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8월 07일 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9 이스라엘아,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님은, 도움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다.

10 아론의 집이여,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님은 도움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다.

11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님은, 도움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다.

 

12 주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여 주셔서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며,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신다.

13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니, 낮은 사람, 높은 사람, 구별하지 않고 복을 주신다.

14 주님께서 너희를 번창하게 하여 주시고, 너희의 자손을 번창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15 너희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주님에게서 복을 받은 사람이다.

 

16 하늘은 주님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다.

17 죽은 사람은 주님을 찬양하지 못한다. 침묵의 세계로 내려간 사람은 어느 누구도 주님을 찬양하지 못한다.

18 그러나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할렐루야.

 

The Message

The heaven of heavens is for God,

but he put us in charge of the earth(16절).

 

[오늘의 묵상]

시인은 계속 반복한다. 

주님은 도움이 되시고, 방패가 되어 주신다. 

그분은 우리의 큰 도움이시다. 

환난이 오고, 슬픔이 오고, 괴로움이 찾아 올 때, 그분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분이시다. 

사단의 공격이 찾아오고, 환경의 어려움이 다가오고, 무거운 피곤함이 몰려와도 그분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 

그러니 우리는 그분을 의지할 수 있다. 

시인은 주님을 의지하라고 말한다. 

이런 인식에 도달하는 것은 자연히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역사가 증명해야 한다. 

자신의 경험도 추가되어야 한다. 

한 두 번의 사건으로 이런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 

오랜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보며,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은혜를 돌아보며 생겨난 인식이다. 

 

시인이 두 번째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첫째는 보호였다며, 둘째는 복이다. 

첫째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전제로 하는 부정적 상황에서의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면, 

둘째는 미래 비전과 소망을 전제로 하는 긍정적 상황에서의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보호와 함께 복을 주신다. 

시인은 번창이 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번성하는 것, 번창하는 것, 가정과 기업과 자손이 번창하는 것은 분명 복이 맞다. 

하지만 그게 진정한 복은 아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과의 연합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시를 읽다보면 기업인들은 아마도 자신의 기업이 잘 되고 번창하고 성공하는 것을 복이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그것도 복이다. 

다만, 진정한 복은 아니다. 

그 기업을 통해 삼위 하나님의 연합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진정한 복이다. 

 

보호와 번창의 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을 영원히 찬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요청되는 영성은 십자가를 경험하면서 찬양하는 영성이다. 

예수님은 사실 보호받지 못했다. 

번창의 복을 누리지도 못했다. 

도리어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 

죽음의 길을 갔다. 

그럼에도 그분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모든 뜻이 하나님께 달렸다 한다. 

욥은 자신의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원망을 인내하셨다. 

그리고 욥도 자신의 상황을 견뎠다. 

보호와 번창은 어쩌면 결과론일 수 있다. 

모든 순간, 모든 사안에 대해 동일한 보호와 번창의 복을 누리지는 못한다. 

그건 비현실적이고,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는다. 

때로는 보호막이 사라진 것 같고, 때로는 실패의 연속으로 자신의 꿈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결말은 아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충분히 찬양받으실 만한 결말을 제공하신다.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의 기도]

매 순간 기분 좋을 수는 없습니다. 

매 순간 즐거움을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슬프고, 고되고, 짜증나고, 지루하고, 격앙됩니다. 

그러나 종종 찾아오는 주님의 위로와 보호하심과 축복해 주심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월요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결코 할 일이 적지 않습니다. 

신경써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회피하지 않게 하시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을 경외함으로 일에 몰두하게 하소서. 

일은 사람을 돌보고 살립니다. 

그러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적극적으로 열정적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하소서. 

그 깨달음 속에서 주님의 보호하심과 번창케 하심을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7월 17일 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1 할렐루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2 지금부터 영원까지, 주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 것이다.

3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 것이다.

4 주님은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다.

5 주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어디에 있으랴? 높은 곳에 계시지만

6 스스로 낮추셔서, 하늘과 땅을 두루 살피시고,

7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리셔서,

8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백성의 귀한 이들과 함께 앉게 하시고,

9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조차도 한 집에서 떳떳하게 살게 하시며, 많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즐거워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 할렐루야.

 

The Message

He picks up the poor from out of the dirt, rescues the forgotten who’ve been thrown out with the trash,(7절)

 

주석

7-9절. 출애굽의 내적 실재에 관한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진실한가! 이 실재는 세상의 권력들에 대한 여호와의 통제에서부터 백성의 궁핍함에 대한 인식까지, 그리고 자녀들을 강제로 빼앗긴 어머니들의 절망적인 울부짖음에까지 이른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라고 시인은 외치며 요청한다. 

시인은 여기서 찬양인도자가 된다. 

모든 백성들을 이끄는 찬양인도자를 발견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너무 멋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그분은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이시지만 낮고 천한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셨다. 

스스로 낮추셔서 하늘과 땅을 두루 살피신다.(6절) 

왜 살피는가? 

이유는 한 가지다. 

가난한 사람들, 궁핍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서다. 

가나한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를 올려주신다. 

사회 고위층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도록 도우신다. 

고대 사회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의 삶을 돌보신다. 

경제적 능력이 현저히 줄어든 자들을 살려주신다. 

 

구약의 율법을 단순히 종교 의식법으로 제한하는 것을 잘 못 본 것이다. 

율법은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기술한 복지 사회법이다. 

율법은 백성 중에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많은 요소를 제한한다. 

애굽에서의 고통을 살피신 하나님은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에 진심이셨다. 

새로운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 질서가 잘 녹아든 당시에 보기 힘든 나라였다. 

시인은 바로 이런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요청한다. 

출애굽의 영웅이신 하나님!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시조이신 하나님!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구원과 성립이 시작되었다. 

그러니 할렐루야를 외칠 수 밖에!! 

 

나는 왜 할렐루야를 외치는가! 

그것은 그분이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시다가 

모든 인류의 처한 영적 현실, 물적 현실을 보시고 인간이 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오셨다. 

가난한 자, 병든 자, 갇힌 자, 눌린 자를 회복시키시고 살리시기 위해 오셨다. 

가장 높은 위치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다. 

심지어는 십자가의 가장 큰 수치를 당하시면서까지 참고 인내하셨다. 

그래서 나는 할렐루야를 외친다. 

 

오늘도 주님을 찬양한다. 

주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고 기억하여 찬양한다. 

수련회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일상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정말 제대로 찬양하고 싶다. 

 

 

[오늘의 기도]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에게 하신 일, 제 주변 사람들에게 하신 일, 

공동체에 하신 일을 돌아보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일을 쉬지 않겠습니다. 

시시때때로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들과 함께 더욱 높이겠습니다. 

 

전국에서 모이는 사역자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함께 기뻐 찬양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6월 05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1 하나님, 나는 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진실로 나는 내 마음을 확실히 정했습니다. 내가 가락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렵니다. 내 영혼아, 깨어나라.

2 거문고야, 수금아, 깨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

3 주님, 내가 만민 가운데서 주님께 감사드리며, 뭇 나라 가운데서 노래 불러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4 주님의 한결같은 그 사랑, 하늘보다 더 높고, 주님의 진실하심, 구름에까지 닿습니다.

5 하나님, 주님, 하늘보다 더 높이 높임을 받으시고, 주님의 영광 온 땅 위에 떨치십시오.

6 주님의 오른손을 내미셔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나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7 하나님께서 그 성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크게 기뻐하련다. 내가 세겜을 나누고,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련다.

8 길르앗도 나의 것이요, 므낫세도 나의 것이다. 에브라임은 나의 머리에 쓰는 투구요, 유다는 나의 통치 지팡이이다.

9 그러나 모압은 나의 세숫대야로 삼고, 에돔에는 나의 신을 벗어 던져 그것이 내 소유임을 밝히련다. 블레셋을 격파하고 승전가를 부르련다.”

10 누가 나를 견고한 성으로 데리고 가며, 누가 나를 에돔에까지 인도합니까?

11 아, 하나님, 우리를 정말로 내버리신 것입니까? 아,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시렵니까?

12 사람의 도움은 헛되니 어서, 우리를 도우셔서, 이 원수들을 물리쳐 주십시오.

13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승리를 얻을 것이다. 그분이 우리의 원수들을 짓밟을 것이다.

 

ESV

My heart is steadfast, O God!

I will sing and make melody with all my being!(1절)

 

주석

세겜, 숙곳(7-8절) ‘세겜, 숙곳’은 팔레스틴과 요단강 동편의 중심 지역들이고 ‘길르앗, 므낫세’는 요단에 걸쳐 있는 북쪽 지역들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땅을 대표한다. ‘에브라임, 유다’는 약속을 받은 주요 백성이다(IVP 성경주석).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확고히 하여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하심을 찬양합니다(1-5절). 주님께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셨던 약속을 상기합니다(6-9절). 그리고 에돔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원수들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기를 간청합니다(10-13절).

 

시인은 에돔과의 전쟁을 앞둔 긴박한 상황에서,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찬양하고(1-5절),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약속을 되새깁니다(7-9절). 전쟁의 승리를 위해 주변 나라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찾고 의지하는 기도를 드립니다(10-13절). 나는 곤란하고 어려운 상황 앞에서 어떤 존재를 찾고 의지하고 있습니까? 내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 약속을 기억하면서 문제 해결의 중심축을 하나님께로 옮겨 봅시다. 

 

[오늘의 묵상]

1. 확정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확정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며, 사람은 그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반응하여 마음을 확정하는 존재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찾을 수도 없고, 그분에 대한 마음을 자의적으로 정할 수도 없다. 

그런 하나님은 성경의 신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두려움의 화신이다.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고 자신에게 두기 위한 지도자들의 책략이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 즉 우주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들어 자연 만물을 공동통치하자고 초대하시는 하나님, 언약을 주시고 사람들을 계속해서 부르시는 하나님, 무엇보다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 줌으로써 끝까지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인간 보편의 정서에 반하므로, 사실 만들어지기 불가능한 신이다. 

그런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외부에 존재하고 그분이 직접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개입하셔야 한다. 

그 개입의 결과 우리 인간은 마음을 확정하게 된다. 

어떤 신을 섬길 것인가? 

이방신을 섬길 것인가, 아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신병을 주어 가스라이팅하는 신을 섬길 것인가? 자신을 몸소 내어주신 희생과 사랑의 신을 섬길 것인가? 

확정하는 일이 남았다. 

시인은 마음을 확정했다. 

역사속에 개입하셔서 이스라엘을 돕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로, 그분만을 찬양하기로 마음을 확정했다. 

 

마음은 자꾸 흔들린다. 

상황에 따라, 몸의 상태에 따라 기분이 오락가락한다. 

수치감, 짜증, 죄책감, 피곤함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스트레스를 더욱 자극한다. 

그런 마음 속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확정했다는 고백은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을 준다. 

내 기분의 어떠함의 문제가 아니다. 

내 존재와 내 미래를 그분께 맡긴다. 

나는 어떤 상황과 마음 속에서도 그분을 찬양하기로, 그분을 높이기로 결정한다. 

이것이 마음을 확정한다는 의미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부모의 당연한 마음일 것이지만, 때때로 사랑보다 자기 중심적 욕망이 더 크게 작용할 때가 있다. 

맘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아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시간을 들여 놀아줬는데, 즐겁게 놀다가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기분이 틀어져서 계속 꿍한 상태로 있는 아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 확 올라온다. 

몇 시간이 지나도 그 짜증이 계속된다. 

그런 짜증나는 마음 속에서도 다시 마음을 확정한다. 

내 사랑의 한계를 마주하면서도 다시 마음을 확정한다. 

부족함과 죄인됨을 직면하서도 다시 마음을 확정한다. 

사랑과 은혜의 주님을 바라본다. 

주님을 찬양한다. 

 

일주일에 한 번, 시편으로 내 마음을 확인하고 주님께 내 마음을 토로한다. 

좋은 루틴이다. 

정서적으로 다운 될 때, 몸과 마음에 짜증이 베어 날 때, 주님께 솔직히 토로한다. 

 

주님! 저도 마음을 확정합니다.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2. 우리를 정말로 버리신 겁니까? 

시인의 마음은 확정되었다. 

그는 평생 주님을 섬기기로, 평생 주님을 찬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도 삶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이방민족의 침략이 순식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평화의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사람들은 전쟁을 싫어하지만, 또한 전쟁을 좋아한다. 

모암과 에돔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침략하곤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 세계에서 전쟁은 일상적이었다.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 일어난다. 

전쟁은 사람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신의 대리전이다. 

자기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킨다. 

신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전쟁을 정당화한다. 

전쟁은 거의 파멸을 이끌고 오기 때문에 함부로해서도 안되며, 한 번 하면 꼭 승리를 해야 한다. 

 

시인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모암과 에돔과의 전쟁이 임박했다. 

시인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상황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하다. 

 

마음을 확정했던 시인이 우리를 버리신 거냐며 묻는 것이 사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시인은 두려움 속에서 마음을 확정했던 것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는 가운데서도 마음을 확정했던 것이다. 

전쟁의 위협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면서 마음을 확정하고 찬양하기 시작한다. 

눈에 확실한 승리에 대한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주님을 의지하기로 마음을 확정한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여러 위협이 찾아온다. 

앞으로의 공동체 상황, 그리고 나의 상황이 종종 풍전등화다. 

관계도 허약하고, 재정도 불안하다.  

사람들은 언제든지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한다. 

그 때마다 많은 극적인 변화들이 뒤따른다. 

변화는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집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조금만 실수해도 뒤로 나자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위기 속에서도 드는 생각 중 하나가, “하나님은 어디 계신 건가요?”이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신다는 생각이 들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이 공동체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시 마음을 확정하는 일이다. 

오직 주님만을 섬기겠다고 그분만을 찬양하겠다고 말이다. 

 

[오늘의 기도]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예수님,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고, 당신의 존재를 높여드립니다. 

제가 자랑할 것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과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당신을 자랑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고 즐겁습니다. 

세상은 사람을 띄웁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주님의 이름을 드높이고 싶습니다. 

예수님, 찬양받아주시고, 영광받으소서. 

마음이 흔들릴 때,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5월 15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10 사람이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살며, 고통과 쇠사슬에 묶이는 것은,11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가장 높으신 분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이다.12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고통을 주셔서 그들을 낮추셨으니, 그들이 비틀거려도 돕는 사람이 없었다.

13 그러나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그들을 그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다.14 어둡고 캄캄한 데서 건져 주시고, 그들을 얽어 맨 사슬을 끊어 주셨다.15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16 주님께서 놋대문을 부수시고, 쇠빗장을 깨뜨리셨기 때문이다.

 

17 어리석은 자들은, 반역의 길을 걷고 죄악을 저지르다가 고난을 받아18 밥맛까지 잃었으니, 이미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다.19 그 때에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그들을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다.20 단 한 마디 말씀으로 그들을 고쳐 주셨고, 그들을 멸망의 구렁에서 끌어내어 주셨다.21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22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주님이 이루신 일을 즐거운 노래로 널리 퍼뜨려라.

 

ESV

Some sat in darkness and in the shadow of death, prisoners in affliction and in irons, for they had rebelled against the words of God, and spurned the counsel of the Most High(10-11절).

 

주석

고통과 쇠사슬에 묶임(10절) 이 시를 바벨론 포로 귀환과 연결시키는 것은 일반적인 견해이다(IVP 성경주석).

 

인자하심(15절) 이 개념은 성경에서 여러 용어로 표현되었다. 구약의 주요 용어는 헤세드로, 이는 친절이나 은혜를 의미하며, 그의 백성을 자비롭게 대하도록 되어 있는 은혜로운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가리킨다(IVP 성경사전).

 

시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어두운 과거를 언급합니다(10-11절).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17-19절).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덕분에 포로 생활에서 해방된 것입니다(13-16절). 시인은 이러한 놀라운 구원을 경험한 사람 모두에게 주님께 감사드리는 삶을 살도록 촉구합니다(21-22절).

 

이스라엘은 자신의 의로움이나 자격으로 포로에서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근거합니다. 그렇기에 고통의 자리에서 해방된 자들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게 됩니다. 나는 오늘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일 수 있을까요? 감사의 마음이 어떤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해 봅시다.

 

[오늘의 묵상]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부르짖는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도와 줄 사람에게 호소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당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우리가 부르짖어야 할 대상은 사람이나 귀신이 아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인자하심이 영원하며 자비로우심이 위대하다. 

그분은 부르짖는 자들의 기도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죄로 인해 멸망했던 이스라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 

그들의 포로 생활을 끝내 주시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도록 인도하신다. 

 

피곤이 고난이 되는 경우는 그 피곤으로 인해 몸이 점점 망가진다는 사실을 알 때다. 

자기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할 일들의 중대성, 의무감 등으로 멈출 수 없을 때, 고통스럽다. 

노동이 고난이 된다. 

이집트의 히브리 노예들의 삶이 그러했다.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렸다. 

최근 몸이 고되다는 것이 느껴진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 

배워야 하고, 소통을 증진시켜야 하고,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고, 읽어야 하고, 만나야 하고, 그리고 기획해야 한다. 

나이 들면 조금은 쉬워질 줄 알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회가 바뀌고, 인구 구조가 바뀌니 과거에 내가 봐 왔던 어른들의 모습은 간 곳 없고, 난 여전히 과거와 똑같은 일들에 매달리고 있다. 

아이는 어리고, 가정은 여전히 챙겨야 할 것이 많다. 

쉬고 싶지만, 쉴 수 없는 환경… 

사실 가장 큰 원인은 나의 라이프 스타일 혹은 성격일 수 있다. 

성격상 조용히 있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환경이다. 

조용히 기도하고 싶고, 조용히 하나님과만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이게 점점 어려워진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점점 그 시간이 줄어든다. 

그나마 이렇게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하는 시간이 나를 잡아준다. 

고난 같지 않은 이 일상의 고난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나의 묵상은 하나님에 대한 부르짖음이다. 

조용히 글을 적지만, 마음은 불이다. 

 

책임감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분의 은혜가 절실하다. 

인자하심이 크신 그분의 도움이 절실하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로 노래를 부르라고 요청한다. 

22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주님이 이루신 일을 즐거운 노래로 널리 퍼뜨려라.

주님이 하신 일들을 노래로 표현하고 그 노래를 널리 퍼뜨리는 것.

그래서 시인도 이런 시들을 많이 쓰고 노래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주님이 하신 구원의 역사를 즐겁고 기쁜 노래로 부르는 것은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이다. 

뒤늦게 찬양사역자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찬양이 즐겁고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고 싶은 열망이 크다. 

하나님의 역사를 즐거운 찬양으로 부르고 다같이 기도하는 광경이 참 좋다. 

 

부르짖음과 노래가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예배다.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과 심사가 쏟아져 나오는 곳,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를 상기하고 기념하는 곳, 

그곳이 예배다. 

제발 그 예배가 더욱 치열하고 아름답게 드려지길 고대한다. 

솔직한 마음들이 쏟아지고, 그 마음 위에 하나님의 역사가 뒤덮는다면, 

인간은 살 용기를 얻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생의 의지를 다진다. 

 

주일의 예배든, 일상의 예배든 상관없다. 

인간의 모든 감정과 심사+하나님의 구원 역사… 이 둘이 만나는 곳… 

그 예배를 지금 드린다. 

 

 

[오늘의 기도]

사람의 모든 감정과 마음의 일들을 다 아시는 하나님, 

지금 이 순간 피곤함을 잠시 뒤에 두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내 마음을 아십니다. 

연약함을 아십니다. 

다시 시작할 힘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아십니다. 

그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주님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하셨던 그 놀랍고 신기한 일들을 기억합니다. 

사람들을 바꾸시고,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셨던 일들을 기억합니다. 

주님 그 기억이 더욱 선명해지게 하소서. 

선명하다 못해 깊은 찬양으로 터져나오게 하소서. 

저의 일상을 구원하소서. 

수 많은 일들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지켜나가게 하소서. 

그 모든 중요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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