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03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1 우리의 임금님께서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기도하실 때에 주님께서 임금님께 응답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야곱의 하나님께서 친히 임금님을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2 성소에서 임금님을 도우시고, 시온에서 임금님을 붙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3 임금님께서 바치는 모든 제물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임금님께서 올리는 번제를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셀라)
4 임금님의 소원대로, 주님께서 임금님께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시고, 임금님의 계획대로, 주님께서 임금님께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5 우리는 임금님의 승리를 소리 높여 기뻐하고,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 세워 승리를 기뻐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임금님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6 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름을 부으신 왕에게 승리를 주시고, 그 거룩한 하늘에서 왕에게 응답하여 주시고, 주님의 힘찬 오른손으로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7 어떤 이는 전차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기마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자랑합니다.
8 대적들은 엎어지고 넘어지지만, 우리는 일어나서 꿋꿋이 섭니다.
9 주님, 우리의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부를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주석
이 시는 전쟁 전날 밤 기도와 희생 제사의 예배를 드릴 경우에 적합하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기름부으신 왕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왕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를 위한 축복의 기도는 정당하다.
그 사람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천하는 행위는 정당화되고 축복 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기름부은 왕은 많은 사람들의 중보기도를 받게 된다.
그의 성공과 성취는 하나님의 성공과 성취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왕과 우주의 주님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
인간의 왕이 우주의 주님의 뜻을 따를 때, 백성들은 오늘의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인간의 왕은 백성들을 대표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자다.
인간의 왕은 백성들을 대표하여 정책을 만들고 집행한다.
그러니 그의 결정과 수행 능력에 백성들의 삶의 질과 미래가 달렸다.
당연히 그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계속해서 바르고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우주의 주님되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 백성들은 분명히 말해야 한다.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길을 좇으라고.
어느 공동체건 리더가 있다.
리더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팔로워들은 그 리더가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는지 아닌지 계속 확인해야 한다.
사실 둘다 에너지가 들고 피곤한 삶이다.
스스로 반성하는 자도 다른 이를 지켜보는 삶도.
그렇지만 한 공동체가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비전을 이뤄가길 위해서는 반성과 감시는 필수적이다.
반성이 사라진 리더, 감시가 사라진 팔로워로 이뤄진 공동체는 악에게 쉽게 노출된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없이는 이 어려운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여기서 급히 요청되는 것이 성령님의 내주하심이다.
그분이 동기부여해주지 않으시면 감당하기 어렵다.
2. 하나님만을 자랑한다.
정말 하나님을 자랑하며 살고 싶다.
어떤 이는 전차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기마를 자랑한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전차와 기마가 필수적이었다.
탱크와 비행기가 없이 현대전을 어떻게 승리하겠는가!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이 없이 현대 해전을 어떻게 수행하겠는가!
유툽에 보면 군대 덕후들이 참 많다.
전 세계 군사력을 1위부터 10위까지 나열하곤 한다.
우리나라도 꽤나 높은 순위에 랭크되어 있다.
KF21 보라매의 개발을 칭송하는 컨텐츠가 즐비하다.
K9자주포의 위용을 찬양하는 컨텐츠가 곳곳에 있다.
우리나라 군사력이 세계 5위 혹은 6위란다.
SNS는 온갖 자랑거리로 가득해서 식도까지 차올랐다.
자랑하지 않으면 웃음도 이야깃거리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자기 자랑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야 서로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간다.
일상의 대화가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 철학적인 이야기, 신학적인 이야기도 즐겁지만, 모두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나는 하나님만을 자랑하며 살고 싶다.
다른 것은 특별히 관심과 애정을 두고 싶지 않다.
그러나 현실을 살다보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나님 이야기만 하는 사람과 즐겁게 지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고리타분…
바로 그 단어다.
어느새 나도 내가 하는 것들 중에 의미있는 것들을 소개하고 자랑하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달리기다.
달리기는 영성적이므로 달리기에 대한 자랑과 소개가 자연스럽게 하나님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달리기에 대한 자랑을 스스로 정당화한다.
그런데 어느새 달리기 뿐만 아니라 내 삶의 모든 것들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에 예전보다 더 익숙해졌다.
과연 이런 태도는 문제적일까, 아닐까?
오늘 시인은 하나님만을 자랑한다고 할 때, 비교군으로 삼은 것은 전쟁의 도구였다.
전차나 기마는 전쟁을 수행할 때 필요한 군사 장비다.
확실히 전차와 기마를 가진 군대를 상대하는 것은 어렵다.
그들은 기세등등할 것이다.
대부분의 전쟁을 전차와 기마를 통해 승리해왔다.
그들은 단순한 일상의 자랑을 넘어 그것들에 의존하고 그것들을 숭상해 왔다.
전쟁은 사람의 생명과 나라의 존망이 달린 일이다.
전차와 기마에 의지하는 전쟁과 하나님께 의존하는 전쟁.
이렇게 중차대한 레벨에서의 자랑함이 오늘 본문의 전제다.
일상의 유머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일상의 모든 순간 하나님만 자랑하라는 적용은 과하다고 본다.
물론 일상에서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을 자랑한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일상에서도 하나님을 자랑하는 연습이 필요하며, 나아가 연습에 그치지 않고 진심이 담긴 자랑과 칭송과 찬양이 필요하다.
월요일 아침, 시인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한다.
[오늘의 기도]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당신을 자랑합니다.
누군가는 돈, 명예, 인기, 음식, 부동산, 차, 인맥을 자랑하지만,
저는 주님을 자랑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유일하신 창조주이시며, 인류를 구원하신 영광의 왕이십니다.
당신 때문에 우주가 돌아가고, 인생들의 삶이 유지됩니다.
자연 만물은 당신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고 변화됩니다.
사람들의 변화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끝까지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끝까지 당신을 자랑하게 하소서.
죽음의 순간까지도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저의 끝을 주님께 맡깁니다.
전쟁의 순간처럼 급박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의 능력과 계획과 뜻을 의지하게 하소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삶으로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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