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31 “시몬아, 시몬아, 보아라. 사탄이 밀처럼 너희를 체질하려고 너희를 손아귀에 넣기를 요구하였다.

32 그러나 나는 네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네가 다시 돌아올 때에는, 네 형제를 굳세게 하여라.”

33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나는 감옥에도, 죽는 자리에도, 주님과 함께 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34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한다.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석]

31절. 예수님은 “시몬”이라고 부르시는데, 이는 예수님이 그를 부르셔서 베드로라는 헬라어 이름을 주시기 전에 누가가 사용한 이름이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말씀을 묵상하기전, 내 마음을 읽는다. 

여러 가지 감정이 올라온다. 

그 감정을 주님께 올려드리고, 다시 말씀에 집중한다. 

 

유월절 성만찬은 어떤 면에서는 파국이다. 

새언약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셨음에도, 제자들은 누가 더 큰 사람인지, 누가 더 영향력있는 사람인지 서로 싸운다. 

예수님은 큰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시몬 베드로에겐 사탄이 시험할 것을 예고하신다. 

무엇보다 시몬이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새언약식을 마친 이후의 즐겁고 행복한 축하 자리여야 하건만, 분위기는 그렇지 못하다. 

서로 싸우고, 혼나고, 사탄의 시험이 다가오고, 수제자는 배신한다??

이것은 마치 모세 시대 시내산 첫 언약이 있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험을 당해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사건과 오버랩이 된다. 

그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패했다. 

과연 새언약의 백성들은 성공할 수 있을까? 

사탄의 시험과 공격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베드로가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예견하신다. 

“네가 다시 돌아올 때에는”이라는 말씀은 베드로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는 실패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로마 군사들에게 잡혀갈 때, 그의 마음도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와 형제자매를 굳세게 하는 초대교회 지도자가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예수님을 위해 죽기라도 할 태세다. 

마음과 말 모두 진실이다. 

그러나 모든 진심이 끝까지 유지된다는 법은 없다. 

사람의 진심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감정이 동요하고, 상황이 위태해지면, 결심이 흔들린다. 

죽음의 맹세도 하늘로 흩어지고, 생명의 위협으로 마음이 쪼그라든다. 

 

예수님의 기도는 사탄의 시험을 피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사탄의 시험을 견디다가 무너지더라도 실낱 같은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라는 것이었다. 

가룟 유다처럼 완전히 무너져서는 안된다. 

베드로는 남은 그의 진심과 믿음을 지켜서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시험 회피가 아닌 정면 돌파를 위해 기도하신 것이다. 

실수하고 절망하더라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예수님 부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 죽고 싶은 순간에도 그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랑했으며, 베드로를 통해 하시고 싶은 일이 있었다. 

 

때로 사탄이 시험을 걸어온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현실에 대한 불만족, 형제자매들에 대한 서운함… 

이 모든 마음을 주님께 아뢴다. 

주님의 중보기도를 부탁드린다. 

회복되어 주님이 원하시는 소명의 삶을 살길 원한다. 

 

주님, 오늘도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오늘의 기도]

사탄을 이기신 예수님, 

때로 시험에 노출되는 저를 발견합니다. 

여러 가지 감정에 시달리며 소명의 비전을 희미하게 만들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시어 당신의 소명을 따라 사셨던 예수님을 따르길 원합니다. 

주님, 시험에서 건져주소서. 

주님, 시험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아니, 시험에 넘어지더라도 다시 회복되도록 도와주소서. 

 

사랑의 지평이 더 넓어지게 하소서.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0월 11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14 시간이 되어서, 예수께서 자리에 앉으시니, 사도들도 그와 함께 앉았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참으로 간절히 바랐다.

1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때까지, 나는 다시는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다.”

17 그리고 잔을 받아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이것을 받아서 함께 나누어 마셔라.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절대로 마시지 않을 것이다.”

19 예수께서는 또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20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에, 잔을 그와 같이 하시고서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21 그러나 보아라, 나를 넘겨줄 사람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다.

22 인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23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 이런 일을 할 사람이 누구일까 하고, 자기들끼리 서로 물었다.

 

[ESV]

And when the hour came, he reclined at table, and the apostles with him. And he said to them, “I have earnestly desired to eat this Passover with you before I suffer.”(14-15절)

 

[주석]

14-15절. 명절 때는 친밀한 식탁의 교제를 나누었다. 보통 한두 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 하나의 가족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식사 때는 ‘앉았지만’ 유월절과 같은 명절 때는 ‘기대어서’ 먹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예수님은 유월절 음식 먹기를 진심으로 바라셨다. 

제자들과 함께 말이다. 

“참으로 간절히”라는 말씀이 와 닿는다.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들과 식사 교제를 원하신다. 

함께 먹고 마시고 대화를 나눈다. 

시내산 모세 언약 당시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귀한 자들, 장로들과 함께 더불어 먹고 마셨다(출애굽기 24:11).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을 때, 이렇게 식사 교제를 하신다. 

그것도 "참으로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다. 

 

이 마지막 성만찬은 새로운 언약식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새로운 언약을 맺는다. 

이것은 영원한 언약이다. 

예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기로 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약속을 한다. 

자신의 생명으로 인류가 겪고 있는 죄, 고통, 죽음, 사탄으로부터 해방시켜주셨다. 

따라서 이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구원자와 구세주로 섬긴다. 

구원자로만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과의 식사를 즐기기가 어렵다. 

구원은 한 번으로 끝난다. 

그러나 구세주, 즉 주님은 영원한 것이다. 

영원한 사귐에서 식사는 필수다. 

예수님은 사람들은 구원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언약을 통해 당신과의 식사 자리로 부르신다. 

영원한 관계를 위해 계속적으로 식사 자리로 부르신다. 

 

성만찬은 기본적으로 기억의 공간이다. 

빵은 예수님의 몸이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다.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예수님의 삶과 사역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한다. 

주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바로 성령님의 제 1 사역이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영원히 기억해야 할 규례, 율법을 말한다. 

자손대대로 그 말씀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이제 예수님은 성만찬을 통해 자신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새로운 언약의 내용을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약속을 기억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동일하다. 

구약은 모세가 받아온 율법을 기억하라고 한다. 

신약은 몸소 율법의 완성이 되신 예수님을 기억하라고 한다. 

법조문보다 인격을 기억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다. 

 

예수님을 기억한다. 

오늘도 예수님을 기억한다.

 

[오늘의 기도]

새로운 언약을 만드시고 초대하시는 예수님, 

오늘도 당신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뜻, 말씀, 행동, 비전을 떠올립니다. 

모든 인류가 주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주님, 

주님의 뜻을 기억하며

증인의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성령님께서 더욱 열정적으로 알려주셔서 예수님을 더 잘 떠올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0월 10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7 유월절 양을 잡아야 하는 무교절 날이 왔다.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말씀하셨다. “가서, 우리가 먹을 수 있게 유월절을 준비하여라.”

9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어디에다 준비하기를 바라십니까?”

1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가 성 안으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날 것이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가거라.

11 그리고 그 집주인에게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그 방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십니다’ 하여라.

12 그러면 그 사람은 자리를 깔아 놓은 큰 다락방을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니, 너희는 거기에다 준비를 하여라.”

13 그들이 가서 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월절을 준비하였다.

 

[주석]

누가는 열세 절(1-13절)에서 유월절을 여섯 번 언급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지도자들의 계략에도 굽히지 않고, 유월절을 준비하신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유월절이다. 

드디어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드릴 유월절이 왔다.

이집트에서 탈출하던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양의 피를 문에 발라 죽음의 저주를 피했다. 

이제 예수님은 그 양이 되시기로 결정하셨다. 

자신의 피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양의 피로 한 가족의 맏이들의 생명을 구했다면, 이제 하나님 자신의 피로 온 인류의 생명을 구하신다. 

담담하게 그 소명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신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친히 자신의 피를 주실 것이라고는 어떤 영적 존재도 알지 못했다. 

그저 메시아라고 자처했던 사람들이 보였던 행동, 즉 민족의 독립을 위해 로마 제국에 반역을 일으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니 예수님이 유월절 양과 같은 모습으로 죽으실 것이라고는 사탄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해 방을 찾는다. 

방을 찾는 과정 또한 신비롭다. 

굳이 이 이야기를 복음서에 기록한 것도 신기하다. 

이 마지막 유월절 다락방이 마가의 다락방일 가능성이 높다. 

넓고 큰 다락방, 이 다락방은 초대 교회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장소다. 

예수님이 유월절 준비를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마지막 성만찬을 하신 곳이다. 

부활 후 제자들이 모여 있던 곳, 성령님을 대망하며 기도하던 곳, 그리고 마침내 성령 하나님께서 불같이 임하신 곳, 바로 이 마가의 다락방이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원형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누가는 이 다락방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이 다락방은 신적인 능력으로 구해진 것이다. 

예비하시는 하나님이 이 공간을 미리 예비하셨다. 

과거 이삭을 바칠 때는 그를 위해 다른 숫양을 예비하셨던 하나님이, 이제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위해 이 방을 예비하셨다. 

신비로움은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아주 가까이 그분이 예비하신 것, 예비하신 사람, 예비하신 만남을 허락하신다. 

그 예비하심을 몸소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감각의 차이, 경험의 차이다. 

혹은 믿음의 차이다. 집중력의 차이다. 

그분이 일하시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가? 

그저 일상이라고 넘어가는가? 

예수님 곁에서 그분의 신비로움을 몸소 경험하는가? 

아님 다른 시각으로 다른 곳을 응시하여 신비를 흘려 보내는가? 

때로 그분의 음성에 순종할 때, 우리는 신비를 경험한다. 

 

오늘은 어떤 신비가 기다리고 있는가? 

그분께 순종하기 원한다. 

그분의 신비를 경험하고 싶다. 

미리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다하시는 예수님, 

우주의 창조자 되시는 분과의 연결을 위해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기로 결정하신 주님,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열정과 뜻을 생각하며 오늘도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과 사귐을 갖고 그분과의 깊은 교제로 나아갑니다. 

주님 인도하소서. 

갈 방향을 보여주시고,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주세요. 

기도 속에서 당신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제 갈 길을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0월 06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으면, 너희는 스스로 보고서, 여름이 벌써 가까이 온 줄을 안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로 알아라.

32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 날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다.

36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

37 예수께서는,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와서 올리브 산이라고 하는 산에서 지내셨다.

38 그런데 모든 백성이 그의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부터 성전으로 모여들었다.

 

 

[주석]

34절. 술 취함 역시 사람의 아들의 오심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을 가리키는 은유다. 누가는 앞서 이생의 “염려”에 대해 경고했는데, 여기에는 회당에서 자신을 어떻게 변호할지에 대한 염려도 포함된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오늘 본문의 첫 인상, “거짓말”

예수님은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이 세대는 누구까지인가? 

여기서 말하는 이 모든 일은 어떤 일들까지인가?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함락된 것은 주후 70년, 로마장군 티투스 때이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이 전쟁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훼파당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마지막 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재림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예수님은 재림하지 않고 계신다. 

그러니 32절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말이 될 수도 있다. 

여러 해석이 있고, 다 찾아보고 검토해야 겠으나, 오늘 큐티를 통해서는 이렇게 이해된다. 

이 세대는 마지막 세대를 의미한다. 

마지막 세대는 예수님이 초림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기 시작한 세대이며,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세대이다. 

그러니 일반적인 세대의 3-40년의 시기를 가리키기보다, 지난 2천여년 동안 지속된 “이미와 아직”사이의 낀 세대가 이 세대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인 해석인데, 검증이 필요하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적어본다. 

만약 그렇다면, “이미와 아직”의 세대가 끝까지 전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모든 징조가 다 일어날 것이라는 말씀은 거짓이 아니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가까이 왔다고 느낀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과거의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이 우리 앞에 기다린다. 

세계 1, 2차 대전에서 사용된 무기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물론 2차 대전의 마지막이 일본에 투하된 핵폭탄이었다. 

허나, 만약 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면 그것의 시각이 핵폭탄이 될 수도 있다. 

인류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이 드니, 정말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느낌이다. 

그분이 오시길 다시 고대한다. 

눈물과 슬픔이 사라지는 세상을 꿈꾼다. 

 

이렇게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방탕함에 굴복하지 않는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 날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다.

36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

조심하게 된다. 

방탕함과 술취함은 세상살이의 걱정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걱정이 커지면 마음이 짓눌리고, 그걸 해소하기 위해 방탕함과 술취함을 선택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꿈꾸는 사람들은 세상살이가 “절대고통”이 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는 일일 뿐. 

결국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켜주실 것이다. 

이 꿈을 끝까지 유지하는 사람이 승자다. 

 

기도는 예수님과의 대화이다. 

대화를 통해 그분이 이 땅 가운데 다시 오실 그날에 대한 감각을 계속 유지한다. 

방탕과 술취함이 아니라, 그분의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이것이 깨어있음이다. 

그날이 가까이 올수록 더욱 깨어있을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기근으로 죽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깨어서 주변의 사람들을 돌보고,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일이 필요하다. 

소망이 없다면, 환란의 때를 이겨낼 수 없다. 

소망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다. 

소망은 오랜 인내를 참을 만한 궁극적인 꿈이다. 

오늘도 소망을 품는다. 

기도를 통해 소망을 품는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 기도 강의를 통해 주님을 더욱 열망하게 하소서. 

기도 강의를 통해 주님을 더욱 생각하게 하소서. 

주님의 오심을 더욱 갈망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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