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01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7   제자들이 그 새끼 나귀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등에 걸쳐놓으니, 예수께서 그 위에 올라 타셨다. 

8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들에서 잎 많은 생나무 가지들을 꺾어다가 길에다 깔았다. 

9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10   “복되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더 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는 거기서 모든 것을 둘러보신 뒤에,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다니로 나가셨다.

 

주석

9-10 절. 그들이 입을 맞추어 외친 구호는 시편에서 따 왔으며, 이스라엘 왕국에 옛 영화를 되찾아 줄 다윗 가문 출신의 오실 왕을 환영하는 소리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듯이, 그들은 정치적인 리더, 민족을 선도할 지도자, 거친 사회 개혁자를 기대했을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 나귀 새끼

전쟁에 승리한 장군은 전리품을 이끌고 가장 화려한 말을 타고 개선문으로 들어온다. 

온 백성이 그야말로 환호성을 지른다. 

전쟁의 실패는 왕국의 멸망을 부른다. 

저 개선문으로 다른 나라 왕이나 장군이 들어온다면 그들은 죽은 목숨이다. 

승리자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이게 역사적 진리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오신다. 

과거 예언이 어떠하든지 간에 작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모습은 전쟁에 승리한 왕이나 장군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키와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동안 행했던 기적을 알기에, 그분의 업적을 알기에 그분을 찬양하고 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님이 그 환호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상상해 본다. 

주위를 둘러보며 손을 들어 합당한 찬양에 대한 긍정의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을까?

무표정한 얼굴로 예루살렘 성전을 응시하며 무뚝뚝하게 지나가고 있었을까?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듯 손을 마주치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눈길을 주며 가셨을까? 

사람들의 환호 앞에 예수님의 얼굴 표정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나귀 새끼를 탔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겠다는 의미를 준다. 

세상의 왕과 황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그분의 얼굴은 인자하지만 단호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오는 길에도 계속 말씀했지만, 예수님은 죽으러 가시는 길이다. 

예루살렘은 그분의 처형 장소요, 장지다. 

사람들의 환호에 그저 웃음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이유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신다. 

하나님이 얼마나 오랜 시간 예루살렘을 회복시키려고 하셨는가!
그럼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의 장군에게 함락될 것이었다. 

과연 예수님이 웃을 수 있었을까! 

과연 예수님이 연예인처럼 사람들의 환호에 일일이 반겨하며 박수치고 싸인하고 사진찍고 허그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분의 눈은 예루살렘 성전을 응시하고, 그의 입술은 살짝 닫혔으며, 사람들의 함성에 입술이 좌우로 조금 늘어났을 뿐이다. 

 

아마 사람들도 조금은 의아했을 것이다. 

나귀 새끼라니… 

정말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아가 맞을까하고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의문은 그 날이 다 가기 전에 현실이 되고 있었다. 

 

* 이미 날이 저물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면, 혁명의 깃발이 성벽에 걸릴 줄 알았다. 

예수님의 숨겨둔 부대가 일격에 로마 군대를 궤멸시키고, 세상을 뒤집을 거라 믿었다. 

예루살렘 성은 온통 예수님 이야기 뿐이었다. 

그분이 하실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가 최고조가 되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든, 장대한 백마를 타고 오시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 혁명을 일으킬 계획이 있느냐다. 

함께 혁명을 이끌고 나갈 군대가 있느냐다.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싶어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흡족케 할 만한 대안을 가지고 왔느냐다. 

그런데, 이미 날이 저물었다. 

이미 혁명의 날도 한물가버렸다.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징후가 없다. 

새 세상은 없다. 

그저 태양은 지고 날은 저물었다. 

야간에 뭔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믿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조용하다. 

예루살렘 근처에도 혁명군이 있다는 소문도 없다. 

이미 날이 저물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로 나가셨다. 

영광의 날은 실망의 날로 바뀐다. 

군중의 칭송은 원망으로 바뀐다. 

열정적인 찬양은 열정적인 비판으로 바뀐다. 

순식간이다.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이 큰 법이다. 

 

나귀 새끼부터 알아봐야 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의 표정은 알 듯 모를 듯 하다. 

알 수 없는 표정에서도 알아봐야 했다. 

세상은 여전하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산책하러 왔나?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의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는다. 

오랜 기대와 세계관에 매이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분의 길이 있고 계획이 있다. 

사람들은 그 계획을 다 알 수도 없고 따라가기도 어렵다. 

그저 자신들의 감정과 생각에 의해 반응할 수 밖에… 

 

나도 내 감정과 생각에 갇혀 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무엇을 하실지는 나의 과거를 통해서만 추측할 뿐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등장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엇인가? 

나귀새끼를 타라고 하면 탈 의향이 있는가? 

그저 예루살렘 성에 산책하듯 올라가서 다시 내려오라고 하면 그럴 의향이 있는가? 

내 계획을 포기할 마음이 있는가? 

 

[오늘의 기도]

저의 기대를 벗어나 움직이시는 예수님, 

당신의 움직임을 저의 계획에 맞추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하소서. 

주님의 움직임에 저의 계획을 맞추는 지혜를 주소서. 

주님의 의도를 예단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계획을 신뢰하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저의 인생을 주님께 맡깁니다. 

겸손하게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게 하소서. 

 

복음주의 학생 운동에 복을 내리소서. 

젊은이들이 복음 운동에 헌신하도록 이끄소서. 

주님을 따르는 젊은이들이 더욱 많아지도록 인도하소서. 

 

로잔이 기관이 아니라 운동이 되게 하소서. 

돈이 아니라 로잔의 정신이 흐르게 하소서. 

가난하지만, 끝까지 나귀 새끼를 타게 하소서. 

어떤 운동도 주님의 계획보다 앞설 수 없으며, 주님의 계획보다 장수할 수 없습니다. 

로잔의 시작과 끝도 주님께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주님의 신실하신 역사를 신뢰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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