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31. 김혁수

 

[본문_출애굽기 12:29-36_새번역]

29한밤중에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것들을 모두 치셨다. 임금 자리에 앉은 바로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감옥에 있는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두 치시니, 30바로와 그의 신하와 백성이 한밤중에 모두 깨어 일어났다이집트에 통곡소리가 났는데, 초상을 당하지 않은 집이 집도 없었다. 31바로는 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서 말하였다. “너희와 너희 이스라엘 자손은 어서 일어나서, 백성에게서 떠나가거라. 그리고 너희의 요구대로, 너희는 가서 너희의 주를 섬겨라. 32너희는 너희가 요구한 대로, 너희의 양과 소도 몰고 가거라. 그리고 내가 복을 받게 빌어라.” 33 이집트 사람은우리 모두 죽게 되었다하면서이스라엘 백성에게어서 땅에서 떠나라 재촉하였다. 34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반죽이 부풀지도 않았는데, 반죽을 그릇째 옷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나섰다. 35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의 말대로 이집트 사람에게 은붙이와 금붙이와 의복을 요구하였고, 36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사람에게 환심을 사도록 하셨으므로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요구대로 내어 주었다. 이렇게 하여서, 그들은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물건을 빼앗아 가지고 떠나갔다.

 

0. 들어가며 

- 하나님의 통치

9월은 창조의 하나님을 묵상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조하실 ,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계셨죠. 사람들로 하여금 돌봄 통치를 대행하게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우주는 하나님의 성전이었고, 에덴은 하나님의 지성소였죠. 속에서 사람들은 제사장의 역할, 대리 통치자의 역할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습니다. 스스로가 신이 되려고 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성소에서 쫓겨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계획이 폐기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들에 대한 꿈과 계획이 있었습니다. 에덴에 대한 비전을 회복하는 이었죠. 회복을 위해 그분은 직접 인간사에 개입하셔서 통치하십니다. 통치의 하나님을 우리는 지난 10 동안 계속 살펴 보았습니다. 통치의 방향은 회복이고, 그를 위해 세상의 방식이 아닌 그분만의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시는데, 사람들을 부르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약속을 주시고 약속에 의거해서 행동하심으로 통치하십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히 교리적 진술로 소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의 내용입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묵상하며 기도하고, 통치의 하나님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겁니다. 교리든 이야기든 우리의 기도와 통합되지 않으면 떠다니는 정보에 불과합니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 뿌리내려지는 진리가 되어 나의 것이 되려면 기도 속에서 끊임없이 묵상되고 기억되고 되뇌여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통치의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바로 그분의 심판입니다. 사실 오늘 설교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은혜, 그분의 부르심과 약속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과연 사랑의 하나님이 진짜 심판을 한단 말인가? 이런 의문이 들곤 합니다. 어떤 신학자들 마냥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기 하되 예수님의 사랑으로 모두 구원하신다는 생각을 붙잡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심판의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반역한 사람들의 처참한 결말에 대해 결코 묵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불편하지만 이야기를 살펴봐야 것입니다. 

 

- 요셉을 통한 복은 어디에? 

이집트 총리 요셉을 통해 하나님은 전세계가 복을 누리도록 일하셨습니다. 세계적 기근을 준비했고, 이집트는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기근 속에서도 살아남은 안남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요셉의 가문을 업신여겼습니다. 극도의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자신들을 부국으로 만들어준 요셉의 가문을 핍박하고 박해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요셉의 후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이집트를 심판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심판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 10가지 심판

1) 이집트의

여러분, 이집트의 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은 이집트에 이런 무지막지한 심판, 재앙을 내리시는 걸까요? 이집트가 오랫동안 우상을 숭배해왔기 때문일까요? 맞는 말일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았지만, 그들 자신들의 신을 오랫동안 섬겨왔습니다. 어떤 죄가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요셉의 자손들을 정당한 이유없이 박해했습니다. 그들을 노예로 삼아 무지비한 노동에 내몰았습니다.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면 죽여 버렸습니다. 부모로서는 도저히 참을 없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멸종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괴롭힌 이집트의 죄일까요? 그것도 맞는 말일 겁니다. 분명 이것도 이집트의 죄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우리가 묵상했던 흐름을 이어가보면, 이집트의 죄는 하나님의 에덴 비전으로의 회복을 가로막는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이집트 땅의 복을 흘려 보내주셨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당연히 하나님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나일강을 믿었고, , , 별을 믿었고, 소나 개구리 여러 가지 동물들을 믿었습니다. 요셉을 통해 에덴의 비전이 회복되길 원하신 하나님은 이집트 파라오의 거부로 인해 다시 차질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2) 이집트의 신들 

이에 하나님은 이집트의 신들을 하나 하나 심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10가지 재앙이죠. 피개이파 가독우메 어장, 나일 강을 피로 바꿔 버리십니다. 개구리와 이와 파리가 사람들을 괴로힙니다. 가축들이 죽고, 독종 악성 종기가 생기고, 우박이 내리고, 메뚜기가 사방에서 닥치는 대로 갉아 먹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의 신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으며, 개구리의 신이 자신들의 다산을 책임지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자신들은 신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여겼는데, 이나 파리, 메뚜기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번성하는 농경문화의 중심 요소인 가축들이 죽어나갑니다. 자신들의 몸에 생긴 악성 종양으로 밤새 피가 나도록 긁어도 간지럽고 아픕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섬기던 신들을 찾아 제사를 드리고 기도했겠지만 돌아오는 것은 말할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지역의 작은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으로는 부족했겠죠. 그들은 자신들의 최고의 신인 태양 신을 찾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하나님께서 태양을 가리신 겁니다. 히브리 민족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는 빛이 비추는데, 나머지 이집트 지역은 칠흙같은 어둠이 삼일 동안 깔리는 겁니다. 이건 충격 그자체입니다. 자신들이 의지하던 신들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환한 빛으로 가득한 고센 땅을 바라보며 여호와 하나님만이 신이라는 생각을 그제서야 다시 하게 되었을 겁니다. 

 

3) 하나님과 맞서는 파라오

이런 재앙과 심판 속에서도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노동력을 끝까지 붙잡아 두려고 합니다. 어둠이 내린 3 동안 파라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이스라엘 민족의 인구수가 많아지자 남자아이들을 죽이는 정책을 펴서 민족을 말살시키려고 했던 그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들이 사라지는 것은 참을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적절한 인구수로 노예가 계속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했겠죠.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의 통로에서 노예로 전락시킨 파라오와 당시 권력자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에덴 비전의 회복을 위해 특별히 부르고 선택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의 자손들이 비전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죽어가는 상황을 그냥 참고 보실 없었던 겁니다. 

 

2. 회복을 거부하는 자의 최후 

1) 맏아들의 죽음 

결국 오늘 본문의 심판을 맞이하게 됩니다. 파라오부터 모든 이집트인의 가족 첫째 남자, 가부장제의 권력 계승자들을 죽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집트의 리더들이 죽은 겁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할 있는 시스템의 근간, 첫째 아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 비전의 회복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자들의 시스템의 뼈대를 부숴버리십니다. 바벨탑과 도시를 지어 자신들만의 문명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언어를 혼란케 하시어 뿔뿔히 흩어지게 하신 것처럼 이집트의 근간을 흩어버리셨습니다. 

 

2) 강제된 순복

이쯤 되니까 파라오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모세와 이스라엘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가축과 금은을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가능하면 빨리 떠나라고 합니다. 10개의 재앙과 심판으로 끝날 같지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앞으로 재앙과 심판이 찾아오면 어쩌지라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쫓듯 내보냅니다.  

 

33 이집트 사람은우리 모두 죽게 되었다하면서이스라엘 백성에게어서 땅에서 떠나라 재촉하였다.

 

3) 심판

이렇게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의 방향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습니다. 부르심을 받아 은혜로 세워진 사람들과 약속을 하시고 약속을 지키심으로 통치하시는 그분이 일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심으로써 다시 계획이 실행되도록 만드십니다. 심판이 하나님의 통치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심판은 단순히 죄에 대한 보복이 아닙니다.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고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은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통치의 최종 수단입니다. 심판을 통해 에덴의 비전에 반대하는 사람과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부르심과 은혜와 약속의 사람들을 복권시키십니다. 그렇게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통치가 가속화됩니다. 이것이 심판의 본질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주적 심판이 되는 겁니다. 사단과 죽음의 권세를 무력화시키시고, 부르심, 은혜, 약속의 사람들인 예수님의 제자들을 대리 통치자로 복권시키십니다. 그렇게 회복을 위한 돌봄 통치가 가속화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어떻게 우주적 심판이 되는지 보이시죠! 

 

골로새서 2:13-15

13 여러분은 죄를 지은 것과 육신이 할례를 받지 않은 때문에 죽었으나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14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15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셔서, 사람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

 

3. 하나님의 통치의 완결 

1) 회복, 부르심, 은혜, 약속 그리고 심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통치의 흐름을 이제 보았습니다. 그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통치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세상은 정복하기 위해 사람들을 징집하고 경쟁 속에서 무한 확장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파국, 파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에덴의 평화와 관계를 회복시키십니다. 이를 위해 사람 사람을 부르시고 은혜로 세워가십니다. 그에게 약속을 주시고 하나님도 약속에 제한을 받으시죠. 그러다가 이런 하나님의 통치에 대적하고 반대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통치 방향을 유지하십니다. 

 

2)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에덴의 회복의 모습을 가장 보여준 이스라엘의 왕이 누군줄 아세요? 맞습니다. 솔로몬입니다. 솔로몬 이스라엘은 최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성전과 강력한 통치 권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왕국을 짓고 세상의 모든 지혜로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요, 소문이 세계에 퍼져나갔습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려고 견문, 견학을 하러 옵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기운이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지헤롭다는 솔로몬이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이방인 아내들의 설득에 빠져 온갖 우상을 들여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땅을 둘로 나누어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뒤에도 하나님의 통치 방향에 어긋나게 나라를 이끌던 북이스라엘을 앗수르를 통해 멸망시키십니다. 남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습니다. 

 

4. 나가며 

- 회복의 주체인가? 방해꾼인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회복의 비전에 참여하고 있나요?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나요? 아님 비전을 방해하고 있나요? 세계 돌봄 통치의 대리 통치자로서 살아가고 있나요? 아님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작은 세상의 주인 행세, 하나님 행세를 하고 있나요? 이제 이런 질문들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저와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대리통치자로 참여하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부르시기만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선물과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를 주신 그분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나가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약속을 지키길 원하십니다. 그래야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복의 방향에서 벗어나서 우리 맘대로 약속을 깨고 회복의 방향을 방해하고 훼방하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심판의 본질이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회복의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부르심, 은혜, 약속의 사람들을 복권시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함께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합시다. 에덴의 비전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합시다. 여러분 자신만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에 참여합시다. 그분의 대리 통치자가 되어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공간을 에덴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함께 합시다. 이제 11월입니다. 2021년을 마무리하고 2022 계획하는 시기입니다. 그동안 청년부 운영위원들이 최선을 다해 섬겨주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2022년에 운영위원으로, 소그룹 리더로, 찬양팀으로 섬기길 원하시는 분들은 저에게 혹은 운영위원들에게 말씀해 주세요. 청년 공동체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각자의 가정, 학교, 직장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죠. 하지만, 청년 공동체 속에서 실감나게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회복을 위해 살아가자고, 그런 공동체를 만들자고, 명시적으로 말하고 공부하고 기도하고 실천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통치의 하나님을 반복하여 말하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통치의 방향인 에덴 비전의 회복, 통치 방식인 부르심, 은혜, 약속, 심판에 대해 떠올리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통치가 마음에 뿌리내리도록 기도합시다.  

 

2.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가 되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청년들이 자신의 세계에 갇히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꿈과 비전으로 마음과 생각이 채워지도록 기도합시다. 더불어 우리 청년 공동체를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합시다. 운영위원회에 속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의 통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통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요?  

 

2. 나와 우리 공동체는 하나님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체입니까? 어떤 면에서 그렇고, 어떤 면에서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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