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02일 수요일

 

여는 기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를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화과의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께서 그 나무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주석

14 절. 예수님은 나무의 진짜 상태에 대한 슬픈 평가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동일할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 헝그리

예수님도 배가 고프셨다. 

우주의 주인이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배가 고프셨다. 

베다니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 의아하다. 

당연히 예수님을 모신 집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수님이 일부러 잡수시지 않았을까? 

제자들은 배가 고팠을까? 

제자들이 배가 고팠다면 상당히 적극적으로 어필했을 것이다. 

과거에도 배가 고팠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 들어가 밀을 문질러서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예수님은 별로 시장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위의 사건을 고려할 때, 제자들은 별로 배고프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배고프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배고픔을 해결하시기 위해 무화과나무에 가까이 가신다. 

무화과 철이 아님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가가신다. 

 

예수님도 배가 고프다 하시니 참 인간임을 확실히 알게 된다. 

그분도 피곤하면 잠을 주무시고,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으시는 인간이다. 

그건 그대로 인정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잘 자란 무화과나무, 곧 있으면 열매를 맺게 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실 일은 아니다. 

단순히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나서 잘못이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일이다. 

분명히 좀더 깊은 의미가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에 담겨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교를 통해 선한 열매를 기대해오셨다. 

그런면에서 예수님의 배고픔은 하나님의 배고픔을 닮았다. 

이스라엘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열매, 즉 만백성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삶으로 들어오게 되는 역사를 하나님은 기대하셨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 실망을 안겼다. 

하나님은 배고프시다.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 세상에 확산되길 원하셨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예수님이 곧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유대교는 수많은 장사치들의 소굴이 되었고, 종교 기득권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성전은 사라지고, 물건을 사고 팔며 이권을 유지하는 자들의 시장이 되었다. 

열매를 그토록 바라시던 하나님의 배고픔은 예수님의 배고픔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 기독교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도 비슷할 것 같다. 

예수님은 배가 고프시다. 

잎만 무성한 한국 기독교에는 열매가 점점 줄어들어 거의 사라질 지경이다. 

온갖 교회 정치꾼들이 진실함을 버리고 자기들 밥줄만 유지하려고 한다. 

현실의 문제에 갇혀 진리되신 예수님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서로 싸울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문란하다. 

신학적, 목회적 차원에서 논의하고 서로 토론하다가 답답하여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겠다. 

그런 것은 환영이다. 

문제는 돈이나 권력의 문제로 목사와 장로가 싸우고, 교회가 분열된다. 

목사들이 여신도와 성관계를 맺고 무마하려고 한다. 

교회를 사유화하려고 하며 세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그런 교회에 과연 예수님이 있는지 의심한다. 

예수님이 저주할 만하다. 

왜 그런 사람들을 치리하지 않는가!! 

성범죄를 일으켜 교회의 타락을 부추기고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킨 목사들을 왜 치리하지 못하는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자를 어떻게 목사로 부를 수 있는가? 

직업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작금의 현상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실 수도 있다. 

그분의 배고픔이 더는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저도 배고픕니다. 

한국 교회가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맞습니까? 

제가 속한 기독 공동체가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 맞습니까? 

다시 깊이 돌아봅니다. 

열매 없는 저와 공동체 모습에 혹시 실망하실까봐 두렵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고 싶지만, 현실은 초라합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저에게 열매를 보여주세요. 

당신에게 드릴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해 주세요.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 지 주님께서 알려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