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1월 06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주님의 종 다윗의 노래. 주님께서 다윗을 그의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셨을 때에, 다윗이 이 노래로 주님께 아뢰었다. 그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31 주님 밖에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밖에 그 어느 누가 구원의 반석인가?
32 하나님께서 나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시며,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안전하게 지켜 주신다.
33 하나님께서는 나의 발을 암사슴의 발처럼 빠르게 만드시고, 나를 높은 곳에 안전하게 세워 주신다.
34 하나님께서 나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시니, 나의 팔이 놋쇠로 된 강한 활을 당긴다.
35 주님께서는 나를 지키는 방패를 나의 손에 들려 주셨고, 주님께서는 오른손으로 나를 강하게 붙들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토록 보살펴 주시니, 나는 큰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36 내가 힘차게 걷도록 주님께서 힘을 주시고, 발을 잘못 디디는 일이 없게 하셨습니다.
37 나는 원수를 뒤쫓아가서 다 죽였으며, 그들을 전멸시키기까지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38 그들이 나의 발 아래에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그들을 내가 무찔렀습니다.
39 주님께서 나에게 싸우러 나갈 용기를 북돋우어 주시고, 나를 치려고 일어선 자들을 나의 발 아래에서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40 주님께서는 나의 원수들을 내 앞에서 등을 보이고 도망가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완전히 무찌르게 하셨습니다.
41 그들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들을 구해 줄 사람은 하나도 없고, 주님께 부르짖었지만, 주님께서는 끝내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42 그래서 나는 그들을 산산이 부수어서, 먼지처럼 바람에 날려 보냈고, 길바닥의 진흙처럼 짓이겨 버렸습니다.
43 주님께서는 반역하는 백성에게서 나를 구하여 주시고, 나를 지켜 주셔서 뭇 민족을 다스리게 하시니, 내가 모르는 백성들까지 나를 섬깁니다.
44 나에 대한 소문을 듣자마자, 모두가 나에게 복종합니다. 이방 사람들조차도 나에게 와서 굴복합니다.
45 이방 사람이 사기를 잃고, 숨어 있던 요새에서 나옵니다.
주석
33절. 이런 영양류는 불안정한 길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잘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이현령비현령,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때로 성경 말씀이 그렇게 사용된다.
시편이면 더욱 그렇다.
시인의 상황에 자신의 상황을 덧대어 아전인수 격으로 적용하곤 한다.
그것을 피하려면,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을 깊이 전제해야 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반하면서도 말씀의 주인공이 된 듯이 적용해서는 안된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용기있게 골리앗과 맞섰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함부로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다가 당하는 고난 앞에서 그는 하나님을 찾았다.
시와 노래로 주님께 나아갔다.
사울이 쳐놓은 함정을 피하고 죽음의 순간을 넘어섰을 때,
전장에서 사선을 넘어 승리를 쟁취했을 때,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자신을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임을 인정했다.
1.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
32 하나님께서 나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시며,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안전하게 지켜 주신다.
39 주님께서 나에게 싸우러 나갈 용기를 북돋우어 주시고, 나를 치려고 일어선 자들을 나의 발 아래에서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전쟁터에 나아갈 때,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돌아오지 못한 형제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자신도 바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이 전장터에 나가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최근에 아들 녀석이 밥먹다 말고 눈물을 쑥 흘린다.
식사 자리에서 할아버지의 말 때문이었다.
“군대가면 너도 저렇게 해야 한단다”
군대가는 것에 대한 극도의 공포가 아들에게 있나보다.
현실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공포에 휩싸인다.
용기가 없이는 전쟁터에 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와 가족과 친지를 위협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적국의 공격이 계속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전쟁도 있었지만, 살기 위한 전쟁,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쟁도 계속되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용기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용기를 주셨다.
2. 힘을 주시는 하나님
34 하나님께서 나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시니, 나의 팔이 놋쇠로 된 강한 활을 당긴다.
36 내가 힘차게 걷도록 주님께서 힘을 주시고, 발을 잘못 디디는 일이 없게 하셨습니다.
영화 “안시성”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성주 양만춘이 신화적 활을 당기는 장면이 멋지게 그려진다.
그 활을 당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활의 장력이 너무 세서, 범인은 당길 수가 없었다.
놋쇠로 된 강한 활은 얼마가 강할까!
그 활을 당긴다는 말은 당시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 활에서 발사되는 화살은 왠만한 갑옷을 뚫고, 몇 명의 적을 사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런 힘을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전쟁은 기동력이 좌우한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면, 적의 가장 약한 부분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미처 싸움을 대비하기도 전에 적의 심장에 도달할 수 있다.
전쟁 승리의 최적화된 고지에 먼저 도착할 수 있다.
힘차게 걸어야 빨리 오래 걸을 수 있다.
그 힘이 없으면 온갖 전쟁 장비를 들고 빠르게 이동할 수 없다.
정예병들은 언제나 빠르게 걷고 달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하셨다.
그러면서도 발을 잘못 디디지 않는다.
트랙이나 아스팔트가 아닌 산행을 해보면 발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울퉁불퉁한 산길, 특히 돌산을 오르다보면 발목이 이리저리 접히고 돌아간다.
강인한 발목과 아킬레스건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강력한 힘을 공급하셨다.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이끄셨다.
하나님을 위한 전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전쟁, 생존을 위한 전쟁,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리는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은 그에게 용기와 힘을 공급하셨다.
3. 하나님 편에 서라
41 그들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들을 구해 줄 사람은 하나도 없고, 주님께 부르짖었지만, 주님께서는 끝내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적들도 하나님을 안다.
그들도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응답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모든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것은 아니다.
악한 자들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거절하신다.
평소에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의 뜻에 반해 살아가던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자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고난받는 자들의 신음과 부르짖음에 응답하신다.
자기 권력을 유지하려고, 자기 권력을 영구히 하려고, 온갖 신들을 찾았던 자들이 벼랑끝에 몰려 하나님을 찾는다 한들 하나님이 도와주실 리 만무하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린다.
하나님이 특별히 심판하겠다고 결정하신 뒤에는 무르기도 어렵다.
하나님의 군대가 성 앞에 와 있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군대에 의해 심판받게 된다.
이게 구약의 논리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심판을 행하신다.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서는 하나님에 대해 오해만 쌓일 뿐이다.
이스라엘 백성과 그 주변국들을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당신의 성품과 통치는, 은혜와 사랑 그리고 정의와 심판이다.
이 복합적인 내용을 역사 속에서 보여주지 않고는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시킬 수가 없다.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심판하지 않으셨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대하고 정의로운 분으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복을 주고 용서를 베풀며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는 분으로 여겼을 것이며, 이는 사회적 약자에게는, 구조적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는 어떤 위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의 전 면모를 역사 속에서 드러내야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복합적인 성품 가운데 유독 사랑과 희생, 용서와 용납을 보여주셨다.
판단과 정죄와 심판은 뒤로 미루셨다.
역사 속에서 곧바로 실행하지 않으시고, 역사의 끝에 그 일을 이루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러니 지난 2천년은 인간의 죄로 인해 당하는 고통과 고난 외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몰살당하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거룩한 전쟁이란 예수님 이후에는 없다.
예수님은 전쟁으로 누군가를 심판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을 전쟁으로 사람들을 회심시키지 않으신다.
인간들의 욕심이요 야욕이요 아집일 뿐이다.
죄는 고통과 고난을 수반한다.
죄악은 악한 구조를 형성한다.
악한 구조는 반영구적인 고통을 누군가에게 안긴다.
그 고통이 계속되면 바로 그가 사회적 약자가 된다.
예수님은 죄악으로 달려가는 자들을 막지 않으신다.
권하고 설득하고 초대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의지를 꺾어서 기계처럼 자기 옆에 두시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막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눈물로 호소하시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와 당신의 뜻을 보여주시지만, 인간의 의지와 결정을 강제로 막고 꺾어 버리지 않으신다.
그리고 마지막 때를 기다리신다.
그러니 하나님 편, 예수님 편에 서라.
마지막 심판이 오기 전에 은혜의 예수님께 돌아오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책임을 지고, 오직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삶을 재조정하라.
예수님 편에 서라.
[오늘의 기도]
사랑의 예수님,
당신의 사랑 안에 거합니다.
구약 세계에 있었다면 저는 제대로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신약 세계를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은혜와 자비, 사랑 덕분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도록 이끄소서.
교회가 교회되게 하소서.
사람이 사람되게 하소서.
제가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신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 즉 악의 길로 걸어가는 자들이 돌이켜 회심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하소서.
그런 일을 끝까지 감당하도록 도우소서.
위법한 자들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 인정하고 그 벌을 달게 받게 하소서.
역사를 자기 멋대로 주무르려고 했던 자들을 벌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이현령비현령 다루는 자들을 벌하소서.
예수님의 뜻을 분명히 알게 하소서.
예수님은 비폭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가져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부인과 자기 희생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끄셨습니다.
힘으로, 무력으로, 전쟁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자들을 벌하소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자들을 막으소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역할이 있고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모든 역사의 섭리와 시말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 바로 오늘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하도록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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