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4월 29일 화요일

 

여는 기도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14 그리하여 다윗은 광야의 산성을 찾아다니며 숨어서 살았다. 그는 바로 십 광야의 산간지역에서 살았다. 그 동안 사울은 날마다 다윗을 찾았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 주지 않으셨다.15 그래서 사울이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출동할 때마다, 다윗이 그것을 다 알고서 피하였다. 다윗이 십 광야의 호레스에 있을 때에, 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호레스로 다윗을 찾아와서,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도록 격려하였다. 17 그는 다윗에게 말하였다. “전혀 두려워하지 말게. 자네를 해치려는 나의 아버지 사울의 세력이 자네에게 미치지 못할 걸세. 자네는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걸세. 나는 자네의 버금가는 자리에 앉고 싶네. 이것은 나의 아버지 사울도 아시는 일일세.”18 이리하여 이 두 사람은 다시 주님 앞에서 우정의 언약을 맺었다. 그리고 다윗은 계속 호레스에 머물렀으나, 요나단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주석

14절. 다윗은 그일라에서 벗어나 더 광활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을 찾아 남쪽으로 이동한다(IVP 성경연구주석 구약: 오경·역사서·시가서, 442쪽).

 

[오늘의 묵상]

 

1. 요나단의 격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숨어 다녔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피해다니는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그 스트레스와 긴장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매일 매일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내 삶에 다윗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상당히 고통스럽고 스트레스풀한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3, 군대, 유학 첫 학기, 그리고 최근 직장에서의 경험은 고통스럽긴 했다.

그러나 생존의 위협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고통의 시기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건너왔다. 

그분께 항상 감사드린다. 

 

다윗의 고단한 삶의 한 줄기 빛 같은 존재가 있었다. 

바로 친구 요나단이었다.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끝까지 지키려고 하고 있다. 

요나단은 다윗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아냈다. 

이 점이 신비롭다. 

다윗이 꽁꽁 숨었을 텐데 요나단은 다윗을 잘 찾아냈다. 

둘 사이의 연락책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다윗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안한 과정이었다. 

그동안 요나단이 보여준 우정은 신뢰하지만, 요나단에게 간첩, 세첩이 붙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윗은 요나단과 연락을 주고 받았으며, 자신의 위치를 노출했다. 

그리고 서로 만났다. 

만나서 저들의 첫 마디는 무엇이었을까? 

요나단은 다윗의 안부를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으로 인해 사울의 미움을 사고 있는 요나단의 안녕을 물었을 것이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묻어 있었을 것이다. 

 

요나단은 다윗을 격려한다. 

“하나님을 굳게 의지 하게나.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쭉 하나님을 신뢰하게.”

요나단의 신앙도 상당하다. 

믿음의 친구를 두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안다. 

믿음의 친구가 없이 사는 것은 사막에 홀로 지내는 것과 같다. 

온통 죽음의 위협 뿐인 세상에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무차별적인 공격에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친구가 절실하다. 

 

2. 우정의 언약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우정의 언약을 맺었다. 

누구 앞에서 그 언약을 맺고 있는가? 

다름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우정의 언약을 맺고 있다. 

이것이 언약의 핵심에 속한다. 

언약의 내용도 중요하다. 

서로간의 약속의 내용을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언약의 보증, 증인이 누군가이다. 

우리는 자기를 믿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속인다. 

결심 만큼 변심도 빠르다. 

작심 삼일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내 자신을 온전히 믿을 수 없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증언자로 세워야 한다. 

그분이 보증을 서 주셔야 한다. 

그것은 나의 약속을 내가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연약해진 상황에서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겠다는 결심의 표현이다.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자기 한계의 표현이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겸손의 표현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나락으로 떨어진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도우시는 주님, 

저의 연약함을 도우소서. 

저의 부족함을 도우소서. 

주님의 도움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끄소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두렵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너무 힘을 많이 주지도, 그렇다고 너무 나태하지도 않게 하소서. 

오직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즐겁게 저의 할 일을 감당하게 하소서. 

제게 주신 사명을 다시 깨닫게 하소서. 

 

학사운동을 다시 기억합니다.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쳐나갈 주님의 백성들이 필요합니다. 

그 운동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앞장서서 총탄을 몸으로 막고 있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그들이 외롭게 쓰러지지 않도록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요나단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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