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03일 금요일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2 우리의 자랑거리는 우리의 양심이 또한 증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세상에서 처신할 때에,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행하고, 세상의 지혜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13 우리는 지금 여러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써서 보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14 여러분이 우리를 이미 부분적으로는 이해했습니다마는,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여러분이 우리의 자랑거리이듯이, 우리가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 것을 자랑합니다(12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이 증언을 완전히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13절). 그만큼 스스로 부끄러울 것이 없으며, 예수의 날에 고린도 교인들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14절).

 

하나님 앞에서 순전한 바울의 양심은 깊은 인상을 줍니다. 모든 행동에는 동기가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특히 서로를 향해 처신할 때 자신의 동기를 돌아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이 내 양심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세상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습니다. 곧 바울의 양심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증언합니다. 나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내 양심은 무엇을 증언하나요?

 

[오늘의 묵상]

바울과 그의 선교단은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자긍심이 높다. 

그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 특히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대할 때, 순박함과 진실함을 가지고 대하고 있다. 

사실 순박함과 진실함은 현대 사회에서 잘 알아주는 덕목이 아니다. 

순박함은 순진함으로 들리고, 진실함은 센스없음으로 들린다.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은 덕목들이다. 

요사이는 센스있게 세련되게 약삭빠르게 살아야 잘 산다는 소리를 듣는다. 

순박하게 진실하게 살아서는 도리어 사기나 당하고 어리석다는 평을 듣기 마련이다. 

바울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은 결정을 해야 하는 선교팀 회의에서 순박함과 진실함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적이어야 하고, 전략적이어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을 터. 

하지만, 그들은 순박하고 진실함을 선택했다. 

 

물론 그들이 세상에 대해서 무조건 순진하게 대했다는 기록은 없다. 

바울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 때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아테네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문화와 상황을 고려한 복음 전도 내용을 사용했다.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방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방인과 유대인을 대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최선을 다해 순박하게 진실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고린도교회의 어려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던 첫번째 편지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순전함으로 진실함으로 그들에게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혹여 그들이 바울의 진실함을 역이용해서 바울을 공격할 수도 있었겠지만,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울은 자신들의 순박함과 진실함이 원래부터 자신들에게 있었던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것조차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사람들에게 순박함으로 진실함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은 부끄럽고 때로는 약점으로 잡히기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가면을 쓰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공격적으로 방어적으로, 때로는 회피하고 때로는 우회적으로 살아간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의 방식이다. 

이걸 역류해서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남을 대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주님께서 주신 용기요, 결단이다. 

바울은 하나님께 그 공을 돌린다. 

 

이것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된다.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이리저리 재고 계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가가는 것… 

이것은 세상의 지혜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다. 

그렇게 계산적으로 대우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대해도, 사람들이 그 속에서 서로의 진심을 알고, 서로를 용납하고,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면, 이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다. 

그 은혜를 바울은 느끼고 있었다. 

첫 번째 편지, 그리고 이어진 중간 편지, 그리고 오늘 세 번째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꼈다. 

바울의 진심이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그 과정을 통해 성도들의 삶이 더욱 하나님께 가까워졌다. 

교회 안에 있었던 갈등과 분열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각종 파벌로 나뉘었던 교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첫 번째 편지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그 오래참는 사랑의 과정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있다. 

감사가 절로 나온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바울 선교단과 고린도교회 성도간에 넘친다. 

서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에게 자랑이 되어가는 관계가 되었다. 

주님의 날에는 그 관계가 확정될 것이다. 

서로를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기독공동체는 법과 규정, 경쟁과 논쟁이 아니라,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를 품고 사랑하고 자랑스러워야 한다. 

법과 규정으로 서로를 묶어놓는 공동체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끼어들 자리가 점점 사라진다. 

규정이 생기는 이유는 대체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인데, 그 문제로 공동체가 아팠기 때문이고, 앞으로 있을 비슷한 문제로 공동체가 아파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순간 순박함과 진실함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규정으로 서로를 판단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규정이 아니라 권면이 작동하는 공간은 이제 우리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서로에게 순박하고 진실하게 다가가는 관계의 태도는 점점 찾아보기 어렵다. 

그 순수함을 유지하려면 소수의 공동체만이 가능해 보인다. 

인원이 많아지고, 돈의 흐름이 많아지면 순박함과 진실함만으로 공동체를 구성하기 어렵다. 

현실적인 이유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도 서로의 관계에서 순박함과 진실함,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는 것을 배제해서는 안된다. 

기독공동체는 사회운동 단체가 아니다. 

기독공동체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됨을 추구하는 단체다. 

기독공동체는 법과 규정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애정과 연민, 그리고 서로에 대한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다가가는 모임이다. 

이 이상을 포기하지는 말자. 

현실에 어느 정도 타협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그 이상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이상적 현실주의자 혹은 현실적 이상주의자여야 한다. 

모순과 딜레마는 그리스도인의 숙명이다. 

높은 양심과 하나님 사랑은 모든 문제에 대해 모순과 딜레마를 느끼게 하기 마련이다.

 

임은정 검사를 응원한다. 

사회의 모순을 계속 드러내고 그 딜레마 속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결단하고 있다. 

고통이 가중되더라도 정직함으로,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진실을 숨기는 자가 범인이다. 

부장검사 적격심사를 통과했으니, 앞으로 7년 모순 투성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진실함으로 살아내시길 기원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상을 향해 그 모순 속에 들어가는 것. 

오늘 나에게 던져진 삶의 과제다. 

 

[오늘의 기도]

모순 덩어리 하나님,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해도 저렇게 생각해도 모순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하고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정의롭다고 하면서 용서를 베푸십니다. 

개인을 존중하시면서 동시에 공동체를 이루십니다. 

모든 것을 품고 계시기에 모순적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저는 순박하게 따르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은혜가 더욱 필요합니다. 

현실적 이상주의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세요. 

현실의 모순을 지적하되, 현실에 발을 딛는 자 되게 해 주세요. 

주님이 주신 은혜로 이상을 향해 오늘도 걸어가는 하루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2월 14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 달을 한 해의 첫째 달로 삼아서,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알리어라. 이 달 열흘날 각 가문에 어린 양 한 마리씩 곧 한 가족에 한 마리씩 어린 양을 마련하도록 하여라.

4 한 가족의 식구 수가 너무 적어서, 양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없으면,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을 계산하여, 가까운 이웃에서 그만큼 사람을 더 불러다가 함께 먹도록 하여라.

5 너희가 마련할 짐승은 흠이 없는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 골라라.

6 너희는 그것을 이 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해 질 무렵에 모든 이스라엘 회중이 모여서 잡도록 하여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다가, 잡은 양을 먹을 집의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야 한다.

8 그 날 밤에 그 고기를 먹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함께 먹어야 한다.

9 너희는 고기를 결코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서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 할 것 없이, 모두 불에 구워서 먹어야 한다.

10 그리고 너희는 그 어느 것도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이 있으면,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11 너희가 그것을 먹을 때에는 이렇게 하여라.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서둘러서 먹어라. 유월절은 주 앞에서 이렇게 지켜야 한다.

 

12 그 날 밤에 내가 이집트 땅을 지나가면서,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을 모두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의 모든 신을 벌하겠다. 나는 주다.

13 문틀에 피를 발랐으면, 그것은 너희가 살고 있는 집의 표적이니,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은, 그 피를 보고 내가 너희를 치지 않고 넘어갈 터이니, 너희는 재앙을 피하여 살아 남을 것이다.

14 이 날은 너희가 기념해야 할 날이니, 너희는 이 날을 주 앞에서 지키는 절기로 삼아서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켜야 한다."

 

주석

달력(1-11절) 이 사건 때문에 아빕월(후에 니산월이라고 불림)이 이스라엘 종교력의 첫 달이 되었다. 일반 달력에 의하면 여섯 달 후인 티쉬리월이 첫 번째 달이었으며, 따라서 그 달에 ‘설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달력은 음력으로서 주기적으로 양력에 맞추어 조정했다. 아빕월은 춘분 이후의 첫 번째 초승달이 뜰 때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보통 3월 중순이었으며 4월 중순까지 이어졌다(IVP 배경주석). 

 

어린 양(3절) 바울은 주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이라는 신약의 강조점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결정적 새 출발로 부른다(BST 출애굽기).

주님은 유월절 식사에 대해 가르치십니다(1-10절). 유월절이 있는 달이 한 해가 시작하는 달이 되고, 유월절은 영원히 기념해야 할 절기가 됩니다(2, 14절). 유월절 그날 밤에 주님은 이집트 땅의 처음 난 것을 모두 치시고, 이집트의 모든 신을 벌하십니다(12절). 그러나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재앙을 피해 살아남습니다(13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은 위대한 새 시작의 날(2절)입니다. 또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노예의 비참함에서 해방과 자유로 도약한 놀라운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은 신앙적 행위입니다. 내 인생의 유월절은 무엇입니까?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기억하고 기념하는 신앙적 행위를 계획하고 실천해 봅시다.

 

[오늘의 묵상]

이날을 기다려왔다. 

하나님의 능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날,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가 동시에 드러나는 날,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드러나는 날, 

이날을 기다렸다. 

 

편하게 먹는 날은 아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서둘러서 먹어야 하는 날이다. 

웃으며 먹기가 어려운 날이다. 

5분 대기조 같은 느낌이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엄청난 전쟁을 치르기 전 몸에 단백질을 채우는 과정 같다. 

편하게 즐기면서 먹는 날이 아니다. 

 

이 날은 이집트의 신들이 압사 당하는 날이다. 

이집트의 신들로는 이 재앙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이 기대하고 신뢰하던 우상들은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다. 

그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야말로 욕망의 투영체다. 

아이돌은 사람들의 인기를 먹고 영향력이 커진다. 

군중 심리에 의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더욱 커진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상인지 이제 깨닫는다. 

인생의 실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자신의 세계과 고집에 갇히게만 한다. 

그런 신들의 세계에 핵폭탄을 던지신다. 

이 날은 이집트의 신들이 산산히 부서지는 날이다. 

 

하나님은 이집트의 신들을 벌 주신다. 

그들을 심판하신다. 

이집트 신들 배후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그 신들 앞에서 권력놀음을 하던 기득권들을 심판하신다. 

그 신들은 각 가정에서 벌어질 맏이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무력한 신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동안 9가지 재앙으로도 충분히 드러났지만, 이제 카운터 펀치다. 

하나님은 이집트의 신들을 심판하신다. 

 

이 날은 영원히 기념하고 지켜야 할 날이다. 

우주 역사상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다고 해서 그 재앙이 넘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이나 했을까?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은 산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그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을 따르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얻는다. 

그러니 이 날은 영원히 기념하고 지켜야 할 날이 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어야 산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이 흘린 피로 가족과 개인의 머리와 몸에 발라야 한다. 

그분의 살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그분께 순종하고 신뢰를 표현해야 한다. 

그럼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서 생명을 얻게 된다. 

예수님은 직접 자신의 피와 살을 먹으라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어야 산다.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서 다시 성만찬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예수님이 영원히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피와 몸을 먹고 마시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우리는 십자가의 구원과 심판을 바라본다. 

그리고 계속 상기시켜 나가고 그 곳에 머물 수 있다. 

그분을 묵상하고 상상할 수 있다. 

다시 성만찬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3일간 피정에 들어간다.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시간

성령님을 더 깊이 의지하는 시간

주님의 생각으로 채우는 시간

내 욕심을 버리고, 내 방식을 버리는 시간. 

그렇게 3일간의 피정이 되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놀라운 유월절을 재정하신 하나님, 

당신의 구원을 봅니다. 

구약과 신약이 이렇게 이어지니 감사합니다.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렇게 연결시키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유월절 사건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시 기억합니다. 

유월절 사건을 재현하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유월절 사건의 예를 들어 인류 구원의 길을 이해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존중하며 찬양합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합니다. 

저와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주의 일하심을 보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10. 17. 김혁수

 

[본문_창세기 28:10-22_새번역]

10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하란으로 가다가, 11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12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13주님께서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14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것이다.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16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17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곳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18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삼아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위에 기름을 붓고, 19 이름을 베델이라고 하였다. 성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다. 20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21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22제가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0. 들어가며 

- 통치의 방향과 방식 

10 들어 주간, 우리는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세상을 그저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에덴의 비전을 회복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대리 통치자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조화롭게 돌보길 원하셨습니다. 에덴의 비전으로의 회복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 방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번째 방식은 무엇인가요? 맞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대로부르심입니다. 데라를 부르시고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공간으로 부르십니다. 

 

- 번째?

오늘은 하나님의 통치 방식의 번째입니다. 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통치하십니다. 통치를 떠올리면 법률, 규정, 재판, 행정 조치 등이 먼저 생각나곤 합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입니다. 법과 규정이 없으면 세상을 돌아가지 않습니다. 헌법과 법률을 근거를 나라를 통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의 근간은 그분의 은혜입니다. 그런지 오늘 본문을 통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베델의 은혜 

1)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오늘 본문에서는 야곱이 등장합니다. 아브람의 아들이 이삭이고, 이삭의 둘째 아들이 야곱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야곱은 도망가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가고 있어요. 여러분, 지명 중에 조금 익숙한 지명이 보이시나요? 지난 주에 데라의 가족들은 바빌로니아 우르라는 도시를 떠나 처음에 어디에 정착했나요? 그렇습니다. 바로 하란입니다. 하란에 아브라함의 친척들이 살고 있었죠. 그럼 브엘세바는 어딘가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60Km 떨어져 있습니다. 가나안 남쪽에 위치하고 있고, 아래에는 네게브라는 사막 같은 광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지역에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이 정착을 했구요.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장자의 권리를 빼앗습니다. 에서는 힘도 세고 사냥도 잘했습니다. 형의 미움을 받아 죽겠다 싶었던 야곱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외삼촌 라반을 찾아 하란으로 여행중입니다. 

 

2) 베델에서의 하룻밤 

북쪽으로 올라가던 브엘세바에서 80km 떨어진 루스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삼사일을 빠르게 걸어야 도착할 있는 거리입니다. 형의 살해 위협을 피해 삼사일을 처음가는 길을 따라 북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란까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쉽게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피곤한 몸을 눕힙니다. 하루 종일 걸어본 사람은 알죠. 눕자 마자 잠에 빠져듭니다. 그리곤 꿈을 꿉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가 있고,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리고 꼭대기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분은 야곱을 축복하십니다. 

 

13주님께서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14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것이다.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주십니다. 위의 모든 사람들이 야곱을 통해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게 것이라는 하나님의 축복이 말씀이었습니다. 

 

3) 은혜로 부르심 

하나님은 야곱에 대해 은혜를 베푸십니다. 도망자, 처량한 신세, 돌베게를 베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외로운 여행을 떠난 야곱입니다. 형과 달리 야곱은 집안에서 곱게 자랐습니다. 어머니를 도와 음식과 집안일에 소질이 있었지 이렇게 야외에서 생활하는 것은 그에게 두려움을 주는 일이었을 겁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셨고, 축복과 함께 언약의 말씀을 주신 겁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사람을 부르시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부르심은 선물 혹은 은혜라고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에 의존하는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능력과 권세와 돈으로 기준을 세워 부르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계획에 의해 당신의 선물을 베푸십니다. 그것이 은혜인 것이죠. 야곱은 지금 하나님의 은헤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처량한 도망자 신세, 야생 동물들의 밥이 되거나 사냥이라면 당대 최고의 사냥꾼이었던 에서의 추적으로 죽을 수도 있는 신세하루 종일 걸어서 피곤하기도 하겠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돌베게가 눈물에 젖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의 비참한 신세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은혜가 하나님의 번째 통치 방식입니다. 

 

2. 역사속 은혜의 순간들

1) 이집트의 히브리인

좀더 예를 들어 볼까요! 이집트에서 고통받던 히브리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반응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방식으로 통치를 실현해갑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집트의 왕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고된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렀다. 하나님 그들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의 종살이를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셨다.”(출애굽기 2:23-25)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 민족은 자신들의 고통에 못이겨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들 조상의 하나님께 SOS 치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에 반응하고 계십니다. 에덴 비전을 회복시키는 방향을 가지고 제사장 나라로 이스라엘을 만들기 위해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을 구출하시죠. 은혜를 베푸신 겁니다. 

 

2) 페르시아 시대 예루살렘

비슷한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여러분, 솔로몬 시대에 최전성기의 국력을 자랑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우상 숭배를 하자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공격을 받아 포로가 되고 맙니다.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지역에서 새롭게 일어난 나라가 페르시아였는데요, 페르시아 통치 시대,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벽이 없어서 크게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부르짖음과 기도에 응답하시는 장면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있습니다.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가 말이다. 이십년 기슬르월, 내가 도성 수산에 있을 때에, 2나의 형제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다에서 왔기에, 이리로 사로잡혀 오지 않고, 곳에 남아 있는 유다 사람들은 어떠한지예루살렘의 형편은 어떠한지를 물어 보았다. 3그들이 나에게 대답하였다. “사로잡혀 오지 않고 지방에 남은 사람들은, 거기에서 고생이 아주 심합니다. 업신여김을 받습니다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에 탔습니다.” 4 말을 듣고서, 나는 주저앉아서 울었다. 나는 슬픔에 잠긴 채로 며칠 동안 금식하면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5아뢰었다.”(느헤미야 1:1-5)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고통 받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성벽을 다시 재건하고 안전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고 계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3) 로마 시대 유대인

마지막 예가 있습니다. 로마 시대 유대인의 삶도 고단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황제의 명령에 어쩔 없이 따랐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그들의 삶의 단면을 있습니다. 

 

“1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2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3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누가복음 2:1-3)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통치가 닿는 모든 곳의 사람들에게 호적을 하기 위해 자기 고향으로 가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제국의 인구를 파악하고, 그들을 통제하고, 세금을 걷게 하기 위한 다목적의 명령이었습니다. 명령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지 상상해 보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고향을 찾아야 합니다. 이게 고대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개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출해주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시므온 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25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누가복음 2:25)

 

예수님이 태어났을 , 그분이 이스라엘의 구원자되시는 분임을 알아본 안되는 사람이 바로 시므온이었습니다. 그는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그에게 엄청난 은혜였습니다. 

 

3. 은혜로 통치하심 

1) 약속 & 약자 

우리는 이런 예들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은 능력과 돈이 많은 사람들보다는 고통받는 약자들에게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사람보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참고 인내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그는 힘과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장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꿈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끝까지 신뢰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집트에서 고생하던 히브리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랬던 겁니다. 페르시아 시대의 예루살렘의 주민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사방에서 공격을 받았으며 고통스런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로마시대의 유대인들도 비슷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렸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러면서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경향성을 갖고 계십니다. 

 

2)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대리 통치 

이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걸까요? 이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나타나셔서 도움을 주시는 걸까요? 그것은 은혜를 입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리 통치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교만하고 자기 성취가 강한 사람은 대리 통치를 거부하곤 합니다. 그들은 대리 통치가 아니라 단독 통치를 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밑에서 세상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탑이 되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세상을 맘대로 주무르기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보다 자신의 성공, 명예, 부를 우선시 합니다. 그들은 고통의 자리에 머무르기보다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을 쉽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봤자, 선물을 자신을 위해 사용합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처럼 자신들이 신이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배반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리 통치자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과의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며, 고통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좋아하시는 겁니다. 그들이 비록 고통의 트라우마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때로는 그로 인해 실수도 많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태도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4. 나가며 

- 눈물의 베개

하나님은 밤에 야곱의 눈물의 돌베게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하셨던 약속을 야곱에게도 하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눈물의 베게는 무엇인가요? 때로 잠을 설치게 만드는 고통스런 상황은 무엇인가요?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제대로 이루는 밤은 없었나요? 하나님은 자신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약점이 많아 고통받는 사람에게 은혜로 다가오십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의 일을 맡기십니다. 여러분이 만약 그런 사람이라면 오늘 밤에 이렇게 기도하면서 잠이 들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은 신뢰합니다. 당신이 저에게 주신 약속을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상황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듭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구원해 주세요

눈물의 베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불러오는 좋은 통로가 있습니다. 

그분의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기]

1. 하나님은 당신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통 속에서 당신에게 부르짖는 사람에게 은혜 주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하나님과의 약속을 소중히 생각하나요? 아픔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계시나요?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2. 혹시 최근 여러분의 정서 상태는 어떠한가요? 슬픔, 아픔, 고통, 두려움, 외로움, 좌절, 실망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나요? 우리는 이런 아픔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아픔에 찾아와주셔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함께 드립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는 사람의 특징이 있나요?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를 베푸신다고 생각하나요?       

 

2. 최근에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던 사건이 있었나요? 무엇이었나요? 사건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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