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05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20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포위 당하는 것을 보거든, 그 도성의 파멸이 가까이 온 줄 알아라.

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고, 그 도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고, 산골에 있는 사람들은 그 성 안으로 들어가지 말아라.

22 그 때가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질 징벌의 날들이기 때문이다.

23 그 날에는, 아이 밴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화가 있다. 땅에는 큰 재난이 닥치겠고, 이 백성에게는 무서운 진노가 내릴 것이다.

24 그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뭇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요, 예루살렘은 이방 사람들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 사람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서 징조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서 괴로워할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 때에 사람들은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을 띠고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28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일어서서 너희의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석]

28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런 일을 예상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머리를 들어야” 한다. “너희 구원(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25절의 “그리고”는 참으로 길고 긴 “그리고”이다. 

예루살렘이 다시 침탈을 당한다. 

로마 장군에 의해 함락당한다. 

성전이 무너진다. 

그리고 25절의 그리고가 등장한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오랫동안 기다린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 될때,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벌써 2000년하고도 24년이 지났다. 

인생 전체를 예수님을 기다리며 지냈던 지난 역사 속 신앙인들이 떠오른다. 

그들처럼 나도 평생을 기다림 속에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 그분이 오시는 것을 본다면 그건 큰 행운이다. 

내가 죽어서 오신다면, 그 때는 부활체로 그분을 맞이할 것이다. 

오랜 기다림의 끝에 그분이 오시는 그날을 고대한다. 

 

기다림, 

그 자체도 소중하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소중한 것은 기다림을 통해 얻기 마련이다. 

기다리는 과정이 더 흥분된다. 

기다림을 잘 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결과는 순간이나 기다림은 연속이다. 

찰라의 기쁨이 인생 샷이라면, 오랜 시간의 기다림은 인생 다큐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재림을 믿는 사람은, 기다림의 미학을 알게 된다. 

때를 기다린다. 

너무 조급해 하지도 그렇다고 무심하지도 않다. 

관심은 있으나 일상을 지키고 버틴다. 

관심 있는 것만 하지 않는다. 

무심한 듯 일상을 살아내지만, 그 속에는 기다림의 열망이 살아 있다. 

일상 속 치고 들어오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린다. 

그리고 결국 일상 속 침투하시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 

 

기다림, 그 과정이 소중하다고해서 그 날을 밀어내는 것은 왜곡이다. 

그 날은 꼭 와야만하며, 오기를 갈망한다. 

그 갈망이 일상 속에서 기다림의 연료를 공급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당신이 오시길 일상 속에서도 기다립니다. 

오늘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당신을 만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0월 04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7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그러면 이런 일들이 언제 있겠습니까? 또 이런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다’ 하거나, ‘때가 가까이 왔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가지 말아라.

9 전쟁과 난리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종말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10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이 일어나 민족을 치고, 나라가 일어나 나라를 칠 것이다.

11 큰 지진이 나고, 곳곳에 기근과 역병이 생기고, 하늘로부터 무서운 일과 큰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고,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겨줄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왕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13 그러나 이것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므로 너희는 변호할 말을 미리부터 생각하지 않도록 명심하여라.

15 나는 너희의 모든 적대자들이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겠다.

16 너희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줄 것이요, 너희 가운데서 더러는 죽일 것이다.

17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목숨을 얻어라.”

 

[주석]

16-17절. 박해는 심지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도 올 것이다. 그리고 박해는 순교를 가져오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만들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제자들의 질문은 나의 질문이다. 

마지막 때, 종말의 때를 묻는 제자들의 심정은 나에게도 동일하다. 

8-11절은 정말 이 세대의 끝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12-19절은 당시의 제자들이 맞닥뜨리게 될 일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재림의 때가 다가 올 수도록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단과 사이비가 판을 친다. 

한국에도 벌써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재림 예수라든지, 보혜사 성령님이라든지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사이비 때문에 다른 교회들이 욕을 먹고, 예수님의 이름이 더럽혀진다. 

교리의 어떤 측면이 조금 다른 것은 이단이라고 한다. 

이것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이비다. 

사이비는 가정과 개인을 파괴한다. 

보편적 윤리를 업신 여긴다. 

 

전쟁과 난리의 소문이 곳곳에서 들린다. 

나라와 나라가 싸운다. 

큰 지진이 일어나고 기근과 가뭄,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이런 일들이 지금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다. 

동아시아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 

가뭄과 기근 뿐만 아니라 홍수와 더위로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코로나19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바이러스가 상존한다. 

언제 발현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갈지 아무도 모른다. 

 

예수님이 지금 당장 오셔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다. 

아니 이제 오셔도 참 좋겠다. 

그분이 오셔서 그분의 통치를 보여주시길 바랄 뿐이다. 

전쟁이 그치고, 평화의 세상이 오길… 

빈부의 격차, 사람 사이의 차별이 사라지고, 사랑과 환대가 늘상 있으며, 공의와 정의가 살아 숨쉬는 세상이 오길 고대한다. 

더 이상 눈물도 없고, 하나님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 

세상의 모든 신비가 밝혀지는 세상. 

그분과의 인격적 교제가 일상이 되는 세상. 

영이신 하나님을 영육이 함께 만나 교제하는 세상. 

그날을 고대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다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복하다가 유대인과 로마인들에게 미움을 산다. 

결국 대부분의 제자들이 순교했다. 

예수님의 이름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소중히 여기는 경험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 

젊은이들에게 소중한 것, 소중한 경험이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소중한 자신의 생명 조차도 쉽게 버리는 세상이다. 

자살률이 OECD에서 1등이란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젊은이가 점점 늘고 있단다. 

특히 20-30대 여성들에게 더욱 크게 늘고 있단다. 

문명이 발달하고, 풍요로운 삶이 바로 옆에 있지만(과거에 비해)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신비를 이성으로 덮으려 한다. 

성도, 결혼도, 우주도, 관계도, 사랑도… 신비에 가깝다. 

신비를 돈, 논리, 심리, 생리, 경제로 환원하고 설명한다. 

설명이 있으면 신비가 사라진다고 믿는다. 

설명이라는 문장이 만들어지면 과연 신비가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 

어떤 것은 설명하면 할수록 신비가 깊어진다. 

그 신비를 잃어버리니 소중한 것이 점점 줄어든다. 

하나님이라는 최고의 신비를 잃어버리니 신비의 근원에서 뻗어 나오는 보물들을 인정하지 못한다. 

 

예수의 이름은 그 자체로 신비하다. 

그 이름에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다. 

 

오늘도 그 이름을 의지하여 수많은 관계를 맺는다. 

 

[오늘의 기도]

주님, 

새로운 관계를 맺습니다. 

9명의 신입간사님들을 만납니다. 

그들과 두 달간 지내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소중하듯이, 그들의 이름이 소중하게 자리잡게 하소서.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깨닫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첫 출발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9월 26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 예수께서 어느 날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기쁜 소식을 전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장로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2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당신에게 주었습니까? 어디 우리에게 말해 보십시오.”

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물어 보겠으니,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4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난 것이냐? 사람에게서 난 것이냐?”

5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면서 말하였다. “‘하늘에서 났다’고 말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요,

6 ‘사람에게서 났다’고 말하면, 온 백성이 요한을 예언자로 믿고 있으니, 그들이 우리를 돌로 칠 것이다.”

7 그래서 그들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났는지를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석]

4절. ‘하늘’ 이란 유대인이 하나님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이다(IVP 성경배경주석).

7절. 이 대답은 질문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보았으면서도 그 권위를 인정하기를 꺼렸으며 그 상황에서 옳은 행동을 결정할 수 없었음을 보여 준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어리석기도 하고 비겁하기까지 하다. 

대제사장, 율법학자, 장로들 이야기다.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예수님을 무너뜨리기 위해 애쓴다. 

 

예수님은 여리고를 지나 이제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신다. 

기쁜 소식을 전하신다. 

레파토리는 정해져 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으며, 하나님 나라의 원리대로 살아갈 것을 말씀하셨을 것이다. 

구약의 메시야가 바로 자신이며, 안식일의 주인도 자신임을 밝히셨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을 주문하셨다. 

이것은 기쁜 소식이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사실이 기쁨이다. 

남성과 여성이 더 이상 상하질서 속에 있지 않다. 

종과 주인도 더 이상 상하질서 속에 있지 않다. 

모두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세상의 상하질서는 타락의 산물이다. 

사람 모두는 하나님의 동등한 형상이다. 

당시의 모든 종, 여성, 죄인들에게 이런 메시지가 복음이 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기쁜 소식들의 집합체다. 

 

그러니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은 화가 난다. 

위계질서의 상층부는 부글부글 끓는다.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 

도대체 누구의 권위로 이런 발언을 하는가? 

사회 파괴 세력이며, 무정부주의자이고, 민중선동가일 뿐이다. 

그들은 질문을 던진다. 

혹여나 로마의 뒷배가 있을 지도 모른다. 

권력관계로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뒷배를 궁금해한다. 

돈이 있든지 권력이 있든지.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도움이나 배경이 있을 거라 예측한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당황한다. 

예수님은 탁월한 역질문 전문가이다. 

자신이 답하기 전에 의중을 묻는 촌철살인의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는 짜증이 나겠지만. 

요한의 권위는 누구에게로부터인가? 

하늘이라고 하면, 왜 그를 인정하지 않았는지 말문이 막힌다. 

사람이라고 하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공격이 무섭다. 

지도자들은 모른다고 답한다. 

비겁하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요한의 권위가 하늘이라고 왜 말할 수 없는가! 

 

예수님은 정직하다. 

당신들이 모른다고 한다면, 난 말할 수 없다고 말하겠다. 

난 모르지 않지만, 너희들의 태도를 보니 말하지 않겠다. 

역시 대단한 포부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부어지지 않는 한, 이런 담대함이 나올 수 있었을까? 

유대교 중심의 사회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전쟁 수행 능력이라고 갖추었다면 모를까, 촌구석 목수장이가 이렇게 대담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믿을 수 없다. 

 

난 비겁하다. 

부딪히기 싫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인식이 강하다. 

생각보다 겁이 많다. 

생각보다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

부족하다. 

나의 부족을 인정한다. 

그래서 모른다고 말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분명히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적 확신에 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정직하자. 

 

 

[오늘의 기도]

삼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비겁한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분노하지만 회피하는 저를 봅니다.

부족한 저를 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정직하게 말하는 법, 

정직하게 대처하는 법을 유지하게 하소서.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원칙이 바뀌지 않게 하소서. 

핵심을 유지하고 원칙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내적 확신이 더욱 강해지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9월 21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덧붙여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이 비유를 드신 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귀족 출신의 어떤 사람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려고, 먼 나라로 길을 떠날 때에,

13 자기 종 열 사람을 불러다가 열 므나를 주고서는 ‘내가 올 때까지 이것으로 장사를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14 그런데 그의 시민들은 그를 미워하므로, 그 나라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서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 귀족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맡긴 종들을 불러오게 하여, 각각 얼마나 벌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16 첫째 종이 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벌었습니다.’

17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착한 종아, 잘했다.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차지하여라.’

18 둘째 종이 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벌었습니다.’

19 주인이 이 종에게도 말하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차지하여라.’

20 또 다른 한 종이 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보십시오. 주인의 한 므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은 야무진 분이라서, 맡기지 않은 것을 찾아가시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시므로, 나는 주인님을 무서워하여 이렇게 하였습니다.’

22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하겠다. 너는, 내가 야무진 사람이라서, 맡기지 않은 것을 찾아가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 알고 있었지?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화를 은행에 예금하지 않았느냐? 그랬더라면, 내가 돌아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것을 찾았을 것이다.’

24 그리고 그는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서, 열 므나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25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주인님, 그는 열 므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였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가진 사람은 더 받게 될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가 가진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자기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은 나의 이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여라.’”

 

[주석]

20절. 돈을 썩기 쉬운 수건에 싸 놓는 것은 돈을 취급하는 방법 중 가장 무책임한 것이며, 이는 그곳이 어리석거나 불충분하거나 하니면 둘 다라는 것을 시사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인간의 정신 노동은 시간의 한계가 있다. 

집중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다. 

체력과 정신력 둘 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가능하다. 

관성에서 벗어나 정신노동의 강도를 높였더니, 육체가 감당을 못한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주여, 연약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열 므나 이야기에서 항상 놓쳤던 부분이 몇 가지가 눈에 띈다. 

1. 이 이야기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가 당장이라도 완성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교정하는 것이다. 

2. 삭개오 본문과 이어진다. 삭개오 집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으로 맥락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3. 여리고 삭개오 집에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과잉 기대하고 있다. 

4.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는 말씀에 그분의 왕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5. 10명의 종에게 한 므나씩 맡겼다. 

6. 10므나, 5므나 남긴 종과 장사를 아예 하지 않은 종, 이렇게 3명만 드러나는데, 사실은 나머지 7명의 종도 있었다. 

7. 장사를 하지 않은 종은 주인이 야무진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잘 못 알고 있는 지점이다. 

 

하나님 나라는 당장 완성되지 않는다. 

예루살렘에 가까워져 가는 것은 사실 왕권을 받으러 떠나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죽음, 부활, 승천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시작하는 과정의 첫 부분에 해당한다. 

이제 예수님은 왕권을 받으러 하나님께로 가신다. 

한 동안은 기다려야 한다. 

 

그 와중에도 예수님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작전이 계속된다.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 권력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계속 탄원서를 올린다. 

기도의 탄원서에는 예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는 민란의 원흉이다. 

그는 겨우 세워 둔 유대교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자다. 

메시아는 커녕, 거짓말 사기캐다. 

이런 내용들로 예수님의 권위를 깎아 내리고, 그분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속에서 10명의 종들이 장사를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10명의 종들이 그 귀족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장사는 장사꾼이나 시민들이나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어렵지만 가능한 일이다. 

10므나를 남긴 종, 5므나를 남긴 종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혜롭게 장사를 잘 했다. 

중간 중간에 시민들의 방해 공작과 폭력배들의 자릿세 요구가 성행한다. 

그냥 수건에 쌓아 보관한 종은 아마도 이런 주변의 압박이 무서웠을 것이다. 

게다가 주인이 정말 왕권을 가져 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아니, 오고 가는 길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시민들이 자객을 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장사를 잘 할 자신도 없었다. 

괜히 돈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공격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은행에도 맡기지 못하고, 이자를 위한 사채도 생각 못한다. 

그저 꽁꽁 싸매어 둔다. 

두려움 그리고 회피, 그를 휘감싼다. 

분별력을 잃었다. 

주인에 대한 신뢰도 없다. 

주인이 정말 왕이 될지도 확실하지 않다. 

 

주인이 언제 맡기지 않은 것을 찾았는가? 

주인이 언제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가? 

주인은 언제나 부르시고 맡기시고 심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부르시고 맡기시고 심으신다. 

그리고 찾으신다. 

과정에서 도우시고 열매 맺도록 이끄신다. 

그리고 거두신다. 

하나님에 대해 오해를 해도 단단히 했다. 

종은 주인을 잘 모를 뿐 아니라 오해했고 두려워했다.

하나님은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당연히 경외를 받으시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시다. 

은혜와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두려워서 주눅들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한 므나를 수건에 싼 종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인격적 교제를 제대로 나눈 적이 없는 사람이다. 

주인이 어떻게 그동안 장사를 해 왔는지, 거래를 해 왔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도왔는지 제대로 살피지 않았던 종이다. 

주인은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장사를 잘 하는 분이셨다. 

다른 종들은 그 방법을 배웠다. 

그러나 이 종은 배울 생각이 없었다. 

결국 장사를 시켰는데, 장사를 하지 않았다. 

 

열 명의 종 중에 3명만 등장하는데, 나머지 7명도 제각각 장사를 했을 것이다. 

많이 남기는 종, 적게 남기는 종, 아니 장사하다가 손해 본 종도 있었을 것이다. 

귀족은 돌아와서 열심히 장사한 모든 종들을 칭찬했을 것이다. 

심지어는 손해 본 종에 대해서도 고생했다고 칭찬했을 것이다. 

왜냐면 장사할 조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 

주인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심상치 않았다. 

주인의 종이라고 하면 위협을 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종은 장사를 잘 해 돈을 벌다가 시민들의 다양한 공격에 자본금까지 날려 버렸을 수도 있다. 

너무 멀리 나간 거지만, 예수님은 그 종도 칭찬했을 것이다. 

수고했다 할 것이다. 

왜냐고? 신약의 나머지가 고난받는 예수의 제자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인내를 말하기 때문이다. 

순교를 말하기 때문이다. 

당장에 열매가 없을 수가 있다. 

스데반 같은 분, 야고보와 같은 분은 예루살렘 교회 초기에 순교했다. 

예수님이 이런 분들을 보면서 장사를 못했다고 화를 내시겠는가? 

도리어 다른 차원에서 장사를 잘 한 것이라고 하실 것이다. 

그러니 단순히 남겼냐 남기지 않았냐의 산술 계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연 주인을 어떻게 알고 있었느냐이다. 

장사를 했느냐의 문제다. 

주인을 야무진 사람으로 알아 시킨 일을 하지 않는 불순종의 죄를 지었느냐의 문제다. 

 

나를 부르신 그분의 소명에 끝까지 충성되이 임하는 것. 

열매와 결과는 그분께 맡기고 최선을 다해, 지혜를 다해, 시키신 일, 맡기신 일을 하는 것. 

그분에 대해 오해하지 않고,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그날까지 사명에 신실하는 것. 

그분이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장사하는 것. 

오늘 당장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저 하루 최선을 다해 그분의 일을 감당하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일이다. 

 

정신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분의 도우심을 바라며, 최선을 다해 조율하고 생각하고 소통하고 실행하고 기도하는 것. 

 

그래 이제 장사하자.

 

[오늘의 기도]

주님, 

당신이 다시 오실 때까지 저에게 주신 소명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세요. 

열 므나 비유 말씀이 저를 격동시킵니다. 

충성스런 종이 되고 싶습니다. 

아들이면서 종이 되고 싶습니다.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얼마를 남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사람들을 돕고,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겠습니다. 

 

주님, 

어떻게 장사를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주님의 모범을 따르고 싶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기 원합니다. 

주님, 도우소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