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15일 토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12 백성이 사무엘에게 와서 말하였다. “사울이 어떻게 우리의 왕이 될 수 있느냐고 떠들던 자들이 누구입니까? 그런 자들을 내주십시오. 우리가 그들을 쳐서 죽이겠습니다.”
13 그러자 사울이 나서서 말하였다. “오늘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주신 날이오. 오늘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오.”
14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길갈로 가서, 사울이 우리의 왕이라는 것을 거기에서 새롭게 선포합시다.”
15 그래서 온 백성이 길갈로 가서 그 곳 길갈에 계시는 주님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 그들은 거기에서 짐승을 잡아서 주님께 화목제물로 바쳤다. 거기에서 사울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께 크게 기뻐하였다.
주석
14-15절. 사울은 두 번의 과정을 거쳐 왕이 될 사람으로 지명되었지만, 군사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지금에 와서야 실제로 즉위할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15절. 화목제는 일반적으로 협정이나 언약을 비준받기 위해서 드려졌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정통성 있는 왕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이 정통성을 가지려면, 민주적 절차와 합법적 선출을 통해 대통령을 임명되어야 한다.
대통령다움은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그 사람의 대통령으로서 인품과 능력은 언론과 여론의 검증을 받아 최종적으로 투표 행위에 의해 인정된다.
물론 인품과 능력을 투표권을 행사하는 시민들이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느냐는 두 번째다.
일단 여론이 형성되고 대세로 굳어지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고대의 왕이 그 정통성을 가지려면, 백성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첫째다.
사울은 암몬 족속과의 전투 전까지는 이런 정통성을 부여받지 못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뽑으셔서 기름 부어 주셨다면 그걸로 왕의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의 출신의 비천함으로, 짐짝에 숨는 용기없음으로 인해 몇몇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신정국가, 12지파 동맹체로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뽑으신 지도자를 온전히 인정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침입자 암몬 족속을 물리쳐서 전쟁에 승리하자 이제서야 비로소 사울을 왕으로 온전히 인정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이제 충성 경쟁을 시작했다.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죽이자는 극단주의자들의 말이 들려온다.
극단주의는 언제나 폭력을 몰고 온다.
그리고 그 폭력의 끝은 복수라는 폭력의 서막으로 이어진다.
영원한 폭력의 굴레.
사울의 삶에서 몇 안되는 멋진 장면이 오늘 보인다.
그는 극단주의자들의 주장을 일거에 해소한다.
‘오늘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날입니다. 오늘은 사람을 죽을 수 없습니다.’(13절)
그리고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요청한다.
오랫동안 수도 역할을 했던 길갈로 가서 왕의 취임식을 다시 하자는 것이었다.
부족한 정통성을 확보했으니, 이제 명실공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하자는 의견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 요구에 반응하여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에 대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적으로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따라야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간을 봐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사울을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온전히 인정해야 했다고 본다.
이스라엘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는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신뢰하자고 하면서 그의 탄핵에 반대하는 논리로 이 이야기를 사용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넌센스다.
먼저,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 세우기 이야기를 현재의 대통령을 뽑는 걸과 일대일 치환하는 오류를 범하는 일이다.
고대와 현대의 차이를 무시하는 오류다.
둘째, 윤석열을 하나님이 뽑으셨다고 믿을 수가 없다.
후보시절 손바닥에 “왕”자를 새기고 왔는데, 이것은 천공이나 건진법사 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즉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리어 무속의 힘을 빌어 온 사람이었다.
셋째, 대통령이 되고서도 협치와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고 분열과 대립으로 정치권과 국민들을 분열시켰다.
계엄이라는 군사통치를 실행했고, 장기집권을 꿈꿨다.
자칫하면 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계엄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대통령이 아니다.
모든 정권을 하나님이 세우신 것으로 알고 믿으라는 것은 신약 시대에는 먹히지 않는 주장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리더는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울을 뽑으셨지만,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때 과감하게 버리셨다.
하물며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무속의 영을 따르는 자를 어떻게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주장하는 목사들이 있다는데, 군대의 힘을 빌어 사람들을 죽이면서 계몽한다면 그것은 계몽이 아니라 협박이다.
계몽은 교육을 통해 일어난다.
만약 정말 국민적 계몽이 필요했다고 한다면,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을 통해 계몽의 정당성을 쌓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진짜 계몽되어야 할 존재는 누군가?
윤석열과 극우 세력들 아닌가!!
사울 왕은 이 첫 마음을 잘 간직해야 했다.
그의 승리는 그 자신이 이룬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영이 그를 격동시키셨고, 감동하셨다.
왕의 정통성을 확보한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그러니 겸손하게 그분의 뜻을 끝까지 따르는 것이 왕으로서 그가 할 일이었다.
대통령이건, 교회 지도자건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시키지 말 일이다.
끝까지 겸손하게 그분이 하신 일과 하시고 있는 일들을 직시하고 그분을 따르기 위해 자기를 성찰하고 분별해야 할 일이다.
[오늘의 기도]
사람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도 교회도 갈기갈기 찢겨지고 있습니다.
좌우의 대립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점점 자정 기능을 상실한 채 무엇이 진짜 하나님의 뜻인지 헷갈리고만 있습니다.
주님! 저도 점점 어리석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더 분명히 알고 싶고 그래서 그 확신을 선포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저를 계속 발견합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헌법을 유린하고 거짓을 일삼는 무리들을 벌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끝까지 고수하되, 예수님의 가르침의 원리를 현실 삶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자가 되게 하소서.
계엄과 내란에 동의하는 무리들을 깨우쳐주소서.
혹여 이런 상황에서 제 자신의 교만함이 있다면 주님의 주의와 경고에 귀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겸손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제가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언제나 인정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내란에 동조하는 자들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민주적 절차, 헌법적 가치가 소중합니다.
그걸 어기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주님, 저는 주께서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신다고 믿습니다.
이 땅을 고쳐주소서.
남북의 평화 체제를 허락하소서.
전세계에 평화가 흐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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