것은 이스라엘을 도발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IVP 성경연구주석 구약).
7절. 이런 행동은 누구든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은 벌을 받으리라는 개념을 전달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제안
어처구니 없는 제안이 있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에 나오는 벽에 페인트 칠하기 제안 같은 것이다.
톰은 말썽꾸러기였다.
하루는 자꾸 말썽을 피우니 이모가 벌로 페인트를 칠하라고 했다.
하기 싫었지만 꾀를 내어 지나가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려준다.
결국 친구들은 돈을 내고 벽을 칠한다.
어처구니 없는 제안은 야베스의 장로들에게서도 나온다.
자신들을 공격하는 암몬 사람들에게 칠일의 시간을 주면, 그 시간동안 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원군을 요청하되, 만약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항복하겠단다.
이게 무슨 말같이 않는 제안인가? 암몬 사람들 입장에서는 누군가 쳐들어오기 전에 야베스를 공격해서 빼앗는 것이 낫다.
기다려 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야베스 사람들은 이런 얼토당토 않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아마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 성을 공격하는 것보다 항복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유익이라는 판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의 나의 상식으로는 그들의 제안이 상당히 어리석어 보인다.
그 제안을 받아 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야베스 사람들의 제안을 암몬 군사들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야베스 사람들은 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알린다.
재밌는 것은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울고만 있는다는 사실이다.
군대를 소집하지 않는다.
왜 일까?
원래 한 지파가 공격을 받으면 나머지 11지파가 원조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는 그런 규정을 지킬 용기가 없어 보인다.
아니 그런 규율이 무너진 사회가 된 것은 아닌가?
합리적인 제안이 서로를 살린다.
설득력이 없는 제안은 자신과 공동체를 망친다.
하지만, 때로 하나님은 인간들의 합리성을 뛰어 넘어 역사하신다.
어찌 알겠는가 하나님의 개입을!!
최대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제안을 만들고 시도하라.
그러나 그래도 안 될때, 하나님의 개입을 적극 열어 두자.
2. 하나님의 영
사울은 야베스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한다.
그러나 그 분노는 인간적인 분노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부어주신 분노였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주시기도 한다.
이는 거룩한 분노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민족이 외부 민족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특별히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암몬 족속이 공격했다.
게다가 오른 쪽 눈을 다 뽑겠다는 저주와 모욕을 시전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분노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그 당연한 분노를 실제 느끼도록 도우셨다.
사람들은 슬퍼했지만, 사울은 분노했다.
나라가 한 줌도 안되는 불법자, 거짓말쟁이, 탐욕자에 의해 망할 뻔 했다.
계엄을 통해 시민들을 죽이고, 자신의 권력을 장기화하려고 했다.
계엄을 통해 만들어진 권력은 독재로 이어진다.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면 자신이 펼친 폭력의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는 경고성 계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계엄이 곧 해제 될 줄 알고 계엄령을 선포했단다.
어떻게 이것을 믿을 수 있는가?
사람들을 회유하고 겁박해서 자기에게 충성하도록 만든다.
오랫동안 계획했던 것을 실행에 옮겼다.
하나님이 보호하시지 않았다면, 우리 나라는 이미 내전과 폭동과 전쟁에 휩싸였을 것이다.
폭력을 계획하고 일삼는 악인들이 너무 많다.
극우와 보수 중 일부는 86세대의 위선이 문제라고 한다.
백번 양보해서 위선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폭력과 살해와 전쟁보다 문제일까?
무엇이 더 큰 문제인지 왜 판단을 못하는가?
이번 사건에 나는 분노를 느낀다.
거룩한 분노인가?
하나님의 영의 분노인가?
조용히 돌아볼 일이다.
[오늘의 기도]
당신의 영을 부어주시는 하나님,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방식과 양태로 역사하시지 않으시는 분으로 당신을 압니다.
저를 위해 필요한 방식과 양태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은 저의 필요를 아십니다.
때로는 회의하고 때로는 확신하고 때로는 주눅들고 때로는 용기를 내는 저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주소서.
18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전하였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고, 내가 너희를 이집트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던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 내었다.
19 그러나 오늘날 너희는, 너희를 모든 환난과 고난 속에서 건져 낸 너희 하나님을 버리고, 너희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나에게 요구하였다. 좋다, 이제 너희는 지파와 집안별로, 나 주 앞에 나와 서거라!”
20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앞으로 나오게 하니, 주님께서 베냐민 지파를 뽑으셨다.
21 사무엘이 베냐민 지파를 각 집안별로 앞으로 나오게 하니, 마드리의 집안이 뽑혔고, 마드리의 집안 남자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니,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다. 사람들이 그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22 그래서 사람들이 다시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그 사람이 여기에 와 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짐짝 사이에 숨어 있다.”
23 사람들이 달려가 거기에서 그를 데리고 나왔다. 그가 사람들 가운데 섰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커 보였다.
24 사무엘이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뽑으신 이 사람을 보아라. 온 백성 가운데 이만한 인물이 없다.” 그러자 온 백성이 환호성을 지르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25 사무엘이 왕의 제도를 백성에게 알려 준 다음, 그것을 책에 써서 주님 앞에 보관하여 두고, 온 백성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26 사울이 기브아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때에,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용감한 사람들이 사울을 따라갔다.
27 그러나 몇몇 불량배들은 “이런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할 수 있겠느냐?” 하고 떠들면서 그를 업신여기고, 그에게 예물도 바치지 않았다. 그러나 사울은 못 들은 척하였다.
주석
21-22절. 본문은 자신을 감춘 사울이 칭찬할 만한 겸손함을 보인 것인지 아니면 성격상의 결함을 보인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어떠한 암시도 주지 않는다(IVP 성경연구주석 구약)
25절. 그 책의 세부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신명기 17:18-20의 증보판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왕에게 백성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그리고 하나님 아래서 백성들을 향한 왕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문서였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짜고 치기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을 골탕먹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미리 편을 짜서 게임을 왜곡 조종하는 행위다.
핵심은 비밀리에 이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
평상시에는 이렇게 긴장되고 쫄깃한 일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짜고 치는 사람들 사이에는 특별한 동료애가 생기고 이너써클이 형성되곤 한다.
하나님과 사무엘 그리고 사울은 이미 사울을 왕으로 세울 계획을 다 세웠다.
벌써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바 있다.
그에게 왕이 될 것이라 알려 준 바가 있다.
사울의 종에게 숨기면서까지 비밀스럽게 진행했었다.
사울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삼촌에게도 숨겼다.
아마 가족들 모두에게 비밀로 부친 것 같다.
그러니 하나님, 사무엘, 사울 사이에 비밀이 생겼다.
사무엘은 왕을 뽑기 위해 백성들을 미스바로 부른다.
각 지파별로 집안별로 대표자들을 모았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미 작정한 대로 베냐민 지파를 뽑고, 마드리의 집안을 뽑고, 그리고 기스의 집안을 뽑으셨다.
이미 정해진 것을 형식적 절차를 지키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짜고 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상적으로야 미리 알려주지도 말고, 그냥 그 자리에서 뽑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리 사무엘과 사울에게 언질을 주셨다.
누가 보기에는 불공평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다.
한 나라의 왕을 뽑는 일에 공정한 절차가 없다는 것이 아쉽게 여겨 질 수 있다.
그렇지만 현대와 고대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엄밀히 말하면 신정국가이다.
하나님이 왕인 나라인 것이다.
그러니 민주적 절차를 운운하는 것은 그 전제를 놓친 생각과 논리다.
우리는 언제나 그 시대의 배경과 문화적 전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짜고 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사무엘이나 사울에게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키신 측면도 있다.
그냥 왕을 하라고 하면 누가 감히 할 수 있겠는가?
어차피 현 지도자 사무엘의 아들들은 왕의 깜냥이 안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 중에 왕이 나와야 하는데, 그걸 마음 준비 없이 누가 선뜻 나설 수 있단 말인가?
그런면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해가 된다.
하나님의 영을 사울에게 부어 주심으로서 왕으로서의 마음을 준비시킨 것이다.
2. 사울의 겸손? 두려움?
사울은 왜 숨었는가?
그가 겸손하기 때문인가? 아님 두려워하기 때문인가?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아버지의 암나귀도 못 찾아서 헤매다가 종의 이야기를 듣고 사무엘을 찾아간 사람이다.
그것도 사무엘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었다.
그만큼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잘 알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갑작스레 기름 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영의 감동으로 예언을 하고 춤을 췄다.
그 일도 그에게는 기쁨과 자신감을 줬다기보다는 부끄러움과 어색함과 놀라움을 줬을 수도 있다.
미스바로 모이라는 집안 어른들의 말을 듣고 미스바로 갔지만, 가는 길 내내 불편했을 것이다.
혹시 이 자리에서 자신이 진짜 왕으로 추대되면 어떡하지…
과연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왕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이 있지?
두려움에 휩싸여 그는 짐짝 뒤에 숨어 있었다.
베냐민 지파가 뽑힐 때도, 자신의 집안이 선정될 때도, 그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사무엘이 왕을 선정하는 과정 가운데 하는 모든 말들은 사실 매우 부정적이었다.
이스라엘이 왕을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란다.
사무엘이 왕을 뽑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 백성들이 그토록 원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싫어하시면 어떻게 되는가?
게다가 처음에 왕을 요구했던 장로들은 대체로 거대 지파의 장로들이었을 것이다.
소수 지파인 베냐민은 그런 발언권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거대 지파에서 왕이 나와야 하는데, 사울 자신은 소수 지파 출신이니 백성들을 통솔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하나님에게도 미움 받고 백성들에게도 부정당하는 왕을 왜 하고 싶겠는가?
숨는 것이 당연하고 끝까지 자신은 안 한다고 해야 하는 게 맞다.
겸손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지금 현실에도 가득하다.
모두가 두려워한다.
미래가 두렵고, 그 두려운 미래에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는 것도 두렵다.
쉬는 것도 두렵고, 뭔가를 시도하는 것도 두렵다.
가만히 있는 것도 두렵고, 책임을 맡는 것도 두렵다.
그러니 무당을 찾는 사람들이 그렇게 느는 것이다.
사울의 두려움이 이해된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을 세우셔서 당신의 이야기를 끌고 가시는 하나님이 떄로는 불쌍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세계의 역사는 과연 어디로 흘러가는가?
정말 뜬금없이 이 세상의 끝이 별의 역사 마지막 장에 나오는 중성자별 폭발같은 것으로 사라지는 건가?
정말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작정이신가?
성경의 그 계획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신가?
하나님은 정말 변하지 않는 분인가?
두려움이 온갖 상상을 동반한다.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삶은 어떤 삶인가?
요새 자꾸 묻게 되는 질문이다.
사울의 두려움이 이해되는 오늘,
그저 이 두려움을 주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낫겠다.
[오늘의 기도]
사람의 두려움을 아시는 주님,
부끄러움과 수치 속에 살아가는 저를 잘 아시는 주님,
잘하고 싶은 마음, 혹은 잘 나가고 싶은 마음과 그 반대로 부족하고, 노력하지 않고, 형편없는 실력에 실망하고 절망하고 두려워하는 제 자신을 주님께 고백합니다.
사울이 이해됩니다.
짐짝 뒤에 숨은 그가 십분 이해 됩니다.
저도 그저 조용히 숨어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아는 것도 부족하고, 알고 있는 것 마저 잘 표현하지 못하는 저를 마주하기가 항상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을 주님께 보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 Collusion in the Game There is a saying about colluding in Go-Stop. It refers to the act of a group of people secretly teaming up to manipulate the game in order to trick one individual. The key is that this must be done secretly. In everyday life, such tense and thrilling situations are rarely encountered. As a result, a special camaraderie forms among those who collude, creating an inner circle. God, Samuel, and Saul had already devised a plan to appoint Saul as king. Samuel had already anointed Saul with oil. He had informed him that he would become king. This was done secretly, even hiding it from Saul's servant. Saul also kept what had happened to him a secret from his uncle. It seems he kept it a secret from his entire family. Thus, a secret developed between God, Samuel, and Saul. Samuel called the people to Mizpah to choose a king. Representatives from each tribe and family were gathered. And God had already decided to select the tribe of Benjamin, the family of Matri, and the household of Kish. What was predetermined was merely following formal procedures. In a way, it feels like collusion. Ideally, it might have been better not to announce it in advance and just choose on the spot. However, God had already given Samuel and Saul prior notice. To some, this might seem unfair. It could be disappointing that there was no fair procedure in choosing the king of a nation. However, we must not confuse modern times with ancient ones. Moreover, Israel is, strictly speaking, a theocracy. It is a nation where God is the king. Thus, discussing democratic procedures is a flawed thought and logic that misses this premise. We must always keep in mind the historical context and cultural assumptions of the time. While it seems like collusion, God also prepared Samuel and Saul in their hearts. Who would dare to be told to just be a king? Everyone knew that the current leader Samuel's sons were not fit to be kings. Thus, a king had to emerge from among others, but who could step forward without being prepared in their heart? In this aspect, God's plan is understandable. By pouring His spirit into Saul, He prepared him for kingship.
2. Saul’s Humility? Fear? Why did Saul hide? Is it because he was humble? Or is it because he was afraid? It leans more toward fear. He was a person who could not even find his father's lost she-donkey and ended up seeking Samuel after hearing his servant's words. He didn't even know Samuel's presence properly. This can be seen as a sign that he was not well aware of the world around him. Suddenly anointed, he prophesied and danced under the inspiration of God's spirit. That event may have brought him more embarrassment, awkwardness, and surprise than joy and confidence. He went to Mizpah as instructed by the elders of his family, but he must have felt uncomfortable throughout the journey. What if he is actually proclaimed as king in this gathering… Can he really lead this nation properly… What am I good at? Overwhelmed by fear, he hid behind the baggage. Even when the tribe of Benjamin was chosen, and when his household was selected, he could not step forward. All of Samuel's words during the process of selecting a king were quite negative. The desire for a king by Israel is abandoning God. Samuel's selection of a king was, unfortunately, because the people wanted it so much. What would happen if God disliked the king once he was appointed? Moreover, the elders who initially requested a king were likely from the larger tribes. The small tribe of Benjamin probably did not have much of a voice in that. A king was expected to come from those larger tribes, but Saul himself was from a smaller tribe, making it obvious that leading the people would be difficult. Who would want to be a king who is disliked by God and rejected by the people? It would be natural to hide and declare that he wouldn’t do it until the end. It’s not humility; it’s fear. And that fear is prevalent in the current reality as well. Everyone is afraid. They fear the future, and they fear believing that they can do something in that frightening future. Resting is scary, and trying something new is scary. Staying still is scary, and taking on responsibility is scary. That’s why the number of people seeking fortune-tellers is increasing. Saul's fear is understandable. And it is sometimes pitiful and strange that God raises people who live with such fears to carry out His story. Where is the history of the world headed? Is the end of the world really going to vanish like a neutron star explosion mentioned in the last chapter of stellar history? Is God truly planning to send Jesus to establish His kingdom on this earth? Does the plan in the Bible remain unchanged? Is God really unchanging? Fear accompanies all kinds of imaginations. What is a life that fully trusts in the Lord's word until the end? What is a life that follows the Lord until the end? These are questions I find myself asking increasingly. Today, as I understand Saul's fear, I would rather just share this fear with the Lord.
[Today’s Prayer] Lord, who knows the fears of man, You know me well, living in shame and disgrace, I confess to You my desire to do well and to succeed, as well as my shortcomings, lack of effort, and despair in my poor abilities that lead to fear. I understand Saul. I fully understand him hiding behind the baggage. I also feel like I just want to live quietly in hiding. I am always afraid to face my lack of knowledge and my inability to express what I do know. I show this fear to You, Lord.
26 다음날 동틀 무렵에,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깨웠다. “일어나십시오.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사울이 일어나니, 사무엘은 사울과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27 성읍 끝에 이르렀을 때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저 종을 앞에 먼저 보내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 종이 한참 앞서서 가니, 사무엘이 다시 사울에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드리겠으니, 잠깐 서 계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0:1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입을 맞춘 다음에,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주님의 소유이신 이 백성을 다스릴 영도자로 세우셨습니다.
2 오늘 나를 떠나서 가시다가 베냐민 지역 셀사에 이르시면, 라헬의 무덤 근처에서 두 사람을 만나실 터인데, 그들은, 그대의 부친이 찾으러 다니던 암나귀들은 벌써 찾았고, 부친께서는 암나귀들 걱정은 놓으셨지만, 이제 오히려 아들과 종의 일이 걱정이 되어 찾고 계신다고 말할 것입니다.
3 또 거기에서 더 가다가 다볼의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에서 하나님을 뵈려고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가고, 한 사람은 빵 세 덩이를 가지고 가고, 또 한 사람은 포도주 가죽부대를 하나 메고 갈 것입니다.
4 그들이 그대에게 안부를 묻고, 빵 두 덩이를 줄 것이니, 그것을 받으십시오.
5 그런 다음에 그대는 하나님의 산으로 가십시오. 그 곳에는 블레셋 수비대가 있습니다. 그 곳을 지나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거문고를 뜯고 소구를 치고 피리를 불고 수금을 뜯으면서 예배 처소에서 내려오는 예언자의 무리를 만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면서 예언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6 그러면 그대에게도 주님의 영이 강하게 내리어, 그들과 함께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면서 예언을 할 것이며, 그대는 전혀 딴 사람으로 변할 것입니다.
7 이런 일들이 그대에게 나타나거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증거이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하십시오.
8 그대는 나보다 먼저 길갈로 내려가십시오. 그러면 나도 뒤따라 그대에게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릴 것이니, 내가 갈 때까지 이레 동안 기다려 주십시오. 그 때에 가서 하셔야 할 일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주석
3절. 염소, 떡, 포도주는 제사 때 먹는 식사의 기본 재료였다. 사울은 성별된 떡을 받음으로써, 다시 한번 제사장 대우를 받으며 존귀한 인물로 인식된다(IVP 성경배경주석).
6절. 그 이전에 있었던 ‘사사들’은 모두 ‘여호와의 영’을 받음으로써 리더십을 발휘할 자로 구비되었다. 사울도 자신이 동일한 방식으로 구비되고 있음을 인식할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기름을 붓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있다.
하나님이 사울을 선택하셨고, 그에게 기름 붓기를 원하셨다.
사무엘의 마음을 추측해본다.
인간적으로야 자신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사사가 되거나 왕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뜬금없이 베냐민 지파의 아들이 왕으로 부르심을 받는다.
사사기에 따르면 베냐민 지파는 나머지 11지파에게 거의 진멸될 위기에 놓였었다.
겨우 살아나 지파의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지파에서 왕이 나온 것이다.
유다, 에브라임, 므낫세, 레위 지파 등에서 왕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무엘의 마음 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 왔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께 순종한다.
사울의 종을 먼저 앞으로 보내고, 사울 혼자 있는 곳에서 그에게 기름을 붓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해준다.
그 일들이 그대로 일어나면 하나님의 뜻이 사울에게 있음이 확인된다.
약간 이상한 점은 ‘왜 사울의 종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을까’이다.
기름을 붓는 과정을 지극히 개인적인 과정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행동이다.
사울의 종이 증인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 아닌가?
왜 그랬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명확한 답은 없으니 의문으로 남겨두고, 기름부음에 집중해 본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이루심에 있어 기름을 부어 사람을 세우신다.
사람을 세우는 것,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사실 어떤 일을 이루는 데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누구를 뽑고 누구에게 일을 맡기느냐에 따라 일의 성패가 달렸다.
하나님은 기름부음으로 사람을 세우신다.
2. 사울의 예언
물리적 기름 부음이 전부는 아니다.
기름부음의 실제적인 변화는 기름이 머리를 타고 옷을 따라 흘러 내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는 것이 핵심이다.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함으로써 그의 리더십이 확고해진다.
기름부음이 예식의 차원이라면, 하나님의 영의 부어주심은 실제적 차원이다.
그동안 사사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을 받아 숱한 전쟁과 전투를 이겼다.
이제 사울 차례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신약의 사도들은 놀라운 이적과 기적을 행한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말씀과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담대하게 증거한다.
성령님의 역사는 분별과 담대함에 있다.
무엇이 예수님의 말씀인지, 사역인지, 뜻인지 분별하는 힘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동시에 그분은 분별된 말씀을 담대하게 증언하는 힘을 공급하신다.
그것은 승리주의적으로 패권적으로 무력으로 선포되는 증언이 아니다.
물리적, 군사적 힘은 없으나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게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는 담대함이다.
피아를 극단적으로 분리하여 적을 죽음으로 내모는 파시즘적 무도함과 다르다.
강자 편에 서서 약자를 짓누르는 선동의 몸짓과는 다르다.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구출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온전히 선포할 때 등장하는 담대함이다.
잘 분별하고 담대하게 선포하는 삶.
성령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삶이다.
사울은 끝까지 기름부음의 은혜를 간직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해 담대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