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6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25 내 영혼이 진토 속에서 뒹구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26 내가 걸어온 길을 주님께 말씀드렸고, 주님께서도 나에게 응답하여 주셨으니, 주님의 율례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27 나를 도우셔서, 주님의 법도를 따르는 길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이루신 기적들을 묵상하겠습니다.

28 내 영혼이 깊은 슬픔에 빠졌으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29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 주십시오.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30 내가 성실한 길을 선택하고 내가 주님의 규례들을 언제나 명심하고 있습니다.

31 주님, 내가 주님의 증거를 따랐으니, 내가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32 주님께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시면, 내가 주님의 계명들이 인도하는 길로 달려가겠습니다.

 

[ESV]

My soul clings to the dust; give me life according to your word!(25절)

My soul melts away for sorrow; strengthen me according to your word!(28절)

 

[오늘의 묵상]

주님을 부를 이유가 있다. 

시인의 영혼이 진토 속에 있고, 깊은 슬픔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분명히 등장하지는 않는다. 

허나 31절에 따르면, 시인은 수치를 당하는 일에 대해 예민하다. 

부끄러움을 겪으면 슬픔이 찾아온다. 

소외감을 느낀다. 

쥐구멍이라도 찾는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린다. 

점점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영혼이 메말라 간다. 

수치스러움, 부끄러움, 이런 감정들을 오래 갖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과 영혼은 병든다. 

 

시인은 주님을 부른다.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한다. 

‘새 힘을 주십시오. 나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시인에게 간절한 열망은 새로운 힘이다. 

부끄러움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힘. 

독수리와도 같은, 호랑이와도 같은 힘, 준마와도 같은 힘이 필요하다. 

 

수치스러움이 깊어지면, 주님의 율법을 지킬 힘도 점점 줄어든다. 

자신감은 상실되고, 율례보다 내 마음이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갇히면 외부에 주어진 어떤 의무도 거리끼게 된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려고 하니 문제가 발생한다.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다. 

주님의 율례를 배우고, 법도를 깨달을 수 있는 힘. 

그 율례와 규례와 법을 실천할 수 있는 힘. 

배우고 깨닫고 따르고 달려갈 수 있는 힘. 

그 힘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다. 

주님의 법은 주님의 뜻을 현실로 구현하는 장치다. 

그 법을 지키고 따른다는 것은 주님의 뜻을 구현하는 매개가 된다는 뜻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주님께 간구한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그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이걸 실현하고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성령님의 힘이다. 

그 힘이 있어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삶에 실천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율법 조문과는 다르다. 

예수님의 존재, 삶, 사역, 삶과 사역의 방식, 십자가, 부활 등 그분의 전체 삶이 새로운 규례요, 율법이다. 

성령님은 이 예수님을 기억나게 하시는 분이시다. 

구약에는 모세 율법을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면, 이제는 예수님을 마음에 새기고 그분의 말씀과 삶의 태도를 묵상하고 따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걸 하기 위해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오늘도 주님을 부른다.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기 위해서… 

 

[오늘의 기도]

율법의 완성이 되신 예수님, 

율법의 조문 자체보다 인격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

당신을 기억하고 묵상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삶과 말씀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배우게 하소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주님과 더욱 친해지도록 도우소서. 

 

주님, 당신을 따르려면 매일 매일 새로운 힘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소경 바디메오가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던 것처럼,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외쳐 부릅니다. 

제 내면에 깊은 갈망을 발견하게 하소서. 

주님과 더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가길 갈망합니다. 

그 교제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길 소망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8월 02일 수요일

 

여는 기도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십시오.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14 예수께서 귀신을 하나 내쫓으셨는데, [그것은] 벙어리 [귀신이었다]. 그 귀신이 나가니,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리가 놀랐다.15 그들 가운데서 더러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가 귀신들의 두목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내쫓는다.”16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에서 내리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그에게 요구하였다.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고, 또 가정도 서로 싸우면 무너진다.18 그러니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가 어떻게 서 있겠느냐? 너희는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고 하는데,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면 너희의 추종자들은 누구를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는 말이냐?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20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들을 내쫓으면,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이미 온 것이다.21 힘센 사람이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집을 지키고 있는 동안에는, 그의 소유는 안전하다.22 그러나 그보다 더 힘센 사람이 달려들어서 그를 이기면, 그가 의지하는 무장을 모두 해제시키고, 자기가 노략한 것을 나누어 준다.23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

 

24 “악한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하면, 그 귀신은 쉴 곳을 찾느라고 물 없는 곳을 헤맨다. 그러나 그 귀신은 찾지 못하고 말하기를 ‘내가 나온 집으로 되돌아가겠다’ 한다.25 그런데 와서 보니, 집은 말끔히 치워져 있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26 그래서 그 귀신은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딴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산다. 그러면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

 

NRSV

But if it is by the finger of God that I cast out the demons, then the kingdom of God has come to you(20절).

 

주석

24-26절. 승리하여 자유를 누리는 사람도 여전히 귀신의 권능에 굴복할 수 있다. 예수님은 악한 귀신이 다른 악한 영을 데리고 와서 그 사람을 다시 소유할 수 있다고 경고하신다(IVP 성경비평주석). 

 

[오늘의 묵상]

하나님 나라의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실 귀신을 내어쫓는 능력을 갖게 된다.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사단을 이겨낼 수 있다. 

기도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이 이제 다시 원래 하시던 사역을 감당하신다. 

그것은 귀신에게 영항을 받아 몸과 마음이 망가진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로마 제국이 억압하니 사람들은 분노와 답답함이 가득하다.

사단과 귀신은 사람들의 상처난 마음을 파고 몸과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신다. 

제국의 압제로부터 영적, 정서적, 육체적 건강을 회복시키는 사역을 감당하신다. 

마음과 육체가 건강해져야 돈을 벌 수 있고, 경제 활동을 통해 자기와 가족들을 도울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의 비판, 비난이 이어진다. 

귀신들의 두목인 바알세불의 힘을 얻어 다른 귀신들을 제압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전면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례 받을 떄 들렸던 음성,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음성도 거부하는 것이며, 성령님의 역사도 부정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부인하고 훼방하는 말인 것이다. 

예수님을 비판하는 것도 때로는 비웃는 것도 참으셨지만,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왜곡시키는 것은 예수님도 참기 힘드셨던 것 같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하는 어떤 비방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인다”(막 3:28-29) 이렇게 써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모독하지 마라. 

성령님이 사단을 제압하고 사람들을 구출하며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삼으시고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결국 열매로 알게 된다. 

사단은 악한 열매를 맺게 된다.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이다.  

사람들을 급하게 몰아세우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자유와 기쁨과 평화를 주신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시다. 

 

드라마 D.P.를 시청했다. 

예전 군생활이 생각났다. 

때리고 맞고 하던 시절이다. 

구타와 가혹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대대장이 교회 집사였다. 

그는 군종을 통해 GOP 부대원들의 정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나는 밤마다 초소를 돌며 병사들을 위해 커피와 쵸코파이를 나누고 기도를 했다. 

군에서 더 이상 구타가 사라지길 바라면서… 

난 때린 적은 없지만, 맞은 적은 있다. 

그러나 그저 바라보기만 한 적도 많이 있다. 

선임병이 되어서 막아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마 군대에서 활동하는 사단과 귀신이 많을 것이다. 

군인들의 마음을 짖누르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상황을 이용해 그들의 마음을 휘젖는다. 

그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하고, 하나님 나라가 필요하다. 

최근 CCC가 군복음화와 선교를 위해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MEAK)와 협약식을 맺었다. 

http://www.kosi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740

전략적으로나 정신으로나 매우 훌륭한 결정이다. 

군인들의 영적 궁핍함을 돌보는 사역은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가 넘쳐 나면, 어쩔 수 없이 사단과 그의 졸개들이 고통 속에 발악하게 된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사단의 졸개들은 살려달라 애원한다. 

주기도문의 끝은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에 대한 간구다. 

주기도문이 진심으로 드려지고 함께 기도할 때, 결국 사단의 졸개들은 두려움으로 자신들을 드러낸다. 

주의 제자들은 그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처음보는 사람들은 두려움에 떤다. 

악에 대한 거부는 악의 발악을 낳는다. 

개인의 악도 그렇고, 조직의 악도 그렇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때로 위험하다. 

 

사단의 졸개들에게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 

혹 틈이 보여 공격을 받더라도, 집을 내주지 않는 것이 좋다. 

혹 집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성령님을 모시는 것이 좋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를 때로 전사로 만든다. 

우리는 때로 악과 싸워야 한다. 

우리의 근육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싸우는 것이다. 

그 나라를 거부하는 자는 결국 심판을 받게 된다. 

성령님을 거부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는 것이며, 결국 바깥에서 슬피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삼위 하나님, 

당신의 이름이 더욱 높아지길 원합니다. 

세상의 칭찬이 본질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과 정의라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추구하고, 기도하고, 실천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세상은 교회를 칭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고, 사람들에게 도움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성령님, 더욱 강력하게 임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소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해주는 관계로 만들어 주소서. 

 

오늘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인도해주세요. 

더욱 날씨에 짜증내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도와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8월 01일 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구에게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가 밤중에 그 친구에게 찾아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여보게, 내게 빵 세 개를 꾸어 주게.6 내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는데, 그에게 내놓을 것이 없어서 그러네!’ 할 때에,7 그 사람이 안에서 대답하기를 ‘나를 괴롭히지 말게.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과 나는 잠자리에 누웠네. 내가 지금 일어나서, 자네의 청을 들어줄 수 없네’ 하겠느냐?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유로는, 그가 일어나서 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그가 졸라대는 것 때문에는,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10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아버지가 된 사람으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12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13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NIV

I tell you, even though he will not get up and give you the bread because of friendship, yet because of your shameless audacity he will surely get up and give you as much as you need(8절).

 

[오늘의 묵상]

오늘 말씀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눈에 들어오는 말씀은 마지막 구절이다.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다. 오늘 본문의 핵심 간구는 바로 성령님이시다. 

바로 전 문단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요청에 당신의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찾는 자에게, 두드리는 자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두 가지 말씀을 연결하면, 주님의 기도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 나라를 선물로 주신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연결고리가 있다. 

바로 마지막 구절이다. 

성령님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데, 그 하나님 나라를 추동하는 힘은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것이다. 

성령님이 오시면 하나님 나라가 오게 된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시기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하신 일들을 기억나게 하시고, 반복하게 하신다.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실천을 가능하게 하신다. 

그러니 성령님의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오심은 이렇게 연결된다. 

하나님 나라 = 성령님 임재

이 공식이 여기서 성립된다. 

주기도문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여러 측면들을 함께 간구하라고 한다. 

아버지 하나님 이름의 영광, 일용할 양식, 죄의 용서, 악으로부터의 구출. 

이런 것들이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것은 성령님의 임재로 이뤄진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간구함과 동시에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라고 요구하신다. 

이것은 주기도문의 연장이다. 

주기도문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기도문의 맨 마지막 간구는 “성령님 오시옵소서”이다.

혹은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이다. 

 

누가는 그 누구보다 성령님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한 사람이다. 

예수님의 승천 후, 사도들이 어떻게 성령님을 간구하고, 받았고, 동역했는지 직접 본 사람이다.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어떻게 발생하고, 확장되는지 경험했다. 

그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말씀이다.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겠다는 말씀이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을 구하라는 것이다. 

주기도문의 내용을 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받게 될 것이고, 찾게 될 것이고,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문이 열리고, 아버지의 이름이 높아지고, 서로 용서하는 일이 일어난다. 

공동체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악한 사단의 권세로부터 보호받는다. 

 

정말 사회는 진보하는가? 

새로움에 진리가 있는가? 

진정한 변화는 하나님께 있다. 

사람이 추동하려는 변화에는 언제나 부작용이 따르고, 강자와 약자의 위치 이동이 따른다. 

성령님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온전한 의미의 진보는 불가능하다. 

성령님이 이끄시는 변화와 사람이 선동하는 변화를 구분해야 한다. 

그 구분의 중심에 주기도문이 있고, 하나님 나라가 있고, 성령님이 계신다. 

이것이 없이 어떻게 진실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가? 

약자와 강자의 개념이 사라지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단 말인가? 

 

주기도문은 누가복음 11:2-13절까지다. 

이걸 놓치면 반쪽짜리 주기도문이 된다. 

간구하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이 성취되는 방식도 중요한데, 

이 두 가지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 들어있다. 

 

이 놀라운 깨달음을 주신 성령님께 감사드린다. 

 

 

[오늘의 기도]

성령님, 오늘 놀라운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기도문은 짧은 기도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용과 방법을 동시에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되, 그 나라의 오심은 성령님의 임재와 연결됩니다. 

주님, 오늘 저에게 성령님을 허락하소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게 하소서.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이 놀라운 선물을 받게 하소서. 

내가 명예와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영광과 명예를 누리소서.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05월 16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25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 26 그는 주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27 그가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마침 아기의 부모가 율법이 정한 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28 시므온이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29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30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31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32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하여 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34 시므온이 그들을 축복한 뒤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35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주석

계시하는 빛, 영광(32절) 누가는 이 아기가 가져올 나라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나라임을 보여 준다.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계시, 곧 모든 백성을 차별 없이 구원하시는 계획을 볼 것이다. 이는 그동안 약속의 전달자였던 이스라엘, 세상의 참 통치자를 배출할 나라에게도 진정한 영광이 될 것이다(모든 사람을 위한 누가복음).

 

비방 받는 표징(34절) 예수님은 거절당하시기도 하고(4:29), 사람들이 그분을 받아들이기도 할 것이다(5:7), 아기는 “비방을 받는 표적”, 문자적으로 ‘반대를 당할’ 것이다(IVP 성경비평주석).

 

하나님이 백성에게 주실 ‘위로’를 고대하던 시므온은 성전으로 들어오는 아기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25-28절). 그는 아기 예수의 탄생이 단지 이스라엘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온 백성의 구주가 되시기 위함임을 선포합니다(29-32절).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할 것이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어 사람들의 반대를 당하실 것입니다. 또한 많은 이의 마음 속 은밀한 생각들을 드러내실 것입니다(34-35절).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정으로 기다리는 마음만큼은 분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그분을 기다리던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마음의 은밀한 생각을 아십니다. 예수님께 나의 마음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예수님을 향한 갈망의 마음을 주시도록 간구합시다.

 

[오늘의 묵상]

시므온은 하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은 가만히 있음이 아니었다. 

그는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성경에서의 경건과 의로움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경건함과 의로움이 몸에 밴 채로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령님이 그와 함께 했다. 

시므온은 성령님의 지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성령님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다. 

평소에도 성전에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이날은 뭔가 달랐다. 

성전에 가고 싶은 마음이 예전과 달리 강렬했다. 

그의 마음과 생각을 압도하는 세밀한 음성이 들렸다. 

 

성령님의 음성은 스피커로 떠들어대는 광장의 외침과는 다르다. 

침묵 속에 세밀하게 들리는 성령님의 음성에 집중한다. 

작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가 마음에서 점점 크게 울리기 시작한다. 

마음의 소리는 분별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모든 마음의 소리가 성령님의 음성은 아니다. 

수많은 마음의 소리 속에서 성령님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분별에는 공동체적 요소가 분명히 들어가야 한다. 

오랫동안 하나님의 음성, 성령님의 음성이라고 여겨왔던 역사적 공동체의 분별의 원리가 있다. 

그리고 지금 속한 공동체의 거룩한 사람들이 동시에 느끼는 분별의 원리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명시적으로 글로 남겨 두어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이 된 성경이 있다. 

이렇게 분별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주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므온이 기다렸던 하나님의 위로는 구약 예언자들이 이미 말씀했던 것들이다. 

그리고 동시대의 거룩한 사람들이 함께 추구하던 것들이다. 

그러기에 좀더 확신있게 분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령님은 한 명에게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조차 그분의 주장과 말씀이 선포되기 전에, 세례 요한을 통해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하셨다. 

성령님은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들,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록된 말씀을 존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명을 일으키면서 비슷한 메시지를 던지시며 활동하신다. 

 

작은 소리에 예민해져라. 

그 마음의 소리가 역사적 기독 공동체의 오랜 분별의 맥락에 어떻게 닿아 있는지 확인하라. 

그 소리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지금 현재의 거룩한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점검하라.  

무엇보다 성경 말씀의 큰 주제와 메시지의 범위 내에 있는지도 확인하라. 

그리고 점점 그 소리를 키워라. 

마음 속에서 더 큰 소리가 되도록 집중하고 허용하라. 

그리고 그 소리에 따라 행동하라. 

그 행동의 결과와 열매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도 최조적으로 확인하라. 

성령님의 역사는 그 열매로 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공동체가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드러낼 공동체의 생존과 유지를 원하신다. 

하나님 나라 역사의 소임을 다한 공동체는 자연스레 역사의 뒤안길로 멀어진다. 

그리고 성령님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다시 일어난다. 

소임과 사명이 남은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신다. 

아벱이 송죽이 그렇게 되길 바란다. 

이곳에 여전히 성령님의 음성이 남길 소망한다. 

성령님의 음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소망한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공동체의 온전한 회복과 위로를 꿈꾼다. 

구성원들 한 명 한 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아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자 집중하고, 세상의 음성, 자가 욕망의 음성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길 소망한다.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 만남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성령님, 

당신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당신이 보여주시는 이미지와 환상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당신의 뜻에 따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운동가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합니다. 

그러나 영성가는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주목합니다. 

오랜 세월 운동가와 영성가 사이를 오가며 살아왔습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오늘 저는 깊이 있는 영성가가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 말씀해주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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