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39 예수께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그를 따라갔다.

40 그 곳에 이르러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하신 뒤에,

41 그들과 헤어져서, 돌을 던져서 닿을 만한 거리에 가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42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43 [그 때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그에게 나타나서, 힘을 북돋우어 드렸다.

44 예수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

45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제자들에게로 와서 보시니, 그들이 슬픔에 지쳐서 잠들어 있었다.

46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들 자고 있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서 기도하여라.”

 

[주석]

45절. 이 이야기에서 베드로의 실패(제자들의 실패)는 그가 “잠”들어 기도하지 못한 것이다. “잠”은 은유적·종말론적 언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둠”의 자녀가 되지 않아야 한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 기도는 늘상 있는 일상이었다. 

올리브 산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곳이다. 

예수님은 그 스스로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의 신비가 여기서도 나타난다. 

세 분이 한 분이시고, 서로에게 순종하신다. 

 

성만찬 이후에 제자들 사이엔 언쟁이 있었다. 

예수님의 훈계성 가르침도 있었다. 

게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게 된다는 예언적 말씀도 있었다. 

혼란스럽다. 슬프다. 

갑자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부터, 자신의 몸과 피로 새로운 언약을 맺는다는 것도 아리송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도하러 가신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올리브산(감람산)으로 향한다. 

발걸음이 무겁다. 슬픔이 가득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바라보며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신다. 

 

베드로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에 안그래도 불안하고 불편하고 마음이 복잡하다. 

기도하라고 하시니, 불안한 마음에 기도를 시작한다. 

예수님은 저만치 떨어져 따로 기도하신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로 기도를 시작한다. 

아버지를 부르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구하고, 그리고 죄용서를 구하고 시험에 들지 말기를 위해 기도한다. 

주기도문에도 등장하는 “시험에 들게 마시고”라는 구절이 확 와 닿는다. 

지금 예수님은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요청하셨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기도할수록 예수님의 예언이 말씀이 떠나지 않는다. 

죽으실 거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귀에 윙윙 거린다. 

그렇게 복잡함과 슬픔이 가득한 기도의 시간이 흐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거운 마음은 가시지 않고, 슬픔의 정서는 더욱 맹렬해서 더이상 깨어 기도할 힘조차 없다. 

밤도 깊었고, 마음도 무거우니 스르르 잠이 든다.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 달라는 기도 소리는 잠잠해진다. 

 

예수님 홀로 힘써 기도하신다.

온 몸이 땀으로 가득하다. 

전심으로 최선을 다해 지속해서 기도하신다. 

이 잔을 옮겨 달라고 기도하신다. 

제자들이 떨어져 있었지만, 예수님의 처절한 기도는 계속해서 들린다. 

속으로만 침묵으로 기도하셨을 것 같지가 않다. 

땀 방울에 피가 섞여 나올 정도로 최선을 다해 기도하신다. 

기도의 중간 쯤, 예수님의 입에서는 이런 고백이 나온다. 

“이 잔을 옮겨 주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잔을 옮겨 달라는 예수님의 간청에 하나님은 마음 속으로 말씀하신다. 

‘내 뜻이 있다.’

그러자 이런 고백이 나온 것이다. 

 

제자들을 향해 쳐다보니, 제자들은 잠들어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다보면, 자칫 실망하고 절망하여 본 궤도에서 이탈하게 되는 제자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시험이다. 

자신의 생각, 계획과 달리 돌아가는 상황 앞에서 제자들은 큰 절망에 빠질 수 있다. 

엠마오로 돌아가는 제자들처럼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접으려고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그 뜻대로 이뤄지는 것을 수용하는 태도를 유지하려면 기도가 필수다. 

시험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기도를 통해 예수님처럼 고백해야 한다.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예수님의 간절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시간을 들여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라는 고백이 나올 때까지 나의 뜻과 소망을 기도로 분출할 필요가 있다. 

그 마음 속 열망을 아뢰고 또 아뢰고…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에 부딪힐 때까지 아뢴다. 

 

새힘을 달라 기도했다. 

사역을 위해 독수리와도 같은, 호랑이와도 같은, 말과 같은 새힘이 필요하다. 

기도 끝에 “정결이 힘이다” 말씀하시는 듯 싶다. 

오늘도 새힘을 달라 기도한다. 

간절히, 하나님 나라와 그의 백성들을 위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새힘을 주소서. 

 

 

[오늘의 기도]

우주적인 기도를 드리신 예수님, 

얼마나 힘써 기도하시면 땀에서 피가 나오셨나요! 

주님, 

주님의 기도를 배우고 싶습니다. 

인생의 위기 속에서 주님처럼 기도하게 하소서.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소원을 아룁니다. 

새로운 힘을 주세요. 

하나님 나라와 그의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힘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명령들을 따르고 지키기 위해서 새로운 힘이 필요합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에 새로운 힘을 공급해주시고, 

그 힘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도록 도와주세요.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해주세요. 

때로 슬픔에 지쳐, 피곤에 지쳐 잠들더라도 다시 일어나 기도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0월 14일 토요일

 

여는 기도

살아 있는 어느 누구도 주님 앞에서는 의롭지 못하니, 주님의 종을 심판하지 말아 주십시오.

 

3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와 자루와 신발이 없이 내보냈을 때에,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없었습니다.”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겨라, 또 자루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사람은, 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

3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무법자들과 한 패로 몰렸다'고 하는 이 성경 말씀이, 내게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나에 관하여 기록한 일은 이루어지고 있다.”

38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여기에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넉넉하다”하셨다.

 

[메시지]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다르다. 고난에 대비하여라. 힘든 시기가 닥쳐올테니, 필요한 것을 챙겨라. 너희 겉옷을 전당 잡혀서 칼을 구하여라. ‘그는 범죄자와 한 무리로 여겨졌다’고 기록된 성경 말씀의 최종 의미는 나에게서 완성된다. 나에 기록된 모든 것이 이제 결말로 다가가고 있다.”(36-37절) 

 

[오늘의 묵상]

예수님은 이사야 53장을 자신에 대한 예언으로 보신다. 

고난받는 종에 대한 묘사는 예수님이 가야 할 길이다. 

그분은 말씀을 성취하신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약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이사야 53:5)

 

“그가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여기면, 그는 자손을 볼 것이며, 오래오래 살 것이다.”(이사야 53:10)

 

“자기의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고, 죄지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중재에 나선 것이다.”(이사야 53:12) 

 

예수님은 이런 이사야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신다. 

자신의 삶은 이미 예견되었다. 

온 인류를 위해 속건제물이 되기로 결정하셨다. 

죄 지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신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제물이 되신 것이다. 

우주의 왕이 인간이 되어 죽음을 선택하신 이야기다. 

나는 그런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되어 주님의 사랑받는 존재로 선다. 

 

예수님은 이제 돈주머니와 자루를 챙기라고 하신다. 

칼도 필요하다고 하신다. 

일차적으로는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이차적으로는 이제 제자들은 정말 먼길을 가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교여행을 보낼 때는 사실 긴 여행은 아니었다. 

며칠 동안 진행된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의 선교여행은 며칠이 아니라 몇달, 몇년이 걸리는 일이다. 

선교여행에 필요한 돈도 필요하고, 들고 다녀야할 짐도 많을 것이기에 자루나 가방도 필요하다. 

게다가 여행중에 길에서 자야하는 순간도 있을 텐데, 캠핑을 하려면 칼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선교여행을 위한 준비에도 소홀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예수님은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칼을 사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말고의 귀를 왜 고쳐주셨겠는가? 

칼로 독립전쟁을 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죽으러 오신 것이다. 

칼은 선교 여행 용이다. 

 

지금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두 가지 자세를 두루 갖춰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다. 

다른 하나는 선교적 삶을 위한 철저한 준비다. 

이 두 가지는 같이 가져가야 한다. 

먼저 전적인 신뢰란 돈과 준비가 부족해도 떠나는 것이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떠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떠나야 한다. 

모든 자원이 다 떨어지면 그 때 돌아오면 된다. 

그럼에도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선교적 삶은 단기 선교 여행이 아니다. 

선교적 삶은 장기 선교 정착이다. 

그러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돈도 필요하고, 비자도 필요하고, 계절과 기후에 맞는 옷도 필요하다. 

나와 가족들을 보호할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후원자도 필요하고, 기도 동역자도 필요하다. 

할 일이 많다. 

 

그분에 대한 신뢰와 철저한 준비.

모순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공존과 병행이 가능하다. 

 

선교사의 삶을 시작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축복한다.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들이 끝까지 이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기도의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하나님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대화하고 응답을 받는 일이 더욱 많아지길 소망한다. 

 

부르짖는 기도는 사역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마음 중심의 열망을 하나님께 소리내어 아뢴다. 

그분을 부르고, 그분께 마음 중심의 열망을 뜨겁게 표현한다. 

수많은 흩어지는 생각들을 흘려보내고, 마음 중심의 열망을 찾는다.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부른다. 

그리고 열망을 쏟아낸다. 

충분히 쏟아냈으면 이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린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진심을 원하신다. 

우리 영혼의 진정한 열망을 원하신다. 

 

 

[오늘의 기도]

캠퍼스 선교사로 저를 부르신 예수님, 

주님을 신뢰합니다.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당신이 가라시면 가고, 멈추라하시면 멈추겠습니다. 

당신이 용기를 주시면 더욱 열심히 감당하겠습니다. 

 

주님, 

더 깊은 기도로 나아가게 도와주세요. 

기도 속에서 주님의 모습과 느낌과 음성을 경험하게 하소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도와 주세요. 

지혜를 주셔서 사람들을 잘 도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8월 14일 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1 주님, 주님께서 나의 간구를 들어주시기에,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2 나에게 귀를 기울여 주시니, 내가 평생토록 기도하겠습니다.
3 죽음의 올가미가 나를 얽어 매고, 스올의 고통이 나를 엄습하여서, 고난과 고통이 나를 덮쳐 올 때에,
4 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 간구합니다. 이 목숨을 구하여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5 주님은 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며, 우리의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다.
6 주님은 순박한 사람을 지켜 주신다. 내가 가련하게 되었을 때에,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
7 내 영혼아, 주님이 너를 너그럽게 대해 주셨으니 너는 마음을 편히 가져라.
8 주님, 주님께서 내 영혼을 죽음에서 건져 주시고, 내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주시고, 내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여 주셨으니,
9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 보시는 앞에서 살렵니다.

The Message
God takes the side of the helpless;
when I was at the end of my rope, he saved me(6절).

[오늘의 묵상]
시인은 첫 문장부터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무서운 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정말 무서워서 억지로 하는 사랑 고백이다. 
사랑 고백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에 하는 경우가 있다. 
사랑 고백이 신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다. 
이것은 진정한 사랑 고백은 아니다. 

다른 한 가지는 정말 사랑스럽기 때문에 하는 고백이다. 
고통스런 순간에 도움을 주셨다. 
살아갈 용기를 그분이 제공하셨다. 
죽게 되는 순간, 고난과 고통이 덮쳐 오는 순간, 하나님은 시인을 도와주셨다. 
시인의 목숨을 구해 주신 것이다. 
자신을 구해주신 분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사랑의 고백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순간에 기대하지 않은 도움의 손길이 찾아온다. 
전혀 생각지 못한 도움이 찾아온다. 
감사가 절로 나온다. 
사람의 손길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발견한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한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쉽지 않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 모든 연쇄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기도하고 싶어한다.
시인은 평생 주님 앞에서 살겠다 결심하고 고백한다. 
주님께 기도하는 내용은 주님에 대한 칭찬들이다. 
은혜롭고, 의롭고, 긍휼이 많으신 분. 도움을 주시는 너그러운 분… 
자신의 약점과 부족한 점을 아는 사람들은 주님의 은혜와 긍휼과 너그러우심이 너무 고맙다. 
그러면서도 그분이 부당하게 차별하거나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라 의로운 분이라는 사실도 참 고맙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시다. 

오늘 내가 드려야 하는 기도는, 우리 주님의 은혜와 긍휼과 너그러우심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의로우신 분이심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이다. 
시인처럼 다시 주님을 묵상한다. 
주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지금 묵상글을 작성하는 중에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의 제목은 “주님 사랑해요”이다. 
오랫동안 불러왔던 찬양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불렀다. 
가난했던 가진 것이 별로 없었던 나를 지금까지 살게 하시고, 회복시키시고, 하나님 나라 위에 일하도록 불러 주셨다. 
그래서 난 예수님을 사랑한다. 
그래서 난 예수님을 찬양한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사랑합니다. 
가난했던 한 소년을, 가진 게 없고 먹을 것도 별로 없었던 그 소년을 보호하시고 키워주시고 돌봐주셨습니다. 
많은 부족함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위해 조금이라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고, 찬양하는 마음이 더욱 자라납니다. 
저의 사랑과 찬양을 받아주소서. 
오늘 하루 더욱 깊이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걱정하는 마음, 불안한 마음, 긴장하는 마음…
최소한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만이라도 그런 마음들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안심하며 말하길 원합니다. 
찬양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6월 06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12 예수께서 어떤 동네에 계실 때에, 온몸에 나병이 든 사람이 찾아 왔다. 그는 예수를 보고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청하였다. "주님,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서, 그에게 대시고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시니, 곧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갔다.

14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된 것에 대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서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아라."

15 그러나 예수의 소문이 더욱더 퍼지니, 큰 무리가 그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모여들었다.

16 그러나 예수께서는 외딴 데로 물러가서 기도하셨다.

 

ESV

And Jesus stretched out his hand and touched him, saying, “I will; be clean.” And immediately the leprosy left him(13절).

 

주석

나병이 든 사람(12절) 나병 환자는 그저 몸만 아픈 게 아니었다. 그는 추방당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저 건강만 잃은 것이 아니라 가족, 친구, 집, 생계를 잃었다. 어느 누구도 그와 교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BST 누가복음).

 

[오늘의 묵상]

1. 터치

나병(한센병, 문둥병) 환자는 사회적 병자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몸도 아파서 서러운데, 가족과 친구도 그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그는 극단적인 외로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나병과 같은 피부병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여겼던 이스라엘 사회 속에서는 그야말로 살 길이 없었다. 

아무도 그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몸에 나병이 든 환자의 몸에 손을 대셨다. 

그리고 나병이 고쳐졌다. 

 

이 병자가 얼마나 병을 앓았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초기 환자라면 앞으로의 자신이 겪게 될 숱한 고통의 삶을 비관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나병으로 고통받았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찾았을 것이다. 

더이상 방법이 없었다. 

심한 나병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절단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살이 문드러지는 상황을 바라봐야만 했다. 

 

예수님은 전염병이라는 나병을 그냥 말씀으로만 치료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손을 대어 치유하셨다. 

그리고 율법에 따라 몸이 깨끗해졌음을 제사장에게 알리라 하셨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사회적 회복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온전한 회복이다. 

몸만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관계로 회복되어야 한다. 

사람은 그렇게해야 사람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를 치유하신다. 

몸도 마음도 사회적 관계도 치유하신다. 

예수님은 전인적으로 온전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그분 앞에 있어야 우리는 온전하게 살 수 있다. 

사랑하며 살 수 있게 된다. 

용서하며 살 수 있게 된다. 

용서를 구하면 살 수 있게 된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된다. 

이게 자유다. 

단순히 속박에서 풀리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 이것이 자유다. 

 

2. 외딴 곳

많은 사람을 만나셨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셨다. 

그냥 잠을 청하시는 것이 좋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외딴 곳을 찾으셨다. 

그리고 기도하셨다. 

눈코 틀새 없이 바쁘지만, 바쁨에 노예가 되지 않으셨다. 

기도의 자리를 내어 기도의 순간으로 들어가셨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교제하신다. 

예수님이 원하는 것을 아버지께 아뢴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는 분이셨다. 

아무데서나 기도할 수 있는 분이셨고, 굳이 소리를 내지 않아도 기도할 수 있는 분이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따로 시간과 장소를 찾으셨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인생의 중대사 앞에서 기도해야 하는 것을 물론이고, 일상 속에서도 기도해야 한다.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눈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우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기 위해 잠시 머문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기도한다. 

 

사람을 고치고 치료하는 것만큼 중대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생명을 살리고, 새로운 삶을 주는 것만큼 위대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럼에도 잠시 멈추고 외딴 곳으로 가야 한다. 

기도하기 위해서다. 

 

오늘도 사람들을 만난다. 

오랜 지인들이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기를 소망한다. 

잠시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의 장소와 시간을 확보한다. 

 

생각해보면 기도할 사람들이 참 많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귀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하나님의 사랑으로 건강하고 즐겁고 능력있게 살아가길 소망한다. 

예수님이 나병 환자에게 기대했던 것처럼 나도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시는 예수님, 

당신의 회복의 능력을 믿습니다. 

사람들을 회복시키어 당신의 일꾼으로 삼아 주소서. 

제 주변에 믿음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시 찾아 가셔서 믿음을 회복시켜주소서. 

저는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댈 용기가 없습니다. 

그런 용기까지는 아니어도, 고통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용기는 허락하소서.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그 자리에 머물러 줄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소서. 

그래서 단 한 명이라도 회복될 수 있다면, 

단 한 명이라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굳건히 설 수 있다면, 

그런 삶, 기도의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의 모든 스케쥴을 주님께 맡깁니다. 

연락해야 할 사람, 만나야 할 사람, 이야기 나눠야 할 사람, 

무엇보다 가장 가까이서 저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게 하소서. 

사단의 유혹을 이겨내고 주님의 뜻을 실현케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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