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23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요한에게 알렸다. 요한은 자기 제자 가운데서 두 사람을 불러,

19 주님께로 보내어 “선생님이 오실 그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 보게 하였다.

20 그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우리를 선생님께로 보내어 ‘선생님이 오실 그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21 그 때에 예수께서는 질병과 고통과 악령으로 시달리는 사람을 많이 고쳐주시고, 또 눈먼 많은 사람을 볼 수 있게 해주셨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가서 요한에게 알려라.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23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24 요한의 심부름꾼들이 떠난 뒤에, 예수께서 요한에 대하여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비단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사스럽게 사는 사람은 왕궁에 있다.

26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려고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다.

27 이 사람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기를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닦을 것이다’ 하였다.

2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주석

가장 작은 자(28절) 요한은 그 시대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는 하나님 나라가 오면서 끝났다. 자기 생애에서 예수님의 왕적 통치를 경험하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자라도 심지어 요한이 일찍이 알았던 것보다 더 큰 경험을 하게 되었다(BST 누가복음).

 

[오늘의 묵상]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요한에게 알렸을 것이다.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안드레나 사도 요한도 어떤 방식으로건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연락이 닿았을 것이다. 

수많은 이적과 기적, 병고침과 축사… 이 모든 것을 보고 했다. 

세례 요한은 그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 있던 어느 순간(마 11:2), 요한의 마음에 의심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과연 내가 기다리던 메시야가 나의 사촌 동생 예수가 맞는가? 

정말 그런가? 

감옥은 모든 것을 의심하기 좋은 공간이다. 

자신과 타인과 세상에 대해 반추하고 의심할 수 있는 최선의 공간이다. 

조용하고, 할 일이 별로 없다. 

기도하며 생각하고 혹여 책이라도 있으면 읽게 되는 공간이다. 

요한은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사실 예수가 감옥으로 찾아오기를 바랬을 수도 있다. 

위대한 메시야 예수, 억울하게 갇힌 자를 해방시켜 주시겠다고 공언하시는 예수. 

지금 자신보다 억울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백성들을 회개시키는 세례를 베풀었고, 권력자의 비리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결과는 비참하다. 

감옥이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있다. 

예수를 잘 안다. 

그가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올 때부터 오감과 육감의 센서가 극대화되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였다. 

그 분명했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진다. 

그렇게 훌륭한 분이 왜 나의 억울함은 해결해 주시지 않는단 말인가? 

제자들을 통해 들은 예수님은 정말 대단한 분 맞고, 하나님의 아들이 맞다. 

그런데 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시는가? 

감옥에 한 번 찾아와서 위로도 해주고, 축복도 해 주면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일까?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세례 요한이 그토록 기다리던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제자들을 불러 예수께 다녀오라고 시켰다. 

예수님은 그동안 자신이 해 왔던 사역을 다시 나열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한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세례 요한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세례 요한이 느꼈을 여러 감정과 생각에 대한 예수님의 치료책이다. 

의심, 두려움, 그리고 미묘한 경쟁 의식…

한 번 의심이 찾아오면, 다양한 감정이 몰려온다. 

‘왜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등의 생각이 그것들이다. 

예수님은 요한의 마음을 꿰뚫고 계셨다. 

의심도 필요없고, 거기서 파생된 비교의식과 좌절도 멈추어야 했다. 

요한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고, 그것이면 되었다. 

잘 한 것이다. 

비록 감옥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본질이 바뀌어서는 안된다. 

요한의 사명은 거기까지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 길로 걷고 있었다. 

죽음으로 들어가는 길. 

너무 아쉬워 할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 믿고 견뎠던 그 삶을 부정하지 마라. 

현재의 고난 때문에 소명과 진실을 흐릿하게 만들지 마라. 

굳게 서서 끝까지, 죽음의 순간까지 확신했던 바를 지키라. 

예수님은 메시야가 맞고, 세례 요한은 그 메시야의 도래를 준비했던 위대한 예언자가 맞다. 

그러니 감옥에 갇혀있어 외롭고 힘든 순간에도 그 사실을 저버리지 마라. 

예수님으로 걸려 넘어지지 마라. 

그분은 예수님의 길이 있다.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원망이나 의심이나 불신을 유지하지 마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야 막을 수 없겠으나, 계속 그런 생각을 붙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런 불행한 선택을 하지 마라. 

예수님 때문에 넘어졌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 

 

그리스도인들, 특히 사역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자신의 소명대로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이상을 바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것이 이뤄지지 않는다 하여 원망하거나 실망하지 마라. 

그것은 소명이 아니고 인간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소명을 달성하면 주님께 가면 된다. 

 

나에게 주신 소명을 위해 계속 달려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소명을 달성했을 때, 쿨하게 지극히 만족스런 얼굴로,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싶다. 

 

 

[오늘의 기도]

소명을 주시는 하나님, 

그 소명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에너지와 은사를 주시는 성령님, 

오늘도 제게 주신 소명을 다시 바라보고 더욱 집중하도록 도와주소서. 

제게 주신 당신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매일 매일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사역적으로, 가정적으로 제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하게 알게 하옵소서. 

소명을 따라 살되, 웃음과 쾌할함을 잃지 않게 하소서. 

집중과 진지함이 유머와 즐거움을 집어 삼키지 않게 하소서. 

즐거이 헌신하는 것이 무엇인지 저도 알고 다른 사람들도 알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7 06 화요일

여는 기도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1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계시는 일어나야 일들을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천사를 보내셔서, 자기의 요한에게 이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자기가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3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들의 열매이시요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6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그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것이다.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것이다.” 그렇게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주석
1: 계시란 하나님의 주도와 허용이 없이는 사람들의 접근이 불가능한 진리가 하나님에 의해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IVP 성경신학사전).

 

4, 8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란 말은 이따금 헬라어에서 영원한 신성을 나타내던 칭호와 관련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특히 구약에 나오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름에 대한 헬라어 해설을 반영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revelation)입니다. 이 계시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이고(1절), 요한이 본 것이고(2절), 또한 모든 사람들이 이 이루어질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3, 7절). 하나님의 사람들은 현실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하나님을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4, 8절)’으로 설명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스스로를 ‘알파요 오메가(8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의 통치 아래 있던 일곱 교회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과거에도, 미래에도 함께 계시는 주인(Lord)’이라는 메시지는 어떤 의미로 전해졌을까요? 지금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

사무엘하에서 요한계시록으로 

 

다윗 시대에서 요한의 시대로 시공간이 이동되었다. 

사무엘하 말씀을 통해 다윗이 명암을 보았다. 

다윗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다윗의 자손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요한과 그의 시대 성도들에게로 시점을 이동한다. 

성경의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은 나름의 재미가 있다. 

시대와 장소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일하셨는지 살피고 여전히 이곳 여기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

요한의 시각은 오실 예수님에게 맞춰져 있다. 

요한은 때가 가까이 왔음을 확신하고 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그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것이다.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것이다.” 그렇게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처음의 일성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

요한은 말을 이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 그러니 굳건히 우리의 신앙을 지키고, 아직도 어둠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오길 요청하고 있다. 

사실 요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이렇게 늦어지는지 의아해하고 있었다.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재림은 늦어지는데, 외부의 공격은 거세다. 박해가 심해지고 있다. 로마의 황제들은 자신이 신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성도들의 고난은 점점 강도가 더해지고 있다. 

베드로도 그의 편지에서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썼다(벧후 3:9). 그것은 아직 구원받을 사람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가 차야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말이다. 아직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인원만큼의 회심자를 얻지 못했다는 말이다. 

요한은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를 단순하게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한계시록 전체를 통해서 재림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고난과 시련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이 담겨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의 접근과 조금 다르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베드로의 답변이 시대적으로 앞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베드로와 요한의 성향 차이이기도 하리라. 

요한은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를 문장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보여준다. 여러 장의 그림으로 재림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림은 결국 현실의 사람들에게 믿음의 삶을 살라고 굳게 현재를 이겨내라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의 접근 방식과 요한의 접근 방식 둘다 필요하다. 

 

요한이 보는 복음의 정수 

 

4b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들의 열매이시요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6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구절들은 요한이 복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첫째, 복음은 위대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평화다. 그분은 영원히 계신 분이시며, 부활의 처음이시고, 모든 중의 왕이시다. 절대적으로 위대하신 예수님이 은혜를 주신다. 평화를 주신다. 영원한 , 부활의 , 모든 현실 권력을 능가하는 왕이 은혜를 베푸신다. 평화를 베푸신다. 이것만 생각해도 요한은 가슴이 벅차다. 복음의 기쁜 소식이 그에게 들린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사실을 요한은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이다.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라고 자신을 표현하기도 했다. 익명이 오히려 더욱 부각되는 형국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의 삶을 지지하시고 더욱 멋진 삶을 살라고 격려하시며 응원하시는 분이시다. 이러니 기쁜 소식이 아닐 없다. 

셋째,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죄와 죽음, 사단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주셨다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 일을 하셨다. 사랑이 우리를 해방한다. 그분의 의무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여러 압제에서 구원하신다. 이게 복음이다. 사랑이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크고 작은 선물을 주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사랑이 그분 자신을 주신 것이며, 사랑이 사람들을 실제적으로 영적으로 해방시켰다. 이게 기쁜 소식이다. 요한은 기쁨이 넘칠 밖에 없다. 

넷째, 해방 이후의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제사장이 되게 주셨다. 해방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제대로 정초해 나갈 없다. 우리는 그런면에서 연약하기 그지 없다. 해방이 자유가 아니라 막막함의 감옥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하나님 나라로 엮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나라가 되고 나라의 통치 질서 속에서 있게 되었다. 허망함과 막막함을 이겨낼 있는 위치에 우리를 올려 주신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세상의 죄를 주님께 가져와서 화목의 제사를 드릴 있는 제사장의 위치에 올려주셨다. 하나님과의 화해를 주선할 있는 위치를 주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왕이 죄인을 사랑해서 자신의 목숨으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해방시켜주시더니 그들에게 엄청난 지위를 허락하신 것이다. 이러니 복음이다. 

 

그렇게 것입니다. 아멘. 

 

이런 일이 더욱 강력하게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이런 복음의 역사가 거부할 없을 만큼 강력하게 드러나게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땅에 드러난다. 

요한은 확신에 가득 있다. 

여러 가지 환상을 보고 환상 끝에 이런 확신에 도달했다. 

요한의 환상은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요한이 가지고 있었던 이런 확신을 더욱 강화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것이었다.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요한계시록은 두려움이 아니라 안도와 확신 속에서 현실을 살게 하는 힘이 된다. 

 

여전히 예수님이 오지 않으셨다. 

그래서 불안하다. 

혹시 안오시면 어쩌나 의심이 들곤 한다. 

그러나 복음으로 우리를 이끄신 예수님의 사랑이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리라 믿는다. 

어떻게 하면 회개하는 무리의 숫자가 가득찰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재림의 날을 앞당길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에 하늘을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베드로후서 3:12) 

 

 

——

오늘도 귀한 말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당신의 사랑을 깊이 누리길 원합니다. 

요한이 생각하는 복음의 정수를 제가 깊이 누리길 원합니다. 

당신의 사랑이 제게 더욱 부어지게 하소서. 

우리 교회, 우리 아벱에 예수님의 사랑이 더욱 크고 능력있게 부어지길 간절히 소망하고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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