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06일 화요일

 

여는 기도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1 그들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으로 갔다.

2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니, 곧 악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 사이에서 나와서, 예수와 만났다.

3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4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5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하였다.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엎드려서

7 큰소리로 외쳤다. “더 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고 애원합니다.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8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10 그리고는, 자기들을 그 지역에서 내쫓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오늘의 묵상]

# 그들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분을 따르는 일부 무리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바다를 건넜다. 

바다를 건너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넘실대어 파선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와중에 예수님은 주무셨다. 

예수님도 참 대단하신 분이시다. 

왠만해서는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텐데, 그 와중에 주무시다니… 

결국 제자들이 깨우기에 이른다. 

일어나서는 파도와 바람을 잠잠케 하신다. 

위대한 일이 벌어졌다. 

 

제자들을 비롯한 일부 무리들이 이 광경을 다 보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는 모습을 보았다. 

이 광풍은 어쩌면 사탄의 공격이었을 수도 있다. 

거라사 지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사탄의 공격일 수도 있겠다. 

 

#거라사

이방인의 땅이다. 

유대인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유대 문화는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이방땅의 문화는 로마의 문화를 닮았다. 

돼지를 키우는 것을 보니, 유대교 문화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보았다. 

그리고 귀신이 들렸다고 무덤에 사슬로 묶어 둔 것도 너무한 처사다. 

그 지역 무당이나 제사장들이 이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을까! 

꼭 무덤에 두어야 했는가? 

그의 행동이 매우 과격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조치가 더 과격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쇠사실로 묶었을 때, 아마도 그 안에 들어 있던 귀신들은 그에게 속삭였을 것이다.

'더 많은 귀신을 불러 들여라.' 

'너 자신을 귀신에게 맡겨라.'

 

#예수님의 의도

예수님은 폭풍을 뚫고 거라사로 가셨다. 

거라사에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 거라사로 가셨다. 

거라사에서의 활동은 많지 않으셨다. 

군대 귀신을 내쫓는 일에 집중하셨다. 

군대 귀신이 어떻게 그에게 들어갔을까? 

왜 그렇게 많은 귀신이 그에게 들어갔을까? 

그가 당한 고난과 고통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죄가 크기 때문이라고 예단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고대 사회는 현대 사회보다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컸다. 

사회 구조는 대부분 억압적이었고, 폭력적이었다. 

주인과 노예가 있었고, 노예들은 짐승 같은 대접을 받았다. 

그 속에서 미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은 어찌보면 생존을 위해 귀신을 불러들였는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 거라사

우리 시대 거라사는 어딘가?

한 개인이 사회와 공동체의 억압과 압박에 시달려 죽음을 매일 매일 생각하는 도시는 어딘가? 

과거 고등학교에는 일진들이 판을 쳤다. 

운동부 친구들이 어둠의 세계를 지배했다. 

그곳도 거라사라고 할 수 있겠다. 

서울은 어떤가? 

과연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인가? 

혹시 여기 서울도 귀신들의 유혹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일이 비일비재한 도시는 아닌가?

용하다는 무속인이 왜 그리도 많은가? 

전화로도 신점을 볼 수 있단다. 

과거와 미래를 맞춘다. 

그렇다고 서울의 자살률을 낮출 수 있는가? 

점점 더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의 참 평안은 귀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참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을 주인으로 모실 때만이 가능하다. 

그 일을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람들을 사탄과 귀신들로부터 구출해 주시는 예수님, 

이 시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 충동을 느낍니다. 

악한 귀신들을 이길 힘은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온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사탄과 귀신들이 악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조직적인 악이 창궐하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짓는 죄가 악을 부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가 결국 사탄이 주도하는 악의 구조를 불러옵니다. 

예수님, 

죄와 악을 도말하소서.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신 주님, 

사람들이 사탄을 따르지 않도록 이끄소서. 

저와 우리 공동체를 보호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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