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4월 23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1 그러자 왕은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은 물론, 놉에 있는 그의 집안 제사장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모두 왕에게로 나아왔다.12 사울이 호통을 쳤다. “아히둡의 아들은 똑똑히 들어라!” 아히멜렉이 대답하였다. “임금님, 말씀하십시오!”13 사울이 그를 꾸짖었다. “네가 왜 이새의 아들과 함께 공모하여 나에게 맞서려고 하였느냐? 네가 왜 그에게 빵과 칼을 주고, 왜 그가 하여야 할 일을 하나님께 물어서, 그가 오늘날과 같이 일어나서 나를 죽이려고 매복하도록 하였느냐?”14 그러자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모든 신하들 가운데서 다윗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더구나 그는 임금님의 사위인 동시에 경호실장이며, 이 궁중에서 매우 존귀한 사람이 아닙니까?15 그가 할 일을 하나님께 여쭙는 일을, 제가 오늘에 와서 처음으로 시작한 것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님은 이 종이나 이 종의 온 집안에 아무 허물도 돌리지 말아 주십시오. 이 종은 이런 일은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16 그런데도 왕은 이런 선언을 내렸다. “아히멜렉은 들어라. 너는 어쨌든 너의 온 집안과 함께 죽어 마땅하다.”17 그리고 왕은 자기 곁에 둘러 서 있던 호위병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는 당장 달려들어 주님의 제사장들을 죽여라. 그들은 다윗과 손을 잡고 공모하였으며, 다윗이 도망하는 줄 알았으면서도 나에게 귀띔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의 신하들은 손을 들어 주님의 제사장들을 살해하기를 꺼렸다.18 그러자 왕이 도엑에게 명하였다. “네가 달려들어서 저 제사장들을 죽여라.” 그러자 에돔 사람 도엑이 서슴없이 달려들어서 그 제사장들을 죽였는데, 그가 그 날 죽인 사람은 모시 에봇을 입은 제사장만도 여든다섯 명이나 되었다.19 사울은 제사장들이 살던 성읍 놉에까지 가서, 주민을 다 칼로 쳐죽였다. 그는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젖먹이, 소 떼나 나귀 떼나 양 떼를 가리지 않고, 모두 칼로 쳐서 죽였다.

주석
11절. 놉은 실로의 성소가 파괴된 이후, 실로를 대체하는 주요한 성소였다(IVP 성경주석, 430쪽).

[오늘의 묵상]
1. 왕에게로 가는 길 
걷기는 언제나 사색적이다. 
사울 왕이 아히멜렉을 비롯한 그 집안 제사장들을 모두 불러냈다. 
갑작스런 왕의 호출에 여든다섯 명의 제사장들은 왕에게로 나아간다. 
그들이 거기까지 가는 길은 무수한 생각과 말들로 정신이 없다. 
죽음을 직감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저 낙관적인 태도로 걸어가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가! 
그 길은 생각의 길이었다. 

권위자의 갑작스런 호출은 부담스럽고 그렇기에 숱한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권위자 뿐 아니라 내 삶에 영향을 주는 어떤 사람도 그의 호출로 인해 나는 혼란스러워진다. 
선하고 유익한 영향을 받게 될지, 악하고 손해되는 영향을 받게 될지 분명치 않으면 더욱 생각이 많아진다. 
나를 부른 그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떠올리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 분석한다. 

사울 같은 왕이 아니라 참된 왕의 호출을 받고 싶다. 
자기 유익을 위해 망상에 빠져 사람들을 해하고 죽이는 자의 호출은 피하련다. 
만나면 언제나 편안하고 나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자의 호출은 기쁘다. 
나에게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2. 줄을 잘못 탄 도엑
하나님의 명령으로 불경한 자들을 처단했던 그룹이 있었다. 
바로 레위 지파였다. 
그들은 줄곧 제사장 지파로 선택되었다. 
그러나 도엑은 사울 왕의 이기적인 동기와 망상의 줄을 잡았다. 
사울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몰살시켰다. 
85명. 
한 명 한 명 살해할 때마다 그 피를 뒤집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다. 
제사장들의 원한이 쌓인다. 
도엑의 살해는 언뜻 가나안 정복의 진멸전쟁 헤렘을 닮았다. 
씨를 말리는 인종청소. 
터를 없애는 박멸청소. 

사울은 정작 했어야 했던 아말렉 사람들에게는 하지 않고 자신의 동족 그것도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죽이는 일을 감행한다. 
그는 정상이 아니다. 
사탄에게 조종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배신자와 반역자로 낙인 찍어 하나님의 제사장들의 삼족, 칠족을 멸하고 있다. 
고대 사회 권력자들이 자신의 정적을 죽이는 방식을 그대로 닮았다. 
지파 동맹 공동체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 명 절대 권력자에 의해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몰살당하고 있다. 

레위지파가 될 것이가? 도엑이 될 것인가? 
베드로가 될 것인가? 가륫 유다가 될 것인가? 
줄을 제대로 타야 산다.

신천지와 통일교의 뇌물을 먹은 윤석열과 김건희를 옹호하는 기독인들은 도대체 뭘 먹은걸까?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꿈은 사울의 그것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만민이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번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의 유익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고 구현하지도 못했습니다. 
스트레스풀한 비교의식에 휩싸여 결국 사탄에게 마음을 주고 말았습니다. 

주님, 주님의 꿈을 품게 하소서. 
주님의 라인에 서게 하소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제 기능을 다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공동체가 공동체다워지길 소망합니다. 
영혼은 말씀과 기도로 더욱 맑아 지고, 
육체와 정신은 달리기와 운동으로 더욱 건강해지게 하소서. 

우울증을 앓는 OO영 자매를 위해 기도합니다. 
호르몬의 분비를 조절해 주소서. 
우울의 긴 터널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하소서. 
가족들이 서로 힘을 합쳐 견뎌내게 하소서. 
남편 OOO 형제가 끝까지 사랑으로 돌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4월 22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6 하루는 사울이 기브아 산등성이의 에셀 나무 아래에서 창을 들고 앉아 있었다. 그의 신하들은 모두 그의 곁에 둘러 서 있었다. 거기에서 사울은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다.7 사울이 둘러 서 있는 신하들에게 호통을 쳤다. “이 베냐민 사람들아, 똑똑히 들어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 모두에게 밭과 포도원을 나누어 주고, 너희를 모두 천부장이나 백부장으로 삼을 줄 아느냐?8 그래서 너희가 모두 나를 뒤엎으려고 음모를 꾸몄더냐?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을 때에도, 그것을 나에게 귀띔해 준 자가 하나도 없었다. 또 내 아들이 오늘 나의 신하 하나를 부추겨서 나를 죽이려고 매복시켰는데도, 너희들 가운데는 나를 염려하여 그것을 나에게 미리 귀띔해 준 자가 하나도 없었다.”9 바로 그 때에 사울의 신하들 가운데 끼여 있던 에돔 사람 도엑이 나서서 보고하였다. “제가 이새의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가 놉으로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과 만날 때였습니다.10 그 때에 아히멜렉이, 다윗이 해야 할 일을 주님께 여쭈어 보고 나서, 그에게 먹을 것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었습니다.”

 

주석

8절. 사울은 이제 요나단을 포함해 모든 신하를 의심하고, 더 나아가 존재하지도 않은 음모가 있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IVP 성경주석, 430쪽).

 

[오늘의 묵상]

1. 망상 

망상에 빠져 사는 사람은 베냐민 사람들이 아니라 사울이었다. 

기브안 산등성이, 에셀 나무 아래, 창을 들고 있는 왕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는 독재자며, 점점 폭군이 되어 가고 있다. 

신하들은 벌벌 떨며 그에게 참된 조언을 하지 못한다. 

진실을 말하면 죽는다. 

실제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이다.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참된 조언이 없으니, 사울의 망상은 부풀어 오른다. 

마음이 죽은 자의 생각은 허망하여서 작은 불신이 거대한 망상의 스크린으로 바뀐다. 

자신만의 영화에 빠져 극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렇게 왕국은 망가지고 시체만 늘어난다. 

 

망상을 가진 사람이 현실에도 있다. 

무당과 법사의 말로 영화를 만들어 용산과 한남동에서 줄곧 상영해 왔다. 

권좌에서 물러났음에도 여전히 그 망상의 극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배신에 몸서리 친다. 

숱한 사람을 죽이려고 했음에도 반성의 기미는 전혀 없다. 

자신의 행동이 민주 공화국의 현실을 우그러뜨리고 뭉갰는데도 미안한 기색은 찾으려야 한 톨도 없다. 

인종청소급 살상이 일어나기 전에 계엄 사태가 끝난 것이 천만 다행이며 하늘의 도우심이다. 

망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2. 간신 

에돔 사람 도엑은 이 때다 싶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망상의 빠진 권력자의 영화에 등장하여 그가 원하는 도움을 살짝만 얹어도 입신양명을 누릴 수 있다. 

에돔 사람이라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었다.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있는데, 이방 사람이 어떻게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는가! 

결국 약한 고리를 파고 들어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달성한다.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결정한 사람이 도엑이다. 

이스라엘을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은 사울과 다윗의 화해다. 

그 둘이 함께 있어야 이스라엘은 대내외적으로 안정과 번영에 도달할 수 있다. 

최초의 왕과 최고의 장군이 대립하면 나라는 불보듯 뻔하다. 

다 타고 검은 재와 그을린 뼈대만 남을 뿐. 

간신이 나라를 생각하겠는가!

그저 자기 한 몸 부귀영화를 누리면 그만. 

 

내란 내각의 사람들은 그 불타는 열차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쩔쩔맨다. 

그 중 최악은 한덕수라고 봐야 한다. 

무엇이 평생 공무원이었던 그를 저런 무대뽀 용기를 가지게 했을까?

분명히 윤석열에게 보고 배웠다. 

헌법과 법률을 어겨도 된다고 배웠다. 

아님 그 전부터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는 방법을 터득한 걸까? 

내란 세력들은 더는 정치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제발 조용히 반성하면서 살 수 없을까? 

자기 반성이 안되는 권력욕 덩어리들에게 너무 큰 바람일 수 있겠다. 

 

사무엘상을 통해 사울과 다윗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을 상상하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적절하다. 

망상과 간신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도할 수 밖에!!

 

[오늘의 기도]

새벽부터 비가 내립니다. 

메말라 비틀어진 우리 영혼에 단비를 뿌려 주옵소서. 

생명의 물이 공급되어 뿌리부터 가지 말단까지 피가 통하고 영양이 흐르게 하소서. 

맑은 정신과 바른 이성으로 상황을 영민하게 판단하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뜻을 행하기에 부족하지 않도록 이끄소서. 

 

안OO 형제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회사 생활에 지치지 않게 하시고 회사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기여하게 하소서. 

아내 김OO 자매에게 운동하려는 의지를 더 하시사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길어져 올리는 아름다운 시상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자녀에게 복을 더하사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으로 자라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4월 11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0 다윗이 거기를 떠나, 그 날로 사울에게서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왕에게 보고하였다. “이 사람은 분명히 저 나라의 왕 다윗입니다. 이 사람을 두고서, 저 나라의 백성이 춤을 추며,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12 다윗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다. 그는 가드 왕 아기스 옆에 있는 것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3 그래서 그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는 미친 척을 하였다. 그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그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여 성문 문짝 위에 아무렇게나 글자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기도 하였다.14 그러자 아기스가 신하들에게 소리쳤다. “아니, 미친 녀석이 아니냐? 왜 저런 자를 나에게 끌어 왔느냐?15 나에게 미치광이가 부족해서 저런 자까지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왕궁에 저런 자까지 들어와 있어야 하느냐?”

 

주석

10절. 다윗은 아마 블레셋 용병으로 일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뛰어난 군인인 자신을 적으로 대하는 대신, 자신들의 편이 되어 싸우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구약, 444쪽).

 

[오늘의 묵상]

 

1. 아기스에게 도망가는 다윗 

사울의 위협이 도를 넘어서자 다윗은 안전한 처소를 찾기 시작했다. 

자신의 적이었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쳤다. 

이 부분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다른 왕국으로 도망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굳이 자신이 오랫동안 전투를 통해 많은 사상자를 낸 블레셋으로 투항한단 말인가? 

골리앗도 블레셋 장수였다. 

다윗이 이스라엘 내에서 명예를 얻게 된 것도 블레셋과의 전투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블레셋으로 망명을 떠났는가? 

사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장소라서? 

원수의 나라에 투항함으로써 확실히 사울을 배반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이 결정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블레셋으로 망명을 떠나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주셨을까? 

그것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운신을 결정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도리어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움직인다기보다도 일단 자신의 상황에서 스스로 최선을 다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경우에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신의 앞날을 결정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어떤 일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가? 

누굴 만나야 하고, 무슨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가? 

안식월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묻어 두었던 질문들을 다시 꺼낸다. 

 

 

2. 미친 척 하는 다윗 

다윗은 생존형 리더다. 

일단 자신이 살아야 했다. 

생존하기 위해서 미친 척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이 미친 척도 대강해서는 누구도 속일 수 없다. 

골리앗을 죽였던 다윗, 

사울의 위협으로 망명을 시도한 다윗, 

조금만 그의 상황을 파악했다면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살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아기스의 신하들의 조언은 참으로 적절하다. 

물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소개한 것은 과장되었다. 

아직 다윗은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망이나 다윗이 그동안 펼친 행적 등을 두루 고려할 때, 신하들이 다윗을 위험 인물로 소개한 것은 적절하다. 

 

다윗은 아기스 왕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쌓여 미친 척을 했다. 

다윗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나님이 이 상황에서 어떤 말씀을 주셨을지도 잘 모르겠다. 

미친 척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윗은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속을 수 있도록 제대로 미친 연기를 펼쳤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는 당연해보인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분을 억지로 요청하는 것은 모두에게 독이 된다. 

그분이 정말 계시는지 그래서 이 세상에 개입하시는지 자꾸 확인해야 한다. 

그분이 숨어계시니 어쩔 수가 없다. 

확연히 드러내셔서 당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시지 않으시니 사람으로서는 계속해서 의문이 들고 의심이 든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인간은 생존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당장 살아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중요하다. 

위협하는 대적들을 무찌르거나 회피해야 한다.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면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생존하고 그 생존을 위해 방어막을 펼쳐야 하며 그 방어막을 확대해야 한다. 

방어막 확대는 결국 누군가의 권리와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전쟁이다. 

하나님 없는 삶의 극단은 전쟁이다. 

 

그렇다고 경험되지 않는 하나님을 억지로 믿거나 있는 척 연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 고통스런 인간의 상황이여!! 

 

점점 다윗을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다윗도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는 존재로 보인다. 

미친 척 할 것이 아니라 모세처럼 광야로 도망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적군에게 가서 목숨을 구걸하다니, 그걸 넘어 미친 척 하다니… 

내 성향에 안 맞는다. 

 

그럼에도 다윗에게 한 가지 부럽고도 본받고 싶은 것이 있다. 

그는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를 쓰고, 기도의 노래를 불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를 붙들었다.

그의 믿음은 참으로 부럽다. 

 

하나님 경험이 끊어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분의 살아계심을 더욱 확신할 수 있는 계기가 많아지길 기도한다. 

나의 삶과 생각과 느낌과 죄악과 게으름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로막지 않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결국 하나님 경험이 제게 최선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더욱 깊이 경험하게 하소서. 

이게 무너지면 저는 살아갈 힘을 잃습니다. 

저의 의문과 의심은 신학 실험실에서 이뤄지게 하소서. 

저의 존재는 당신의 존재에 뿌리를 내리게 하소서. 

더 깊이 뿌리를 내려 당신으로부터 오는 자양분을 빨아드리게 하소서.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도록 저를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4월 08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24 이리하여 다윗은 들녘에 숨어 있었다. 초하루가 되었을 때에, 왕이 식사를 하려고 식탁에 앉았다.25 왕이 언제나 하듯이 벽을 등진 자리에 앉자, 요나단이 왕의 맞은쪽에 앉았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았다.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26 그런데도 그 날은,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울은 다윗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 몸이 부정을 타서 아직 깨끗하여지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하였다.27 그런데 초하루가 지난 다음날 곧 그 이튿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사울이 자기 아들 요나단에게 물었다. “어째서 이새의 아들이 어제도 오늘도 식사하러 나오지 않느냐?”28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다윗이 저에게 베들레헴에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하여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였습니다.29 자기 집안이 베들레헴 성읍에서 제사를 드리는데, 자기 형이 다녀가라고 했다고 하면서, 제가 자기를 아낀다면 자기 형을 만나게 해 달라고, 저에게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지금 임금님의 식탁에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30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이 패역무도한 계집의 자식아, 네가 이새의 아들과 단짝이 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그런 녀석과 단짝이 되다니, 너에게도 부끄러운 일이고 너를 낳은 네 어미를 발가벗기는 망신이 될 뿐이다.31 이새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은, 너도 안전하지 못하고, 너의 나라도 안전하지 못할 줄 알아라. 빨리 가서 그 녀석을 당장에 끌어 오너라. 그 녀석은 죽어야 마땅하다.”32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 사울에게 “그가 무슨 못할 일을 하였기에 죽어야 합니까?” 하고 항의하니,33 그 순간, 사울이 요나단을 찔러 죽이려고 창을 뽑아 겨냥하였다. 그제서야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34 요나단도 화가 치밀어 식탁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모욕한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달의 이틀째가 되던 그 날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Message

Jonathan stormed from the table, furiously angry, and ate nothing the rest of the day, upset for David and smarting under the humiliation from his father(34절).

 

[오늘의 묵상]

 

1. 요나단까지 죽이려는 사울 

사울의 분노가 도를 넘고 있다. 

자신의 아들까지도 죽이려고 한다. 

다윗을 향한 분노가 아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요나단은 정상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에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숱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장수다. 

그런 유능한 장수를 죽인다는 것은 나라의 망조다. 

정상적인 요나단의 판단을 극도로 싫어한 자가 사울이다. 

사울은 너무 멀리 갔다. 

 

분노는 옳은 판단을 그르친다. 

특히나 질투에 의한 분노는 더욱 그렇다. 

편을 가르게 되고, 상대를 죽이려고 한다. 

상대방의 존재를 박탈하려고 한다. 

생명을 앗아가거나 최소한 사회적 죽음을 기획한다.

 

이번 탄핵 국면에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들의 노력에 감사를 드린다. 

많은 국민이 함께 마음을 모았다. 

이제는 내란 세력들을 단호하게 처벌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주불은 잡혔지만, 내 생각엔 60-70%의 불이 남아 있다. 

윤석열 혼자만 감옥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우습게 알고 자신들이 헌법 위에 군림하려고 했던 자들을 정치 현장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들에게 리더십을 주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삼권분립, 헌법가치를 무시하는 자들은 국회위원이건 정부 고위 관리건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된다. 

합법적인 절차를 지키려는 자들에 의해 헌법이 개정되어야지, 헌법을 우습게 알던 자들에게 헌법개정에 참여하게 해서는 안된다. 

 

과연 이런 생각들은 질투에 의한 분노인가? 

아님 상식적 판단인가? 

오늘 말씀이 그러하니 다시 한번 돌아본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도 이건 질투에 의한 과도한 분노가 아니다. 

죄에 대해 특별히 지도자들의 죄에 대해 분명하게 정죄하고 그 죄의 대가를 묻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윤석열 혹은 그 기득권에게 내가 질투를 느끼는가? 

아니다. 

그들에 대한 분노는 국가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시도에 대한 공분이다. 

사적인 질투에 의한 과도한 분노는 아니다. 

그 사실을 잘 간직하자. 

 

[오늘의 기도]

이 나라를 구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노상원의 수첩에 등장하는 끔찍한 살상 계획이 계획으로 끝나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이 나라를 더욱 건강한 나라로 만들어 주소서. 

무엇보다 기독교인들이 그런 일에 압장서게 하소서. 

기독교의 가치가 정말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교회를 유지하는 것이 기독교의 가치가 아닙니다. 

진정한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의 연결입니다. 

그 본질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자들을 벌하시고 깨닫게 하소서. 

건물과 조직이 마치 교회의 본질인 것처럼 말하는 자들을 폐하소서. 

 

오직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신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끝까지 그 마음과 태도를 잃지 않도록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