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07일 수요일

 

여는 기도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십시오.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11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귀신들이 예수께 간청하였다. “우리를 돼지들에게로 보내셔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13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악한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 쪽으로 비탈을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

14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달아나 읍내와 시골에 이 일을 알렸다. 사람들은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보러 왔다.

15 그들은 예수에게 와서, 귀신 들린 사람 곧 군대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16 처음부터 이 일을 본 사람들은, 귀신 들렸던 사람에게 일어난 일과 돼지 떼에게 일어난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자기네 지역을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19 그러나 예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집으로 가서, 가족에게, 주님께서 너에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너를 불쌍히 여겨 주신 일을 이야기하여라.”

20 그는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데가볼리에 전파하였다. 그리하니 사람들이 다 놀랐다.

 

[오늘의 묵상]

# 귀신들의 요청

이번 귀신들은 독특하다. 

원래 예수님이 나가라고 하면 다 나가곤 했다. 

그런데 이번 귀신들은 한 번에 나가지도 않았고, 게다가 예수님께 요청까지 하고 있다. 

이들은 일반적인 귀신이 아닌 것 같다. 

과거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욥을 참소/고소하던 사탄이 기억난다. 

그도 보란듯이 하나님 앞에서 요청하고 협상했다. 

지위가 높은 귀신일지, 혹은 떼로 모여 있기 때문에 그런 건지는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들은 예수님께 요청하고 있다. 

수천 마리의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한다. 

이런 요청도 독특하지만, 그런 요청을 들어주시는 예수님도 쉽게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단칼에 거부하실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을 들어 주어 돼지 떼에게로 보낸다. 

 

# 이천 마리의 돼지 떼

이 곳이 이방인의 땅이라는 증거 중에 하나가 바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돼지 떼의 존재다. 

유대인들은 돼지는 부정하다고 믿었다. 

율법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돼지고기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돼지를 치고 있었던 걸까?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 근처에 있는 로마 군대를 위해서? 

어찌 되었건, 이방문화가 퍼져나가고 있던 곳이 거라사였다. 

예수님이 귀신들의 요청을 들어준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1) 이천마리 돼지 떼의 죽음으로 당신의 능력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이 사건으로 귀신으로부터 해방된 그 사람은 데가볼리 지역을 돌아다니며 예수님을 알렸다. 

이천 마리 돼지 떼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도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말하고 다녔을 것이다. 

물론 부정적인 언급도 했을 것이다. 

돼지를 몰살시킨 사람, 예수. 

2) 지역의 이방 문화, 이교 문화에 대한 심판?

돼지 떼로 대변되는 그 땅의 이방문화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글쎄다. 

그래도 가설을 써 본다면, 가라사는 로마와 이교 문화로 점점 타락하고 있었다. 

귀신들린 사람을 저렇게 방치하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 

사람을 쇄사슬에 묶는 것, 무덤 사이에 두는 것도 과한 조치다. 

돼지 고기를 먹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이교 문화에 젖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로마 군대가 그 근처에 주둔하고 있었다고 읽은 기억이 있다. 

https://www.logos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4

만약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은 거라사에 점점 확대되고 있는 이교 문화, 로마 문화에 대한 심판을 돼지 떼의 몰살로 실행하신 것이다. 

군대(레기온, 로마 군대 조직 중 군단을 뜻함) 귀신의 출현은 로마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로마의 군대는 전 세계를 폭력과 강압으로 통치했다. 

죽어 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 그들의 약탈과 강간과 살인은 일상적이었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 그의 요청은 거부

오늘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이 귀신의 요청을 들어주시지만, 귀신 들렸던 사람의 요청을 들어주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귀신의 요청은 들어주셔서 돼지 떼로 몰살시키셨지만, 예수님을 따르게 해 달라는 즉 제자가 되게 해 달라는 그의 요청은 거절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그가 이방땅에 살아서, 그가 귀신 들렸었기 때문에, 혹 다른 이유가 있는가? 

성경은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를 통해 데가볼리 지역에 예수님의 이름이 유명해진다. 

예수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네 집으로 가서, 가족에게, 주님께서 너에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너를 불쌍히 여겨 주신 일을 이야기하여라.”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오랫동안 그 가족들로부터도 버림받았었다. 

그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를 돕기 위해 애를 많이 썼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를 쇄사슬을 묶고, 무덤 근처로 보내야 했다. 

가끔 밥을 가져다 주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혼자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던 사람. 

그는 다시 사람들과 연결시켜야 했다. 

그래서일까? 

예수님은 그에게 가족과 시간을 보내라고 하신다. 

모든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가족과의 관계 회복이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배와 그물과 아버지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부르셨다. 

베드로, 안드레와 요한 야고보가 그렇다. 

그러니 천편일률적으로 성경의 말씀을 적용하는 것을 곤란하다. 

예수님은 당신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독특한 부르심을 갖고 계신다. 

환원주의자, 원리주의자들은 항상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들이 세운 계획과 기준에 갇히지 않는 분이시다. 

자유로운 예수님을 찬양한다. 

 

 

[오늘의 기도]

사람을 회복시키시는 예수님,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돌봐 주세요.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자들, 

기아로 고통당하는 자들, 

온갖 죄와 범죄로 고통당하는 자들, 

그들을 회복시켜주세요. 

 

저와 제 주위의 사람들도 회복시켜주세요.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앞날의 막막함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자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어서 혼자 끙끙대는 사람들, 

잠을 못 이뤄 피곤한 사람들, 

돈이 없어 이 무더위에도 에어컨 바람 하나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육체의 통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주님, 그들을 회복시켜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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