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 17일 수요일

 

여는 기도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십시오.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26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28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주석

28절. 예수님은 자신이 권위있는 인자로서 안식일 규칙을 해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신다(IVP 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 밀 이삭 

사람들은 먹은 것에 예민하다. 

맛있는 것, 특별한 것, 몸에 좋은 것, 입에 맞는 것, 자랑할만한 것을 찾는다.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먹는 거에 예민했다. 

그들이 금식을 자주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금식은 도리어 식욕을 자극한다. 

금지가 욕구를 극대화한다. 

규제가 욕망을 긁어댄다. 

예민함은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금식의 딜레마다.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고, 줄어든 욕망으로 다른 사람들의 공간을 넓혀주고 다른 사람을 품어야 하는 것인데, 도리어 반대의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잘못된 금식의 결과다.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시는 것 자체가 당시 율법에 저촉되는 것이다. 

안식일에 많이 돌아다녀서는 안된다. 

약 1lkm 정도만 허용되었다고 한다. 

http://www.duranno.com/bdictionary/result_vision_detail.asp?cts_id=15039

밀밭 사이로 가게 되면 율법에서 금지하는 약 39가지의 금지 규범에 저촉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http://kccs.pe.kr/jewishcal9.htm

밀밭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을 관찰했을 것이다. 

밀밭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율법을 잘 지키는지 눈에 불을 켜고 확인했을 것이다.

밀 이삭이 무엇이라고, 그게 얼마나 큰 일이라고 바리새인은 득달같이 달려 들어 예수님께 따지고 묻는다. 

아주 작은 것도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비판의 대상이다. 

 

#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

모든 율법은 사실 사람을 위한 것이다. 

사람들이 더 자유롭고 행복하고 의미있게 살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담겨 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결국 나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나와 이웃을 위해 안식일도 있다. 

안식일을 통해 쉼을 얻고 다음 노동을 위해 재충전을 한다. 

물론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경축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한 영적, 육적 회복이 안식일의 의미에 담겨 있다. 

배고파서 죽을 것 같은 상황이면 밀을 먹어도 되고 빵을 먹어도 된다. 

욕심이 과해서, 나태를 위한 계획을 세우느라 이틀치의 만나를 저장하는 것과는 다르다. 

당장 죽게 생겼으면 먹는 것이 우선이다. 

예수님은 법의 자구보다 더 깊은 의미를 추구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다보면 현실 법에 자구를 넘어서려는 욕구를 갖게 된다. 

자신은 현실 법보다 더 정의롭고 자비롭게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부작용(?)이라고 할까? 

도덕적 우월감에 쉽게 빠지곤 한다. 

겸손하게 예수님을 따르기가 어렵다. 

예수님은 규정 그 너머에 계시기에 나도 규정을 넘어서 훨씬 도덕적이라고 믿게 된다. 

 

가련하다. 

인생은 언제나 딜레마에 빠져든다. 

도덕적 우월감에 빠지지 않고 그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모든 율법이 사람을 향한다는 믿음을 계속 견지하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삶도 결국 이웃을 향한다는 사실을 계속 담아두는 것. 

그러기에 남을 판단하기보다 남을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 

그나마 내가 내릴 수 있는 해답이 될까? 

 

#안식일의 주인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나도 그도 아니다. 

안식일의 기준을 만드는 것은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이 아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곧 안식일 규정이다. 

그분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우주의 창조주께서 안식일을 새롭게 규정하시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전통과 규정이 힘을 잃는 지점이다. 

더 높은 권위가 있다.

사람들끼리 만들어 놓은 규정이 예수님의 창조정신을 넘어설 수 없다. 

자기들끼지 만족한다고 우주의 절대 기준에 도달한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참 주인은 예수님이다. 

절대로 어겨서는 안되는, 매주 매주 사람들의 경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안식일 규정조차 예수님은 바꾸실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이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의 주인도 예수님이다. 

그분이 변화하라고 하면 변화해야 한다. 

그분이 바꾸라고 하면 바꿔야 한다. 

공동체는 생물이다. 

주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여야 한다. 

 

역할과 책임, 직위와 명칭도 그분의 원하시면 바꾸어야 한다. 

이제까지 해왔다고 계속 그대로 가는 것은 주인을 전통에 두는 행위다. 

안식일이 사람을 향한다면, 전통도 사람을 향하고 사람을 위해야 한다. 

공동체의 전통과 직제도 사람들을 향하고 위해야 한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온 세상의 주인되신 예수님, 

당신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 모임과 우리 공동체의 주인이심을 고백합니다. 

기존 전통이 현재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존재 목적에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과감하게 변화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구조와 시스템과 직제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안맞는 옷을 계속 입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체중이 줄면 옷도 줄여 입어야 하고, 체중이 늘면 큰 옷을 사야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용기를 주소서. 

변화 앞에 더욱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