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7월 24일 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야곱의 집안이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에게서 떠나올 때에,

2 유다는 주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3 바다는 그들을 보고 도망쳤고, 요단 강은 뒤로 물러났으며,

4 산들은 숫양처럼 뛰놀고 언덕들도 새끼양처럼 뛰놀았다.

5 바다야, 너는 어찌하여 도망을 쳤느냐? 요단 강아, 너는 어찌하여 뒤로 물러났느냐?

6 산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숫양처럼 뛰놀았느냐? 언덕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새끼양처럼 뛰놀았느냐?

7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어라.

8 주님은 반석을 웅덩이가 되게 하시며,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신다.

 

주석

8절. 하나님은 자비 안에서 자신을 연약한 자, 심지어 ‘야곱’과 같이 비열한 자와 동일시하시며, 선한 일을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그분은 또한 백성의 순례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신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시인은 출애굽의 영광을 기억한다. 

홍해와 요단강이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길을 열어준다. 

온 땅이 이스라엘 백성의 오랜 행군을 돕는다. 

반석이 열려 샘이 된다. 

만나가 내리고, 메추라기가 떨어진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은 광야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유다는 하나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통치의 영토가 된다. 

그들 존재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사명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상들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하나님의 성소와 영토가 된 것이다. 

특별한 은혜가 그들에게 쏟아진다. 

의와 공도를 행하는 민족으로 우뚝 선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드러내는 민족으로 대표된다. 

그들의 할 일은 점점 분명해 진다. 

 

시인은 몇 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출애굽 사건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이 이래서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인류를 위한 그분의 희생, 

그리고 나를 위한 그분의 보호하심. 

잊기 전에 기록하고 그 기록을 다시 확인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그분이 일하심의 일기장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일하신 일, 

다른 청년에게 일하신 일.

기억하고 되새기고 묵상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사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목하신다. 

그걸 잘 몰랐다. 

그저 인류를 구원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씀을 좀더 깊이 보면,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조금씩 다르게 접근하신다. 

사랑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시다. 

예수님은 각 사람을 주목하고 계신다. 

그 사람에 맞게 치유하고 회복시키신다. 

지금도 예수님의 한 사람에 대한 주목은 그치지 않는다. 

 

오늘의 은혜가 필요하다.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 오장육부를 가동시키는 힘, 심장의 고동, 머리의 뇌류, 

세포 하나 하나 주님의 은혜로 작동한다. 

회복된다. 

정신이 다시 맑아진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다시 시작한다. 

 

[오늘의 기도]

은혜로 보호하시는 주님, 

몸과 마음을 주님께 맡깁니다. 

마음은 쉽게 흐트러지고, 몸은 쉽게 지칩니다. 

병균은 언제가 제 주위에 있고, 

스트레스는 눈 앞에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분노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나이 들어 호르몬도 이상하게 분비됩니다. 

정서도 불안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붙들어 주소서. 

몸과 마음을 정상 범위로 유지시켜 주시고, 

평안과 사랑을 전하는 자로 서게 하소서. 

 

이번 한 주를 주님께 맡깁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복음밥 캠프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2월 06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24 주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크게 불어나게 하셔서 그 대적들보다 강하게 하셨으며,

25 그들의 마음을 변하게 하셔서 자기의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자기의 종들을 교묘하게 속이게 하셨다.

26 그러므로 그가 종 모세와 택하신 아론을 보내셔서,

27 백성에게 그의 표징을 보이게 하시고 함의 땅에서 기사를 행하게 하셨다.

28 그가 어둠을 보내셔서 캄캄하게 하셨지만, 그들은 그의 말씀을 거역하였다.

29 그가 물을 모두 로 변하게 하셔서 물고기를 죽게 하셨으며,

30 땅에는 온통 개구리가 득실거리게 하셔서 왕실 안방까지 우글거리게 하셨다.

31 그가 말씀하시니, 파리 떼와 이가 몰려와서, 그들이 사는 온 땅을 덮쳤다.

32 비를 기다릴 때에 우박을 내리셨고, 그 땅에 화염을 보내셨다.

33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치시고, 그들이 사는 지경 안의 나무를 꺾으셨다.

34 그가 말씀하시니, 이런 메뚜기 저런 메뚜기 할 것 없이 수없이 몰려와서,

35 온갖 풀을 갉아먹고 땅에서 나는 모든 열매를 먹어 치웠다.

36 그가 또 모든 기력의 시작인 그 땅의 장남을 모두 치셨다.

37 그들로 은과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 가운데서 비틀거리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38 이집트 사람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떠날 때 기뻐하였다.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들은 크게 번성하지만, 미움을 받습니다(24-25절). 주님은 모세와 아론을 보내셔서 표징과 기사를 나타내십니다(26-27절). 주님은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충분한 권능을 보이셨습니다(28-36절). 주님이 준비하신 영광스러운 구원 역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풍족한 재물을 가지고 강건하게 이집트를 떠납니다(37-38절).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번성과 역경과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이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인생 여정 가운데 어딘가로 출입하는 것, 그 과정에서 겪는 모든 기쁨과 고통은 주님의 주권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신비를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주님의 능력과 구원은 결국 분명히 드러납니다.

 

[오늘의 묵상]

누군가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재밌다. 

SBS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프로그램이 그래서 인기가 있다. 

과거의 사건을 누군가가 실감나게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해주면 사람들은 몰입해서 듣는다. 

아는 이야기도 상관없다.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부분, 놓친 부분은 없는지 다시 듣게 된다. 

감정이 되살아난다. 즐겁고 웃긴 장면, 슬프고 눈물나는 장면이면 어김없이 웃음과 눈물이 나온다. 

옛날 이야기는 그렇게 다시 듣고 다시 들어도 재밌다. 

 

이스라엘의 시인들은 과거의 출애굽 사건을 계속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왔다. 

자녀들에게 그 사건을 잘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건 순서대로 차례대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때로는 평가를 담아 요약하면서 전달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 

오늘 시인은 10가지 재앙을 압축 요약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음을 과거를 돌아보며 정리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어둠 재앙의 위치다. 

시인은 어둠 재앙을 제일 먼저 언급한다. 

실제 사건은 아홉 번 째 일어났었다. 

시인은 어둠 사건이 갖는 의미를 매우 높게 산 것 같다. 

이집트는 태양의 민족이라고 불릴 만하다. 

태양신(라, 레, 아몬라)을 주신으로 삼았던 그들에게 어둠에 잠식당하는 태양을 보는 것은 죽음에 가까웠다. 

나일강의 신보다 태양신을 제어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시인은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런 것이 역사 전달의 묘미다. 

이야기꾼들은 살짝 살짝 자신들의 강조점을 심어둔다. 

자신만의 해석이 추가되는 것이다. 

사건의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배후를 밝히고 의미를 풍성하게 하며 현실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그래서 더욱 인기가 많은 이야기가 되게 한다. 

사실에 기반을 두되, 순서를 바꾸거나 반복을 통해서 강조한다. 

어떻게보면, 시인은 과거 하나님의 역사를 묵상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나처럼… 

 

묵상의 과정은 사실에 기반한다. 

하지만 사실에 머물지 않는다. 

묵상자의 삶의 현실과 경험 속에서, 그 필요에 따라 줌인하는 장면이 생긴다. 

더 오랫동안 머문다. 

그 사건의 의미를 더욱 강화시킨다. 

그렇게 묵상자는 또다른 시인이 되며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다. 

왜 묵상하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과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묵상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는 재진술되고, 신학적으로 풍성하게 되며, 현재에 매력적인 이야기로 재탄생된다. 

나를 위한 이야기가 되며, 우리를 위한 이야기가 된다. 

묵상자는 시인이며 평론가며 교사다. 

자신만을 위한 묵상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묵상이 된다. 

서로의 묵상을 나누며 그 묵상의 힘을 발견한다. 

 

10가지 재앙이 가져다 준 긍정적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1. 이집트의 천 개가 넘는 신들을 무력화시켰다. 

2. 이집트의 대제사장이자 신과 동일시 되었던 파라오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3. 이집트 사람들이 자신들의 노예를 순순히 놔주었다. 

4. 이집트 사람들이 히브리 민족이 떠나는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 

5. 히브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 

6. 히브리 사람들이 새로운 민족으로 재조성될만큼의 금은보화를 취득했다. 

7. 이집트 사람들과는 다른 민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 종교적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등등. 

10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새롭게 만드실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이 놀라운 사실을 기뻐한다. 

마치 출애굽 당시의 기쁨이 자기 것인양. 

대 탈출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회자되고 전달된다. 

유월절을 비롯한 절기를 통해서 대 탈출 이야기는 후손들에게 전해진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마치 기독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성만찬을 통해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과 같다. 

 

오늘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돌아본다.

되새김질한다. 

그분이 하신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다시 마음에 새긴다. 

그 역사에 기반해 그분께 나아간다. 

오늘도 그분의 일하심을 기대한다.  

 

 

[오늘의 기도]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시고, 만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

당신의 능력과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파라오는 사단의 대리자였습니다. 

자기가 진짜 신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신적 존재의 허상을 폭로하시고, 참 신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밝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가 섬길 참 신이십니다. 

그분만이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사단의 대리자들로부터 구출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이 머리와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사단의 거짓된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오늘 하루 더 깊이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6 30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 이것은 다윗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한다. 높이 일으켜 세움을 받은 용사, 야곱의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 이스라엘에서 아름다운 시를 읊는 사람 말한다.

2 주님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시니, 그의 말씀이 나의 혀에 담겼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다스리는 ,

4 구름이 끼지 않은 아침에 떠오르는 맑은 아침 햇살과 같다고 하시고, 비가 뒤에 땅에서 새싹을 돋게 하는 햇빛과도 같다고 하셨다.

5 진실로 나의 왕실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지 아니한가?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만사에 아쉬움 없이 갖추어 주시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어찌 나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시며, 어찌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랴?

6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아무도 손으로 움켜 없는 가시덤불과 같아서,

7 쇠꼬챙이나 창자루가 없이는 만질 수도 없는 , 불에 살라 태울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시인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노래합니다(1-2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장차 한 의로운 왕이 나타나 생명력 넘치는 햇살과도 같이 임할 것입니다. 그 햇빛은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낼 것입니다(3-4절). 자신과 언약을 맺으셨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반면 악한 사람들은 가시덤불 같이 불태워질 것입니다(5-7절).

 

다윗의 마지막 예언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의로 다스리는 왕, 장차 오실 메시아를 떠올립니다.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세상을 공의로 다스릴 진정한 왕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십니다. 이 땅의 모든 고통과 어둠을 물리치고 마침내 다시 오실 온전한 왕을 기다리며 본문을 묵상합시다.

 

——

 

다윗의 자기 정체성 

 

다윗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로 규정한다. 

높이 일으켜 세움을 받은 용사, 

기름 부어 세우신 , 

그리고 아름다운 시를 읊는 사람. 

용사, , 시인 

하나만 해도 인정받는 사람이 것이다. 

용사이기만 해도, 왕이기만 해도, 시인이기만 해도 

그러나 그는 싸움을 잘하는 용사면서 왕의 역할을 감당한다. 그에 못지 않게 시를 지어 노래를 지어 부르는 사람이었다. 전사, 통치자, 그리고 예술가였던 것이다. 

 

이런 정체성을 형성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은 지대했다. 다윗도 사실을 온전히 인정했다. 

높이 일으켜 세움을 "받은"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다. 자기 스스로 그렇게 것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용사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세워주신 것이다. 

기름부어 주신 것도 바로 하나님이시다. 스스로 기름을 부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이 것이 아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알기에 그는 감사의 , 찬양의 , 탄원의 , 도움의 시를 지을 수가 있었다. 

자시 스스로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사와 영광을 돌리기 위한 시를 것이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시인의 자리에 있게 했다. 

이것이 그의 정체성이 것이다. 

 

공의의 통치차,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 

 

하나님은 공의로 통치하는 왕을 원하셨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왕을 원하셨다. 

자기 맘대로 자기 유익을 위해, 자기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식 속에서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왕을 기대하셨다. 

다윗 왕이 그러하길 바라셨다. 

비록 시에서는 다윗 자신이 그런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충족되는 사람인양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윗은 어느 순간부터는 철저히 망가진 군주였다. 

하나님이 마치 안계신 것처럼 행동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계획적으로 죽일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그의 잘못은 역사에 길이 남아 후대에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시점에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자신의 잘못을 전혀 모르지 않고 있는 다윗이 기어코 하나님의 언약의 계승자임을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5 진실로 나의 왕실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지 아니한가?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만사에 아쉬움 없이 잘 갖추어 주시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어찌 나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시며, 어찌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랴?

 

비록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명예는 실추되었고, 사실 자신의 왕실은 엉망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현재의 모습이라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고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켜주실 것을 믿으면서 말이다. 

 

다른 몰라도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신실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들, 유다의 자손들은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영원한 왕을 그들에게 내려보내 주실 것이다. 완전한 , 공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 모든 인간의 딜레마를 해결 있는 . 메시야를 그들은 기다린다. 다윗은 실패했지만, 다윗과의 약속을 통해 진정한 왕이 도래할 것이다. 다윗은 약속을 신실하게 믿었고 신뢰했다. 다윗이 점이 있다면 바로 지점이다. 

 

——

주님,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강한 확신 속에서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의 약속에 깊게 뿌리내리며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립니다. 

저에게 확신과 용기를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