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29-35

이상한 사람들

2023. 6. 24. 김혁수 

 

[본문_누가복음 7:29-35_새번역]

29 (모든 백성과 심지어는 세리들까지도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옳으심을 드러냈다.

30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음으로써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물리쳤다.)

31 “그러니, 이 세대 사람을 무엇에 비길까?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그들은 마치 어린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서로 부르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하는 것과 같다.

33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 너희가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34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너희가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35 그러나 지혜의 자녀들이 결국 지혜가 옳다는 것을 드러냈다.”

 

ESV

Yet wisdom is justified by all her children(35절).

 

주석

마치 어린이들이(32절) 7:32에 언급된 아이들의 놀이는 요한이 ‘결혼식’ 놀이를 거부했을 때나 예수님이 ‘장례식’ 놀이를 거부하셨을 때나, 듣는 사람들은 똑같이 불평했음을 보여준다(BST 누가복음).

 

 

1. 들어가며

1) 큐티는 왜? 

-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사람들입니다.

 종교개혁의 후예는 성경만이 최종적 권위를 갖습니다. 교황이 아닙니다. 교회라는 조직체가 아닙니다. 오직 성경만이 최종적 결정의 준거틀입니다. 여러분들이 카톨릭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있다면 성경만으로 여러분의 삶과 신앙의 기준을 삼아야 하는 겁니다. 

 

- 기독교인들은 성경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계시된 삼위 하나님과 말씀을 가지고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감정으로 교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상상력으로 교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재료 삼아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시기로 스스로를 제한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18-19_18나는 이 책에 기록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덧붙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 책에 기록한 재앙들을 덧붙이실 것이요, 19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한 말씀에서 무엇을 없애 버리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한 생명 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서 그가 누릴 몫을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전달해주는 마법 같은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방법과 재료를 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과 대화를 시작합니다.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우리도 성경의 내용으로 질문하고 하나님도 성경의 범위 내에서 답변하십니다. 이게 신비입니다. 66권의 성경으로 하나님과 사람은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겁니다. 

 

그래서 함께 큐티하자는 겁니다. 큐티를 안하면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한다는 것은 거의 거짓말입니다. 식사기도 조금 하고, 가끔 자기 전에 악몽 꾸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인격적 교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 율법주의 아닌가요라는 오해도 사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겁니다. 

 

그럼 이제 어제 토요일 큐티 본문을 읽어볼까요? 

 

2) 질문 투성이

오늘 본문을 읽자마자 느꼈습니다. ‘이 본문은 장난이 아니다. 궁금한 것 투성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알듯 모를듯 한 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예수님의 비유인데요. 이 비유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거의 눈에 걸리는 단어나 마음에 남는 구절들이 상당히 많은 본문입니다. 

 

2. 이 세대는 누군가? 

1) 두 가지 해석 

- 반응하지 않는 아이들 

무엇보다 저는 이런 질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세대는 비유에 등장하는 어린아이들 중에 누굴 가리키는 것일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통적으로는 시장에서 피리를 불며 결혼식 놀이는 하는 아이들, 혹은 우는 소리를 내며 장례식 놀이를 하는 아아들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의미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다른 아이들이 이 세대를 의미한다고 해석해 왔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말씀을 이해해 왔습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를 요청했지만,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이 죄인들과의 잔치에 초대했지만,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거절했습니다.  반응하지 않는 아이들처럼 기득권자들은 새로운 하나님 나라 운동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게 너무 안따까운 것이지요. 

 

- 비판하는 아이들 

그런데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도리어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세대는 자신들의 결혼식 놀이와 장례식 놀이에 반응하지 않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대해 비난하는 아이들과도 같습니다. 자신들의 놀이에 들어오지 않는 다른 아이들을 비난하고 배척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런 아이들은 아이답지 않은 말들을 합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놀이에 집중하기 마련입니다. 자기들끼리 즐거우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이 시장통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놀이에 끼지 않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일진 같은 아이들입니다. 자신들의 세계에 편입되지 않는 아이들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심지어는 폭력을 행사할 조짐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이제까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비난하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대는 그들에 의해 주도되는 세대입니다. 

 

2) 이 세대의 특징
이 세대의 특징을 몇 가지 정리해 봤습니다. 

 

- 게임 결정

첫째, 이 세대는 자신들 맘대로 게임을 결정합니다.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게임을 정합니다. 결혼식 게임이든 장례식 게임이든 그들 마음입니다.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게임의 프레임을 만듭니다. 어떻게 웃어야 하는지,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도 결정합니다. 

 

- 게임 변경

둘째, 맘대로 게임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게임을 변경하는 것도 그들 마음입니다. 어떤 게임을 먼저할지, 언제 바꿀지도 그들 마음입니다. 제 아들 이야기입니다. 어몽어스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아빠, 엄마, 누나를 거실로 집합시킵니다. 그러더니 아빠에게 임포스터를 맡깁니다. 그리고 집안을 돌아다니게 하죠. 그리고 누나를 KILL 하라고 합니다. 완전히 자기 맘입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재미없다고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자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여러분 우리 세계가 그렇지 않습니까? 각 나라들마다 자신의 유익대로 자신의 힘을 가지고 세계를 주무릅니다. 정당성과 공정성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국익이 우선입니다. 국익을 지키기 위해 명분을 만듭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을 만들기에 급급합니다. 미국은 자신들의 패권을 중국에게 넘기고 싶지 않습니다. 중국은 미국을 뛰어넘는 일대일로의 계획을 추진중입니다. 일본, 러시아…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힘을 가지고 게임을 룰을 만들어 다른 나라들을 협박합니다. 

 

- 세력화 

셋째, 게임만 결정하고 변경하는 게 아닙니다. 이 세대는 자신들의 게임에 참여할 아이들을 모집합니다. 그리고 결국 세력화를 시도합니다. 게임에 빠지면 그 세계관에 잠식당한 아이들이 게임 제작자에 손에 놀아납니다. 

 

- 타자화 

넷째, 자신들의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을 타자화 시킵니다. 우리와 그들을 나눕니다. 우리와 그들의 차이점을 부각시킵니다. 다른 점을 인정하기보다는 악마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고 믿게 됩니다. 결혼식 게임의 그 즐거움을 왜 모르는지 의아해 합니다. 장례식 게임의 그 의미와 장엄함을 경험하지 못하는 다른 아이들을 미성숙하다고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 비판과 비난

다섯째, 이제 마지막으로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비난합니다. 내편 니편으로 나누고 상대편의 행위를 비판하고 비난합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행했던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우리 세대에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남녀를 가르고, 청장년을 나눕니다. 지역으로 나누고, 경제적 능력으로 나눕니다. 나눠야 자기 편이 분명해지고, 대결구도를 형성해야 자신의 주도권과 통제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그러면서 서로를 비판하고 비난하게 되는 거죠. 

 

3. 이상한 사람들은 누군가? 

그럼 오늘 본문에서 누가 이상한 사람들인지 알겠죠? 

 

1)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

먼저는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입니다. 세례 요한은 성전 중심의 유대교를 벗어나 유대 광야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회개를 선포했죠.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그런 극단적인 회개 운동은 필요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예루살렘에 와서 원래 율법이 이야기한대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 된다고 주장했죠. 그들이 보기에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은 이상한 사람들이었어요. 

 

2) 예수님과 그의 제자

그 다음은 바로 예수님과 그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파티를 여셨어요. 죄인들이 회개하여 베푼 잔치에 참석하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죠.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이게 못마땅했던 거예요. 죄인들에 대해서는 장례식 게임을 해야 하는데, 도리어 웃고 즐기는 결혼식 게임을 하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싫었던 겁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4. 나가며_세대를 거스르는 이상한 사람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대를 거스르는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과 프레임과 게임 룰에 무조건적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면서 그분이 원하시는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세대는 돈을 중심으로 수많은 게임들을 만들어 놨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 게임판에 들어가야 합니다. 또는 이 세대는 권력 혹은 인기를 얻기 위한 수많은 게임을 만들어 놨습니다. 그 게임판에 들어가 멋지게 플레이를 하면 권력과 인기와 돈을 얻죠. 우리는 이 세대가 만들어 놓은 게임판에 무조건 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의 룰의 허점을 찾아내고, 그들의 동기와 본질을 꿰뚫어 밝혀냅니다. 그들의 웃음 코드와 우리의 웃음 코드가 다르고, 그들의 울음 포인트와 우리의 울음 포인트가 다릅니다. 그것도 무조건 반대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요, 하나님과 교제 하면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 일을 해 내는 겁니다. 죄송합니다. 이 어려운 일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세대로부터 이상하다는 평가를 받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 길이 맞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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