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9월 20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1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2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3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4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6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7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주석]

7절. 경건한 유대인은 세리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의 음식을 먹는 것을 몹시 싫어했을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8절. 그가 약속한 배상은 바리새인의 율법에서 규정한 양보다 훨씬 많았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사람들이 수군댄다. 

그 소리가 삭개오(스가랴_히브리말)에게도 들린다. 

오랫동안 수군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살았다. 

대놓고는 말하지 않는다. 

언제나 한쪽 구석으로 가서 말한다. 

‘저놈은 민족의 배신자야. 죄인이야’

안들리게 말한다고 하지만 다 들린다. 

사람들이 모여서 말할 때마다 신경쓰인다. 

그들은 삭개오를 비난하고 정죄한다. 

어쩔 수 없다. 

그게 그의 직업이다. 

먹고 살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벌써 많이 들었다. 

그가 죄인들의 친구라는 소문도 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는 세리도 있다더라. 

어린 아이, 창녀, 과부, 여인들… 그야말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이 많은 분이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병도 고쳐주셨고, 귀신들린 사람들도 낫게 하셨단다. 

점점 사람들이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삭개오, 즉 스가랴(깨끗한, 무죄한 -> 의로운 사람)도 관심이 갔다. 

자신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놀림받는 것 같다. 

'결백이는 죄인이야.’

이름과 반대되는 서술어가 붙는다. 

자신의 이름과 반대되는 삶이다. 

그런데 이런 죄인들과도 식사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신단다. 

한번 꼭 보고 싶었다. 

 

어렵게 예수님을 보았다. 

키가 작은 것이 언제나 콤플렉스였다.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언제나 소외되었다. 

세리장이라는 직업 때문이기도 했지만, 제대로 구경을 못해서기도 하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매번 물어봐야 하는데, 물어볼 사람도 없고… 

직접 봐야 하는데, 키가 작으니 보이지도 않고…

애처롭다. 

 

방법이 없지는 않다. 

나무에 올라가 앉는 것이다. 

나이들어 체면이 구기지만, 그래도 제대로 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예수님의 얼굴만이라도 제대로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죄인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구원하신단 말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될 터다. 

 

예수님이 스가랴를 보셨다. 

나무에 올라가 있는 세리장에게 다가가신다. 

그리고 내려오라고, 너의 집으로 가자 하신다. 

무슨 일인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얼떨떨하다. 

집으로 모시고 가서 식사를 준비하는데, 또 수군댄다. 

‘죄인인 결백이의 집에 예수님이 있대.'

‘결백이는 죄인인데 어떻게 예수님이 거기에서 식사를 하실 생각을 하시지?’

진절머리 나는 저들의 뒷담화.

하지만, 수군대는 소리는 점점 뒤로 흩어지고, 예수님의 얼굴만 부각된다. 

그리고 그분이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해 기뻐하기 시작한다. 

 

감사는 곧바로 반응으로 이어진다. 

소유의 절반, 강제로 뺏은 것은 4배로 갚겠다는 결심을 피력한다. 

양심의 가책이 있었다. 

오랫동안 해결하고 싶었다. 

정말 결백이가 되고 싶었다. 

죄인이라고 몰아세우는 사람들 앞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죄인을 구하러 오신 분, 이 분 앞에서 결심을 말하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예수님은 구원에 대해 말씀하신다. 

결백이의 집에 구원이 임했다. 

원래 스가랴는 유대 사람이었지만,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손가락질 했었다. 

그러나 이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스가랴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해 주셨다. 

진정 예수님은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라 오신 분이시다. 

 

자격없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배척받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찾아오신 예수님. 

그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셨다. 

자신의 자격으로 으시대던 사람들은 부끄럽다. 

지금도 예수님은 스스로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더 극적으로 다가가신다. 

스스로 자격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우회적으로 그들의 교만을 깨닫게 하신다. 

그걸 깨닫는 자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나의 교만을 직시하고 주님의 깊은 뜻에 감탄한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스스로 부족하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의 약점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을 새롭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의 자녀 삼으시고, 당신의 제자로 만들어 주소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9월 19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35 예수께서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일어난 일이다. 어떤 눈먼 사람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다가,

36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어 보았다.

37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고, 그에게 일러주었다.

38 그러자 그는 소리를 질렀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39 앞에 서서 가던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크게 외쳤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40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오니,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주님,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4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43 그러자 그는 곧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를 따라갔다.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보고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ESV]

And those who were in front rebuked him, telling him to be silent. But he cried out all the more,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39절)

 

[주석]

39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아이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듯이(18:15) 그가 큰 소리로 간청하는 것을 방해로 생각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어떤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인가? 

여리고의 눈먼 사람은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늘어났다.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징조다. 

그날 돈이 꽤나 쏠쏠찮게 들어올 조짐이다. 

평소에 하던 일이다. 

습관이다. 

매번 구걸하던 자리, 아마도 평균적으로 제일 돈이 잘 들어오는 자리였을 것이다. 

무리들이 지나가면서 수군대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궁금함이 치솟는다. 

돈이나 많이 벌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 궁금함은 못 참는다.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고 말한다. 

예수가 누군지는 대충 알았지만, 실제 그분이 여리고를 지나갈 줄은 잘 몰랐다. 

곧바로 소리를 지른다. 

돈도 돈이지만, 앞을 보는 것이 우선이다. 

태어나면서 소경이었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살면서 눈이 멀었을 수도 있다. 

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 열망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니 예수라는 소리에 단박에 외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렁차게,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앞에 가던 사람들이 놀라서 뒤를 쳐다본다. 

소경에게 소리친다. 

쫌 조용히 하세요. 

외치는 소리가 서로 부딪힌다.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큰가? 

아마도 소경의 목소리가 더 컸을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그들이 다시는 돈을 주지 않더라도, 일단 간절한 마음으로 외친다. 

몇몇 사람들이 오더니만, 손을 잡는다. 

그리고는 자신을 이끌어 예수님에게로 데려간다.

손을 잡을 때는 깜짝 놀랐다. 

아마도 제자들이 그에게 다가갔을 것이다. 

제자들에 이끌리어 예수님께로 간다. 

그 걸음 걸음이 마음의 염원이 담긴 슬로우 비디오다. 

예수님이 묻는다. 

무엇을 바라시나요? 

답이 뻔한 질문… 

그러나 예수님은 물으신다. 

진정 무엇을 바라는지 직접 입으로 꺼내기를 원하신다. 

보기를 원합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작은 소리였을지, 큰 소리였을지… 아마도 제법 큰 소리로 말했을 것이다. 

그동안 외친 외침도 그렇고, 그의 열망도 그렇고, 꾸짖는 사람들을 뚫고 끝까지 외쳤던 그의 마음도 그렇고.

눈을 뜨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눈을 떴다. 

그가 다시 본 것은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다. 

하나님을 보았다. 

구원을 보았다. 

문자 그대로 어둠에서 벗어났다. 

육체의 어둠은 인생의 어둠으로 이어졌었고, 오랫동안 무시당하여 구걸하던 삶이었다. 

이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인생. 

자유의 인생이다. 

출애굽의 이스라엘 같다. 

그의 믿음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요, 주님으로 인정한 것에 있다. 

그리고 소리친 것이다. 

그리고 꾸짖는 사람들의 소리를 뚫어 낸 것이다. 

이 믿음이 그를 살렸다. 

그는 이제 예수님을 바라보며 다시 인생을 살아간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간다. 

그분이 곧 죽게될 예루살렘으로 따라 올라간다. 

그분과의 만남과 교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도 따라간다. 

 

그분께 외칠 수 있는가? 

우리의 상황을 고쳐달라고.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구출해달라고. 

숱한 자살의 위기로부터 구원해달라고.

위기의 청소년, 위기의 중년, 위기의 가정, 위기의 학교, 위기의 국가… 

위태롭다. 

사회도 위태롭고, 개인도 위태롭다. 

 

[오늘의 기도]

삼위 하나님, 

우리의 가정과 사회가 위태롭습니다. 

자살률은 전 세계 1위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끊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만큼 생의 의지를 발휘하기가 어렵습니다. 

스트레스는 많고, 어찌할 바를 모를 딜레마도 많습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집니다. 

자신이 당한 고통이 두려워 다른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못살게 합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삼위 하나님,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주눅 들거나 옴짝달싹 못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소서. 

대범함을 주소서.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주님으로 인해 담대한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의 외침을 들어 주소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침을 들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9월 15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18 어떤 지도자가 예수께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1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20 너는 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하지 않았느냐?”

21 그가 말하였다. “나는 이런 모든 것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게는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3 이 말씀을 듣고서, 그는 몹시 근심하였다. 그가 큰 부자이기 때문이었다.

24 예수께서는 그가 [근심에 사로잡힌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재물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

26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2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28 베드로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에게 속한 것들을 버리고서, 선생님을 따라 왔습니다.”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식을 버린 사람은,

30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로 받을 것이고, 또한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주석]

18절.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태도에 대한 동일한 주제가 계속된다.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24절) 혹은 구원받는 것(26절)과 동일하다(IVP 성경주석). 

 

22절. 예수님은 마지막 두 동사가 아니라 처음 두 동사(“팔라”, “나누어 주라”)에 약속을 덧붙이신다(“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토라를 해석한 것이거나 토라를 넘어선 것인 이 요구로 인해 관리는 근심에 빠진다. 그가 “큰 부자”였기 때문이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몇몇 바리새인들 그리고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관심이 있었다.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당대의 이슈를 몰고다니는 인물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많은 기적을 베풀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한 이 인물에 대해 이 지도자는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는 못했다. 

선생님, 교사, 본받을 자, 위인일 수는 있지만 주인은 아니다. 

 

이 지도자의 관심은 영생을 얻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잘 지켜왔다. 

부모님 말씀, 랍비들의 말씀, 종교 지도자들의 말씀을 잘 지켜왔다. 

선생님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공부도 잘 했고, 성실했다. 

지식 뿐만 아니라 지식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었다. 

게다가 집안에 돈도 많았다. 

부족할 것이 없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왠지 모르는 불안함이 있었다. 

과연 이렇게 지내는 것이 영생을 얻는 방법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 불안함의 원인을 찾고 싶었다. 

예수님의 질문이 시작된다. 

예수님의 분석이 끝났다. 

핵심은 자신이 가진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이 젊은 지도자이자 부자는 이 제안을 따를 수가 없었다. 

많은 돈을 가진 사람에게 돈이 없는 삶을 상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돈이 없이 자신이 가진 권한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없었다. 

 

때로 예수님은 급진적인 제자도를 요구하신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을 따르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 역사 속에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보장된 성공을 포기하고 선교에 뛰어 들었던 영국의 젊은이들이 그랬다. 

의대를 졸업하고 미지의 땅으로 선교하러 갔던 젊은이들이 그랬다. 

그래서 이곳 한국에도 하나님이 알려지고 예수님의 복음이 심겨진 것이다. 

 

캠퍼스 선교사로 헌신 할 때는 그런 급진적인 제자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새 20년 넘게 있으면서, 이제는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다. 

젊은 날 제자로 살겠다고 결심한 것은 부르심에 합당한 결정이었다. 

좋은 기독인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을 형제 자매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식을 버린 사람은,

30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로 받을 것이고, 또한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로 받을 것이란 말의 의미일 것이다. 

착하고 헌신적인 주님의 백성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 대체로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것은 참 좋은 일이다.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또 다른 헌신으로 부를 수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 들어 또 다른 길로 부르신다면, 그건 그대로 의미있는 것이니 주님의 부르심대로 살아가야 할 일이다. 

도리어 젊을 때보다 더 힘든 포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진 것이 많아졌기에 포기하기도 어렵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분을 좇아 사는 삶. 

나이가 들었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분의 부르심을 더 깊이 들어야 하는 이유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을 따르는 삶을 계속 추구하게 하소서. 

나이가 들었다고, 거만해지거나 나태해지지 않게 하소서. 

겸손히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게 하소서. 

진정한 즐거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소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가장 즐겁습니다.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삶이 가장 보람됩니다. 

주님으로 인해 변화되고 회복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그 소망으로 인해 오늘도 살아가게 하소서. 

작은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더 큰 즐거움을 대망하게 하소서. 

주님을 위해 오늘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9월 13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2 “어느 고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그 고을에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 재판관에게 줄곧 찾아가서,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그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얼마 뒤에 이렇게 혼자 말하였다.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5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7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주석]

7-8절. 진짜 중요한 물음은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냐가 아니라 인자가 오셨을 때 끈질기게 기도하고 소망을 잃지 않은 충성된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비유는 본질적으로 인자가 오시기 전에 기다리는 어려운 시기 동안 낙심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라는 격려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서 이제는 기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기도는 마음의 열망을 표현하다. 

열망은 언제나 실망을 안게 된다. 

내 열망 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열망 대로 모든 것이 풀리면 그는 신이지 인간이 아니다. 

제한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 제한된 세계 속에 살아가는 존재는 언제나 실망을 안고 산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는 자극적이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재판관의 등장 자체가 신경을 긁는다. 

그런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마지막 날에 이런 사람은 심판을 받는 것으로 비유가 끝나야 속이 시원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초점은 한 과부에게 있다. 

과부는 자신의 열망을 재판관에게 계속 찾아가서 말한다.

자신의 권리를 찾아달라는 요청이다. 

어떤 권리인지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 내용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은 늘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인스턴트 시대, 숏츠 & 릴스 시대, 휘발성 시대. 

조금만 자신이 원치 않으면 버리는 시대다. 

긴 글을 읽기 싫어한다. 

긴 호흡의 영화도 보기 싫어한다. 

드라마도 빠른 속도로 돌려본다. 

진득함, 신실함, 인내는 우리가 잃어버린 덕목들이다. 

기도도 화살기도가 유행이다. 

치고 빠지기. 

 

이런 시대에 인내심을 갖고, 낙심하지 않고 계속 늘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믿음은 기도에서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결국 도와주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 

예수님은 이 믿음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많은 것을 이루어 주셨다. 

자녀들을 주신 것도 7년간의 오랜 기도의 응답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먹고 싶은 것을 걱정없이 먹게 된 것도 주님의 기도응답이다. 

복음밥 캠프도 오랜 기도의 응답이다. 

한 프로그램이 정착이 되고 제도가 되고 문화가 되는 것은 한 인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도의 응답이다. 

난 요새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믿음의 유산을 남기고 싶다. 

책을 쓰고 싶다. 

좋은 문장을 많이 남기고 싶다. 

청소년 사역이 본 궤도에 올라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게 하고 싶다. 

교회 청년부가 한 단계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욱 사랑이 많은 존재가 되고 싶다. 

계속 기도해야 할 기도 제목이 많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낙심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기도의 삶을 더욱 추구하게 하소서. 

멍하니 시간 보내는 것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주님의 뜻이 매일 매일 이뤄지도록 기도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인격의 성장, 가정의 화목, 교회의 성숙, 직장의 번성, 국가 공동체의 진보를 기도합니다. 

각 영역에서 예수님이 주인 되시길 소망합니다. 

주님이 결정해 주십시오. 

주님이 인도해 주십시오. 

 

오늘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모든 하루 일정을 맡깁니다. 

위기의 순간들을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겨내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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