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7월 24일 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야곱의 집안이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에게서 떠나올 때에,

2 유다는 주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3 바다는 그들을 보고 도망쳤고, 요단 강은 뒤로 물러났으며,

4 산들은 숫양처럼 뛰놀고 언덕들도 새끼양처럼 뛰놀았다.

5 바다야, 너는 어찌하여 도망을 쳤느냐? 요단 강아, 너는 어찌하여 뒤로 물러났느냐?

6 산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숫양처럼 뛰놀았느냐? 언덕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새끼양처럼 뛰놀았느냐?

7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어라.

8 주님은 반석을 웅덩이가 되게 하시며,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신다.

 

주석

8절. 하나님은 자비 안에서 자신을 연약한 자, 심지어 ‘야곱’과 같이 비열한 자와 동일시하시며, 선한 일을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그분은 또한 백성의 순례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신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시인은 출애굽의 영광을 기억한다. 

홍해와 요단강이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길을 열어준다. 

온 땅이 이스라엘 백성의 오랜 행군을 돕는다. 

반석이 열려 샘이 된다. 

만나가 내리고, 메추라기가 떨어진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은 광야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유다는 하나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통치의 영토가 된다. 

그들 존재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사명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상들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하나님의 성소와 영토가 된 것이다. 

특별한 은혜가 그들에게 쏟아진다. 

의와 공도를 행하는 민족으로 우뚝 선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드러내는 민족으로 대표된다. 

그들의 할 일은 점점 분명해 진다. 

 

시인은 몇 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출애굽 사건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이 이래서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인류를 위한 그분의 희생, 

그리고 나를 위한 그분의 보호하심. 

잊기 전에 기록하고 그 기록을 다시 확인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그분이 일하심의 일기장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일하신 일, 

다른 청년에게 일하신 일.

기억하고 되새기고 묵상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사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목하신다. 

그걸 잘 몰랐다. 

그저 인류를 구원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씀을 좀더 깊이 보면,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조금씩 다르게 접근하신다. 

사랑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시다. 

예수님은 각 사람을 주목하고 계신다. 

그 사람에 맞게 치유하고 회복시키신다. 

지금도 예수님의 한 사람에 대한 주목은 그치지 않는다. 

 

오늘의 은혜가 필요하다.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 오장육부를 가동시키는 힘, 심장의 고동, 머리의 뇌류, 

세포 하나 하나 주님의 은혜로 작동한다. 

회복된다. 

정신이 다시 맑아진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다시 시작한다. 

 

[오늘의 기도]

은혜로 보호하시는 주님, 

몸과 마음을 주님께 맡깁니다. 

마음은 쉽게 흐트러지고, 몸은 쉽게 지칩니다. 

병균은 언제가 제 주위에 있고, 

스트레스는 눈 앞에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분노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나이 들어 호르몬도 이상하게 분비됩니다. 

정서도 불안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붙들어 주소서. 

몸과 마음을 정상 범위로 유지시켜 주시고, 

평안과 사랑을 전하는 자로 서게 하소서. 

 

이번 한 주를 주님께 맡깁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복음밥 캠프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4월 06일 목요일

 

여는 기도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알게 하소서.

 

1 자랑함이 나에게 이로울 것은 없으나, 이미 말이 나왔으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할까 합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 때에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이 사람을 압니다. 그가 몸을 입은 채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4 이 사람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5 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두고서는 내 약점밖에는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6 내가 자랑하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삼가겠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내게서 보거나 들은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나는 이것을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NIV

But he said 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Therefore I will boast all the more gladly about my weaknesses, so that Christ's power may rest on me(9절).

 

바울은 십사 년 전에 경험했던 환상과 계시에 대해서 말합니다(1-4절).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기를 바라며 자랑을 삼갑니다(5-6절). 바울 안에 있는 ‘가시’는 그를 약하게 만들었으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바울이 교만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7절). 이제 바울은 약함을 자랑하고 기뻐합니다. 그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9-10절).

 

거짓 사도들은 바울이 환상과 계시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비방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염려해서 환상과 계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삼갔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점인 ‘가시’가 바울의 자랑이었습니다. ‘가시’는 바울이 약해지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족합니다. 우리는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해집니다.

 

[오늘의 묵상]

구구절절 설명하는 바울이 못마땅하다. 

통크게 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비판이 있어도 참고 견디고 그 다음을 준비하면 될 것을, 뭐 이렇게 구구절절 자신의 상황과 마음을 나누려고 하는지, 오늘은 들어주기 싫은 마음이 든다. 

아마도 며칠간 계속되는 바울의 속마음 이야기에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편지를 쭉 읽었으면 들지 않을 마음인데, 매일 끊어서 깊이 묵상하다보니 나오는 반응인 것 같다. 

이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본문을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여기서 등장하는 “십사 년 전의 사람”은 바울 자신을 가리킨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바울이 처음 예수님을 믿고, 회개 한 뒤에, 깊은 영적 체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계시를 받았다. 

모든 것을 다 알려줄 수는 없겠지만, 그 예언은 바울의 삶과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받았다. 

혹을 말로 드러내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보았다. 

무엇보다 바울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 하나님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보았던 계시를 닮았다. 

다니엘이나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들이다. 

큰 신상의 환상이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환상…

이런 환상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세계다. 

바울은 어떤 면에서 이런 예언자들의 반열에 올랐다. 

요한도 계시록을 쓸 때, 이런 환상을 경험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이런 환상 전체를 말과 글로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유는, 자기 자랑이 될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남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할 것이 걱정되서다. 

바울은 한 명의 그리스도인지, 그 자신이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 

고린도교회에서 보이는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의 파당짓기에 이름이 올라갈 정도니, 자칫하면 예수님과 같은 위치에 설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을 것이다. 

자기 자랑이 과하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도달할 수 없는 신적존재지만, 대단한 영웅적인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기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준다. 

사람들을 희망을 주는 그 사람을 더 바라보게 된다. 

예수님보다 사람이 높아질 때, 자칫 우상이 된다. 

성도들에게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자기 자랑을 멈춰야 한다. 

 

바울은 도리어 자신의 약점을 노출한다. 

사탄의 하수인인 몸의 가시를 정직하게 말한다. 

그 몸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이나 간곡하게 기도한 적이 있다. 

여기서 세 번은 단순히 식사기도 하듯 일상적인 기도의 일종이 아니다. 

시간을 내서 금식하며 특별 작정 기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그 때마다 “네 은혜가 족하다”는 답변을 주셨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상상해 보건데, 첫 번째 기도에서도 그런 응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 번째, 세 번째 작정기도를 이어갔다. 

아마도 그 사탄의 하수인인 몸의 가시가 어지간히 자신을 괴롭혔는지 모른다. 

너무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미루로 짐작컨대, 간질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위장병도 아프지 않은 병은 아니지만, 내가 오랫동안 아파왔던 경험으로 볼 때, 못참을 만큼 힘든 병은 아니다. 

게다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하니, 아마도 사역 일정에 큰 지장을 준 것 같고, 더 나아가 성도들에게도 염려와 걱정을 안겨주는 질병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발작증세를 보이는 간질 같은 것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핵심은 매우 심각한 몸의 질병이라는 점이다. 

세 번이나 절실하게 요청했던 기도의 제목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도리어 이런 질병이 바울을 겸손하게 했다. 

영적 체험을 했음에도 그는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참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과 성도들을 위해 참고 함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절제의 힘이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경험과 지식을 더 자랑하기보다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겠다고 나선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겸손한 사람들을 통해 이뤄진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겸손을 몸에 익히면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별로 잘 나지 않았는데도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가 없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거만하게 구는 사람들에게는 성령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신다. 

그 사람 중 한 명이 전광훈이다. 

그의 말은 거만함으로 가득하다. 

자신이 무슨 신이줄 안다. 

걱정이다. 

 

나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고 싶다. 

부족함과 약점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바울에게 배울 것이 많다. 

 

 

[오늘의 기도]

사람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 

제 속을 잘 들여다 보게 하소서. 

제 마음의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올라오는지 잘 살피게 하소서. 

주님이 주시는 생각들로 채우게 하소서. 

기도의 시간이 깊어지길 원합니다. 

조용한 가운데 주님이 제 마음 속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거만하게 자랑하는 사람이 되길 원치 않습니다. 

저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도리어 저의 약점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부족함과 약점을 통해서도 일하시길 원하신다면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소서. 

정서적, 정신적, 영적, 육체적, 관계적 약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약점을 숨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고 더욱 겸손하게 나아가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가 그런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3월 24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8 나는 이 말을 명령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열성을 말함으로써, 여러분의 사랑도 진실하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0 이 일에 한 가지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일은 여러분에게 유익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해부터 이미 이 일을 실행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도 했습니다.

11 그러므로 이제는 그 일을 완성하십시오. 여러분이 자원해서 시작할 때에 보여준 그 열성에 어울리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 일을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12 기쁜 마음으로 각자의 형편에 맞게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까지 바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13 나는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그 대신에 여러분을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형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14 지금 여러분의 넉넉한 살림이 그들의 궁핍을 채워주면, 그들의 살림이 넉넉해질 때에, 그들이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평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5 이것은, 성경에 기록하기를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다" 한 것과 같습니다.

 

NIV

Our desire is not that others might be relieved while you are hard pressed, but that there might be equality(13절).

 

예수님은 부요하셨으나,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 은혜를 아는 자에게 구제는 유익한 일입니다(9-10절). 바울은 기쁜 마음으로 각자의 형편에 맞게 구제에 동참하라고 말합니다(12절). 우리의 부요함으로 누군가의 궁핍을 채우면, 우리도 궁핍할 때 도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구제를 통해 평형을 이루십니다(14절).

 

구제를 통해 이루는 부요는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평형은, 부요하나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신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기쁨으로 자신의 것을 나누는 자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부요를 위해 가난하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해 봅시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부요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평형을 이루는 삶을 살아갑시다.

 

[오늘의 묵상]

구제금 모금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목표한 금액이 있었는지, 그저 1년의 기간을 두고 구제 헌금을 받았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허나 1년간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고린도교회는 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받았을 때, 상당히 열정적으로 동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에 대해 말한다. 

인간이 되신 예수님, 가장 높은 곳에 계셨던 그분이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님의 사랑이다. 

이런 낮아지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백성, 그리스도의 향기, 편지, 대사,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 표현된다. 

우리의 정체성이 이렇게 고양된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으로 우리는 풍요로워진다. 

우주의 창조자께서 자신을 비우심으로 피조물인 인간이 진정한 풍요로움을 누린다. 

이렇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재산, 에너지, 네트워크, 인력 등을 나눌 수 있다. 

정글 같은 생존 경쟁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원을 함부로 나누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정글이 아니라 진정한 복지 국가다. 

약자가 보호받고 격려받는 공간이다. 

평균케 되는 원리가 작동한다. 

강자는 자신의 것을 나누고 그것을 특권으로 안다.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이 특권이다. 

 

어제 펀드레이징을 위해 한 목사님을 만났다. 

후원은 돕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적은 후원이 아니었기에, 그 말씀이 더욱 임팩트가 있다. 

전국수련회를 위해 후원금을 모금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나누는 것. 

이 정신이 후원을 요청하는 자에게도 후원하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평형을 이루는 정신이 잘 작동되면, 이 공간은 참 매력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정신이 잘 구현되는 공간이 된다. 

재정 사용이 우리의 정신과 가치관을 보여준다.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없는 것을 빚을 내서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과한 것이며, 실제로는 불행의 씨앗이다. 

자신이 가진 것에서, 주님께서 주신 것에서 나누면 된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 가정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있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나누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생각보다 인색한 나를 발견한다. 

주님의 은혜를 돌아보며 인색함보다 넉넉함으로 주께서 주신 것을 나누는 삶이 되고 싶다. 

 

 

[오늘의 기도]

모든 재물의 주인되신 하나님,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저에게 주신 것들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돈이 잘 흘러가게 하시고, 그 일을 담대하게 감당하도록 인도해주세요. 

 

전국수련회, 전국간사수련회, 복음밥 캠프, 유학생 사역 등등. 

재정이 필요한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중요한 사업이고, 필요한 사역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재정을 채워주세요. 

 

오늘 부담스런 시간이 있습니다. 

주님께 맡기고 담대하게 감당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3월 17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6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도 육신의 잣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9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여러분에게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분에게 우리 대신으로 죄를 씌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2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의 때에, 나는 네 말을 들어주었다. 구원의 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다"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주석

17절 당분간 여전히 옛 것이 지속되고 새 것이 아직 완전히 오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생명의 새로움이다(IVP 성경주석).

 

18-20절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은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바울에게 맡겨주셨다. 그래서 그분의 사절인 바울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그분과 화해하게 되기를 권하신다(IVP 성경주석).

 

전에는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16절).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됐습니다(17절).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바울과 화해하시고, 바울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18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할 것을 권고합니다(20절).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2절).

 

화해는 그리스도에게 가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따지지 않는 대신,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에게 죄를 씌우셨습니다(19, 21절). 이는 육신의 잣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그리스도를 새롭게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새롭게 된 우리를 통해 화해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실 것입니다. 회심한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 화해했습니다. 화해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묵상]

육신의 잣대로는 바울은 미쳤다는 말이 옳은지도 모른다. 

육신의 잣대로는 바울과 그의 선교단이 극단적이고 이상적이고 비현실이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육신의 잣대로는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고 정직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바울의 태도가 어리석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육신의 잣대는 세상의 잣대다. 

세상이 판단하는 대로 그대로 가치 판단을 한다. 

그러면 바울의 삶은 더욱 초라해지며, 어찌보면 미친 짓이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생명체다.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다. 

그리고 오늘 분문에서 등장하듯이 그리스도의 대사다. 

화해의 직분, 화해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것처럼 어디서나 화해를 촉진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혀 있던 담을 허물어 주신 것처럼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도모한다. 

 

바울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분열을 치료하고 화해를 일으키고 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화해하도록 돕고 있다. 

평생의 업으로 알고 이리저리 분주하다. 

그 스스로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세상의 기준과 육신의 잣대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잣대로 살아간다. 

그리고 이는 바울 혼자에게만 주신 역할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다. 

그러기에는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대사다. 

그리스도의 사절이다. 

어디든 그리스도의 뜻을 알리고 그분을 대변한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과 같은 성품과 능력으로 점점 자라가야 한다. 

하나님과의 깊은 소통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원칙을 드러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사, 사절은 비록 지내는 곳은 타국이지만, 본국과의 긴밀한 협의, 협조 속에서 본국의 뜻을 대변한다. 

그리스도인이 사는 곳은 이 세상, 이 지구다. 

이곳을 벗어나지 말고, 본국의 뜻을 대변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학교, 직장, 마을 어디서나 화해의 사절단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바울이 크게 외치듯이,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 

5장 20절이다. 하나님과 화해하라.

그것이 가장 우선이다. 

하나님과 불화하고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대변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과 화해하기에 오늘날 만큼 좋은 날이 없다. 

예수님이 그 길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분이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 

그분이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수많은 매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고 있으며, 예수님이 소개되고 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화해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 은혜의 때라고 하는 것이다.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일단 화해의 시작이 일어난다. 

그 후로도 적극적으로 화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그래서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자신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면서 그분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동시에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은 이 때에도 은혜를 베푸신다. 

부족하다고 버리지 않으신다. 

화해를 위해 분투하는 삶을 칭찬하신다.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죄인들에게 의의 신분을 주셨다. 

대신 값을 치르셨다. 

사단의 올무에서 건져주셨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법적으로나 관계적으로 새로운 신분을 주신 것이다. 

의인이라는 신분이다. 

새로운 피조물은 의인이라는 신분에서 나온다. 

 

이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 바울의 목표요, 나의 목표다.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교회의 청년들에게, 행복기숙사의 대학생들에게, 전국의 청소년들에게… 

하나님과 화해의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죄책감에 의해서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 말고, 

하나님과의 만남과 대화가 너무 좋고 필요하기에 당신을 찾는 사람 되고 싶습니다. 

죄책감을 달래기 위해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 얄팍한 신앙에서 벗어나 

화해의 사도, 화해의 사절단의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죄에 대해 무감각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더욱 예민해져야 그리스도의 대사 역할을 잘 감당하지 않겠습니까! 

매일 매일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하시되, 

또한 매일 매일 주님과 더욱 멀어지게 하소서. 

가까워서 주님의 뜻을 분명히 알게 되고, 

멀어져서 죄인들의 세상에서 주님을 전하게 하소서. 

그 멀어짐이 화해를 위한 발단이 되길 원합니다. 

변화산에만 있을 수 없사오니, 산에서 내려가자는 주님 말씀을 따릅니다. 

 

오늘도 부담스런 시간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그 시간들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