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15일 수요일

 

여는 기도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소서.

 

1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압니다.

2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이 장막집에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3 우리가 이 장막을 벗을지라도, 벗은 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4 우리는 이 장막에서 살면서, 무거운 짐에 눌려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장막을 벗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5 이런 일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고, 그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몸을 입고 살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압니다.

7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8 우리는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9 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서 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0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합니다.

 

NIV

So we make it our goal to please him, whether we are at home in the body or away from it(9절).

 

주석

9절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 미래 상태에 관한 사색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게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결심이다(IVP 성경주석).

 

땅의 장막집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은 우리를 짓누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영원한 집이 있으니 괜찮다고 말합니다(1-4절). 하늘로부터 오는 영원한 집이 땅의 장막집 위에 덧입혀질 것입니다(2절). 짓눌린 탄식이 생명에게 삼켜지는 것입니다(4절). 결국 우리는 어디서든 주님과 함께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6-9절).

 

‘땅과 하늘, 무너질 집과 영원한 집, 벗는 것과 입는 것, 죽음과 생명, 떠나는 것과 함께 사는 것, 보는 것과 믿는 것’처럼, 첨예한 갈등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각 사람은 선택에 따른 마땅한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10절). 우리는 하나님이 덧입히실 것을 갈망하면서도 견고하게 실재하는 현실을 탄식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든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말씀에는 헷갈리게 하는 구절이 있다. 

6절이다. “우리가 육체의 몸을 입고 살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압니다”

이 구절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동안 바울은 우리가 주 안에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 안에서 살아간다. 

육체의 몸을 입고 산다는 것이 주님과 떠나 산다는 의미와 동격은 아닐 것이다. 

그럼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7절에 힌트가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주님에게서 떠나 산다는 말을 다시 풀어 보면, 주님을 직접 보면서 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분을 우리가 직접 보면서 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과 육체적으로는 혹은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지내는 것이 맞다. 

그래서 우리에겐 믿음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그분의 임재를 믿음으로써 살아간다. 

바울은 이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땅에서 겪는 수많은 고난과 고충, 이것들은 육체로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그래서 바울이 갈망하는 것은 차라리 육체를 떠나 예수님을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육체로 살든지, 육을 떠나 예수님께 가든지, 그의 삶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과 더불어서 일을 하게 되면, 언제나 어려움이 찾아온다. 

서로의 욕구와 욕망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우선순위가 다 다르다. 

그러니 아무리 기독공동체라도 서로 협력해야 하는 순간에 갈등과 긴장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걸 해결해야 하나됨을 유지할 수 있다. 

육체는 욕망에 의해 작동된다. 

먹는 것, 자는 것, 섹스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충동적으로 올라온다. 

돈, 명예, 섹스는 육체가 언제나 지향하는 것들이다. 

이런 충동 자체가 어찌 나쁜 일이겠는가? 

이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고 폭주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죄악이다. 

이런 육체에 매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감당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며 위험이다.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적 역동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진정 하나님의 역사요, 성령님의 도우심이다. 

각자의 욕구와 욕망을 줄이고, 하나님의 뜻에 맞춘다. 

돈도, 명예도, 자존심도, 성욕도, 인적욕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성령님의 열매 중 하나가 절제라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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