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20일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4 믿지 않는 사람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마십시오. 정의와 불의가 어떻게 짝하며, 빛과 어둠이 어떻게 사귈 수 있겠습니까?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떻게 화합하며,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더불어 함께 차지할 몫이 무엇이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떻게 일치하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가운데로 다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오너라. 그들과 떨어져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라. 나 주가 말한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

18 "그리하여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나 전능한 주가 말한다.”

 

1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러한 약속이 있으니,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떠나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온전히 거룩하게 됩시다.

 

주석

14절 이 구절들 자체는 세상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나 교리적인 차이가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물러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우상 숭배적인 식사나 예배에 참여하지 말라는 특정한 권고와 관련되어 있다. 분명 일부 고린도인들은 계속해서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BST 고린도후서). 

 

벨리알(15절) ‘벨리알’은 사단을 가리키는 또 다른 유대식 명칭이었다(IVP 성경배경주석).

 

정의와 불의, 빛과 어둠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14절).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악과 함께 할 수 없으십니다(15절).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함께 있습니다(16-18절).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더러움에서 떠나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온전한 거룩을 추구해야 합니다(1절).

 

고린도 교회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첫 번째 편지(고린도전서)에서도 우상숭배에 대해 훈계했습니다. 이 일은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거룩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희미해질 것입니다.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오늘의 묵상]

1.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 

바울은 그간 고린도후서라는 편지를 통해서 여러 가지 은유를 사용했다. 

그리스도의 향기, 편지, 대사 등의 개념을 가져왔다.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고귀하며 소중한 존재인지를 설파했다. 

정체성이 흔들리는 성도들에게 다시 한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특권, 책임, 축복을 말했다. 

오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의 개념과는 차원이 다른 은유다. 

유대교에서 성전이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며, 그곳에서 드려지는 제사제도는 이스라엘 국가의 근간이 된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성전의 기능이 유지될 때만 가능했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물리적 성전이 이제는 성도들의 모임, 바로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다. 

고린도교회라는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라, “우리” 즉 고린도 교회의 성도와 바울 선교단이 성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한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주장이다. 

 

바울은 구약의 언약 공식을 사용한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나의 자녀가 될 것이다. 

사실 첫 번째 언약 공식은 상당히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두 번째는 몇 가지 구약 구절을 결합해야 만들어진다. 

바울은 구약의 언약 공식을 사용해 현재 교회의 위치와 신분을 확정한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구약의 예언의 성취다. 

두 번째 언약 공식까지 도출한 것은 바울 신학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 일 것이다. 

이방인 지역에 있는 이방인들의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건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게다가 고린도 교회는 그 어떤 교회보다 문제가 많았던 교회였다. 

분열이 있었고, 싸움이 있었고, 우상 숭배의 문제가 있었던 교회. 

그 교회를 보고 어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바울의 대담함이 여기서 보인다. 

아니 성령님의 담대함이 여기서 드러난다. 

 

작금의 교회도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백성, 자녀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데 중요하다. 

우리의 신분과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 거룩을 향한 걸음을 추진할 수 있다. 

 

2.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더러움은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육은 더럽고 영은 깨끗한 것이 아니다. 

육과 영은 더러울 수도 깨끗할 수도 있다. 

영/육 이분법으로는 바울의 논리를 설명할 수 없다. 

육과 영은 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하느냐에 따라 깨끗할 수도 더러울 수도 있다. 

바울은 벨리알과 같은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멀어지라고 충고하고 있다. 

14절의 “믿지 않는 사람”은 단순히 비그스도인 전체를 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비그리스도인 중 진리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상을 따르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 짝하며, 사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과 사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확인해 보면 안다. 

그들은 사람들을 가스라이팅해서, 심리적으로 조종해서, 육체와 영을 망가뜨린다. 

정신을 뺴앗고, 몸을 망가뜨리고, 범죄에 이용한다. 

<나는 신이다>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함부로 자신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사귀어도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으며, 오히려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범죄 조직을 한 개인이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들과는 사귈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한다. 

인생을 걸어 싸우지 않는 한 승산이 없다. 

심리적으로 조종당하는 사이비, 우상 숭배자가 사회 곳곳에서 암약 중이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깨끗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곳,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곳으로 유지해야 한다. 

우상 숭배자가 성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움직이는 주님의 교회다. 

우리는 움직이는 주님의 성전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요, 대사다. 

우리는 보물을 담은 질그릇이다. 

우리는 주님의 백성이며, 자녀다. 

이것들이 바울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과 공동체의 신분이며, 정체성이다. 

이 사실을 깊이 묵상하고 되새기고 각인시켜야 한다. 

바울의 그림 언어를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한다.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벨리알의 역사를 막고, 사이비 범죄 집단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 

특히 순진한 종교적인 사람들을 사이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위대한 신분 상승이 주는 부담도 있지만, 역시 그 은혜에 대한 감사가 주된 감정이다. 

오늘도 그 감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 주의 시작을 감사로 시작하게 하셔서 고맙습니다. 

 

주님,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더욱 정결하고 거룩해지게 하옵소서. 

육과 영이 더욱 깨끗해져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더욱 향기롭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당신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대사로서 하나님의 뜻을 만방에 공표하게 하소서. 

더욱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도록 도와주세요. 

 

진정한 진리 되신 예수님, 

당신의 이름을 참칭하는 이단, 사이비 교주들을 벌하소서. 

돈과 성의 유혹에 넘어가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억압하는 자들을 심판하소서. 

돈과 범죄 네트워크로 사이비 종교들이 비호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역사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9. 19. 김혁수

 

[본문_창세기 2:14-19_새번역]

14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15 하늘 창공에 있는 빛나는 것들은 땅을 환히 비추어라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6하나님이 빛을 만드시고, 가운데서 빛으로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빛으로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별들도 만드셨다. 17하나님이 빛나는 것들을 하늘 창공에 두시고 땅을 비추게 하시고, 18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시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0. 들어가며 

- 나는 누구인가? 

최근에 알지 못하는 분들과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모임이건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갔습니다. 여러분에게 1시간 동안 자기 소개를 하라고 하면 어떻게 소개할래요? 이름, 나이, 사는 아주 기본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는 1시간을 채울 수는 없을 겁니다. 개인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훑습니다. 어디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합니다. 때로는 그걸로도 1시간을 채우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 싫어하는 것을 나눕니다. 때로는 자신의 성격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MBTI, 애니어그램 등의 성격, 성향에 대한 지표들을 활용해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나에 대한 수많은 정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나는 누구인가?” 문장으로 대답하려고 하면, 이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어떤 것이 나의 진정한 본질을 드러내는 정체성인지 집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세포들의 복합적 유기체다. 

나는 엄마아빠의 아들이다 

나는 지구인이다.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INFJ이다. 

나는 박유진의 남편, 혜율, 혜강의 아빠다. 

나는 목사다. 

나는 이성적인 존재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맞는 말인데, 어떤 정의가 가장 본질적인 답이 될까요? 여러분도 한번 여러 개의 문장을 보시고, 중에 가장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장을 골라보세요. 

 

오늘은 그동안 여러분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 하나가 있는 사실입니다. 바로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전이요, 제사장입니다. 어떻게 이런 대답을 있게 되는지 성경을 통해 살펴봅시다. 함께 본문을 읽어볼까요? 

 

1. 성전으로서의 창조 

1) 성경의 통일성 

성경은 구약과 신약 합해서 66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구전되던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최종 성경이 편집되까지는 2-3천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적중에 기적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아 우리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신학 공부할 출석하던 한인교회의 서정곤 목사님은 종종 기적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로 갖가지 기적을 바라지만, 진정한 기적은 성경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지금까지 전세계 사람들이 읽을 있게 성경이 기적 중에 기적이라는 것이죠. 

 

구약과 신약 66권의 성경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핵심 주제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주의 하나님,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책을 구성하셨다면, 책은 일관되고 통일된 관점이 있을 라고 믿는 거죠.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동일하다는 확신 때문에 더욱 강화되는 믿음입니다. 

 

누구는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누구는 언약이라고 합니다. 누구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학자들마다 조금씩 강조점을 달리해서 성경의 통일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갑니다. 여러분은 성경 66권의 핵심 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2) 새로운 신학적 통찰의 충격 

21 전에 이야기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단체의 간사가 되었습니다. 사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신학에 대해서는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도 몰랐습니다. 대학에서 라틴어 수업을 들었는데, 겨우 낙제를 면했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를 독학으로 공부하려고 했지만, 책값만 버렸습니다. 무수한 설교를 들었지만, 사실 성경 전체를 꿰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단편적인 지식들이 머릿속을 휘집고 다녔었죠. 다만,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와 부활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복음의 소식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봤기 때문에, 저도 그런 소망을 가지고 선교단체의 간사가 것이죠. 성경 스토리는 대충 알았습니다. 그러나 통일성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확신하기는 어려웠습니다. 

 

, 전국의 간사님들이 모이는 수련회에서, 강사 분이 성전신학이라는 과목을 개설했는데요, 사실 저를 위한 강의는 아니었고, 저보다 기수 위의 간사님들을 위한 과목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너무 궁금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선배 간사님들에게 그게 무슨 내용인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핵심 정보를 얻었죠. 바로 구약과 신약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개념으로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구약의 창조이야기도 단순히 세계 만물의 창조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의 창조라는 사실이었죠. 깜짝 놀랐습니다. 전에는 번도 그렇게 생각해 적이 없었거든요. 

 

뒤에 [성전신학]이라는 책이 2004년에 나왔습니다. G. K. 비일이라는 학자가 책인데, 그분의 책이 저의 관점을 열어 주었습니다. 책소개를 드리고 싶네요.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과학적, 물리적 의미의 세상 창조가 아니었습니다. 창조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3) 성전으로서의 창조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창조는 하나님이 머무실 성전의 공사입니다. 빛을 만들고, 하늘과 땅을 만들고, 육지와 바다를 만들고, 광활한 공간에 해달별을 만들어 배치하고, 물고기와 새를 만들고, 육지 동물들을 만들어 채우십니다. 이것은 과학적 진술이 아니라 종교적 신학적 배치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만드신 것입니다.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없는 시공간을 하나님께서 질서를 부여하시고 디자인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편안하게 지내실 공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편하게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맞습니다. 바로 성전입니다. 

 

2. 성전으로서의 에덴 

1) 혼란을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1:1-2)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창세기 1 1-2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하나님의 영은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사실 1-2절의 해석은 그야말로 혼란 자체입니다. 1절이 1-2장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표제어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세상을 만드셨는데, 아직 질서가 잡힌 세상이 아니라 혼돈스럽고 공허한 세상, 어둠이 깊음 위에 있는 세상을 일단 만들었다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시작되는 것이죠. 혼란함과 공허함, 그리고 어둠이 가득한 곳에 하나님께서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무엇부터 시작하시죠? 그렇습니다. 빛을 창조하십니다. 사실 하나님 스스로가 빛이시죠. 빛의 상징은 성경 전체에 하나님을 향해 사용됩니다. 강렬한 불과 빛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하죠. 모세에게 보이신 하나님은 강렬한 불꽃으로 등장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이끄실 때도, 거대한 불기둥으로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시죠. 다마스쿠스 언덕에서 사울은 너무나 환한 빛을 보고 눈이 멀고 말았죠.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에는 빛이신 그분으로 인해 밤이 없다고 합니다. 

 

빛을 통해 세상의 기본 구조를 만드십니다. 빛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만드시죠. 빛이 없이는, 시공간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가시광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빛이 시공간이라는 질서를 부여합니다. 빛이 있으니 세상이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속성과 너무나도 닮은 하나의 물리적 존재를 제시하라고 하면 그건 틀림없이 빛일 겁니다. 더이상 땅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질서가 잡힙니다. 뒤에 그분은 공간을 구분하십니다. 물을 둘로 구분하셔서 하늘과 바다라는 고대 사람들이 보기에 도저히 규모와 크기를 상상할 없는 공간을 만드십니다. 하늘도 그렇고 바다도 그렇고 그들에겐 미지의 공간입니다. 바다를 육지와 바다로 다시 구분하십니다. 공간이 계속 구획되는 것이 보이시죠? 혼란스럽던 공간이 이제 빛으로 드러나면서 하늘과 바다로 구분되고, 뒤에 바다라는 두려움과 혼란의 공간이 다시 육지와 조금 작은 바다로 구분됩니다. 

 

구분된 공간에 하나님은 각종 장식물로 채우시고 데코레이션을 하십니다. 빛과 어둠을 담당하는 해달별을 집어 넣으시죠. 하늘에는 , 바다에는 물고기를 넣으십니다. 그리고 육지에는 동물들을 넣으시죠. 이렇게 공간을 채우십니다. 어느덧 혼란스럽고 비어 있던 초기 세상이 질서가 잡히고 채워지게 되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자연 성전의 의미입니다. 

 

2) 에덴 성전에서 휴식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은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지성소를 만드시기로 결정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에덴입니다. 여러분, 성전 구조에서 하나님이 직접 제사장을 만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곳이 어디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지성소라는 곳이에요. 우리가 성전과 회막의 구조를 공부해야 한다면 이런 구조물들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일 겁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고, 그룹이라고 불리는 날개달린 동물이 지키고 있는 , 대제사장이 일년에 번만 들어갈 있는 , 만약 대제사장이 죄가 있으면 들어가자 마자 죽는 , 그래서 방울 달린 밧줄을 매고 들어가는 ,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지성소 밖에서 끌어낼 밖에 없는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바로 그곳 지성소가 원래는 어디였다고요? 그렇습니다. 에덴이라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바로 에덴에서 쉬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3) 에덴 성전의 돌봄 통치

우리는 에덴을 통해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강들을 통해 에덴에서의 통치가 세상으로 흘러들어갑니다. 그런데 통치는 어떤 통치라고 했나요? 맞습니다. 돌봄 통치라고 말씀드렸죠. 

 

돌봄 통치의 본질이 오늘 성전신학에서 밝혀집니다. 여러분, 그저 사람과 동물의 복지를 높이는 것이 돌봄 통치의 본질이 아닙니다. 에덴의 본질이 하나님의 지성소라면, 지성소에서 뻗어져 나오는 강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과의 관계 상징합니다. 돌봄 통치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요, 그분의 임재 속의 연합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인권이나 동물권의 문제는 아니죠.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요, 회복된 관계에서 오는 임재 속의 연합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막이나 성전의 기능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죄인된 사람들이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화평 평화를 누리게 되죠. 그리고 그분의 임재 속에 거하게 되는 겁니다.

 

3. 성전 제사장으로서의 아담

1) 아담, 새롭게 보기 

그렇다면 에덴 성전의 대리 통치자였던 아담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대제사장 겁니다. 자연 성전의 에덴 지성소의 아담 대제사장 있었던 겁니다. 아담은 단순히 인류의 조상으로서만 기능하지 않습니다. 유전학적으로 모든 인류의 공통 조상으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부여 받아 세상 만물을 돌보는 역할의 대리 통치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만물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어주며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 샬롬의 관계를 유지해 주는 대제사장입니다. 

 

2)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제사장

고대 팔레스타인 주변 지역의 신화들을 살펴보면 이런 개념들이 많이 사용됩니다. 신의 형상은 신을 대리하며 신과 세상을 중재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세상을 이어주는 제사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말입니다. 

 

26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하시고, 27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1 26-27)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이미지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피조물과도 다릅니다. 하나님도 닮았고, 다른 피조물과도 닮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니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 대제사장의 역할을 있는 겁니다. 

 

3) 제사장의 돌봄 통치

여러분, 제사장이 자신의 역할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분명히 하나님과 다른 피조물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되고 깊어집니다. 하나님은 자연 성전에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게 되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서로 깊은 사랑의 관계로 남게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역할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피조물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기 어렵고 하나님이 껄끄럽고 같이 있기 부담스럽게 됩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로부터 그분에게 합당하게 돌려져야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없게 됩니다. 화목한 관계, 평화로운 관계가 깨어집니다. 제사장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제사장의 돌봄 통치는 그렇게 하나님과 다른 인간과 피조물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돕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4. 나가며_성전&제사장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아담의 제사장 역할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수됩니다. 

 

5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것이다.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6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것이다.’ 너는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출애굽기 19:5-6)

 

그리고 신약에서는 바로 그리스도인들, 저와 여러분에게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면 충격은 밖에 없습니다. 

 

16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3: 16-17)

 

그렇습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자연 성전, 에덴 지성소가 아닙니다. 광야 시절 회막이나 솔로몬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 몸과 마음 속에 계십니다. 이것이 둘째 아담으로 불리시는 예수님, 대제사장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기도 하면서, 예수님을 닮아 제사장의 역할도 같이 감당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야 구약과 신약의 일관된 주제의식이 드러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요, 예수님을 따라 세상과 하나님을 이어주는 제사장입니다. 

 

이게 기적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나의 정체성은 나의 좋고 나쁨으로 이뤄진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만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인가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내게 부여하신 목적과 계획 나의 정체성이 됩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나님 나라의 돌봄 통치를 실행하는 제사장이다.” 

조금 문장이긴 하지만 우리 마음과 기억 속에 각인되길 축복합니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를 맞아 가족 친지와 행복한 시간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남는 시간, 넷플릭스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한번쯤은 나는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추석 연휴되길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창조의 하나님을 불러 봅시다. 창조의 하나님을 되뇌여 봅시다. 하나님은 자연 만물을 창조할 , 물질만 창조한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자연 성전과 에덴 지성소를 창조하신 겁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부르면서 자연 성전과 에덴 지성소를 상상해 봅시다. 

 

2. 예수님의 사역으로 이제 그리스도인들 명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제사장입니다. 정체성이 우리 몸과 마음에 각인되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이며,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나님 나라의 돌봄 통치를 실행하는 제사장이다.” 라는 자기 정체성이 확고해지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1. 에덴 동산이 단순히 정원이 아니고 세계 돌봄 통치의 중심지이며 동시에 자연 성전의 지성소라는 말씀이 어떻게 다가옵니까?   

 

2.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고, 하나님 나라의 돌봄 통치를 실행하는 제사장이다.” 라는 문장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는다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15성전의 안쪽 벽에는 바닥에서 천장에 닿기까지 벽 전체에 백향목 널빤지를 입히고, 성전의 바닥에는 잣나무 널빤지를 깔았다.

16성전 뒤쪽에서 앞쪽으로 스무 자를 재어서, 바닥에서부터 천장의 서까래에 이르기까지 백향목 널빤지로 가로막아서, 성전의 내실 곧 지성소를 만들었다.

17내실 앞에 있는 성전의 외실은, 그 길이가 마흔 자였다.

18성전 안쪽 벽에 입힌 백향목에는, 호리병 모양 박과 활짝 핀 꽃 모양을 새겼는데, 전체가 백향목이라서, 석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19성전 안에는, 주님의 언약궤를 놓아 둘 내실을 마련하였다.

20성전의 내실 곧 지성소는 길이가 스무 자, 너비가 스무 자, 높이가 스무 자이고, 순금으로 입혔으며, 백향목 제단에도 순금으로 입혔다.

21솔로몬은 성전 내부도 순금으로 입히고, 지성소 앞에는 금사슬을 드리웠으며, 그 지성소를 모두 금으로 입혔다.

22그래서 그는 온 성전을, 빠진 곳이 전혀 없도록, 금으로 입혔다. 심지어는 성소에 속하여 있는 제단들까지도, 모두 금으로 입혔다.

23그는 지성소 안에 올리브 나무로 두 개의 그룹을 만들었는데, 높이는 각각 열 자이다.

24그 한 그룹의 한쪽 날개는 다섯 자, 그룹의 다른 쪽 날개 역시 다섯 자이다. 그 날개의 한쪽 끝으로부터 다른 쪽 날개의 끝까지는 열 자이다.

25두 번째 그룹도 열 자이며, 두 그룹이 같은 치수와 같은 모양이었다.

26이쪽 그룹의 높이도 열 자이고, 저쪽 것도 열 자이다.

27솔로몬은 그 그룹들을 지성소의 가장 깊숙한 곳에 놓았다. 그룹들의 날개는 펴져 있어서, 이쪽 그룹의 한 날개가 저쪽 벽에 닿았고, 저쪽 그룹의 한 날개는 이쪽 벽에 닿았다. 그리고 지성소의 중앙에서 그들의 다른 날개들은 서로 닿아 있었다.

28그는 이 그룹에도 금으로 입혔다.

29그는 성전의 지성소와 외실의 벽으로 돌아가면서, 그룹의 형상과 종려나무와 활짝 핀 꽃 모양을 새겼다.

30또 그 성전의 지성소와 외실 마루에도 금으로 입혔다.

31지성소 어귀에는 올리브 나무로 문을 두 짝 만들고, 그 인방과 문설주는 오각형으로 만들었다.

32그리고 올리브 나무로 만든 문 두 짝에는, 그룹의 형상과 종려나무와 활짝 핀 꽃 모양을 새겼는데, 그룹 모양과 종려나무 모양 위에도 금으로 입혔다.

33또 올리브 나무로 본당의 외실 어귀를 만들었는데, 그 문설주는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34그리고 잣나무로 만든 두 개의 문이 있는데, 한 쪽의 문도 두 부분으로 접히고, 다른 문도 두 부분으로 접히게 되어 있었다.

35그 위에 그룹들과 종려나무와 활짝 핀 꽃 모양을 새겼는데, 그 위에 고루고루 금을 입혔다.

36또 성전 앞에다가 안뜰을 만들었는데, 안뜰 벽은 잘 다듬은 돌 세 켜와 두꺼운 백향목 판자 한 켜로 벽을 쳤다.

37주님의 성전 기초를 놓은 것은 솔로몬의 통치 제 사년 시브월이고,

38성전이 그 세밀한 부분까지 설계한 대로 완공된 것은 제 십일년 불월 곧 여덟째 달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는 일곱 해가 걸렸다.

 

주석

금으로 입혔다(21, 22, 28, 29, 32, 35): 황금 도금을 아낌없이 사용한 것은,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근동의 신전을 장식하는 관행이었다(IVP 성경주석).

 


백향목은 어떤 향을 낼까? 

솔로몬의 성전은 백향목의 은은하고 독특한 향으로 가득하다. 

백향목의 향으로 인해 벌레가 접근하지 못한다. 

 

“백향목은 중동에서도 레바논 산맥의 해발 2000m 이상에서만 자라며 적어도 300년은 자라야 목재로 사용 가능하고, 400년이 되어야 열매가 열리는 귀한 목재이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3867148

 

그동안 백향목에 대해 조사할 생각도 못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성전의 향을 상상한다. 

백향목의 그 은은한 향이 성전을 채운다. 

그 안에 오랫동안 머물러 본다. 

공사중이라고 해도, 먼지가 많을 뿐 현대의 건축과정에서 생기는 화학약품/제품들의 냄새가 진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백향목, 올리브 나무 등이 잘려나가고 조각되고 끼워맞춰지면서 나오는 나무의 그 본연의 냄새가 날 것이다. 

7년간의 공사 기간 중에 대부분은 이런 백향나무의 향기와 올리브 나무의 향기로 가득하다. 

그 향이 완공된 성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사실 완공된 성전의 냄새는 나무 냄새가 아니라 피 냄새이며 살 태우는 냄새다. 

성전 뜰에서는 제물이 도축되고 태워진다. 

완공되어 성전의 기능이 작동될 때의 냄새는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도리어 완공되기 전까지의 공사 기간 중의 냄새가 더욱 향기로울 수도 있다. 

 

나는 완공될 성전을 기대하며 목수의 일을 감당하는 한 목공이고 싶다. 

매일 매일 백향목의 향을 맡으며 조금씩 조금씩 건축 퍼즐을 맞춘다. 

나무를 깍고, 설계에 맞춰 자르고, 망치질을 하고 그렇게 성전 하나하나를 만들어간다. 

과정 속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작고 소중한 것들을 의미있게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다. 

성취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로 과정의 향기로움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공동체는 다시 성전을 짓는 중이다. 

무너진 곳을 살피고, 백향목을 가져다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성전을 짓고 있다. 

어려움이 많다. 

신뢰관계를 온전히 회복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사역적 방법론도 개발해야 한다. 

관계와 제도와 사역 전략 모두 중요하고 새로이 세워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몇년이 걸릴지 모른다. 

짧았으면 좋겠지만, 내 바램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더욱 그 과정을 소중히 여기자. 

만나는 사람들, 진행하는 프로그램, 진행되는 논의들… 

성전의 작은 부분, 문 하나를 나무로 만드는 마음으로, 그렇게 향기로운 작은 걸음을 오늘도 걷는다. 

 


일의 성취 뿐 아니라 과정도 소중하게 주목하시는 하나님, 

저의 약점인 성취주의의 부작용을 종종 경험합니다. 

과정 속에 스며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을 쉽게 간과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세심하게 그 과정들을 밟아가고, 그 속에서 백향목의 향기를 경험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9월 16일 목요일 

 

1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지 사 년째 되는 해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은 주님의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다. 2솔로몬 왕이 주님께 지어 바친 성전은, 길이가 예순 자이고, 너비가 스무 자이고, 높이가 서른 자이다. 3성전의 본당 앞에 있는 현관은, 그 길이가 스무 자로서, 그 본당의 너비와 똑같고, 그 너비는 성전 본당 밖으로 열 자를 더 달아냈다. 4그리고 그는 성전 벽에다가 붙박이창을 만들었는데, 바깥쪽을 안쪽보다 좁게 만들었다. 5그리고 그 사방에 골방을 만들었다. 성전의 벽 곧 본당 양 옆과 뒤로는, 쭉 돌아가면서 삼층으로 다락을 만들었다. 6아래층에 있는 다락은 그 너비가 다섯 자이고, 가운데 층에 있는 다락은 그 너비가 여섯 자이고, 삼 층에 있는 다락은 그 너비가 일곱 자이다. 이것은 성전 바깥으로 돌아가면서 턱을 내어서, 골방의 서까래가 성전의 벽에 박히지 않게 하였다.

7돌은 채석장에서 잘 다듬어낸 것을 썼으므로, 막상 성전을 지을 때에는, 망치나 정 등, 쇠로 만든 어떠한 연장 소리도, 성전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8가운데 층에 있는 골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성전의 남쪽 측면에 있으며, 나사 모양의 층계를 따라서, 가운데 층으로 올라가게 하였다. 또 가운데 층에서부터 삼층까지도 나사 모양의 층계를 따라서 올라가게 하였다. 9이렇게 해서 그는 성전 짓기를 완성하였다. 성전의 천장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빤지로 덮었다. 10또한 성전 전체에다가 돌아가면서 높이가 저마다 다섯 자씩 되는 다락을 지었는데, 백향목 들보로 성전에 연결하였다.

11주님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다. 12“드디어 네가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구나. 네가 내 법도와 율례를 따르고, 또 나의 계명에 순종하여, 그대로 그것을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한 바를 네게서 이루겠다. 13또한 나는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그들 가운데서 함께 살겠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

14 솔로몬이 성전 짓기를 마쳤다.

 


모든 것이 구비되었다. 

국제적인 협력 속에서 나무와 돌이 준비되었다. 

솜씨 좋은 건축 기술자들을 대거 불러 모았다. 

당시에 가장 보기 좋은 성전으로 지으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그들이 경험한 성전 모양 중에 가장 좋은 모습을 선택했을 것이다. 

물론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회막을 지으라고 하실 때 알려 주셨던 길이, 너비, 높이 등을 고려하면서 지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화려한 성전이었다. 누가봐도 당시 최고의 기술과 아름다움을 가진 건축물이었을 것이다.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듯 보인다. 

 

12“드디어 네가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구나. 네가 내 법도와 율례를 따르고, 또 나의 계명에 순종하여, 그대로 그것을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한 바를 네게서 이루겠다. 13또한 나는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그들 가운데서 함께 살겠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

 

오랫동안 준비되었던 성전 공사가 약 7년뒤 완공되었다(왕상 6:38). 

길이가 27미터, 너비가 9미터, 높이가 14미터였다. 

사실 현대 고층 빌딩같은 건물이나,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이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기술자들을 불러, 최고의 자재들을 사용해서,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7돌은 채석장에서 잘 다듬어낸 것을 썼으므로, 막상 성전을 지을 때에는, 망치나 정 등, 쇠로 만든 어떠한 연장 소리도, 성전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채석장에서 돌을 치수에 맞게 잘 다듬는다. 

정확하게 치수에 맞추었기 때문에 공사 도중에는 망치, 정 등의 연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돌을 다듬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밀한 설계와 도면, 그리고 기술자들의 노고가 들어 있다. 

사전에 정밀하고 치밀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이런 방식으로 일할 수는 없다. 

먼저 시뮬레이션을 다 해보고, 몇번이고 검토를 한 뒤에,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감독관인 아도니람이 대단해 보인다. 

솔로몬도 최종 의사 결정권자로서 그 때 그 때 지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도니람은 인력 사용과 구체적인 설계와 재정 운용 등 아주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일들을 잘 감당했다. 

감독관으로서 너무 일을 잘 하고 있다. 

 

7년 동안 아도니람은 어떤 생각과 마음이었을까? 

어떻게 7년동안 이 큰 공사를 진행시켰을까? 

한번 그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계획도 있고, 설계도 있고, 자재와 인력도 있지만, 사실 이런 공사는 언제 끝을 낼 수 있을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변수가 많다. 

사고도 많이 일어날 것이다. 

채석장에서도 사고가 나고, 나무 운반하는 과정에서도, 돌을 운반하는 과정에서도 사고가 난다. 

돌을 올리고 나무를 세우는 과정에서도 당시 최고의 기술을 다 동원한다고 해도, 불의의 사고는 항상 뒤따른다. 

설계대로 잘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7년을 한결같이 집중한다. 

매일 매일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관련있는 모든 사람과 자재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 

최고의 신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장난이 아니다. 

솔로몬 왕의 최고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이다. 

실무 책임자로서 아도니람은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일을 잘 해냈다. 

 

성전을 짓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닮았다. 

빛과 어둠을 만들고, 하늘, 땅, 바다를 만들고, 해달별과 생물, 동물들을 만드셨다. 

에덴을 지으시고 사람을 두셨다. 

그렇게 하나님은 자신이 거할 아름다운 성전을 만드셨다.  

최고의 걸작품이었고, 하나님은 그것이 너무 좋으셨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하나님의 성전이 조화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우주와 자연이라는 하나님의 성전은 이제 솔로몬과 아도니람을 통해 한눈에 들어오는 상징적 건축으로 압축된다. 

신축된 성전을 보면서 온 우주 가운데 왕으로 거하시는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 성전에서의 활동으로 더 깊게 맺어진다. 

성전의 모습과 그 안에서의 활동으로 인해, 사람들은 머리와 마음에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각인하다. 

그렇게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와서 자연이라는 하나님의 성전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것이 성전의 기능이다. 

인간의 건축물로서의 성전의 역할은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 성전으로 인식의 확장이 일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이 창조 행위에 솔로몬과 아도니람이 참여한 것이다. 

 

지금도 교회와 예배의 기능은 성전의 기능과 유사하다. 

교회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자연 성전을 마음 속에 각인한다. 

하나님은 교회당 건물에 갇혀 계시지 않는다. 예배 시간에만 일어나 앉아 계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자연 성전에 계신다. 

성전으로서의 우주와 만물에 계신다. 

매주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우주 성전이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장소와 시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만난다. 

이것을 계속 각인해야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쉽게 부패해서 자꾸 각인시켜주지 않으면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정기적인 예배의 중요성은 여기서 드러난다. 

 

자연 성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내가 하나님이 만드신 가장 큰 성전, 바로 이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라는 의식 뿐인가? 

아니다. 

다시 12절을 본다. 

 

12“드디어 네가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구나. 네가 내 법도와 율례를 따르고, 또 나의 계명에 순종하여, 그대로 그것을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한 바를 네게서 이루겠다. 13또한 나는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그들 가운데서 함께 살겠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르는 삶,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면서 지키는 삶.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주목하는 삶일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중요하다. 법도와 율례를 따르고, 계명에 순종하고, 약속 성취에 주목하는 것…

자연 성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법도와 율례와 계명을 따르겠다는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을 위한, 우주와 만물을 위한 그분의 계획과 약속이 어떻게 들어맞고 성취되는지를 보면서 더욱 활성화된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더욱 그분의 계명을 따르고 싶어진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의 법도를 더욱 지키고 싶어진다. 

 

오늘 내가 걸어가야 할 일상의 삶이 있다. 

진행해야 할 모임이 있고, 논의해야 할 안건들이 있다. 

그리고 돌봐야할 사람들이 있다. 

이 모든 일상은 자연 성전 안에서 행해지는 일들이다. 

마치 주님 앞에서 행하듯 더욱 겸손하게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성전을 음미하고 싶다. 

그렇게 평안하고 꽉찬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계신 하나님, 

오늘도 주님을 부릅니다. 

아도니람처럼 오랜 시간 감당해야 할 프로젝트 앞에서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버겁고 힘들고 지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손을 붙잡길 원합니다. 

내 의지와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능력으로 감당하길 소망합니다. 

 

자연 성전에 계신 하나님,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 속에서 온 우주에 계신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일상의 삶을 살 때, 곳곳에 배어있는 당신의 숨결과 손길을 감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당신의 일하심을 주목하길 원합니다. 

당신의 일하심을 감지하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약속을 이루시는 당신의 신실함을 보길 원합니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고쳐주소서. 

마음과 정서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회복시켜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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