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1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가 전한 말이다. 그가 이스라엘에 일어난 일의 계시를 볼 무렵에, 유다의 왕은 웃시야이고, 이스라엘의 왕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었다. 그가 계시를 본 것은, 지진이 일어나기 이 년 전이다.
2 아모스가 선포하였다. “주님께서 시온에서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 큰소리로 외치시니, 목자의 초장이 시들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른다.”
주석
1절. 앗시리아는 퇴락의 시기로 접어들었고, 이로써 솔로몬이 통치하던 시절의 영토까지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여로보암에게 왔다. 이것은 다시 교역로를 장악하고, 그 결과로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그에게 주었다. 그 시대의 경제적 번영은 사회 지도층이 누리며 살던 엄청난 사치 속에서 확인된다. 대개의 경우 그렇듯이, 부유층의 사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착취와 병행된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오랜 마가복음의 묵상을 마치고 이제 아모스다.
아모스는 드고아의 목자였다.
드고아는 유다 광야에 있으며 예루살렘에서 남으로 약 15km 베들레헴의 남으로 약 10km의 위치에 있는 해발 1,000m 에 가까운 고지이다.
계곡의 낮은 지대에는 소규모의 경작지가 있고, 또한 한때의 무성했던 산재한 식물의 부식토가 있다.
이곳에서 감람열매와 시카모어열매(암 7:14)라고 불리는 과일이 재배되었다.
http://kcm.co.kr/ency/place/0202.html
남유다의 작은 마을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전했다.
유다의 왕은 웃시야고 이스라엘의 왕은 여로보암 2세 때였다.
여로보암 2세 때 북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번영의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그것도 북이스라엘 출신이 아닌 남유다 출신의 양치기 목자를 통해 전달되는 말씀이었다.
북이스라엘에도 군사, 경제 전문가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은 여로보암 왕을 도와 번영의 시기를 만들었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여로보암 자신도 자부심이 대단했겠지만, 그런 번영을 일군 그의 참모진들도 못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신다.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의 관료들과 지도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다.
저 남유다 작은 마을 양치기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
하나님은 종종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당신의 말씀을 전하신다.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 우르, 그곳에서 아브람을 변방으로 가라 하신다.
목동 다윗을 찾아내셔서 왕으로 삼으신다.
예수님의 고향은 나사렛 촌동네였다.
하나님 나라 운동은 작은 곳에서 시작된다.
이걸 속 깊이 인정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겉으로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속 깊은 곳 중심까지 인정하기가 어렵다.
변방에 있어도 중심으로 나아가고 싶어한다.
사람이 그렇다.
나도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위와 능력이 있다.
주님의 말씀이 시온에서, 예루살렘에서 퍼져나오니 푸른 초장이 시들고 갈멜 산이 마른다.
목자에게 푸른 초장은 삶의 근원이다.
사람들에게 산은 삶의 자원이다.
어떤 번영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쌓는 것은 오래지만 허무는 것은 순간이다.
수 개월의 걸친 아름다운 도미노 아트도 1분만에 으스러진다.
인간의 성공과 번영과 영광은 순식간에 폐허가 될 수 있다.
그 옛날 여리고가 그랬다.
예루살렘도 그랬다.
자랑할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들어야 한다.
변방의 소리, 그 소리에 노출되어야 한다.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계시는 곳이라 여기는 곳이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저기 작은 마을 드고아에서 들린다.
어떤 공동체도 영원하지 않다.
어떤 비전도 몇 십년을 넘지 못한다.
사명과 비전도 매번 바뀐다.
급속도로 바뀌는 사회 환경이 비전의 변화를 가속시킨다.
겸손히 작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라.
드고아에서의 외침을 들으라.
양치기의 질타에 겸허하라.
[오늘의 기도]
꽃은 시들고 풀은 마릅니다.
오직 주의 말씀만이 영원하며 주님의 존재가 끝까지 빛납니다.
빛나는 주님,
주님의 빛을 비추소서.
올 해 첫 눈이 내립니다.
첫 눈의 낭만을 만끽하되, 추위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소서.
그들의 고통에 눈 감지 말게 하소서.
무엇보다 권력의 무능과 무책임과 무도함으로 인해 배가된 고통의 양에 짓눌리는 사람들을 구출하소서.
이 땅을 치유하소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이끄소서.
새로운 비전과 꿈을 안고 다시 달려가도록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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