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여는 기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8유다의 아사 왕 제 이십육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디르사에서 두 해 동안 다스렸다.

9그러나 엘라의 신하이며 병거부대의 절반을 지휘하는 시므리 장군이, 엘라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 때에 엘라는, 디르사에 있는 아르사 궁내대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 있었는데,

10시므리가 들어가서, 엘라를 쳐죽였다. 유다의 아사 왕 제 이십칠년에, 시므리가 엘라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11시므리는 왕위에 올라서, 바아사 가문에 딸린 사람은 모두 죽였는데, 바아사 가문의 남자는, 일가 친척이든지 친구이든지, 한 사람도 남겨 두지 않았다.

12시므리는, 주님께서 예후 예언자를 시키셔서 바아사에게 말씀하신 대로, 바아사 가문의 모든 사람을 멸망시켰다.

13이것은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가 지은 모든 죄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우상을 만들어서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분노를 샀다.

14엘라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다 기록되어 있다.

15유다의 아사 왕 제 이십칠년에, 시므리는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나, 그의 통치는 칠 일 만에 끝났다. 시므리가 엘라를 살해하고서 왕위를 차지할 그 무렵에,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에 속한 깁브돈을 치려고 포진하고 있었다.

16그러나 진을 치고 있던 군대는, 시므리가 반역하여 왕을 살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바로 그 진에서 그 날로 군사령관인 오므리 장군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17오므리는 온 이스라엘을 이끌고 깁브돈으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포위하였다.

18이 때에 시므리는, 그 성읍이 함락될 것을 알고는, 왕궁의 요새로 들어가서, 그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가서, 자기도 불에 타 죽었다.

19이것은 시므리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행을 하고,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가서,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한 그 죄 때문에 생긴 일이다.

20시므리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꾀한 모반에 관한 것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

21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둘로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라 가서 그를 왕으로 삼았고, 그 나머지는 오므리를 따랐다.

22그러나 오므리를 따르는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르는 백성보다 강하여서, 디브니는 살해되고, 오므리는 왕이 되었다.

23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일년에 오므리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열두 해 동안 다스렸는데, 여섯 해 동안은 디르사에서 다스렸다.

24그는 세멜에게서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사마리아 산지를 사들였다. 그리고 그 산에다가 도성을 건설하였는데, 그 산의 소유자인 세멜의 이름을 따라서 그 도성의 이름을 사마리아라고 하였다.

25오므리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는데, 그 일의 악한 정도는 그의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였다.

26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걸은 모든 길을 그대로 따랐다. 오므리는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고, 또 우상을 만들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게 하였다.

27오므리가 한 나머지 행적과 그가 부린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28오므리는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서 사마리아에 묻히고, 그의 아들 아합이 그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었다.


반역이 반역을 낳고 그 반역이 또 반역을 낳는다. 

반역이 일상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반역을 꿈꾼다. 

왜냐하면 자기가 왕이 되고 싶어하니까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자신이 왕이 되어 맘대로 하고 싶어한다. 

인간 본성이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미 왕을 달라는 12지파들에게 분명하게 경고하셨다. 

그 왕으로 인해 백성들은 고통을 당할 수 있다. 

 

북이스라엘은 그야말로 개판이다. 

몇 년 사이에 반란이 몇 번씩 일어난다. 

그 와중에 외부와의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전쟁 중에 나가있던 오므리는 반역의 소식을 듣고서 자신이 반란을 일으킨다. 

시므리에게 왕권을 넘기느니 자기가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말씀을 읽다보니 이해가 안되는 구석이 있다. 

하나님은 바아사와 엘라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시므리를 사용하셨다. 

시므리는 7일간 통치를 했는데, 바아사와 엘라의 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그 시므리를 오므리를 통해 심판하셨다. 

그런데 오므리에 대한 평가는 그전 왕들보다 더 심각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여러움이다. 

선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심판하지 않으시고 

악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심판하신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도 그렇지 않은가!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도 그렇지 않는가!

과연 도덕적 우위를 논할 수 있는 나라들인가? 

그저 힘만 강한 나라들 아닌가.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은 어떤 나라, 어떤 개인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선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시고, 악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신다. 

특히 하나님의 통치에서 중요한 다섯 가지 요소가 있는데, 

통치의 방향인 에덴 비전의 회복, 그리고 통치의 방식인 부르심, 은혜, 약속, 심판이 바로 그것이다. 

그 가운데 부르심과 은혜, 약속은 믿음의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통치 방식이라면, 

심판은 둘 다를 가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통치에 반기를 든 사람들과 조직들을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든, 악한 사람들을 통해서든 심판하신다. 그것이 성경의 역사다. 특히 구약은 이런 하나님의 통치를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 

북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했다. 

그들은 여로보암의 죄, 즉 자신보다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죄짓게 했기 때문이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현실적인 심판, 즉각적인 심판의 결정도 내리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특히 하나님의 분노가 종종 느껴진다. 

좋은 왕도 오래가지 못하고, 못된 왕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하나님은 회복을 위해 선택된 민족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모습을 보며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하시다. 

그 고통과 슬픔이 예언자들을 통해 드러난다. 

예레미야가 애가를 지은 이유가 있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슬퍼하며 재에 않아 울어버리는 일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최근의 하나님은 슬퍼하시는 분으로 느껴진다. 

그분은 수많은 딜레마 속에 결국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시는 분이셨다. 

슬픔의 끝은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

오랜 연민은 결국 우주적 결정을 이끈다. 

슬퍼하시는 하나님… 

슬픔의 하나님… 

숱한 인간사를 보면서 그분의 심장은 울고 있다.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들이 헤메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아… 하나님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들일 수 있는가? 

 

오늘은 그분의 슬픔에 나도 젖는다. 


슬퍼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슬픔에 동참합니다. 

당신 백성을 향한 기대가 차츰 고통으로 바뀝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눈물로 가득하십니다. 

예레미야는 당신의 슬픔을 대변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깊은 연민에 잠깁니다. 

역사의 단편만 봐도 이렇게 슬픈데, 모든 역사를 아시는 당신의 눈에는 얼마나 슬플까요. 

주님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 슬픔에 저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다만,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까지 몰아가고 싶진 않습니다. 

당신도 저의 한계를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 옆에 머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여는 기도

살아 있는 어느 누구도 주님 앞에서는 의롭지 못하니, 주님의 종을 심판하지 말아 주십시오.

 

33유다의 아사 왕 제 삼년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디르사에서 스물네 해 동안 다스렸다.

34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고, 여로보암이 걸은 길을 그대로 걸었으며,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는 그 죄도 그대로 따라 지었다.

1주님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내려서, 바아사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2"나는 너를 먼지 속에서 이끌어 내어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았다. 그런데 너는 여로보암과 같은 길을 걸어서, 내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그 죄 때문에 내 분노를 사는구나.

3내가 바아사와 그의 가문을 쓸어 버리겠다. 그리하여 네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만들겠다.

4바아사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성 안에서 죽는 사람은 개들이 먹어 치울 것이고, 성 바깥의 들에서 죽는 사람은 하늘의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이다."

5바아사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것과 그의 권세,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다 기록되어 있다.

6바아사가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서, 디르사에 묻혔다. 아들 엘라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7주님께서 예언자 하나니의 아들 예후를 시키셔서, 바아사와 그의 가문에게 말씀하셨다.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므로, 주님의 노를 격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로보암의 가문을 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인생이 그렇다. 

크게 다르지 않다. 

다들 죄의 영향 속에 살고 자신도 그 죄의 색깔을 더 진하게 만든다. 

죄의 시스템을 강력하다. 

전대 왕의 죄악이 강력한 사회 시스템으로 남아 후대에 전달된다. 

개혁을 위해 반역, 혁명을 일으키지만,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통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폭력이 폭력을 낳고 반역이 반역을 낳는다. 

처음에는 혁명의 정당성을 설파한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막상 혁명에 성공하고 숱한 도전에 직면해서는 결국 중앙집권화의 길을 걷는다. 

독재 시스템을 견고하게 만든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반역에 대비하느라 더욱 강력한 폭압정치를 펴기도 한다. 

죄가 죄를 낳는다.

인생이 그렇다. 

 

바아사가 여로보암 가문을 멸하고 새로운 통치를 시행할 때만 해도 새로운 세상이 올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기대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나는 너를 먼지 속에서 이끌어 내어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았다. 그런데 너는 여로보암과 같은 길을 걸어서, 내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그 죄 때문에 내 분노를 사는구나.

 

바아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이렇다할 큰 가문도 아니고 그 능력도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아사를 왕으로 세우시면서 그의 가능성을 보고 그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보기 좋게 바아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여로보암처럼 짓기 시작했다. 

자신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죄를 짓도록 강제한다. 

시스템이 굳어지면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백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우상 숭배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시켜 바아사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는 언제나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다. 

바아사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회개의 길을 걸어야했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그의 죄를 회개하지 않은 것 같다. 

 

열왕기의 왕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축약적이다. 

바아사의 24년 간의 통치의 자세한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간단하게 점검한다. 

24년간 그는 유다의 왕과 전쟁 상황에 있었다. 

매년 백성들은 군사로 차출되어 전장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동족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 24년은 우상 숭배와 전쟁이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겠다. 

안따까운 일이다. 

 

나의 47년의 인생은 어떤 단어로 압축될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어떤 단어로 압축될 것인가? 

다윗과 아사 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르호보암, 여로보암, 바아사 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하나님, 

제 인생을 압축할 때 등장할 단어를 떠올려봅니다. 

과연 하나님 앞에 정직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했습니까? 

하나님은 아실 것입니다. 

 

교회, IVF, 복음, 청년대학생, 전도, 회심… 

이런 단어들이 후보군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한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온 인류의 주인되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사랑하는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여는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로 어서 와 주십시오.

 

25유다의 아사 왕 제 이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서, 두 해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26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도 그의 부친이 걷던 그 악한 길을 그대로 걸었으며, 또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는 그 잘못을 그대로 따랐다.

27잇사갈 가문의 아히야의 아들인 바아사가 그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나답과 모든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포위하였으므로, 바아사는 블레셋의 영토인 깁브돈에서 나답을 쳤다.

28바아사는 나답을 죽이고, 그를 대신하여서 왕이 되었는데, 때는 유다의 아사 왕 제 삼년이 되는 해였다.

29바아사는 왕이 되자, 여로보암 가문을 쳤는데, 숨 쉬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전멸시켰다. 주님께서 실로 사람인, 주님의 종 아히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30여로보암이 자기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까지도 죄를 짓게 하였으므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진노하셨다.

31나답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다 기록되어 있다.

32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는,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늘 전쟁이 있었다.


** 사역동사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하게 만드는 일, 이것을 표현하는 동사를 사역동사라고 한다. 

make, have, let 같은 동사를 말한다. 

조금 넓게 보면, 부탁을 해서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고, 자연스러운 환경을 조성해서 시키는 경우도 있다. 

권면도 있지만 강제도 있다. 

문제는 어떤 방향으로 ‘사역’하게 하느냐이다. 

 

여로보암이 용서받기 어려운 이유는, 자신만 죄악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죄악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나답도 그 길을 걷고 있다. 

자신 뿐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을 죄악의 길로 인도한다. 단순히 부탁, 권면의 수준이 아니다. 강제의 수준이다. 

왕의 권력을 가지고 백성들을 악한 길로 강제한다. 

죄악 중에 최악이 있다면 바로 이런 죄악이다. 

자기 하나 반역하는 것으로 모자라 다른 사람들도 그 반역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자기 하나 우상 숭배하는 것으로 모자라 단체로 우상 앞에 절하게 만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내고 강제한다. 

 

26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도 그의 부친이 걷던 그 악한 길을 그대로 걸었으며, 또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는 그 잘못을 그대로 따랐다.

30여로보암이 자기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까지도 죄를 짓게 하였으므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진노하셨다.

 

열왕기 저자는 이 죄악에 대해 용서할 수 없다는 눈치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다윗에 대해 관대한 이유는 그 스스로 죄를 지었지만, 백성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하는 일을 멈췄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아섰기 때문이다. 

정직. 이것이 다윗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로보암을 비롯한 나답은 우상 숭배를 체계화시켰다. 

시스템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에 진노하신 것이다. 

 

리더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리더는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 

자신의 죄를 돌아봐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죄도 인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렇게 화를 내신 것이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연민을 느끼신다. 

자신이 의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관점을 깨뜨리신다. 

그러나 자신이 의인이라 믿으며 다른 사람들을 죄로 이끄는 사람들에게는 화를 내신다. 

 

오늘 나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나는 나를 돌아보고 있는가? 

마치 죄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를 다시 돌아본다. 


주님, 

저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제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봅니다. 

혹시나 나 때문에 악영향을 받지 않는지 생각해봅니다. 

 

주님,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겠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겠다고 결심했지만, 

도리어 나로 인해 당신의 이름이 가려지고, 하나님 나라가 흐려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주님께로 이끄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여는 기도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9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 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서,

10예루살렘을 마흔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할머니는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이다.

11아사는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12그는 성전 남창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내고, 조상이 만든 모든 우상을 없애 버렸다.

13그리고 그는, 자기 할머니 마아가가 아세라를 섬기는 혐오스러운 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자기의 할머니를 왕 대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아사는, 할머니가 만든 혐오스러운 상을 토막내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렸다.

14그렇다고 해서 산당이 모두 제거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을 사모하는 아사의 마음은 평생 한결같았다.

15그는 자기의 아버지와 자기가 거룩하게 구별해서 바친 은과 금과 그릇들을, 주님의 성전에 들여놓았다.

16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는,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늘 전쟁이 있었다.

17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고, 어느 누구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였다.

18그러자 아사는, 주님의 성전 창고와 왕실 창고에 남아 있는 모든 은과 금을 모아, 그의 신하들의 손에 들려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시리아의 헤시온 왕의 아들인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면서 말하였다.

19"나의 아버지와 그대의 아버지가 서로 동맹을 맺은 것과 같이, 나와 그대도 서로 동맹을 맺읍시다. 여기에 그대에게 은과 금을 선물로 보냅니다. 부디 가셔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맺은 동맹을 파기하시고, 그를 여기에서 떠나게 하여 주십시오."

20벤하닷이 아사 왕의 청을 받아들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려고 자기의 군사령관들을 보내어서, 이욘과 단과 아벨벳마아가와 긴네렛 전 지역과 납달리 전 지역을 치게 하였다.

2 바아사는 이 소문을 듣고는, 라마 건축을 멈추고, 디르사로 거처를 옮겼다.

22그리고 아사 왕은 모든 유다 사람에게 명령하여,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할 때에 쓰던 돌과 재목을 가져 오게 하였다. 아사 왕은 이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보수하였다.

23아사의 나머지 행적과 그의 권세와, 그가 한 일과 그가 건축한 모든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는 늘그막에 이르러서, 발에 병이 났다.

24아사가 죽어서 조상들과 함께 잠드니, 그의 조상 '다윗 성'에 조상들과 함께 장사지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도대체 아사는 어떤 인물인가? 

이렇게 개혁적인 일들을 일으킬 용기와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아버지 아비야 왕도 우상을 섬겼고, 그의 할아버지 르호보암도 그릇된 길로 갔는데, 

어떻게 아사는 그 길을 버리고 다윗의 따라 평생 한결같을 수가 있었을까? 

정말 놀랍고 의아한 일이다. 

 

열왕기 저자는 아비살롬의 딸 마아가를 여러 차례 언급한다. 

그가 미친 악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마아가가 아세라 신을 섬겼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눈치를 보느라 아세라 신을 따랐다. 

아사는 유다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아사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그는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평생 간직했다. 

그러하기에 개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막강한 할머니의 권력과 영향력을 이겨내고 그 일을 해 낸 것이다. 

정말 어려운 일을 해 낸 것이다. 

성전 남창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냈다. 

우상을 없애 버렸다. 물론 모든 산당을 없애거나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40년동안 그는 유다를 다스리며 마음을 지켰다. 

어찌보면 아사의 개혁과 그의 곧은 마음은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믿음 좋은 사람들보다 더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없던 질서와 구조를 만드는 것도 엄청 힘든 일이다. 

그러나 기존의 구조를 개혁하고 쇄신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고, 때로는 더 힘들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혁에는 항시 반대 세력이 있으며, 기존 권력에게 빌붙어서 단물을 빨아먹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사의 40년 통치는 실로 어마어마한 성과다. 

오롯이 하나님만 사모했던 그의 40년을 기억하고 싶다. 

 

그가 비록 하나님을 사모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섬겼다고 하지만, 그에게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북이스라엘 바아사의 침략이 있었다. 늘상 전쟁을 벌여야 했던 것이다. 

주님을 잘 섬긴다고 해서 긴장과 갈등, 고난과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한 번 어그러진 유다와 이스라엘의 분열상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아사만 잘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하는데, 서로 길이 달라져버리면 그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아사는 어찌보면 계속되는 동족간의 전쟁 속에서 하나님 의지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40년이면 결코 짧지 않는 기간인데, 그 기간 동안 민족간의 통합과 연합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쉽고 안따깝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멋진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 

그렇게 항상 기도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기도를 드린다고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뜻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꼭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사모해도, 계속되는 긴장과 갈등이 존재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모해도, 외부의 지속적인 공격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사모해도, 어려움에 처한다. 

그것이 인생이며, 신앙 생활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그분을 붙드는 삶, 그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다. 

그것이 소명이다. 

 

남북한도 마찬가지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반백년 이상을 살았다. 

외부 세력들은 우리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까지 그 길을 추구해야 한다. 

전쟁이 없는 세상, 평화가 깃든 세상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가장 많이 파괴하는 행위가 전쟁이다. 

전쟁 속에 피는 작은 사랑의 행위가 밝게 빛나는 이유는 전쟁이 너무 참혹하게 사람들의 사랑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드려도, 믿음의 삶을 산다고 해도, 남북한이 하나가 되고 서로 존중하며 공존/번영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타임라인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어찌되었건 아사는 본받을 만한 인물이다. 


주님, 

평생을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을 사모하며 살았던 아사를 기억합니다. 

비록 어려운 일들이 많았고, 평생 전쟁하며 살아야 했지만, 그래도 그는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저도 그런 길을 걷고 싶습니다. 

다윗처럼 정직하고, 아사처럼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실수하고 넘어져도 다시 정직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매력적이지 않아도 됩니다. 

성공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명해지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저의 삶을 평가할 때, 내 앞에서 정직했으며, 나를 사모하던 사람이었다고 말씀해주신다면 그것도 정말 행복한 일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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