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19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만 남겨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형수를 맞아들여서, 그의 형에게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20   형제가 일곱 있었습니다. 그런데, 맏이가 아내를 얻었는데, 죽을 때에 자식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21   그리하여 둘째가 그 형수를 맞아들였는데, 그도 또한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일곱이 모두 자식을 두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23   [그들이 살아날]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모두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

26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떨기나무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시지 않으셨느냐?

27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생각을 크게 잘못 하고 있다.”

 

주석

19 절. 물론 여기에 언급된 사두개인들은 모세법적 관습을 인정했다. 그 관습은 과부의 가족이 땅을 보전토록 하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에 대한 생각을 아예 배척했다. 그들에게는 현세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었다(IVP 성경주석). 

 

26 절. 예수님의 대답은 일반적인 바리새인의 반응과 비슷하다. 표준적인 유대의 해석법은 출애굽기 3:6을 현재 시제로 ‘나는 족장들의 하나님이다’라고 해석하여, 그 족장들이 아직 살아 있음을 암시한다(IVP 성경배경주석).

 

 

[오늘의 묵상]

* 아브라함의 하나님

구약에서 하나님을 소개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언약을 맺어던 인물들을 떠올리도록 안내하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조들과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분은 갑자기 세상에 등장해서 자신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조상들에게 나타나 복을 주시기로 결정하시고, 약속을 맺으시며, 그 약속에 따라 계속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역사성을 갖고 계신 분이시다. 

역사 속에서 일관된 모습을 가진 분이시다.

변화무쌍한 분이 아니시다. 

물론 그분은 자신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나타나실 수 있으시며 사람의 계획을 따르지 않으시고 조각의 형태로 묘사되지 않는 자유로운 하나님이시다. 

그렇다고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비일관성의 대명사는 아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약속을 주시고 언약을 맺으셨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겠다고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신 분이시다. 

그분의 자기 부인은 “언약” 안에 내재되어 있다. 

언약을 하는 순간 그분은 자신의 무한한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여 자기를 부인하신다. 

그리고 그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자신의 영을 육체에 국한시키셨다. 

예수님, 그분이 하나님의 자기 부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사용할 때는 조금 다른 부분에 강조를 두고 있다. 

바리새인이 아니라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공격한다. 

‘사두개'는 다윗 시대에 활약했던 사독이라는 대제사장의 이름에서 기원했다. 

기본적으로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제사장 그룹의 사람들이다. 

로마 치하, 헤롯 대왕의 시대에 제사장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들은 현실주의를 택했다. 

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받아들이는 보수주의자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오경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 토라 전체와 장로들의 구전도 받아들였다. 

그래서 부활과 영과 천사를 믿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다. 

현실이 중요했다. 

로마가 유대교를 인정해주는 한, 제사장들인 사두개인들은 로마의 질서를 수용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 뿐 아니라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들까지 싸잡아서 비판하자 사두개인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논쟁점이 될 만한 이야기를 꺼낸다. 

부활이 있다면 형의 아내를 자기 아래로 받아들어야 하는 동생이 있을 때, 그 아내는 부활시 누구의 아내여야 하는지 묻고 있다. 

시덥잖은 질문이다. 

결혼했던 모든 사람의 아내이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할 텐데, 유대인들은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사두개인들은 부활하면 현 세상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현재 질서가 크게 바뀌지 않은 채 모든 사람들이 부활했을 때, 벌어지는 난감한 상황을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부활의 시대가 오면 세상에는 결혼 관계로 사람들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하늘의 천사들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하나님과 일대일로 관계 맺는 존재가 될 것이다. 

실제 어떤 모습일지는 확정짓기는 어렵다. 

어쨌든 사두개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바로 살아있는 존재들의 하나님임을 밝히기 위해 그분의 이름을 거론하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것은 과거 역사적 인물들의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 영으로 존재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실제로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지금 영으로 존재한다. 

예수님을 그들이 부활을 기다린다고 보신다.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들이다. 

육체가 죽었다고 영이 죽는 것은 아니다. 

영은 살아서 하나님과 함께 있다. 

부활의 때에 모든 살아 있는 영은 육체를 입고 최후의 심판을 받는다. 

지금의 삶이 끝이 아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는 다른 육체의 부활도 믿게 된다. 

 

사실 고통스런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육체의 부활을 말하고 마지막 심판을 말하는 것이 참 어렵다. 

그걸 믿으라는 말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기독교 교리를 현대 사회에 계속 반복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현실의 문제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난 여전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 

그래서 육체의 부활도 믿고 그분이 마지막 때에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도 믿는다. 

오랜 믿음이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이상, 그분의 삶과 사역, 죽음과 부활을 불신할 필요가 없다.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가르침이 위로와 힘이 되지 않는다고 확언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큰 도움이 된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고, 그래서 난 미래의 부활을 믿는다. 

그 믿음이 나를 좀더 도덕적인 사람, 좀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한다고 생각하다. 

그 믿음이 공동체를 더 아름답게 만들거라고도 생각한다. 

 

이런 믿음을 기반으로 다음의 사역을 계획한다. 

내가 공부해야 할 내용과 주장해야 할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 더욱 강조하고 부각시켜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도 정리하고 싶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그 다음을 생각하고 싶다. 

주님께 맡긴다. 

 

[오늘의 기도]

부활의 예수님, 

당신은 모든 육체의 부활을 기대하게 만드신 분이십니다. 

당신은 어느 날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들을 주님의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고 신뢰하게 하소서. 

 

저의 미래를 주님께 맡깁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주님 인도하소서. 

정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들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평안과 쉼을 얻도록 돕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 길을 보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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