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30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니,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입니다.

 

10 “내가 이스라엘을 처음 만났을 때에, 광야에서 만난 포도송이 같았다. 내가 너희 조상을 처음 보았을 때에, 제 철에 막 익은 무화과의 첫 열매를 보는 듯하였다. 그러나 바알브올에 이르자, 그들은 거기에서 그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바치고, 우상을 좋아하다가 우상처럼 추악해지고 말았다.11 이제 에브라임은 새와 같은 꼴이 될 것이다. 에브라임의 영광은 새처럼 날아갈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는 일도 없고, 여인들이 임신하는 일도 없고, 아기를 낳는 일도 없을 것이다.12 이미 낳아서 기르는 자식들은, 내가 빼앗을 것이다. 한 아이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백성을 버리는 날에, 재앙이 이 백성에게 닥칠 것이다.”13 “내가 보기에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습니다만, 에브라임이 제 자식들을 살인자에게 끌어다 주게 되었습니다.14 주님, 그들에게 벌을 내리십시오! 주님께서는 무슨 벌을 내리시고자 하십니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를 주시고, 젖이 나지 않는 가슴을 주십시오.”

 

15 “이 백성의 온갖 죄악은 길갈에서 시작된다. 내가 그들을 미워하기 시작한 것도 길갈에서다. 하는 짓이 악하니, 그들을 나의 집에서 쫓아내겠다. 다시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이라는 것들도 모조리 나를 거슬렀다.16 에브라임은 그 밑동이 찍혀서 뿌리가 말라 버렸으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자식을 낳는다 하여도, 그들이 낳은 귀여운 자식들을 내가 죽게 할 것이다.”

17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나의 하나님이 백성을 버리실 것이다. 그 백성은 만민 사이에서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다.

 

 

NIV

Ephraim’s glory will fly away like a bird- no birth, no pregnancy, no conception(11절).

 

 

주석

11절. 여기서 ‘에브라임의 영광’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많은 자녀를 의미한다(IVP 성경주석).

13절.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정치적 혼란에 휩쓸리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납게 돌진해 온 앗수르 군대에 그 가족들을 노출시키도록 만든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절망적이다. 

이스라엘을 처음 만났을 때는 희망이 넘쳤다. 

광야를 걷다 먹기 좋은 포도송이를 만난다. 

오랜 갈증을 풀어주는 꿀맛이요 꿈맛이다. 

제 철 과일이 얼마나 맛있는가! 

무화과의 첫 열매를 기다리는 마음, 드디어 첫 열매를 맛보는 순간, 이 모든 절정들이 흘러간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더 좋아했다.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의존이 사라지고,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우상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결국 우상처럼 되어 추악하고 더럽혀졌다. 

성전에는 창녀들이 제사장 노릇을 한다. 

몰렉 신은 자녀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이교적 행위는 보편적 윤리 의식을 저버린다. 

하나님의 율법은 내팽겨지고 추악한 우상을 따라 욕망의 화신이 된다. 

종교 행사가 변질되니, 일상에도 영향을 준다. 

가장 거룩해야 할 신 앞에서의 행위도 타락하니, 나머지 일상은 그저 추악의 반복이다. 

더 이상 회복을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스라엘의 영광은 날아가고, 그들의 비전도 사라진다. 

욕망과 비전은 다르다. 

욕망은 지극히 이기적인 열망의 발로요, 비전은 공공의 유익을 위한 소망의 발로다. 

사명과 비전은 사라지고, 욕망만 남아 사람들을 추악의 함정으로 내몬다. 

절망적이다. 

 

하나님의 최종 판단은 심판이다. 

그들을 자신의 땅에서 떠나 만국의 떠돌이가 되게 하시겠단다. 

본문 한 구절만 보면, 서글프고 아쉽고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하고 싶다.

그러나 호세아 시대를 조망하면 하나님이 이해된다. 

사람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고 싶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한 행동을 보면, 하나님도 이해가 된다. 

오죽하면 자신의 선지자에게 고멜을 아내로 삼게하고, 아이들의 이름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실까!! 

자신을 구원한 참 신을 버리고, 반역하고, 그 땅을 살육의 현장으로 만든 자들을 벌하시는 것이 당연한 일로 보인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성경에서 지울 수 없다. 

내 입맛에 맞게 하나님을 재단할 수 없다. 

그분은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며, 그리고 용서도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분의 자유다. 

나도 내 자유가 있듯이 그분도 그분의 자유가 있다. 

사실 그분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크다. 

그분이 당신의 자유를 극대화하면 나의 자유는 없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자유를 줄여가면서까지 나의 자유를 확보해주셨다. 

이런 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들은 그분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 할 말이 없어진다. 

그분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분의 판단 앞에 겸허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교회는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의 본분이다. 

자신들의 의식이 확장되고, 지식이 축적되고, 관점이 넓어진다고 해서, 하나님과 우주를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성육신의 신비, 교회의 신비를 다 안다고 말하지 말자. 

그분의 자유와 뜻을 다 헤아린다고 주장하지 말자.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분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일이다. 

이해하기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해를 넘어서는 요소를 인정하라는 말이다.

아무리 아이들이 똑똑해도 부모의 사랑과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때로 부모는 아이를 위해 소리쳐야 하는 순간이 있다. 

때로 부모는 아이를 위해 침묵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혹시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 신뢰하겠다고 말하는 똑부러진 7살 어린이 같이 행동하는 것은 아닌가. 

 

교회들이 더 이상 우상숭배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돈의 우상, 권력의 우상, 욕망의 우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높아진 그 어떤 것도 우상이다. 

팀 켈러정의에 따르면, 가짜 신, 즉 우상이란 “우리의 삶에 아주 중심적이고 본질적이어서 만약 그것을 잃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란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삶의 의미 100%를 두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팀 켈러는 “인간의 마음이 우상 공장”이라고 썼다.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마음을 살피지 않는 교회 지도자가 그 자리에 있으면 교회는 결국 우상 숭배를 하게 된다. 

 

돈과 권력을 주의하라. 

지도자들이여, 주의하라. 

나여! 주의하라. 

 

[오늘의 기도]

우상 숭배로 점철되어 있는 한국 사회와 교회를 용서하여 주세요. 

한국 교회의 예배가 과연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리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여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게 돕고 있는지는 아닌지 돌아봅니다. 

절실한 필요를 주님께 아뢰는 것이 어찌 문제가 되겠습니까! 

문제는 절실한 필요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뜻을 구하면서 생기는 절실한 필요가 아니라, 자신의 유익과 편안을 추구하면서 생기는 절실한 필요가 아닌가요. 

주님, 저와 우리 교회를 다시 회복시켜 주소서. 

진정한 부흥을 허락하소서. 

진정한 부흥은 마음의 우상을 버리고,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상 밖으로 넘쳐나는 겁니다. 

이런 부흥이 일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2월 14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 달을 한 해의 첫째 달로 삼아서,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알리어라. 이 달 열흘날 각 가문에 어린 양 한 마리씩 곧 한 가족에 한 마리씩 어린 양을 마련하도록 하여라.

4 한 가족의 식구 수가 너무 적어서, 양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없으면,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을 계산하여, 가까운 이웃에서 그만큼 사람을 더 불러다가 함께 먹도록 하여라.

5 너희가 마련할 짐승은 흠이 없는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 골라라.

6 너희는 그것을 이 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해 질 무렵에 모든 이스라엘 회중이 모여서 잡도록 하여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다가, 잡은 양을 먹을 집의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야 한다.

8 그 날 밤에 그 고기를 먹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함께 먹어야 한다.

9 너희는 고기를 결코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서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 할 것 없이, 모두 불에 구워서 먹어야 한다.

10 그리고 너희는 그 어느 것도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이 있으면,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11 너희가 그것을 먹을 때에는 이렇게 하여라.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서둘러서 먹어라. 유월절은 주 앞에서 이렇게 지켜야 한다.

 

12 그 날 밤에 내가 이집트 땅을 지나가면서,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을 모두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의 모든 신을 벌하겠다. 나는 주다.

13 문틀에 피를 발랐으면, 그것은 너희가 살고 있는 집의 표적이니,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은, 그 피를 보고 내가 너희를 치지 않고 넘어갈 터이니, 너희는 재앙을 피하여 살아 남을 것이다.

14 이 날은 너희가 기념해야 할 날이니, 너희는 이 날을 주 앞에서 지키는 절기로 삼아서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켜야 한다."

 

주석

달력(1-11절) 이 사건 때문에 아빕월(후에 니산월이라고 불림)이 이스라엘 종교력의 첫 달이 되었다. 일반 달력에 의하면 여섯 달 후인 티쉬리월이 첫 번째 달이었으며, 따라서 그 달에 ‘설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달력은 음력으로서 주기적으로 양력에 맞추어 조정했다. 아빕월은 춘분 이후의 첫 번째 초승달이 뜰 때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보통 3월 중순이었으며 4월 중순까지 이어졌다(IVP 배경주석). 

 

어린 양(3절) 바울은 주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이라는 신약의 강조점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결정적 새 출발로 부른다(BST 출애굽기).

주님은 유월절 식사에 대해 가르치십니다(1-10절). 유월절이 있는 달이 한 해가 시작하는 달이 되고, 유월절은 영원히 기념해야 할 절기가 됩니다(2, 14절). 유월절 그날 밤에 주님은 이집트 땅의 처음 난 것을 모두 치시고, 이집트의 모든 신을 벌하십니다(12절). 그러나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재앙을 피해 살아남습니다(13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은 위대한 새 시작의 날(2절)입니다. 또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노예의 비참함에서 해방과 자유로 도약한 놀라운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은 신앙적 행위입니다. 내 인생의 유월절은 무엇입니까? 내가 속한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기억하고 기념하는 신앙적 행위를 계획하고 실천해 봅시다.

 

[오늘의 묵상]

이날을 기다려왔다. 

하나님의 능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날,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가 동시에 드러나는 날,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드러나는 날, 

이날을 기다렸다. 

 

편하게 먹는 날은 아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서둘러서 먹어야 하는 날이다. 

웃으며 먹기가 어려운 날이다. 

5분 대기조 같은 느낌이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엄청난 전쟁을 치르기 전 몸에 단백질을 채우는 과정 같다. 

편하게 즐기면서 먹는 날이 아니다. 

 

이 날은 이집트의 신들이 압사 당하는 날이다. 

이집트의 신들로는 이 재앙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이 기대하고 신뢰하던 우상들은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다. 

그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야말로 욕망의 투영체다. 

아이돌은 사람들의 인기를 먹고 영향력이 커진다. 

군중 심리에 의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더욱 커진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상인지 이제 깨닫는다. 

인생의 실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자신의 세계과 고집에 갇히게만 한다. 

그런 신들의 세계에 핵폭탄을 던지신다. 

이 날은 이집트의 신들이 산산히 부서지는 날이다. 

 

하나님은 이집트의 신들을 벌 주신다. 

그들을 심판하신다. 

이집트 신들 배후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그 신들 앞에서 권력놀음을 하던 기득권들을 심판하신다. 

그 신들은 각 가정에서 벌어질 맏이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무력한 신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동안 9가지 재앙으로도 충분히 드러났지만, 이제 카운터 펀치다. 

하나님은 이집트의 신들을 심판하신다. 

 

이 날은 영원히 기념하고 지켜야 할 날이다. 

우주 역사상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다고 해서 그 재앙이 넘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상상이나 했을까?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은 산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그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을 따르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얻는다. 

그러니 이 날은 영원히 기념하고 지켜야 할 날이 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어야 산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이 흘린 피로 가족과 개인의 머리와 몸에 발라야 한다. 

그분의 살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그분께 순종하고 신뢰를 표현해야 한다. 

그럼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서 생명을 얻게 된다. 

예수님은 직접 자신의 피와 살을 먹으라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어야 산다.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서 다시 성만찬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예수님이 영원히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피와 몸을 먹고 마시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우리는 십자가의 구원과 심판을 바라본다. 

그리고 계속 상기시켜 나가고 그 곳에 머물 수 있다. 

그분을 묵상하고 상상할 수 있다. 

다시 성만찬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3일간 피정에 들어간다.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시간

성령님을 더 깊이 의지하는 시간

주님의 생각으로 채우는 시간

내 욕심을 버리고, 내 방식을 버리는 시간. 

그렇게 3일간의 피정이 되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놀라운 유월절을 재정하신 하나님, 

당신의 구원을 봅니다. 

구약과 신약이 이렇게 이어지니 감사합니다.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렇게 연결시키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유월절 사건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시 기억합니다. 

유월절 사건을 재현하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유월절 사건의 예를 들어 인류 구원의 길을 이해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존중하며 찬양합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합니다. 

저와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주의 일하심을 보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10. 31. 김혁수

 

[본문_출애굽기 12:29-36_새번역]

29한밤중에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것들을 모두 치셨다. 임금 자리에 앉은 바로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감옥에 있는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두 치시니, 30바로와 그의 신하와 백성이 한밤중에 모두 깨어 일어났다이집트에 통곡소리가 났는데, 초상을 당하지 않은 집이 집도 없었다. 31바로는 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서 말하였다. “너희와 너희 이스라엘 자손은 어서 일어나서, 백성에게서 떠나가거라. 그리고 너희의 요구대로, 너희는 가서 너희의 주를 섬겨라. 32너희는 너희가 요구한 대로, 너희의 양과 소도 몰고 가거라. 그리고 내가 복을 받게 빌어라.” 33 이집트 사람은우리 모두 죽게 되었다하면서이스라엘 백성에게어서 땅에서 떠나라 재촉하였다. 34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반죽이 부풀지도 않았는데, 반죽을 그릇째 옷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나섰다. 35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의 말대로 이집트 사람에게 은붙이와 금붙이와 의복을 요구하였고, 36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사람에게 환심을 사도록 하셨으므로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요구대로 내어 주었다. 이렇게 하여서, 그들은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물건을 빼앗아 가지고 떠나갔다.

 

0. 들어가며 

- 하나님의 통치

9월은 창조의 하나님을 묵상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조하실 ,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계셨죠. 사람들로 하여금 돌봄 통치를 대행하게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우주는 하나님의 성전이었고, 에덴은 하나님의 지성소였죠. 속에서 사람들은 제사장의 역할, 대리 통치자의 역할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습니다. 스스로가 신이 되려고 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성소에서 쫓겨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계획이 폐기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들에 대한 꿈과 계획이 있었습니다. 에덴에 대한 비전을 회복하는 이었죠. 회복을 위해 그분은 직접 인간사에 개입하셔서 통치하십니다. 통치의 하나님을 우리는 지난 10 동안 계속 살펴 보았습니다. 통치의 방향은 회복이고, 그를 위해 세상의 방식이 아닌 그분만의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시는데, 사람들을 부르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약속을 주시고 약속에 의거해서 행동하심으로 통치하십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히 교리적 진술로 소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의 내용입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묵상하며 기도하고, 통치의 하나님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겁니다. 교리든 이야기든 우리의 기도와 통합되지 않으면 떠다니는 정보에 불과합니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 뿌리내려지는 진리가 되어 나의 것이 되려면 기도 속에서 끊임없이 묵상되고 기억되고 되뇌여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통치의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바로 그분의 심판입니다. 사실 오늘 설교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은혜, 그분의 부르심과 약속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과연 사랑의 하나님이 진짜 심판을 한단 말인가? 이런 의문이 들곤 합니다. 어떤 신학자들 마냥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기 하되 예수님의 사랑으로 모두 구원하신다는 생각을 붙잡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심판의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반역한 사람들의 처참한 결말에 대해 결코 묵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불편하지만 이야기를 살펴봐야 것입니다. 

 

- 요셉을 통한 복은 어디에? 

이집트 총리 요셉을 통해 하나님은 전세계가 복을 누리도록 일하셨습니다. 세계적 기근을 준비했고, 이집트는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기근 속에서도 살아남은 안남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요셉의 가문을 업신여겼습니다. 극도의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자신들을 부국으로 만들어준 요셉의 가문을 핍박하고 박해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요셉의 후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이집트를 심판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심판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 10가지 심판

1) 이집트의

여러분, 이집트의 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은 이집트에 이런 무지막지한 심판, 재앙을 내리시는 걸까요? 이집트가 오랫동안 우상을 숭배해왔기 때문일까요? 맞는 말일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았지만, 그들 자신들의 신을 오랫동안 섬겨왔습니다. 어떤 죄가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요셉의 자손들을 정당한 이유없이 박해했습니다. 그들을 노예로 삼아 무지비한 노동에 내몰았습니다.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면 죽여 버렸습니다. 부모로서는 도저히 참을 없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멸종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괴롭힌 이집트의 죄일까요? 그것도 맞는 말일 겁니다. 분명 이것도 이집트의 죄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우리가 묵상했던 흐름을 이어가보면, 이집트의 죄는 하나님의 에덴 비전으로의 회복을 가로막는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이집트 땅의 복을 흘려 보내주셨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당연히 하나님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나일강을 믿었고, , , 별을 믿었고, 소나 개구리 여러 가지 동물들을 믿었습니다. 요셉을 통해 에덴의 비전이 회복되길 원하신 하나님은 이집트 파라오의 거부로 인해 다시 차질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2) 이집트의 신들 

이에 하나님은 이집트의 신들을 하나 하나 심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10가지 재앙이죠. 피개이파 가독우메 어장, 나일 강을 피로 바꿔 버리십니다. 개구리와 이와 파리가 사람들을 괴로힙니다. 가축들이 죽고, 독종 악성 종기가 생기고, 우박이 내리고, 메뚜기가 사방에서 닥치는 대로 갉아 먹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의 신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으며, 개구리의 신이 자신들의 다산을 책임지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자신들은 신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여겼는데, 이나 파리, 메뚜기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번성하는 농경문화의 중심 요소인 가축들이 죽어나갑니다. 자신들의 몸에 생긴 악성 종양으로 밤새 피가 나도록 긁어도 간지럽고 아픕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섬기던 신들을 찾아 제사를 드리고 기도했겠지만 돌아오는 것은 말할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지역의 작은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으로는 부족했겠죠. 그들은 자신들의 최고의 신인 태양 신을 찾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하나님께서 태양을 가리신 겁니다. 히브리 민족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는 빛이 비추는데, 나머지 이집트 지역은 칠흙같은 어둠이 삼일 동안 깔리는 겁니다. 이건 충격 그자체입니다. 자신들이 의지하던 신들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환한 빛으로 가득한 고센 땅을 바라보며 여호와 하나님만이 신이라는 생각을 그제서야 다시 하게 되었을 겁니다. 

 

3) 하나님과 맞서는 파라오

이런 재앙과 심판 속에서도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노동력을 끝까지 붙잡아 두려고 합니다. 어둠이 내린 3 동안 파라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이스라엘 민족의 인구수가 많아지자 남자아이들을 죽이는 정책을 펴서 민족을 말살시키려고 했던 그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들이 사라지는 것은 참을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적절한 인구수로 노예가 계속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했겠죠.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의 통로에서 노예로 전락시킨 파라오와 당시 권력자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에덴 비전의 회복을 위해 특별히 부르고 선택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의 자손들이 비전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죽어가는 상황을 그냥 참고 보실 없었던 겁니다. 

 

2. 회복을 거부하는 자의 최후 

1) 맏아들의 죽음 

결국 오늘 본문의 심판을 맞이하게 됩니다. 파라오부터 모든 이집트인의 가족 첫째 남자, 가부장제의 권력 계승자들을 죽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집트의 리더들이 죽은 겁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할 있는 시스템의 근간, 첫째 아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 비전의 회복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자들의 시스템의 뼈대를 부숴버리십니다. 바벨탑과 도시를 지어 자신들만의 문명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언어를 혼란케 하시어 뿔뿔히 흩어지게 하신 것처럼 이집트의 근간을 흩어버리셨습니다. 

 

2) 강제된 순복

이쯤 되니까 파라오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모세와 이스라엘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가축과 금은을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가능하면 빨리 떠나라고 합니다. 10개의 재앙과 심판으로 끝날 같지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앞으로 재앙과 심판이 찾아오면 어쩌지라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쫓듯 내보냅니다.  

 

33 이집트 사람은우리 모두 죽게 되었다하면서이스라엘 백성에게어서 땅에서 떠나라 재촉하였다.

 

3) 심판

이렇게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의 방향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습니다. 부르심을 받아 은혜로 세워진 사람들과 약속을 하시고 약속을 지키심으로 통치하시는 그분이 일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심으로써 다시 계획이 실행되도록 만드십니다. 심판이 하나님의 통치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심판은 단순히 죄에 대한 보복이 아닙니다.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고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은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통치의 최종 수단입니다. 심판을 통해 에덴의 비전에 반대하는 사람과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부르심과 은혜와 약속의 사람들을 복권시키십니다. 그렇게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통치가 가속화됩니다. 이것이 심판의 본질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주적 심판이 되는 겁니다. 사단과 죽음의 권세를 무력화시키시고, 부르심, 은혜, 약속의 사람들인 예수님의 제자들을 대리 통치자로 복권시키십니다. 그렇게 회복을 위한 돌봄 통치가 가속화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어떻게 우주적 심판이 되는지 보이시죠! 

 

골로새서 2:13-15

13 여러분은 죄를 지은 것과 육신이 할례를 받지 않은 때문에 죽었으나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14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15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셔서, 사람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

 

3. 하나님의 통치의 완결 

1) 회복, 부르심, 은혜, 약속 그리고 심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통치의 흐름을 이제 보았습니다. 그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통치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세상은 정복하기 위해 사람들을 징집하고 경쟁 속에서 무한 확장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파국, 파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에덴의 평화와 관계를 회복시키십니다. 이를 위해 사람 사람을 부르시고 은혜로 세워가십니다. 그에게 약속을 주시고 하나님도 약속에 제한을 받으시죠. 그러다가 이런 하나님의 통치에 대적하고 반대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통치 방향을 유지하십니다. 

 

2)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에덴의 회복의 모습을 가장 보여준 이스라엘의 왕이 누군줄 아세요? 맞습니다. 솔로몬입니다. 솔로몬 이스라엘은 최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성전과 강력한 통치 권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왕국을 짓고 세상의 모든 지혜로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요, 소문이 세계에 퍼져나갔습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려고 견문, 견학을 하러 옵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기운이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지헤롭다는 솔로몬이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이방인 아내들의 설득에 빠져 온갖 우상을 들여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땅을 둘로 나누어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뒤에도 하나님의 통치 방향에 어긋나게 나라를 이끌던 북이스라엘을 앗수르를 통해 멸망시키십니다. 남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습니다. 

 

4. 나가며 

- 회복의 주체인가? 방해꾼인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회복의 비전에 참여하고 있나요?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나요? 아님 비전을 방해하고 있나요? 세계 돌봄 통치의 대리 통치자로서 살아가고 있나요? 아님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작은 세상의 주인 행세, 하나님 행세를 하고 있나요? 이제 이런 질문들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저와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대리통치자로 참여하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부르시기만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선물과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를 주신 그분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나가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약속을 지키길 원하십니다. 그래야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복의 방향에서 벗어나서 우리 맘대로 약속을 깨고 회복의 방향을 방해하고 훼방하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심판의 본질이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회복의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부르심, 은혜, 약속의 사람들을 복권시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함께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합시다. 에덴의 비전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합시다. 여러분 자신만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에 참여합시다. 그분의 대리 통치자가 되어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공간을 에덴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함께 합시다. 이제 11월입니다. 2021년을 마무리하고 2022 계획하는 시기입니다. 그동안 청년부 운영위원들이 최선을 다해 섬겨주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2022년에 운영위원으로, 소그룹 리더로, 찬양팀으로 섬기길 원하시는 분들은 저에게 혹은 운영위원들에게 말씀해 주세요. 청년 공동체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각자의 가정, 학교, 직장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죠. 하지만, 청년 공동체 속에서 실감나게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회복을 위해 살아가자고, 그런 공동체를 만들자고, 명시적으로 말하고 공부하고 기도하고 실천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통치의 하나님을 반복하여 말하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통치의 방향인 에덴 비전의 회복, 통치 방식인 부르심, 은혜, 약속, 심판에 대해 떠올리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통치가 마음에 뿌리내리도록 기도합시다.  

 

2.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가 되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청년들이 자신의 세계에 갇히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꿈과 비전으로 마음과 생각이 채워지도록 기도합시다. 더불어 우리 청년 공동체를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합시다. 운영위원회에 속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의 통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통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요?  

 

2. 나와 우리 공동체는 하나님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체입니까? 어떤 면에서 그렇고, 어떤 면에서 그렇지 않습니까

2021 04 16 금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3-4월호

여는 기도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내려주소서.


1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2이를테면, 여러분의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금반지를 끼고 들어오고, ,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합시다.

3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당신은 거기 있든지, 발치에 앉든지 하오하고 말하면,

4바로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6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제하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7여러분이 받드는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8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라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9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 받게 됩니다.

10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조목에서 실수하면, 전체를 범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11“간음하지 말라하신 분이 또한살인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인을 하면, 결국 사람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12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13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야고보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사람을 대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1).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람의 외모나 옷차림에 따라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은, 사람을 차별하며 판단하는 것입니다(2-4).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가난한 자들이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십니다(5-7).


율법은 우리에게이웃 사랑 가르치며, 일부를 어긴다 해도 율법을 범한 것이므로 심판을 받는다고 경고합니다(8-11). 율법을 완성하시고 사랑의 본이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역시 이웃 사랑의 계명을 따릅니다(12-13). 요즘 우리는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외모나 경제적 형편, 정치적 성향 등으로 차별하거나 판단하지는 않는지 돌아봅시다.

 

——

차별 금지

 

1. 난해함 

역시 야고보서는 난해하다. 

때로 성경 저자가 명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가지 관점으로, 딜레마 혹은 트릴레마 없이 평이하게 이해되는 글로 적혀 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바울의 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야고보의 글은 너무 단도직입적이다. 

바울의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에서 보이는 신학적 진술, 그리고 토대 위에 설계된 생활 윤리, 공동체 윤리이렇게 집을 지어가야 이해가 그나마 쉬울 텐데, 야고보는 단도직입적으로 시험에 인내하라, 분노하지 말고 조심하라, 그리고 차별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지혜서 같기도 하고, 규정집 같기도 하고, 여튼 신학이 정확히 노출되지 않아 익숙하지 않고 어떤 토대에서 말하는지 흐릿해서 불편한 부분이 있다. 

 

전문맥도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자유를 주는 율법같은 개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적용되는 상황에서도 율법의 기능을 강조하는 야고보의 언급이 빨리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교회의 초기 지도자 야고보는 복음과 율법의 관계에서 특별한 갈등과 긴장을 보이고 있지 않다. 

그는 둘을 통합해서 조화롭게 생각하고 있다. 

생각을 한번 따라가 보고 싶다. 

 

2. 차별

확실히 야고보서는 개인의 윤리가 아니라 공동체 윤리에 관심이 많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원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 

부자와 빈자 사이에 놓인 차별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 

야고보가 사용한 논리가 눈에 들어온다. 

 

1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차별해야 하지 않아야 하는 번째 이유는, 야고보의 형제 자매가 우리가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영광의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부자/빈자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하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들은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번째 이유도 적고 있다. 

 

5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세상을 다스리면서, 혹은 개입하시면서 사용했던 방식 중에 빈자를 택해 믿음의 부요한 사람들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 

부자들은 쉽게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곤 한다. 

부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 빈자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운영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으로 많은 결정을 내려왔고, 많은 일들을 왔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이고, 보수적이고, 수호에 적극적이고, 이기적이며, 자기애적이다. 

어쩔 없다. 가진 것이 많으면 그렇게 밖에 없다. 

가진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생각의 메커니즘, 행동의 방식이 고착화된다.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추진하게 된다. 

부자의 논리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한참 어렵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 하나님 나라는 빈자들의 자리가 있다. 

그들에게도 동일한 권리가 생겼다.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통치하고 관리하고 경영하는 권리가 생긴 것이다. 

부자들에게만 주어졌던 권리가 이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번째 이유도 있다. 

생각보다 치밀하다. 

야고보가 생각하는 번째 이유는, 율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12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율법의 주요 강령은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다. 

예수님도 바울도 이에 동의했다. 

으뜸가는 율법을 지키는 중요한 방법이 바로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부자와 빈자를 구별해서 다르게 대우하지 말라는 것이다. 

율법의 정신을 제대로 살아내라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혼자 산다면 굳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 

그저 하나님께 시기에 맞춰 예배하고 찬양하면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공동체적, 사회적 존재이기에 율법이 필요하고, 율법은 개인과 공동체를 자유하게 한다. 

자유란 무엇이든지 있는 자유가 아니라, 서로를 해하지 않을 있는 자유까지 포괄한다. 

죄를 짓지 않을 있는 자유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욕구대로 하면, 자유를 얻을 없다. 

욕구대로 하면, 이웃 아니라, 가족과 자기 자신조차도 해를 입는다. 

그러니 율법은 포괄적(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복음이 들어와 사람들을 용서하고 은혜가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율법이 가져다 주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복음이 죄인을 용서한다해도, 여전히 율법이 필요하다. 

복음이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주는가? 율법도 그렇다.

물론 억압과 부자유의 율법이 있을 있다. 그러나 자유를 주는 율법이 있다. 

대표적인 율법이 바로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같은 것이다. 

 

 

3. 의미심장한 13 

13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사실 13절의 의미는 모르겠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유하게 하는 율법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자비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율법의 종속 개념엔 심판이 있다. 율법이 있다면 심판도 있다. 

그렇다면 자유하게 하는 율법에도 심판이 있는가? 

아마 그럴 것이다. 자유하게 하는 율법도 율법이니 심판이 규정되어 있다. 

야고보가 생각하는 자유하게 하는 율법에 따르는 자유하게 하는 심판은 혹시자비 방점이 찍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13절이 의미심장하다. 

솔직히 야고보가 13절을 이유를 모르겠다.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했을까? 

뭔가 깊은 의미가 숨겨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오늘 의미를 깨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니, 조금 천천히 음미해 보고 싶다. 

 

 

——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신 예수님,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먹이시고 치료하셨던 예수님, 

당신을 닮아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그런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4.16 이상하게 슬픕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명확한 사고의 원인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의문이 많습니다. 

차별하지 않으시는 주님께서 고통당하는 자들의 신원, 원한을 풀어주세요. 

 

복음이 가져다 주는 자유의 율법이 곳곳에 적용되도록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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