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04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지휘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다윗의 믹담,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사람을 보내어서 그의 집을 감시하고 있을 때에 다윗이 지은 시]

 

1나의 하나님, 내 원수들에게서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를 치려고 일어서는 자들에게서 나를 지켜 주십시오.

2악을 지어내는 자들로부터 나를 구해 주시고, 피 흘리기 좋아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3그들이 내 목숨을 노리고 매복해 있습니다. 강한 자들이 나를 치려고 모여듭니다. 그러나 주님, 나에게 허물이 있는 것도 아니요, 나에게 큰 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4나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으나, 그들이 달려와서 싸울 준비를 합니다. 깨어나 살피시고, 나를 도와주십시오.

5주님은 만군의 하나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깨어나셔서 모든 나라를 차별 없이 심판하시고, 사악한 꾀를 꾸미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마십시오. (셀라)

6그들은 저녁만 되면 돌아와서, 개처럼 짖어 대면서, 성 안을 이리저리 쏘다닙니다.

7그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입술에는 칼을 물고서 "흥, 누가 들으랴!" 하고 말합니다.

8그러나 주님, 주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비웃으시며, 뭇 민족을 조롱하실 것입니다.

9나의 힘이신 주님, 주님은, 내가 피할 요새이시니, 내가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10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영접하려고 오실 것이니, 하나님께서 내 원수가 망하는 꼴을 나에게 보여 주실 것이다.

11내 백성이 그들을 잊을까 두려우니, 그들을 아주 말살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우리의 방패이신 주님, 주님의 능력으로 그들을 흔드시고, 그들을 낮추어 주십시오.

12죄가 그들의 입에 있고 그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죄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의 오만이 그들을 사로잡는 덫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들이 저주와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으니,

13주님의 진노로 그들을 멸하여 주십시오. 하나도 남김없이 멸하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스리고 계심을 땅 끝까지 알려 주십시오. (셀라)

14그들은 저녁만 되면 돌아와서, 개처럼 짖어 대면서, 성 안을 이리저리 쏘다닙니다.

15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배를 채우지 못하면, 밤새도록 으르렁거립니다.

16그러나 나는 나의 힘 되신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내가 재난을 당할 때에, 주님은 나의 요새,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기에, 아침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노래하렵니다.

17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하나님은 내가 피할 요새,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분."

 

 


1. 깨어나소서

 

하나님께 깨어나달라는 요청은 정당한가? 

하나님께서 주무시는 분도 아니고, 밤낮에 의해 일하고 쉬고를 반복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 표현은 시적 허용에 가깝다. 

하나님께서 시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마치 하나님께서 주무시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육체로 오셨기에 주무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은 육체에 한계에 매이지 않으신다. 

그분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사람들의 행동과 마음을 살피신다. 

 

하나님의 뜻, 즉 회복된 세상으로의 추동을 이뤄내기 위해 수많은 그분의 백성들의 삶을 살피신다. 

오늘 다윗의 삶도 그분의 눈 안에 있다. 

다윗은 그분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무엇보다 모든 나라를 차별 없이 심판하실 것을 요청드린다. 

그렇게 사악하고 교만하여 악을 뿌리고 다니는 포악한 자들을 처리해 달라고 요청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전 세계에 하나님의 인애와 그분의 공의를 선포하고 실천해야 하는 사명을 가졌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많은 나라들은 그들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택하고 남을 공격하고 살해하고 전쟁을 일으킨다. 

다윗은 공정한 심판을 요청한다. 

사악한 사람들이 심판을 받기를 바란다. 

 

그의 개인적인 기도는 전체 공동체가 공동으로 받아 함께 기도의 형태로 주님께 드린다. 

깨어나달라는 개인의 기도는 이제 공동체의 외침이 된다. 

노예의 삶, 불의한 대우, 죽음의 공포 속에서 외쳤던 이집트 속의 이스라엘을 떠올려 본다. 

그 때는 정말 백성 모두가 외치고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여야 했다. 

노동은 끝이 없었다. 

그 때에 비하면 다윗의 시대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그럼에도 다윗의 시를 가지고 노래하며 기도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함께 외치게 된다. 

사악한 자들을 심판해달라고, 공정하게 심판해 달라고 말이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외치는 부르짖음도 의미가 있으나, 

윤리의 위기, 공의의 위기 앞에서도 누군가는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일어나길 바라는 부르짖음 말이다. 

 

하나님, 깨어나소서. 

 

2. 아주 말살하지는 마소서. 

 

11내 백성이 그들을 잊을까 두려우니, 그들을 아주 말살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우리의 방패이신 주님, 주님의 능력으로 그들을 흔드시고, 그들을 낮추어 주십시오.

 

이 구절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다윗은 사악한 자들이 아주 말살되기를 바라지는 않고 있다. 

이유는 백성들이 그들을 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뭔가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악인이 심판받기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멸절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사람에 대한 인류 보편적 사랑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유를 잘 살펴보면, 단순히 악인의 생명을 빼앗기 싫어서라기보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이다. 

악인은 기억되어야 하는가? 

 

13주님의 진노로 그들을 멸하여 주십시오. 하나도 남김없이 멸하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스리고 계심을 땅 끝까지 알려 주십시오. 

 

그렇다면 13절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여기서는 하나도 남김없이 멸하여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다윗은 정신분열을 일으키고 있는가? 

같은 시에서 상충되는 요청을 하고 있다. 

 

내 머리도 혼미해지는 느낌이다. 

묵상의 길을 잃는다. 

시인이 생각하는 원수는 사울인가? 아님 악한 행동을 하는 일반적인 악인인가? 

이 혼란한 기도에 그저 남기를 선택하려고 한다. 

명확한 상황과 답을 알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겠지만, 

이렇게 한 시에 모순되는 요청이 있다는 사실을 아예 못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원래 사람의 감정은 오락가락하지 않는가? 

다윗의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 

기본적으로 원수들에 대한 분노가 있지만, 그들에 대한 연민도 있다. 

그들을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전력적인 계획도 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종잡을 수 없다. 

노래는 사람의 감정의 표현이다. 

 

3. 사랑받는 자

 

16그러나 나는 나의 힘 되신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내가 재난을 당할 때에, 주님은 나의 요새,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기에, 아침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노래하렵니다.
17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하나님은 내가 피할 요새,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분."

 

비록 원수들이 다윗을 압박해도 다윗의 자아상은 확고하다. 

그의 피난처, 요새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다. 

아침마다 찬양이 흘러 나온다. 

밤새 지켜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침부터 느낀다. 

그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다. 

그의 이런 막강한 자아상을 본받고 싶다. 

이건 다윗과 예수님이 가진 자아상이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임으로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자아상을 갖고 있어야 우리를 승리할 수 있다. 

수많은 원수들의 부정적인 피드백과 댓글들 속에서도 마음과 영혼이 상처입지 않으려면,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끝까지 믿고 신뢰하는 수 밖에 없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신다. 

그분의 은헤를 오늘도 찬양한다. 

 

 


주님, 

저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좋은 선물을 주신 것도 감사한데, 

예수님의 희생이라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선물을 주신 것도 감사한데, 

여전히 저를 사랑하신다니 감격입니다. 

그 사랑을 오늘도 경험하며 살길 원합니다. 

막강한 자아상을 갖고 살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09월 30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62이렇게 한 다음에, 왕 및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주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63솔로몬은 화목제를 드렸는데, 그가 주님의 제사에 드린 것은, 소가 이만 이천 마리이고, 양이 십이만 마리였다. 이와 같이 해서, 왕과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주님의 성전을 봉헌하였다.

64그리고 바로 그 날, 왕은 주님 앞에 있는 놋제단이, 번제물과 곡식제물과 화목제물의 기름기를 담기에는 너무 작았으므로, 주님의 성전 앞뜰 한가운데를 거룩하게 구별하고, 거기에서 번제물과 곡식예물과 화목제의 기름기를 드렸다.

65그 때에 솔로몬이 이렇게 절기를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이집트 접경을 흐르는 강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사는 큰 회중인 온 이스라엘이 그와 함께, 주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 이레 동안을 두 번씩 열나흘 동안 절기를 지켰다.

66둘째 이레가 끝나고, 여드레째 되는 날에 그가 백성을 돌려보내니, 그들은 왕에게 복을 빌고, 주님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온갖 은혜 때문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각자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각자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던 때가 그립다. 

솔로몬 시절에만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시대에도 수련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 갈 때, 

수련회에서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그분의 공동체를 느꼈을 때, 

하나님 나라의 작은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정말 기뻤고, 흐뭇했고, 충만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시간들이 갑자기 그리워 진다. 

 

솔로몬은 엄청난 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린다. 

화목제를 드리면 모든 고기를 태우는 것은 아니다. 

기름은 태우지만, 대부분의 고기는 번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이 함께 먹는다.

즐거운 파티가 열리는 것이다. 

멋진 성전, 그리고 맛잇는 음식, 더욱 행복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솔로몬 성전 앞에서 14일 간의 수련회가 열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은 그들 모두에게 특별한 의식을 갖게 한다. 

마치 출애굽 당시의 그들의 선조들의 경험을 자신들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전 가득 임재해계신다. 

수많은 전국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다시 언약을 맺으며, 화목제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세워간다. 

14일간 펼쳐진 그들의 초막절 수련회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캠핑이요, 진정한 산 교육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아이들에게 선사한다. 

매일 매일 솔로몬 왕이 등장해 그날의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제기를 구별하는 의식을 행하기도 하고… 

찬양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악기 소리도 빠질 수 없다. 

수만의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도 가관이다. 

14일간의 수련회가 그렇게 마치니, 다음 수련회가 기대가 된다. 

다음 수련회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다음 수련회에도 현명하고 지혜로운 왕, 당시의 아이돌 솔로몬이 등장해서 기도와 축복의 세레모니를 할 것인가? 

 

오늘의 말씀을 생각해보니, 

1 년에 한 번은 정말 전세계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찬양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음식을 같이 나눠먹는 이런 큰 대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화려하게 준비하기보다 캠핑을 하면서 곳곳에 진행되는 예배를 드리면서 그렇게 우리 모두가 한 분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그분의 백성임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일은 이제 주님 오시기 전에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 싶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이들과 함께 예배, 식사, 교제하고 싶은 마음, 큰 대회를 열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간절해진다. 

 


 

온 민족으로부터 찬양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당신의 역사를 배우고 기념하고 기억하고 그렇게 함께 기념했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이런 큰 대회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하나되어 찬양하는 그런 대회를 열게 해주세요.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그런 대회를 엄두를 못냅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끝나는 시점에서는 그런 대회를 열거나 대회에 참석하는 일들이 일어나도록 도와주세요.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09월 29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54솔로몬이 무릎을 꿇고서, 하늘을 바라보며, 두 손을 펴고, 이렇게 간절히 기도를 드린 다음, 주님의 제단 앞에서 일어나서,

55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축복하여 주었다.

56“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셨으며, 그의 종 모세를 시켜서 하신 선한 말씀을,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아니하시고 다 이루어 주셨으니, 주님은 찬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57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상과 함께 계시던 것과 같이, 우리와도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지도 마시고, 포기하지도 마시기를 바랍니다.

58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기울이게 하셔서, 주님께서 지시하신 그 길을 걷게 하시며,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내리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59오늘 주님 앞에 드린 이 간구와 기도를,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낮이나 밤이나 늘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종과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날마다 그 형편에 맞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60그렇게 해서, 세상의 모든 백성이, 주님만이 하나님이시고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61그러므로 그의 백성인 여러분도 주 우리의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서, 오늘과 같이 주님의 법도대로 걸으며, 주님의 계명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렸던 솔로몬이 이제는 백성들을 향해 축복을 말을 전한다.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는 개인적인 기도가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 드리는 공동의 기도였다. 

이제 백성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리고 축복의 말을 전한다. 

 

그런데 이게 축복인지 기도인지 헷갈린다. 

여전히 주님께 말을 건네고 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께 요청하고 있다. 

“우리와도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57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상과 함께 계시던 것과 같이, 우리와도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지도 마시고, 포기하지도 마시기를 바랍니다.

 

축복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라든가 “여러분이 건강하기를 바랍니다.”라든가, 축복받는 대상의 이름이 먼저 거론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솔로몬의 축복은 여전히 하나님에게 달려있다.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더욱 중요하다.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성전을 지을 때, 솔로몬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계속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계속 경험하는 것이다. 

 

두 번째 축복은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따르는 삶이다. 

그것도 마음을 다해 따른다. 형식적으로 피상적으로 겉보기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그분의 명령과 뜻을 따른다. 

 

58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기울이게 하셔서, 주님께서 지시하신 그 길을 걷게 하시며,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내리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조상에게 내려졌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따르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스스로 경험하지 않으면 참여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현대인들이 생각할 때는 이해하기 쉽지 않는 방식이다. 

그러나 당시의 문화 속에서 아버지, 할아버지, 그 조상의 정신은 나의 정신이었다. 

“전통”은 현대의 “주체”보다 더 막강한 자기 정체성이었다. 

고대의 자아상은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고, 가계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과 가족의 가치에 의해 형성된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 모세에게 주셨던 율법…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여전히 지켜야 할, 고수해야 할, 간수해야 할 전통이었다. 

하나님은 굳이 각 개개인에게 이런 전통을 일일이 따로 말씀하지 않으셔도 된다. 

이스라엘 조상에게 이야기 한 것이 지금 그들의 자손들에게 한 것과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한다. 

 

현대인들은 완연히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 각자에게 들려주셔야 한다. 

다른 사람, 설혹 그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자신의 말씀이 되지 않는다. 

부모의 하나님이 곧바로 자녀의 하나님이 되지 않는다. 

아… 하나님께서 참 피곤하시겠다..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고, 그들을 참여시키시고, 그들의 정서와 입맛에 맞게 잘 조리해서 먹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포스트모던 사회의 각 개인들을 위해 하나님이 하시면 제일 좋을 것들이다. 

 

여튼 솔로몬이 생각하는 축복의 두 번째는 바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잘 따르는 삶이다. 

 

그렇게 축복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60그렇게 해서, 세상의 모든 백성이, 주님만이 하나님이시고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이 온 세상의 창조주이며, 진정한 신임으로 알게 된다. 

다른 우상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다. 

복의 결과는 하나님께 돌려지는 영광이다. 

복의 결과가 자신의 영광이라면 그것은 인간에게 복이 아니라 저주며 화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그의 백성이 있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 

세상 모든 민족이 주님의 영광을 찬양할 것이다. 

이러한 공식은 구약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도 이어진다. 

 

요한복음 17장,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보면, 솔로몬의 축복과 닮았다. 

삼위 하나님 안에 거하면, 그분의 연합 안에 거하면, 결국 세상이 주님을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삼위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임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복음의 개념은 더욱 분명해진다. 

결코 물질적 풍요가 진정한 복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명예, 권력,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조건… 이 모든 것은 성경의 복이 아니다. 

성경의 복은 그분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성전은 그분이 함께 하시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다. 

신약의 성전인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그분의 뜻을 행한다. 

그래서 세상이 주님의 영광을 본다. 

이런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급기야는 우리 각자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삼아, 

성령님으로 함께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싶습니다. 

수많은 논의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게 해 주세요. 

꼭 필요한 논의들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게 해 주세요.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가장 선한 뜻을 분별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해주세요. 

 

성령님,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09월 28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37이 땅에서 기근이 들거나, 역병이 돌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 떼나 누리 떼가 곡식을 갉아먹거나, 적들이 이 땅으로 쳐들어와서 성읍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에워싸거나, 온갖 재앙이 내리거나, 온갖 전염병이 번질 때에,

38주님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나 혹은 주님의 백성 전체가, 재앙이 닥쳤다는 것을 마음에 깨닫고, 이 성전을 바라보며 두 팔을 펴고 간절히 기도하거든,

39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판단하셔서, 그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니,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십시오. 주님만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40그렇게 하시면, 그들은, 주님께서 우리의 조상에게 주신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주님을 경외할 것입니다.

 

41그리고 또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이방인이라도, 주님의 크신 이름을 듣고, 먼 곳에서 이리로 오면,

42그들이야말로 주님의 큰 명성을 듣고, 또 주님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하신 일을 전하여 듣고, 이 곳으로 와서, 이 성전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거든,

43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 이방인이 주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는 것을 그대로 다 들어 주셔서,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이 주님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주님을 경외하게 하시며, 내가 지은 이 성전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곳임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44주님의 백성이 적과 싸우려고 전선에 나갈 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어느 곳으로 보내시든지, 그 곳에서,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 도성과, 내가 주님의 이름을 기리려고 지은 성전을 바라보며, 그들이 주님께 기도하거든,

45주님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살펴 보아 주십시오.

46죄를 짓지 아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백성이 주님께 죄를 지어서, 주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원수에게 넘겨 주시게 될 때에, 멀든지 가깝든지, 백성이 원수의 땅으로 사로잡혀 가더라도,

47그들이 사로잡혀 간 그 땅에서라도,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사람의 땅에서 주님께 자복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죄를 지었고, 우리가 악행을 저질렀으며, 우리가 반역하였습니다' 하고 기도하거든,

48또 그들이 사로잡혀 간 원수의 땅에서라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님께 회개하고,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땅과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 도성과 내가 주님의 이름을 기리려고 지은 이 성전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거든,

49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인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살펴 보아 주십시오.

50주님께 죄를 지은 주님의 백성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을 거역하여 저지른 모든 반역죄까지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을 사로잡아 간 사람들 앞에서도 불쌍히 여김을 받게 하셔서, 사로잡아 간 사람들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여 주십시오.

51그들은, 주님께서 쇠용광로와 같은 이집트로부터 이끌어 내신 주님의 백성이며, 주님의 소유입니다.

52종의 간구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를 살펴보시고, 부르짖을 때마다 응답해 주십시오.

53주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 조상을 이집트로부터 이끌어 내실 때에, 주님의 종 모세를 시켜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그들을 주님의 소유가 되도록, 세상의 모든 백성과 구별하셨습니다."


 

1. 기도하거든 

 

오늘 본문은 "기도하거든"의 반복이다. 

솔로몬의 기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거대하고 화려한 성전 앞에서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기도한다. 

이 기도는 개인기도가 아니다. 일종의 대표기도다.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솔로몬의 기도를 경청한다. 

그리고 솔로몬의 기도에 마음으로 화답하면서 그 기도가 응답되기를 함께 기도한다. 

솔로몬과 백성 모두에게 엄청난 사건으로서의 기도다. 

성전을 완공한 것도 너무 기쁜 일이지만, 이 성전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생각하니 그들의 마음이 웅장해진다. 

 

어떤 상황에서건 성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거든, 주님께서 들어주시길 간구하고 있다. 

재난이 닥칠 때, 이방인들이 왔을 때, 전쟁에 나갔을 때, 죄를 지었을 때, 이방민족의 노예가 되었을 때… 

참으로 고통스런 순간에 성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거든, 

우리 주님께서 구원의 팔을 펼쳐서 다시 한 번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다. 

재난, 전쟁, 노예 상태, 이것들은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다. 

죽음에 임박한 상황이다. 

평시에 주님을 혹 찾지 못하더라도, 이런 위급한 상황에 닥쳤을 때 참 염치없게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어달라는 간구다. 

이건 하나님께 대한 간구이지만, 또한 동시에 백성들에게도 엄청난 교훈을 준다. 

그들의 상황이 어떠하건간에 절망적인 순간에 기도하라는 독려요 격려다. 

 

2.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39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판단하셔서, 그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니,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십시오. 주님만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신다. 

마음의 소원을 아시고, 열망을 아신다. 

마음의 동기를 아시고, 복잡한 심정도 아신다. 

그분은 단순히 행동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 속에 있는 여러 상처와 욕망을 아시며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바라보신다.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한다는 말은, 이미 마음 속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 열망을 보시면서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아신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싶은 마음.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과 영혼을 잘 구비하고 싶은 마음. 

이기적인 동기로만 살고 싶지 않은 마음. 

이런 마음을 주님께서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물론 주님은 나의 왜곡되고, 뒤틀린 내면 세계에 대해서도 알고 계실 것이다. 

마음 속의 분노와 짜증. 

나태와 풀어짐, 그리고 회피. 

내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때로는 격려로 때로는 따끔한 주의로 가르쳐주시길 기도한다. 

 

3. 이방인

 

오늘 솔로몬의 기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방인을 위한 기도였다. 

 

41그리고 또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이방인이라도, 주님의 크신 이름을 듣고, 먼 곳에서 이리로 오면,
42그들이야말로 주님의 큰 명성을 듣고, 또 주님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하신 일을 전하여 듣고, 이 곳으로 와서, 이 성전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거든

 

어찌보면 솔로몬은 국제적인 사람이었다. 

이방인들의 방문을 그 누구보다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그의 지혜를 흠모하여 찾아온 외국인들이 많았다.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다. 

솔로몬의 아내들도 많은 경우 외국인이었다. 

솔로몬은 그 아내들과 그들의 고향 사람들도 하나님의 명성을 듣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일어나길 간구하고 있다. 

 

솔로몬의 이 기도는 하나님의 세계 구원, 세계 통치의 아주 중요한 측면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단순히 아브라함의 개인적 복지를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도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제사장 나라는 하나님과 다른 민족들 사이의 다리가 되어 중재와 화평의 기능을 하는 나라다.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대리하여 다른 민족에게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알려주며, 다른 민족들의 죄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상황을 주님께 아뢰어 서로 다시 언약을 맺도록 돕는 일을 하는 나라다. 

이제 그 영광스러운 일들이 상당히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스라엘은 강대해졌고, 부유했으며,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닮았다. 

화려한 성전이 건축되었다. 

이제는 실행이 남았다. 

단순히 솔로몬의 지혜를 보러오는 외국인에 머물지 말고, 그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자신의 신으로 받아들이는 역사를 기대했다. 

그런면에서 솔로몬의 기도는 하나님 마음에 흡족한 기도였을 것이다. 

 

다만, 과연 솔로몬이 이런 기도의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의 아내를 맞이한 것까지는 머리를 쥐어 짜며 이해해 볼 수는 있겠다. 

외교술이라고, 정치적 안정을 꾀한 것이라고 여길 여지가 있다. 

그러나 외국의 신을 섬기는 것을 가만히 방치한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외국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주님께 두 손을 들고 찬양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벌어지게 되었다(열왕기상 11:1-8)

솔로몬의 기도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끝이 안 좋을 수 있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리고 싶었지만, 그래서 많은 이방인들을 국내로 데리고 왔지만,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신앙이 흔들릴 때, 마음을 빼앗겨 이방인들의 세계관과 그들의 신앙을 수용하게 될 때,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슬퍼할 수 밖에 없다. 

 

앵커가 필요하다. 

앵커가 없는 흔들리는 배만으로는 대양을 건너 장거리 항해를 할 수 없다. 

신앙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이라는 앵커를 굳건히 내려야 한다. 

하나님 나라 운동의 중심에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면 앵커의 줄이 그 분노로 끊어질 위험이 있다. 

하나님 나라 운동의 중심에는 하나님 사랑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많은 이슈에 분노하며 소리지르며 비판할 때, 그 끝에 하나님 사랑으로 자신의 마음을 감싸야 한다. 

폭주하지 말아야 한다. 

처음 마음이 끝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

우리를 통해 영광받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돌아와서 하나님께 경배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삶의 고통을 만날 때, 

절망과 씨름할 때, 

그 때 주님을 기억하고 부르짖게 하소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성전을 바라보며, 주님의 일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성전을 바라보며, 

주님께 부르짖게 하소서.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주님을 찾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성전입니다. 주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들을 보면서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들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더 실감하길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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