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9월 12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6 노아의 시대에 일이 벌어진 것과 같이, 인자의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마침내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롯 시대에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에서 떠나던 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려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31 그 날에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 물건들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들을 꺼내려고 내려가지 말아라. 또한 들에 있는 사람도 집으로 돌아가지 말아라.

32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목숨을 잃는 사람은 보존할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잠자리에 누워 있을 터이나, 한 사람은 데려가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 둘 것이다.

35 또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을 터이나, 한 사람은 데려가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 둘 것이다.” 

(36절 없음)

37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또한 독수리들이 모여들 것이다.”

 

[주석]

37절. 예수님은 그 일이 어디에서 일어나겠느냐는 질문을 받으셨을 때, 시간표와 지도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특권도 주지 않으신다. 광야에서 시체 위를 맴도는 독수리떼를 보면 시체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분명해지듯이, 때가 오면 인자가 어디에 계시는지 아주 분명해질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분이 오셔서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다.

그날을 기다린다. 

그날의 징조는 분명하다.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지고, 죄악은 더욱 교묘해진다. 

노아의 시대처럼, 롯의 시대처럼 돌이킬 수 없는 악의 창궐이 있다. 

예수님을 통해 시작된 하나님 나라로 인해 한 편에서 치열하게 그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사단은 더욱 교묘하게 죄악을 뿌리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악을 조직화시켜서 눈에 보이지 않도록 숨긴다. 

악의 창궐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수도 더욱 늘어난다. 

예수님은 그 어느 순간에 불현듯 이 세상에 오실 것이다.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재림의 징조를 알아차릴 것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분이 오실 것에 대한 징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세상의 악을 멸하시고, 전쟁을 중단시키시고, 악한 지도자들을 벌하시고, 선량한 시민들을 구제하시고, 믿는 자들을 위대한 통치자로 세우실 것을 믿는다. 

그날이 오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우주의 신비, 하나님의 계획, 예수님 성육신의 비밀, 왜곡된 역사의 진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사건들을 다 생생하게 기억하시며,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실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현재의 즐거움에 빠져 그날을 향한 갈망을 잊어서는 안된다. 

현재의 즐거움은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도 차별받지 않고 공의롭고 사랑이 풍성한 통치에 만족할 것이다. 

미움과 싸움이 사라지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날을 꿈꾼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런 작은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에게도 주님의 기쁨이 흐르게 하소서.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이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주께서 오셔서 우리를 회복 시켜주소서. 

전인류가 더이상 자신들의 욕심으로 서로를 죽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9월 08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셨다. 그들은 멀찍이 멈추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예수께서는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되돌아와서,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1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

19 그런 다음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석]

12절. 나병환자는 사회의 나머지 사람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들이었으며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은 그들을 무시하고 싶어 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나병 환자들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살아간다. 

경계인이다. 

사마리아에 속하지도 갈릴리에 속하지도 못한다. 

사마리아 출신이기도 하고 갈릴리 출신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은 사마리아와 갈릴리에서 추방당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번에도 그 애매한 경계의 길을 가신다. 

완전히 이쪽도 저쪽도 아니다.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 사람들의 좋은 이웃이 되셨다. 

의인이면서 죄인들을 환대하셨다. 

그분은 그 중간의 길을 통해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예수님을 부른다. 

소문이 그들에게도 도달한 것 같다. 

예수님의 영험한 치유 능력은 경계인에게까지 미쳤다. 

그들의 요청은 간단했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0명이 부르짖는다. 

그들은 예수님의 진짜 정체를 잘 모른다. 

그저 예수님을 유명한 선생님으로 알고 있다. 

예수님은 이들을 따로 만지시지 않으셨다. 

그저 말씀만 하신다. 

말씀만으로도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신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요구하는 명령이다. 

몸이 나아야 제사장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몸이 낫지도 않았는데 유명하다는 사람의 말만 듣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예수님의 명령의 권위를 받아들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남은 방법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 밖에 없었다.

 

가는 도중에 병이 나았다. 

이건 신기한 기적이었다. 

나병은 신체 기관들이 떨어져 나가는 병이다. 

그들의 신체 기관들이 다시 자라났다. 

어느새 원래 몸으로 회복되었다. 

가는 도중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서로의 손가락 발가락을 보며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예수님은 나병 환자들을 만난 그 자리에 계셨다. 

몇 명이라도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계셨다. 

돌아온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유대인이 아니라 갈릴리 사람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 한 명이었다. 

이것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충격이었다. 

10명의 유대인+사마리아인을 치료했는데, 돌아와 감사를 표한 사람은 한 명이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병이 나아 회복되었다고 존재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기적을 경험하고도 믿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병이 낫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구원받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 예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사건이다. 

이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 감사를 드림으로써 예수님과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는 구원을 받다. 

 

많이 안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바리새인들을 보라. 

기적을 경험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아홉 명의 나병 환자들을 보라. 

지식과 경험은 그분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분을 진정으로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이 하신 일을 기뻐하고 그분에게 개인적인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경계인을 찾아 나서는 주님, 

어느 사회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으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시는 주님, 

저는 여전히 용기가 없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노력을 기울일 뿐입니다. 

저의 한계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힘이 제게 없습니다. 

경계인을 찾아 나설 지혜와 용기가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일단 저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더 깊이 사랑하도록 도와주세요. 

외롭고 지친 사람들을 잘 돕고 사랑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8월 31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25 그런데 큰 아들이 밭에 있다가 돌아오는데,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음악 소리와 춤추면서 노는 소리를 듣고,26 종 하나를 불러서, 무슨 일인지를 물어 보았다.27 종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것을 반겨서, 주인 어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29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31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32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주석

30절. 형의 불평은 지나친 말로 표현된다. 그는 ‘내 동생’이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경멸 조로 ‘이 아들’이라고 말한다(IVP 성경주석).

 

32절. 중요한 의문이 대답되지 않은 채 남는다. 과연 형은 마침내 동생을 환영하는 데 동참했을까?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의 부재는 실로 의도적이다. 형은 바리새인과 그들 같은 사람을 대변한다. 그리고 그 비유는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바꾸라는 호소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아버지가 큰 잔치를 베풀었던 모양이다. 

음악 소리가 들리고, 춤추면서 노는 소리가 퍼진다.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음악과 춤과 노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음식이다. 

배고프면 즐거운 마음이 사라진다. 

술과 음식이 제공된다. 

형의 말을 미루어 보아,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 

온 식구들이 고기를 먹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하늘 잔치의 비유다. 

잃어버렸던 아들이 돌아왔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아들이 돌아온 것이다. 

오랜 기다림의 끝은 즐거운 만남이다. 

 

둘째 아들도 이렇게까지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이렇게 좋은 아버지라면, 괜히 떠났다 싶을 것이다. 

 

그런데 잘 보면 첫째 아들의 입이 쑥 나왔다. 

돌아온 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에 갑자기 울화통이 터진다. 

동생의 귀환에 대해 이렇게까지 축하파티를 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형이 정말 동생이 미워서 그렇게 말한 것인가? 

동생이 미워서라기보다는 아버지의 반응 때문에 화가 난 것으로 보인다. 

 

29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 아들은 그동안 아버지가 자신에게 충분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염소 새끼 한 마리에 이렇게 맘이 상해 있었다. 

돌아온 동생에 대한 기쁨보다 자신에 대한 대우가 변변치 못했음에 대한 분노가 앞섰다.

그러나 첫째 아들의 분노는 근거가 부족하다. 

먼저, 아버지는 재신을 첫째 아들, 둘째 아들 모두에게 분배했다. 

둘째, 비록 현재 아버지의 재산이 남아 있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첫째 아들의 것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니 아버지의 말이 맞다. 

 

31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아버지의 것은 첫째 아들의 것이었다. 

자신이 잔치를 벌이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아버지에게 충성된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자유롭게 결정해서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첫째 아들은 스스로를 가두었다. 

아버지를 완고한 분으로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에게 요청하면 안되는 것으로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좀더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알았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태도가 그렇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잣대로 하나님을 재단한다. 

자신들의 욕구와 욕망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한다. 

도리어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그동안 했던 충성과 열정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 

자유는 사라지고 비교와 분노과 족쇄만 남는다. 

예수님이 제대로 한 방 먹이셨다. 

 

교회를 통해 죄인이 회개하기를 기대한다. 

멀리 떠났던 청년들이 돌아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길 기대한다. 

청년들의 과제가 정말 무엇일까 고민한다. 

죄인들이 회개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기뻐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그저 내가 편한 환경이 아니라, 회개한 죄인들을 기뻐하기에 편한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한다. 

서로에게 환대가 있고, 관심이 있고, 사랑이 흐르는 공동체가 되길 바라고 또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죄인을 찾으시는 주님, 

죄인이 돌아와 회개하여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기뻐하시는 주님, 

하늘에서는 구원받은 백성이 늘어나는 것을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과장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한 영혼을,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 당신께 얼마나 귀한 일인지 인정합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한 영혼이 변화되는 것에 중심을 두게 하소서. 

그리고 그런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악과 싸우게 하소서. 

개인의 악 뿐 아니라 구조와 조직의 악과도 싸울 수 있게 하소서. 

성령님의 능력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8월 30일 수요일

 

여는 기도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십시오.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1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12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거기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14 그가 모든 것을 탕진했을 때에, 그 지방에 크게 흉년이 들어서, 그는 아주 궁핍하게 되었다.15 그래서 그는 그 지방의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의탁하였다. 그 사람은 그를 들로 보내서 돼지를 치게 하였다.16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좀 먹고 배를 채우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17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18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19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를 벌였다.

 

주석

11-12절.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고대에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사실상 그것은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죽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셈이다(IVP 성경배경주석).

 

20절. 달려가는 것은 나이 든 유대 남자의 위엄을 손상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들이 오랜만에 돌아왔으므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 체면 보다 앞섰다. 평상시 옷차림 대로였다면, 그 아버지는 달려가기 위해 옷자락을 끌어올렸을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오늘 본문은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주인과 하늘에서의 기쁨이라는 첫 번째 비유, 

그리고 한 드라크마를 찾은 주인과 하늘에서의 기쁨이라는 두 번째 비유 다음에 이어진다. 

오늘 본문이 좀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이야기적이다. 

비유이긴 하지만, 당시 지역 뉴스에 나올 만한 이야기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지역 유지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가지고 해외로 떠났다. 

그것만으로도 지탄의 대상이 된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위해 아예 재신을 첫째 아들, 둘째 아들에게 공히 분배한다. 

둘째 아들에게만 줬다면, 정말 패륜아로 찍혔을 것이다. 

아직 죽음에 이르지 않았지만, 아들들에게 자신의 재신을 나눈다. 

유산을 배분하는 것과 같다. 

아들들을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둘째는 아버지의 관리와 통치를 떠난다. 

당시는 가부장 시대였다. 

아버지가 곧 법이다. 

그 아버지의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떠난다. 

더 이상 아버지 밑에 있고 싶지 않았다. 

요나가 떠오른다.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다시스로 가려고 했던 요나… 

반 강제적이지만 결국 니느웨로 오게 된다. 

 

우리 인간은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경향을 갖는다. 

통제 구역 밖으로 나가려는 경향. 

밖을 동경한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동경한다. 

한 번도 하지 못한 것, 하지 말라는 것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담과 하와도 그 경향에 무릎 굻었다. 

 

오랫동안 둘째 아들로서 누리던 보호와 안전함보다 아버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모태신앙이 가지고 있는 내적 욕망도 다르지 않다. 

교회로부터, 부모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그의 소식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소식통을 총 동원해서 아들의 근황을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식이 끊겼다. 

이 지역에 기근이 들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아들이 과연 이 기근으로부터 살아남았을지 걱정이었다. 

그러다 저 멀리 아들이 보인다. 

허름한 옷이었지만, 꾀죄죄한 몰골이었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봤다. 

멀리서부터 아들을 향해 뛰어간다. 

 

앞의 두 비유에서 주인은 잃어 버린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선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린다. 

적극성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인격은 그런 것이다. 

양과 동전은 인격이 아니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스스로 떠난 인격이다. 

그런 경우엔 적극적으로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찾아 나서는 것도 전도요.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것도 전도다. 

찾아 연락하는 것도 전도요. 

오기를 기다리며 잔치를 준비하는 것도 전도다. 

 

우리는 하늘의 잔치를 기다린다. 

남은 99마리 양이라도, 읽어버리지 않은 9개의 드라크마라도, 그리고 항상 아버지 곁에 있었던 첫째 아들과 종들이라도, 다시 찾은 것을 위한 잔치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 

이번 학기에도 하늘의 잔치가 열리길 기다린다. 

청년들이 변하고 그들이 회복되기를 기도한다. 

잃어버린 자들이 돌아오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간절히 찾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때로는 적극적으로 찾으시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기다리시는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믿고 의지합니다. 

 

이제 곧 9월의 시작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잃어버렸던 주님의 자녀들이 다시 돌아오게 하소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셔들이게 하소서. 

다시 회복되어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마음이 멀어져 있는 친구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그들이 돌아올 때, 반갑게 환대하고 축복하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오늘 하루를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아픈 사람들이 회복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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