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 14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3 다윗이 맞은편으로 건너가 멀리 산꼭대기에 섰다. 다윗과 사울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14 여기서 다윗이 사울의 부하들과 넬의 아들 아브넬에게 소리쳤다. “아브넬은 대답을 하여라!” 아브넬이 대답하였다.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소리를 쳐서 임금님을 깨우느냐?”15 다윗이 아브넬에게 호통을 쳤다. “너는 사내 대장부가 아니냐? 이스라엘 천지에서 너만한대장부가 어디에 있느냐? 그런데 네가 어째서 너의 상전인 임금님을 보호하여 드리지 않았느냐? 백성 가운데 사람이 너의 상전인 임금님을 범하려고 이미 들어갔었다.16 너는 이번에 너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너희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너희의 상전을 보호해 드리지 못했으니, 너희는 이제 죽어 마땅하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왕의 창이 어디로 갔으며, 왕의 머리맡에 있던 물병이 어디로 갔는지, 어서 찾아 보도록 하여라.”

 

17 사울이 다윗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말하였다. “나의 아들 다윗아, 이것이 정말로 너의 목소리냐?” 다윗이 대답하였다.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 그러합니다.”18 그런 다음에, 다윗이 말하였다.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임금님의 종을 사냥하러 나오셨습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손으로 저지른 죄악이 무엇입니까?19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은 종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임금님을 충동하여 나를 치도록 시키신 분이 주님이시면, 나는 기꺼이 희생제물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을 충동하여 나를 치도록 시킨 것이 사람이면, 그들이 주님에게서 저주를 받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유산으로 주신 땅에서 내가 받을 몫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나더러 멀리 떠나가서 다른 신들이나 섬기라고 하면서, 나를 쫓아낸 자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20 그러니 이제,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방 땅에서, 내가 살해당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찌하여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사냥꾼이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듯이, 겨우 벼룩 마리 같은 나를 찾으러 이렇게 나서셨습니까?”21 사울이 대답하였다. “내가 잘못했다. 나의 아들 다윗아, 돌아오너라. 네가 오늘 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겨 주었으니, 내가 다시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 정말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아주 잘못을 저질렀다.”22 다윗이 말하였다. “여기에 임금님의 창이 있습니다. 젊은이 하나가 건너와서 가져가게 하십시오.23 주님께서 사람에게 공의와 진실을 따라 갚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오늘 임금님을 나의 손에 넘겨 주셨지만, 나는,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임금님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24 그러므로 내가 오늘 임금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겼던 것과 같이, 주님께서도 나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시고, 어떠한 궁지에서도 나를 건져 내어 주실 것입니다.”25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들 다윗아, 하나님이 너에게 주시기를 바란다. 너는 참으로 일을 해낼 만한 사람이니, 매사에 형통하기를 바란다.” 다윗은 자기의 길로 가고, 사울도 자기의 궁으로 돌아갔다.

 

NASB 

“Now behold, as your life was highly valued in my sight this day, so may my life be highly valued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may He deliver me from all distress.” Then Saul said to David, “Blessed are you, my son David; you will both accomplish much and surely prevail.” So David went on his way, and Saul returned to his place(24-25).

 

1. 아브넬

아브넬은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잠이 번쩍 깼다. 

다윗의 목소리였다. 

그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사울 왕을 제대로 호위하지 못했으니, 죽음으로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어디 감히…

그런데 정말 왕의 창이 사라졌다. 

화들짝 놀라 다윗이 소리치는 방향으로 몸을 틀고 바라봤다. 

저 멀리 산 꼭대기에 다윗과 한 사람이 서서는 이쪽을 향해 말하는 것이 보였다. 

창과 물병을 가져갔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왕의 물병도 사라졌다. 

정말 저들이 우리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최소한 저들이 아니라도 첩자를 시켰건, 날렵한 부하를 시켰건, 우리 진영 깊숙이 들어왔다는 건 사실이다. 

이건 방어 실패다. 

 

사울 왕이 다윗을 ‘나의 아들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윗을 잡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건 정말 최악이다. 

다윗이 복귀하는 것은 큰 위협이다. 

게다가 다윗이 하는 말의 핵심은, 사울 왕을 누군가가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시키신 것이 아니라 신하 중에 왕을 속여 다윗을 죽이게 만들었다는 거다. 

다윗이 복귀하면 사울의 명령을 따라 다윗을 추격했던 우리 모두 죽게 된다. 

그런데 왕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매순간이 위기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위기를 경험케 하시는가? 

다윗의 하나님은 아브넬의 하나님은 아니란 말인가? 

솔직히 내가 사울 왕을 부추긴 것은 아니다. 

왕이 스스로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했던 것이다. 

그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사울의 시기를 신하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경계 근무에 실패한 것, 안일하게 대처한 것은 나의 잘못이 맞다. 

그러나 왕이 다윗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2. 다윗의 하나님, 모두의 하나님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이시기만 한가? 

아님 모두의 하나님이신가? 

답은 정해져 있다.

그분은 모두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울 혹은 아브넬의 하나님의 아니다. 

권력자의 시기를 받아 눈 밖에 나서 몇천명의 군사들로부터 쫓기는 다윗의 하나님이시다. 

연약한 자, 고통받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권력의 부당한 압제로부터 죽음의 골짜기를 걷고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자기 욕망에 충실하다 못해 과잉충성하는 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빼앗기고 찢겨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나에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의 욕망을 극대화하길 원하시기보다 당신의 뜻이 분명해지길 바라시는 분. 

한 개인인 나의 소망을 무조건 들어주시는 분이시기보다 거대한 이야기의 일원으로 그 뜻에 따라 살기를 원하시는 분. 

그렇다고 그분이 나의 소망과 소원에 무관심하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그분에겐 그분의 뜻이 있다. 

나의 뜻이 그분의 뜻을 넘어서서 강변되어서는 안된다. 

 

 

 

오늘의 기도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며 주님이신 여호와 하나님, 

한 개인의 기도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시에 한 개인의 기도를 넘어서서 당신의 소망과 뜻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주님의 뜻을 알고 따르는 것이 참 기쁨입니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인간의 주체성이 강조됩니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어떤 우상의 동굴에서도 벗어나서 초인의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저는 초월적 하나님을 믿고 따릅니다. 

그게 저라는 사람의 길입니다. 

압도적으로 충만한 이 세상의 신비를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오직 이 세상의 창조주를 따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5월 13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1 십 광야의 주민이 기브아로 사울을 찾아와서 밀고하였다. “다윗은 여시몬 맞은쪽 하길라 산 속에 숨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2 그래서 사울이 일어나, 이스라엘에서 삼천 명을 골라 거느리고, 십 광야에 있는 다윗을 찾으러 직접 십 광야로 내려갔다.3 사울은 여시몬 맞은쪽 하길라 산 속으로 들어가 길 가에 진을 쳤다. 이 때에 다윗은 바로 그 광야에 있었기 때문에, 사울이 자기를 잡으려고 그 광야로 쫓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4 다윗은 곧 정찰대원들을 파견하여, 사울이 와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를 확인하게 한 다음에,5 사울이 진을 친 곳으로 가 보았다. 다윗이 그 곳에 와 보니, 사울과 넬의 아들 아브넬 군사령관이 자고 있었는데, 사울은 진의 한가운데서 자고, 그의 둘레에는 군인들이 사방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6 그래서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인 아비새에게, 누가 자기와 함께 사울의 진으로 내려가겠느냐고 물으니, 아비새가 나서서, 자기가 다윗과 함께 내려가겠다고 대답하였다.7 이리하여 다윗이 아비새를 데리고 밤에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니, 사울이 진의 한가운데서 누워 자고, 그의 머리맡에는 그의 창이 땅바닥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군인들은 그의 둘레에 사방으로 누워 있었다.8 아비새가 다윗에게 자청하였다. “하나님이 오늘, 이 원수를 장군님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제가 그를 당장 창으로 찔러 땅바닥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이, 한 번이면 됩니다.”9 그러나 다윗은 아비새에게 타일렀다.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누구든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자를 죽였다가는 벌을 면하지 못한다.”10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주님께서 사울을 치시든지, 죽을 날이 되어서 죽든지, 또는 전쟁에 나갔다가 죽든지 할 것이다.11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이를 내가 쳐서 죽이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12 다윗이 사울의 머리맡에 있던 창과 물병을 들고 아비새와 함께 빠져 나왔으나, 보는 사람도 없고, 눈치채는 사람도 없고, 깨는 사람도 없었다. 주님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셔서, 그들이 모두 곤하게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NIV 

Abishai said to David, “Today God has delivered your enemy into your hands. Now let me pin him to the ground with one thrust of the spear; I won’t strike him twice(8절).”

 

주석 

11절. 다윗이 밤에 사울의 진영에 들어가 탈취한 창은, 왕의 직위를 상징하며 왕의 공식 의전에 사용되는 무기였습니다. 어떤 사람의 물과 무기를 빼앗았다는 것은, 그의 생명이 빼앗은 이의 손에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IVP 성경배경주석-구약, 450쪽).

 

[오늘의 묵상]

 

1. 아비새 

다윗은 장차 왕이 될 인물이다. 

그가 당하는 고통에 깊이 공감된다. 

그는 잘못이 없다. 

사울 왕의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고 있다. 

나발이 무시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를 잘 보위하여 추후에 왕으로 옹립하는 것 그게 아비새 내가 할 일이다. 

 

이 날도 사울의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웠다. 

수천의 군사들이 코앞에 왔다. 

느닷없이 다윗이 아히멜렉과 나 아비새에게 제안을 한다. 

사울 왕의 진영으로 들어가자라는 것이다. 

왜? 

도대체 이 작전의 목적과 이유는 무엇인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수천의 군사를 뚫고 사울 왕을 잡자는 것인가? 

아님 군사 동향을 파악하자는 것인가? 

후자라면 세작을 보내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사울을 죽이자는 이야긴데, 과연 둘이서 가능한 일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다윗이 그동안 보여준 전략과 임기응변을 알기에, 무엇보다 그의 권위가 하나님과 맞닿아 있기에 따르기로 했다. 

 

밤에 내려가니 모두들 아주 편하게 자고 있었다. 

경계도 약했다. 

싸움을 하러 온 사람들이 맞나 싶었다. 

아마도 국가간의 전쟁이 아닌데다 쫓기는 신세인 다윗 일당이 무엇을 할까보냐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울 왕이 잠들어 있는 곳까지 손쉽게 찾아갔다. 

진의 중앙에 있을 것이 당연했다. 

아무도 불침번을 서지 않고 있었다. 

왕과 더불어 모든 참모들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 

절호의 기회다. 

이건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기회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다윗 군대의 장군으로서 내가 적장을 벨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다윗이 시키기만 하면 이 지긋지긋한 도망자의 신세도 끝이다.

 

“장군님!! 제가 그의 목숨을 끊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울을 맡기셨습니다.” 

작은 소리지만 단호했다. 

 

“아니다. 주님께서 기름부어 주신 자를 죽여서는 안된다.” 

 

와… 이런… 숨이 막힌다. 

답답하다. 

지난 번에도 사울을 살려 준 적이 있었다. 

그 때 사울은 다시는 다윗을 뒤쫓지 않겠다 했다. 

그런데 상황은 어떤가? 

여전히 쫓고 쫓기는 상황 아닌가? 

그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답답한 소리를 하다니… 

순간 진절머리가 나고, 욱하는 뱃심이 올라왔다. 

 

“창과 물병만 챙기고 가자” 

 

이 아까운 기회를 이렇게 날리다니… 

이 절호의 찬스를 이렇게 허비하다니… 

 

2.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아비새는 아마도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다윗의 말을 과연 들어야 하는지, 아님 과감하게 이 상황을 종결해야 하는지..

그동안 겪은 역경을 생각하면, 다윗을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과감하게 결행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비새는 다윗의 말을 순종했지만, 나라면 좀더 과감했을 수도 있었겠다. 

도망자의 신세를 모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너무나 아쉽다. 

 

하나님의 뜻은 나의 욕망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정말 많다. 

내가 바라는 것,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가 있다.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거대 서사가 있다. 

또한 미시적인 바램도 있으시다. 

그분의 거대 서사 속에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미시적인 뜻도 분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도가 필요한 이유다. 

묻고 기다리고 행동하고 다시 묻고 기다리고 행동하고의 반복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거대한 이야기를 계속 바라보고 응시한다. 

 

내면의 욕망의 소리를 들을 것인가? 

하나님의 거대한 이야기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를 들을 것인가? 

가끔 내 욕망의 소리가 너무 커질 때가 있다. 

그 소리를 잠재워야 거대한 북의 미세한 떨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내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님의 뜻을 구한다. 

 

[오늘의 기도]

지혜가 많으신 하나님,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 막막함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주님의 길을 걷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당장의 필요를 쫓기보다 거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계속 떠올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람들의 필요, 공동체의 필요를 잘 파악하고 필요한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학사 운동을 정립하고 그 기초를 잘 쌓도록 이끄소서.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5월 09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오늘 그대를 보내어 이렇게 만나게 하여 주셨으니, 주님께 찬양을 드리오.33 내가 오늘 사람을 죽이거나 나의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지 않도록, 그대가 나를 지켜 주었으니, 슬기롭게 권면하여 준 그대에게도 감사하오. 하나님이 그대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오.34 그대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하도록 나를 막아 주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분명하게 말하지만, 그대가 급히 와서 이렇게 나를 맞이하지 않았더라면, 나발의 집안에는 내일 아침이 밝을 때까지 남자는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할 뻔하였소.”35 그리고 다윗은 그 여인이 자기에게 가져온 것들을 받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시오. 내가 그대의 말대로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36 아비가일이 나발에게 돌아와 보니, 그는 자기 집에서 왕이나 차릴 만한 술잔치를 베풀고, 취할 대로 취하여서, 흥겨운 기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비가일은 다음날 아침이 밝을 때까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나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37 아침이 되어 나발이 술에서 깨었을 때에, 그의 아내는 그 동안에 있었던 일을 모두 그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심장이 멎고,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38 열흘쯤 지났을 때에, 주님께서 나발을 치시니, 그가 죽었다.39 나발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다윗이 말하였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나발이 나를 모욕하였으나, 주님께서 그 원수를 갚아 주시고, 이 종이 직접 무슨 악을 행하지 않게 막아 주셨다. 주님께서는 나발이 저지른 죄악을 나발의 머리로 돌려보내 주셨다.”

 

NIV

Then in the morning, when Nabal was sober, his wife told him all these things, and his heart failed him and he became like a stone(37절).

 

[오늘의 묵상]

1. 다윗의 감사 

분노에서 벗어난 다윗의 첫 반응은 감사였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아비가일에 대한 감사가 올라왔다. 

동족을 죽이는 끔찍한 일을 벌일 뻔 했다.

다윗도 연약한 사람이라 분노에 휩싸여 일족을 멸하는 오점을 남길 뻔 했다. 

 

좋은 조언자가 많아야 한다. 

정직하면서도 지혜로운 조언을 많이 들을수록 도움이 된다.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 

냉철함을 유지하고 극단적인 의견도 듣고, 제 3의 의견도 들으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리더가 할 일이다. 

분노에 의해 조언자의 말들을 거르면 안된다. 

리더가 분노하더라도 끝까지 지혜롭게 이야기해주는 좋은 조언자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새롭게 업무에 복귀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좋은 조언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상황에 대한 감사. 

좋은 조언자를 달라고 기도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끄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필요하다. 

 

2. 나발의 죽음

나발은 큰 실수를 했다. 

그런데 그의 이 실수가 정말 죽을 벌을 받을 만큼 큰 죄악인가? 

의문이 든다. 

다윗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 정말 이렇게 큰 죄악인가? 

 

일단 큰 죄악이라고 보게 되는 이유는 이렇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양 떼를 보호해 준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은 큰 죄악으로 봤기 때문이다. 

지금의 윤리적 기준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과 다윗이 나발의 죄를 매우 크게 봤다. 

성경에서 그리고 있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판단은 거의 절대적이다. 

 

하지만, 반대로 현대의 윤리적 기준, 그리고 성경 기록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나발은 죽을만한 죄를 지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윗이 오히려 과도한 분노를 쏟아내는 것으로 보인다. 

나발은 그저 욕심이 과하고 현실 파악 능력이 부족해서 실수한 것처럼 보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성경을 보는 관점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한다. 

성경은 현재 우리가 가진 윤리적 기준에 의해 보아서는 안된다. 

당시 문화, 역사, 배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을 우리의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면, 그 성경이 기록한 하나님의 판단에 대해 우선적인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나발은 그 당시 문화와 배경 속에서 큰 죄를 저질렀다. 

보복에 대한 그의 두려움이 그의 심장을 멎게 만들었다. 

그의 잔치는 끝났다. 

양 털을 깎아 수입을 올리고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즐거운 파티를 하고 싶었겠지만, 두려움이 그와 그의 집안에 엄습했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한 그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그 두려움… 

아비가일이 좋은 조치를 취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두려움을 제거할 수 없었다. 

그 두려움이 그를 병들게 했으며, 결국 죽음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일을 하다보면 언제든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무엇보다 지혜로운 조언자를 항상 곁에 두도록 이끌어 주세요. 

제 기분이 좋건, 슬프건, 분노하건 간에 바르고 현명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와 통찰이 가득하도록 도와주세요.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주님의 일하심을 느끼게 하소서. 

거센 풍랑 같은 하루 속에서도 주님의 평온함을 느끼도록 이끄소서. 

사랑으로 서포트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5년 05월 08일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20 벌써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여인의 맞은편에서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나귀를 타고 산굽이를 돌아 내려가는 아비가일이 그들과 마주쳤다.21 다윗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내가 저 광야에서 그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켜 주어, 그의 모든 재산 가운데서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였으나, 그것이 모두 헛일이었다. 그는 나에게 선을 악으로 갚았다.22 내가 내일 아침까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남자들을 하나라도 남겨 둔다면, 나 다윗은 하나님께 무슨 벌이라도 받겠다.”

23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서, 다윗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하였다.24 그런 다음에 아비가일이 다윗의 발 앞에 엎드려 애원하였다. “죄는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이 종이 말씀드리는 것을 허락해 주시고, 이 종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25 장군께서는 나의 몹쓸 남편 나발에게 조금도 마음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정말 이름 그대로, 못된 사람입니다. 이름도 나발인데다, 하는 일도 어리석습니다. 그런데다가 장군께서 보내신 젊은이들이 왔을 때에는,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아서, 그들을 만나지도 못하였습니다.26 장군께서 사람을 죽이시거나 몸소 원수를 갚지 못하도록 막아 주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도 살아 계시고, 장군께서도 살아 계십니다. 장군님의 원수들과 장군께 해를 끼치려고 하는 자들이 모두 나발과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27 여기에 가져온 이 선물은 장군님을 따르는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시라고, 내가 가져온 것입니다.28 이 종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군께서는 언제나 주님의 전쟁만을 하셨으니, 주님께서 틀림없이 장군님의 집안을 영구히 세워 주시고, 장군께서 사시는 동안, 평생토록 아무런 재난도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29 그러므로 어느 누가 일어나서 장군님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일이 있더라도, 장군님의 생명은 장군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이 생명 보자기에 싸서 보존하실 것이지만, 장군님을 거역하는 원수들의 생명은, 주님께서, 돌팔매로 던지듯이 팽개쳐 버리실 것입니다.30 이제 곧 주님께서 장군께 약속하신 대로, 온갖 좋은 일을 모두 베푸셔서, 장군님을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워 주실 터인데,31 지금 공연히 사람을 죽이신다든지, 몸소 원수를 갚으신다든지 하여, 왕이 되실 때에 후회하시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처럼 좋은 일을 장군께 베풀어 주시는 날, 이 종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석 

30-31절. 아비가일의 조언은 후일 다윗의 정치적 행보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나발 개인의 악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갈렙 족속으로 유다 지파의 유력한 가문인 그를 공격했더라면, 그가 훗날 왕위에 오를 때 유다 지파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IVP 성경주석, 432쪽).

 

[오늘의 묵상]

 

1. 다윗의 분노 

선을 악으로 갚은 나발에게 다윗은 분노했다. 

이 분노는 정당한가? 

나발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보인 태도는 분명 잘못되었다. 

여러 모로 적절치 않다. 

다윗의 정치, 군사적 입지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나발은 훨씬 더 지혜롭게 처신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다윗이 한 말과 분노 그리고 그의 계획이 정당한지는 의문이다. 

22절을 보자. 

 

22 내가 내일 아침까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남자들을 하나라도 남겨 둔다면, 나 다윗은 하나님께 무슨 벌이라도 받겠다.”

 

과도한 분노다. 

유다 지파에 속한 갈렙 가문의 씨를 말리겠다는 소린데, 이는 가당치 않다. 

전쟁을 많이 해서 그런가, 왜 이런 과도한 분노를 표출한단 말인가?

이 장면에서 다윗의 온유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윗 전체의 삶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해주셨다. 

 

삼상 13:14_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도행전 13:22_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그렇다고 그의 모든 행동이 다 선하고 온전했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다. 

그는 많은 실수를 했고, 과도한 분노를 표했고, 때로는 거짓말을 했으며, 때로는 흉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가 과연 사울보다 도덕적으로 백배천배 낫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가 하나님 마음에 끝까지 합한 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도덕적 자질보다는 그의 정직함이었다. 

 

이 사실을 깊이 마음에 두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의 스토리를 읽어감에 있어, 캐릭터들의 정직함 여부를 잘 바라봐야 한다. 

 

 

2. 아비가일의 설득

다윗은 자칫 큰 실수를 범할 뻔 했다. 

나발의 잘못을 그 집안 모두에게 갚을 뻔 했다. 

실제로 그 일을 행했을지는 의문이나, 일단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상당히 근접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다윗은 전투의 신 같은 존재였다.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의 명령에 절대 복종했다. 

싸움이 크게 번질 수 있었다. 

사울의 군대가 개입할 수도 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실수를 막았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한 결심(22절)은 속히 정정되어야 했다. 

아비가일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가문도 지키고 다윗도 지키는 일이라 여겼다. 

다윗 입장에 서서 어떤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은지 조언했다.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하도록 설득했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왕이 될 유력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사무엘의 죽음 즈음에는 다윗이 그의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무엘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이야기 했을 가능성도 높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차기 왕좌는 다윗의 차지일거란 말이 돌았다. 

그걸 아비가일은 알고 있었고, 다윗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제안했다.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결정과 실행이 필요하다. 

윈윈전략을 실행하라. 

자기는 살고 남을 죽이는 방식으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 

결국 나도 죽고 남도 죽는다. 

 

[오늘의 기도]

주님,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혜롭게 일을 감당하도록 이끄소서. 

모든 대화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게 하소서. 

 

다윗처럼 과도한 분노에 휩싸이지 않도록 하소서.

아비가일처럼 분노를 가라않히고 차분하게 생각하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로운 조언자들을 많이 두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자녀들의 건강을 주님께 맡깁니다. 

저의 능력으로는 자녀들의 건강을 잘 지키지 못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자녀들을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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