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30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41 주님,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주님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내게 베풀어 주십시오.

42 그 때에 나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에게 응수하겠습니다.

43 내가 주님의 규례들을 간절히 바라니,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44 내가 주님의 율법을 늘 지키고, 영원토록 지키겠습니다.

45 내가 주님의 법도를 열심히 지키니, 이제부터 이 넓은 세상을 거침없이 다니게 해주십시오.

46 왕들 앞에서 거침없이 주님의 증거들을 말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47 주님의 계명들을 내가 사랑하기에 그것이 나의 기쁨이 됩니다.

48 주님의 계명들을 내가 사랑하기에, 두 손을 들어서 환영하고, 주님의 율례들을 깊이 묵상합니다.

 

[ESV]

I will also speak of your testimonies before kings and shall not be put to shame, for I find my delight in your commandments, which I love. I will lift up my hands toward your commandments, which I love, and I will meditate on your statutes(46-48절).

 

[주석]

41절. 다른 무엇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이는 여호와의 약속된 ‘인자하심’과 ‘구원’이다. 이 ‘인자하심’은 알고, 보살피고, 공급하고,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사랑이며, ’구원’은 필요한 모든 상황에서 건져내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시인은 율법을 기뻐한다. 

주님의 계명과 율법은 주님의 뜻의 반영이다. 

율법을 기뻐하는 것은 명령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주님의 뜻이 이뤄지는 통로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율법은 주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의 증거다. 

그분이 베푸신 은혜와 자비, 구원이 사회적으로 구현된 실체가 바로 율법이다. 

그분의 자비와 구원은 단순히 구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거룩히 살아가도록 안내한다. 

율법와 계명이 안내자가 된다. 

시인이 계명을 좋아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환영하고 묵상하는 이유다. 

구원받은 백성이 가야할 길이다. 

인자하심을 맛본 백성들이 따라야 할 길이다. 

그러니 시인은 규례를 간절히 바라고, 진리의 말씀을 입에 두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그곳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신약시대 하나님의 법은 산상수훈에 잘 담겨 있다. 

로마서의 12장 이후에도 분명히 등장한다. 

예수님과 성령님이라는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며, 따라야 할 명령이다. 

그 명령들을 과연 기뻐하는가? 

그 명령들을 과연 사랑하고 환영하고 깊이 묵상하는가? 

신약 백성들의 신앙 생활에도 이 시인의 마음이 묻어나야 한다. 

 

시인은 세상의 왕들 앞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언하려고 한다.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자랑하는 것이 수줍고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신들은 눈에 보이는 신상이 있고, 사람들이 원하는 축복을 대놓고 준다고 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물질의 축복이 아니라, 지극히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제시하시는 분이시다. 

시인의 자랑은 돈이 아니라, 율법이다. 

물질의 풍요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비전이다. 

경제가 아니라 국가 철학이다. 

왕들은 돈과 군사력으로 자웅을 겨룬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비전에 사로잡혀 그분의 뜻인 규례와 율법을 자랑한다. 

왕들은 비현실적인 시인의 집착을 비웃는다. 

그러나 시인은 계속 꿈을 꾸고 비전을 되씹는다. 

 

한낮에도 꿈을 꾼다. 

노동의 재료는 재즈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다. 

주변 상황과 환경을 뚫고 주님만 바라본다. 

강인한 의지, 자유로운 감정, 집중된 지성이 가져다 주는 선물은 상상 이상이다. 

주님께 순종하는 의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만 바라보는 생각이 시너지를 내는 사람에겐 두려움이 없다. 

온전한 신앙 인격으로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주목한다. 

응시한다. 

일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오늘 하루도 그런 날이 되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나라의 법을 알려주신 주님, 

당신의 비전과 꿈이 저의 것이 되게 해 주소서. 

주께서 바라보시는 것을 저도 함께 바라보게 하소서. 

한 낮에도 주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주님 바라보기를 기뻐하게 하소서. 

세상은 비현실적이라고 놀리더라도 제 영혼은 기뻐합니다. 

주님이 이루실 새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모두가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새로운 하늘과 땅을 봅니다. 

주님만이 홀로 영광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06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 자랑함이 나에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미 말이 나왔으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할까 합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 때에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이 사람을 압니다. 그가 몸을 입은 채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4 이 사람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5 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두고서는 내 약점밖에는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6 내가 자랑하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삼가겠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내게서 보거나 들은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나는 이것을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NIV

But he said 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Therefore I will boast all the more gladly about my weaknesses, so that Christ's power may rest on me(9절).

 

바울은 십사 년 전에 경험했던 환상과 계시에 대해서 말합니다(1-4절).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기를 바라며 자랑을 삼갑니다(5-6절). 바울 안에 있는 ‘가시’는 그를 약하게 만들었으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바울이 교만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7절). 이제 바울은 약함을 자랑하고 기뻐합니다. 그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9-10절).

 

거짓 사도들은 바울이 환상과 계시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비방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염려해서 환상과 계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삼갔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점인 ‘가시’가 바울의 자랑이었습니다. ‘가시’는 바울이 약해지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족합니다. 우리는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해집니다.

 

[오늘의 묵상]

구구절절 설명하는 바울이 못마땅하다. 

통크게 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비판이 있어도 참고 견디고 그 다음을 준비하면 될 것을, 뭐 이렇게 구구절절 자신의 상황과 마음을 나누려고 하는지, 오늘은 들어주기 싫은 마음이 든다. 

아마도 며칠간 계속되는 바울의 속마음 이야기에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편지를 쭉 읽었으면 들지 않을 마음인데, 매일 끊어서 깊이 묵상하다보니 나오는 반응인 것 같다. 

이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본문을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여기서 등장하는 “십사 년 전의 사람”은 바울 자신을 가리킨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바울이 처음 예수님을 믿고, 회개 한 뒤에, 깊은 영적 체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계시를 받았다. 

모든 것을 다 알려줄 수는 없겠지만, 그 예언은 바울의 삶과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받았다. 

혹을 말로 드러내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보았다. 

무엇보다 바울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 하나님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보았던 계시를 닮았다. 

다니엘이나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들이다. 

큰 신상의 환상이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환상…

이런 환상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세계다. 

바울은 어떤 면에서 이런 예언자들의 반열에 올랐다. 

요한도 계시록을 쓸 때, 이런 환상을 경험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이런 환상 전체를 말과 글로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유는, 자기 자랑이 될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남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할 것이 걱정되서다. 

바울은 한 명의 그리스도인지, 그 자신이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 

고린도교회에서 보이는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의 파당짓기에 이름이 올라갈 정도니, 자칫하면 예수님과 같은 위치에 설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을 것이다. 

자기 자랑이 과하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도달할 수 없는 신적존재지만, 대단한 영웅적인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기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준다. 

사람들을 희망을 주는 그 사람을 더 바라보게 된다. 

예수님보다 사람이 높아질 때, 자칫 우상이 된다. 

성도들에게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자기 자랑을 멈춰야 한다. 

 

바울은 도리어 자신의 약점을 노출한다. 

사탄의 하수인인 몸의 가시를 정직하게 말한다. 

그 몸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간곡하게 기도한 적이 있다. 

여기서 세 번은 단순히 식사기도 하듯 일상적인 기도의 일종이 아니다. 

시간을 내서 금식하며 특별 작정 기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그 때마다 “네 은혜가 족하다”는 답변을 주셨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상상해 보건데, 첫 번째 기도에서도 그런 응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 번째, 세 번째 작정기도를 이어갔다. 

아마도 그 사탄의 하수인인 몸의 가시가 어지간히 자신을 괴롭혔는지 모른다. 

너무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미루로 짐작컨대, 간질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위장병도 아프지 않은 병은 아니지만, 내가 오랫동안 아파왔던 경험으로 볼 때, 못참을 만큼 힘든 병은 아니다. 

게다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하니, 아마도 사역 일정에 큰 지장을 준 것 같고, 더 나아가 성도들에게도 염려와 걱정을 안겨주는 질병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발작증세를 보이는 간질 같은 것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핵심은 매우 심각한 몸의 질병이라는 점이다. 

세 번이나 절실하게 요청했던 기도의 제목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도리어 이런 질병이 바울을 겸손하게 했다. 

영적 체험을 했음에도 그는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참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과 성도들을 위해 참고 함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절제의 힘이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경험과 지식을 더 자랑하기보다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겠다고 나선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겸손한 사람들을 통해 이뤄진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겸손을 몸에 익히면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별로 잘 나지 않았는데도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가 없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거만하게 구는 사람들에게는 성령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신다. 

그 사람 중 한 명이 전광훈이다. 

그의 말은 거만함으로 가득하다. 

자신이 무슨 신이줄 안다. 

걱정이다. 

 

나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고 싶다. 

부족함과 약점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바울에게 배울 것이 많다. 

 

 

[오늘의 기도]

사람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 

제 속을 잘 들여다 보게 하소서. 

제 마음의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올라오는지 잘 살피게 하소서. 

주님이 주시는 생각들로 채우게 하소서. 

기도의 시간이 깊어지길 원합니다. 

조용한 가운데 주님이 제 마음 속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거만하게 자랑하는 사람이 되길 원치 않습니다. 

저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도리어 저의 약점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부족함과 약점을 통해서도 일하시길 원하신다면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소서. 

정서적, 정신적, 영적, 육체적, 관계적 약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약점을 숨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고 더욱 겸손하게 나아가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가 그런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05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22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24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25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26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27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28 그 밖의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29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넘어지면, 나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30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31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주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아십니다.

32 다마스쿠스에서는 아레다 왕의 총리가 나를 잡으려고 다마스쿠스 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33 교우들이 나를 광주리에 담아 성벽의 창문으로 내려 주어서, 나는 그 손에서 벗어났습니다.

 

주석

29절 바울이 자신을 ‘약한 자들’과 동일시한 것은, 그러한 것을 비천한 신분의 상징으로 본 사회적으로 강력한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못마땅한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바울이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 것은 그의 대적들의 입장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IVP 성경배경주석).

 

바울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약점을 자랑합니다. 바울 또한 거짓 교사들과 같이 히브리 사람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22절). 그리고 그들보다 더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약해질 때, 함께 약해지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이었습니다(23-30절). 주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은 바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아십니다(31절).

 

바울은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인가?’라는 물음 앞에 자신의 약점들을 늘어놓습니다. 수고와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바울은 모두를 대신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일꾼임이 틀림없습니다. 바울의 수고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언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오늘의 묵상]

이런 이야기까지 자신의 입으로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바울도 스스로 자신의 모습이 평범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이라고 쓰고 있다. 

사실 이런 내용들은 스스로 말할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잘 알려줘야 한다. 

바울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시간들을 견디고 버티고 여기까지 왔는지 알려줘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은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들을 버티는 사람들이다. 

감옥살이, 돌에 맞음, 채찍에 맞음, 파선당함, 표류…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사단이 바울을 어떡해서든 막아서려고 한다. 

그의 선교가 미치는 영향이 너무 막대해서 그를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때마다 살아난다. 

주님께서 그를 보호하신다. 

선교 여행하는 동안 온갖 종류의 위협을 당했다. 

 

26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동족의 위험이다. 

같은 민족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당한다. 

좌절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이해받고 사랑받고 적극적으로 후원받으면서 해도 할까말까하는 일들이다. 

이 일을 이렇게 감당하는 것만으로 대단하다. 

죽을 위기를 몇 번을 넘겼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바울에게만 주어지는 삶은 아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삶이 그러했다. 

선교사님들의 삶은 항상 위험 속에 놓여 있다. 

적대적인 국가에서의 선교는 더욱 그렇다. 

이슬람 국가에서 선교사로 사는 것, 중국에서 복음전도자로 사는 것… 항상 위험을 안고 산다. 

어느 나라에서는 소리없는 찬송을 합창하기도 한단다. 

모임 시간 두 시간 전부터 2명씩 건물에 입장해야 한단다. 

감시가 심하고 걸리면 추방이 일상이다. 

입국심사때부터 공안이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일이기에 그 일을 감당한다. 

각자마다 자신의 부르심 속에서 고난을 당하기 마련이라지만, 바울의 삶을 생각할 때, 내가 당하는 고난은 고난 축에 속하지 않는다. 

바울은 아주 실제적인 고난, 물리적인 고난을 당하고 있다. 

1세기에 이렇게 자주 여행을 다닌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나야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난을 받지만, 바울은 육체적으로도 받는다. 

그렇다고 바울이 정신적으로 고난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교회를 생각하며 밤낮 기도해야 한다. 

교회에 대한 염려가 크다. 

 

한국교회에 대한 염려가 크게 다가온다. 

전광훈이라는 자가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더럽히고 있다. 

언제나 정치목사가 있어왔지만, 이렇게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조찬기도회 나가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지만, 전광훈은 하나님도 우숩게 여긴는 작자다. 

총회때 권총을 들고 설쳤었다. 

빤스내리라는 말에 순종해야 자기 성도란다. 

정치개입은 기본이고, 공당의 공천권이 자신에게 있는 모양으로 말한다. 

걱정이다. 염려가 크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목사라고 할 수 있는가! 

 

바울의 이런 노력에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과연 얼마나 바울을 인정했을지는 미지수다. 

어떤 사람들은 설득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바울을 비난했을 것이다. 

‘이렇게 고난을 많이 받은 사람은 요구하는 것도 많다고 그러는데..’ 등등

‘이런 고난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면 나는 믿지 않겠다’ 등등

주장이 강하면 비판도 강하게 돌아오는 편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끝까지 진실을 말한다. 

고난 당한 것을 숨길 필요가 없다.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심이 드러난다면, 굳이 숨길 일이 아니다. 

약점 속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더욱 약점을 드러낼 일이다. 

 

정직하게 나의 약점을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말자. 

오늘의 다짐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의 약점과 부족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의지적으로 여전히 약점을 안고 삽니다. 

육체의 통증이 의지를 약화시킵니다. 

피곤함이 생활 리듬을 깨뜨리고, 깨진 리듬이 피곤을 더합니다. 

악순환이 돌아갑니다. 

 

주님, 

더욱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싶고, 

피곤함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살고 싶습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삶을 향해 도전하고 싶습니다. 

몸의 피곤을 감하시고, 의욕과 의지를 더하소서. 

일상을 잘 관리할 수 있게 하소서. 

조금만 관리가 느슨해져도 이제는 몸이 아파지는 나이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제 주변의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벗꽃이 다지기 전에 꽃향기를 맡으러 나가야 하듯이, 

안따까운 젊음과 생명이 다지기 전에 사랑의 향을 더욱 진하게 더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04일 화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6 거듭 말하지만, 아무도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려거든, 어리석은 사람으로 받아 주어서, 나도 좀 자랑하게 놓아 두십시오.

17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주님의 지시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라, 어리석음에 빠져서 자랑하기를 이렇게 장담하는 사람처럼, 어리석게 하는 말입니다.

18 많은 사람이 육신의 일을 가지고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겠습니다.

19 여러분은 어지간히도 슬기로운 사람들이라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잘도 참아 줍니다.

20 누가 여러분을 종으로 부려도, 누가 여러분을 잡아먹어도, 누가 여러분을 골려도, 누가 여러분을 얕보아도, 누가 여러분의 뺨을 때려도, 여러분은 가만히 있습니다.

21 부끄럽지만 터놓고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해서, 그렇게는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 감히 자랑을 하려고 하면, 나도 감히 자랑해 보겠습니다. 내가 어리석은 말을 해 보겠다는 말입니다.

 

주석

풍자는 흔한 수사학 기법이었다. 바울은 거짓 사도들의 자랑을 조롱하기 위해 계속해서 풍자를 사용하면서 그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고백한다(IVP 성경배경주석).

 

바울은 자신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받아 주어서 자랑하게 두라고 말합니다(16-17절). 육신의 일을 가지고 자랑하는 거짓 사도들은 고린도 교인들을 종으로 부리고, 얕보았습니다(18-20절). 하지만 자신은 너무나 약하고 어리석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말로 이 상황을 풍자합니다(21절).

 

바울은 자신이 약하고 어리석다는 비난에 동의합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추었고, 존중하며 사랑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바울의 자랑거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또한 얼마든지 같은 비난 앞에 설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나와 공동체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한 번 묵상해 봅시다.

 

 

[오늘의 묵상]

오늘의 바울은 불안해보이기까지 하다.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사랑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지식과 커리어를 배설물처럼 버렸던 사람이다. 

그걸 어리석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세상과 똑같이 살면 지혜롭고, 세상과 다르게 살면 어리석다고 말한다면, 바울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사단의 거짓에 속아 자기를 잘 포장한 뒤에, 성도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 자랑에 열심이었다. 

자기를 잘 드러내야 사람들이 따른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본질을 보기보다 일단 그 사람의 말을 본다. 

말을 잘하는 사람, 자신이 이룬 업적을 자랑하는 사람,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 권위있게 하는 사람을 사람들이 따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이 가까웠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들린다. 

인공지능은 거짓말을 진짜처럼 한다는 점이 문제다. 

인공지능은 모른다고 말하기보다는 어떡해서든 부족한 정보 속에서도 조합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전문가가 아니면 그것을 분별하기가 너무 어렵다. 

픽션인지 넌픽션인지를 분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인공지능의 거짓말과 그럴듯함이 바로 고린도교회의 거짓교사들에게서 드러난다. 

 

바울은 그들과 똑같아질 수는 없었다. 

바울은 진정성으로 오랫동안 승부를 걸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자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떤 면에서 성육신을 하고 있다. 

고상하게 진심어린 사랑만으로는 사람들의 의심을 지워낼 수 없었다. 

사실에 기반한 자랑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그간의 사역 속에서 바울이 경험했던 내용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비록 이런 자랑은 바울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성도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다. 

 

20 누가 여러분을 종으로 부려도, 누가 여러분을 잡아먹어도, 누가 여러분을 골려도, 누가 여러분을 얕보아도, 누가 여러분의 뺨을 때려도, 여러분은 가만히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성도들의 마음과 생각과 돈과 물질을 빼앗아 가고 있었다. 

참지 말아야 할 일에 인내를 보이고 있다.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 

용납은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한히 받아주라는 말이 아니다. 

용납은 진실로 자신의 약점과 죄를 인정하는 사람에 대해서 받아주라는 말이다. 

따라서 거짓 교사들의 악의적이고 이기적인 거짓말을 계속 용납하는 것은 어찌보면 어리석음의 끝판왕이요, 다른 성도들을 거짓의 길로 인도하는 죄악이다.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바울은 거짓교사들의 거짓을 폭로하기에 앞서 자신이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경험을 통해 사도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비록 이런 자랑들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자연스레 전달되고 인정받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지만, 고린도교회에서는 아직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랑을 하게 된 것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 무엇보다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일을 감행하는 것이다. 

물론 최선은 오직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것이리라. 

 

나는 내 자랑을 많이 하지는 않는 편이다. 

하지만, 때로 불가피하게 나에 대해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나를 잘 드러내야 한다. 

너무 교만하게 비치지 않아야 하며, 그러면서도 상대방이 나를 신뢰하고 나의 설교나 강의에 대해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성도들에게 때로 이런 자랑이 필요하다. 

교만하지 않은 자기 자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에게 그 본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늘의 기도]

정직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시는 하나님, 

저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저를 목사로, 사역자로, 가르치는 자로 세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때로 제 자신을 잘 드러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교만하지 않게 성도들을 위해 제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저에게 지혜를 주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잘 표현되게 하소서. 

주님을 위해, 성도들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잘 드러내게 하소서.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도 저의 역할입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오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능력을 더욱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성도들이 저를 통해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더욱 정결하고 투명한 존재로 변화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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