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06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벌리고 헐떡입니다.

 

9 “너희는 아스돗의 요새들과 이집트 땅의 요새들에게 전하여라. 사마리아의 산 위에 모여서, 그 도성 안에서 일어나는 저 큰 혼란과, 그 속에서 자행되는 억압을 보라고 하여라.

10 나 주가 하는 말이다. 그들은 올바른 일을 할 줄 모른다. 그들은, 폭력과 강탈로 탈취한 재물을 저희들의 요새 안에 쌓아 놓는다.

11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선고한다. 적군이 이 나라를 포위하고, 너의 방어벽을 허물고, 너의 요새들을 약탈할 것이다.

12 나 주가 선고한다.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 하나를 건져내듯이, 사마리아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도 구출되기는 하지만 침대 모서리와 안락의자의 다리 조각만 겨우 남는 것과 같을 것이다.

13 이 말을 듣고서, 야곱 가문에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14 내가 이스라엘의 죄를 징벌하는 날, 베델의 제단들도 징벌하겠다. 그 때에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겠다.

15 또 내가 겨울 별장과 여름 별장을 짓부수겠다. 그러면 상아로 꾸민 집들이 부서지며, 많은 저택들이 사라질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개역개정

그러므로 주 야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11절).

 

주석

9절. 이스라엘의 죄는 너무나 노골적이기 때문에 가장 멸시받던 이방인, 조상 때부터의 오랜 적 ‘아스돗’(블레셋), 그리고 ‘이집트’까지도 사마리아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뛰어난 도덕성을 갖고 있다(IVP 성경주석).

10절. 잘못된 행동에 몰두함으로써 도덕적 감각이 무뎌졌고,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자신들이 요새에 쌓아 놓은 것이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하나님이 분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구약을 충분히 음미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분노하시는 분이시다. 

사람들의 죄에 대해 분노하시며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오래 참고 인내하시지만, 희망의 씨앗 조차 남지 않았을 때, 밭을 갈아 새로운 씨앗을 뿌리시는 분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분을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국민을 죽여서는 안된다.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더 큰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국가의 지도자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려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윤씨는 그렇지 못하다. 

마치 이스라엘의 악한 왕들을 닮았다. 

아합과 이세벨을 닮았다. 

 

아모스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다. 

사마리아에서 구출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은 거의 회복 불가 상황으로 던져질 것이다. 

그들의 죄악은 베델에서부터다. 

베델에 제단을 만들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겼다. 

다른 신은 그들의 욕망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 부에 대한 욕망이 결국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사회 구조가 그러하기에 어떤 사람도 개혁을 말할 수 없다. 

사회 개혁의 방법은 하나가 남는다. 

하나님의 심판이다. 

과거에는 전쟁을 통해 심판하셨다. 

이제는 그런 방법을 사용하시지는 않는다. 

그들의 욕망을 허용하시는 것으로 심판하신다. 

최종 심판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진다. 

지금의 심판은 자신들의 욕망이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도록 허용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면에서 지금의 세상을 심판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심판은 회복을 위한 심판이다. 

 

12 나 주가 선고한다.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 하나를 건져내듯이, 사마리아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도 구출되기는 하지만 침대 모서리와 안락의자의 다리 조각만 겨우 남는 것과 같을 것이다.

 

멸망당하는 사마리에도 모서리와 다리 조각이 남는다. 

이것은 회복의 씨앗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루터기가 남는다. 

그 그루터기는 희망의 싹을 틔워 다시 나무가 자라게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회복을 위한 심판이다. 

 

공의를 더럽히는 자들, 거짓을 일삼는 자들, 자기 권력에 미쳐 있는 자들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폭력으로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려는 자들을 하나님을 미워하신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찾아온다. 

 

[오늘의 기도]

주님, 

묵상이 거칠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만큼 저의 일상이 정신이 없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치료해 주세요. 

윤씨로 인해 나라가 정말 힘들고 어렵습니다. 

온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의 폭거를 눈뜨고 볼 수 없습니다. 

왜 그는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무당에게 자신의 미래를 묻는 자의 말로가 어떠한지 주님이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건전한 이성을 가지로 제대로 통치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부정부패를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 주십시오. 

이 땅을 고쳐주소서. 

 

군경의 젊은이들을 보살펴주소서. 

전국의 시민들을 살펴주소서. 

이 위기를 지혜롭게 이겨내도록 이끌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12월 03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니, 주님의 규례로 나를 살려 주십시오.

 

6 “나 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

7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8 그들은 전당으로 잡은 옷을 모든 제단 옆에 펴 놓고는, 그 위에 눕고, 저희가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벌금으로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마시곤 하였다.

9 그런데도 나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아모리 사람들을 멸하였다. 아모리 사람들이 비록 백향목처럼 키가 크고 상수리나무처럼 강하였지만, 내가 위로는 그 열매를 없애고 아래로는 그 뿌리를 잘라 버렸다.

10 내가 바로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여 아모리 사람의 땅을 차지하게 하였다.

11 또 너희의 자손 가운데서 예언자가 나오게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 가운데서 나실 사람이 나오게 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아, 사실이 그러하지 않으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12 “그러나 너희는 나실 사람에게 포도주를 먹이고, 예언자에게는 예언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13 곡식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짐에 짓눌려 가듯이, 내가 너희를 짓누르겠다.

14 아무리 잘 달리는 자도 달아날 수 없고, 강한 자도 힘을 쓰지 못하고, 용사도 제 목숨을 건질 수 없을 것이다.

15 활을 가진 자도 버틸 수 없고,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고, 말을 탄 자도 제 목숨을 건질 수 없을 것이다.

16 용사 가운데서 가장 용감한 자도, 그 날에는 벌거벗고 도망갈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주석

6절. 의인에 대한 불법적인 태도, 가난한 자에 대한 무정함 그리고 압제당할 수 있는 자를 강탈한 일이 먼저 다루어진다. ‘신 한 켤레’에 재판이 매수당했다. 혹은 신발 같은 사소한 문제 때문에 재판이 벌어졌다. 당시에는 그 정도로 탐욕스러웠다. ‘빈민’이라는 말은 저항할 수 없는 사람 혹은 강자의 뜻과 힘에 굽힐 수밖에 없는 사람, 사회적으로 배상의 수단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 서너 가지 죄

신약에는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는 죄가 등장한다. 

바로 성령을 거역한 죄이다. 

성령님은 단순한 힘이나 에너지가 아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운행하시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예수님을 떠올리게 하시는 분이시다. 

성도들이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런 분을 거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 예수님을 거역하는 것이므로 하나님도 용서하실 수 없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좀 더 구체적인 죄악을 참지 않으신다. 

 

먼저, 인신매매를 자행하다. 

의로운 사람을 내다 판다.

가난한 삶을 신발 한 켤레 값에 팔아 치운다. 

노예 무역이 횡행한다. 

역겨운 일이다. 

 

둘째, 약자를 괴롭힌다. 

약자들을 모욕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그들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다. 

 

셋째, 성적 타락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인과 잠자리를 갖는다. 

 

넷째, 종교적 방종이다. 

당연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온갖 재화를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사용한다. 

 

사람에 대해서도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가벼이 여긴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 대해 전혀 고려치 않는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성령님을 거역하듯이 하나님을 거역한다. 

하나님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이스라엘에게 베푼 은혜가 얼마나 많은가!! 

노예로 죽어가던 그들에게 독립된 민족, 나라를 만들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다.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에도 함께 해 주셨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법령을 만드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일하셨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제사규정을 알려주셨다. 

그들은 택함받은 백성이며 제사장 나라였다. 

이들 중에 하나님의 대언자가 나왔으며, 그 백성들을 위한 나실인을 허락해 주셨다. 

많은 경건한 지도자들을 그들에게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 

즉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었다. 

 

결국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한다. 

주변국과의 전투에서 번번이 패배할 것이다. 

예언은 그치고 나실인은 변절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봉이 그들을 짓누를 것이다. 

목숨 하나 지키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영광스러웠던 기억은 다 사라지고 허물만 남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인내력에도 한계가 있다. 

계속 인내하시다가는 하나님의 공의가 땅에 떨어진다. 

그분이 정의를 실천하실 때가 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 

그분의 인내심을 악용하지 마라. 

그분께 돌아와 그분을 거역했던 죄를 회개하라. 

그리고 다시 그분의 뜻에 순응하라. 

그분을 사랑하라.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실망시켰다. 

때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있다. 

왕같은 제사장인 그리스도의 교회가 예수님을 실망시키고 있다. 

하나님이 참고 계신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너무나 강력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죄인들을 위해 스스로 죽으셨다. 

죄인들에 대한 사랑을 죽음으로 확증하셨다. 

그러니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를 참아내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그리스도의 보편적 교회를 파괴하지는 않으시겠지만, 

잘못을 저지르고 거역하는 개별 교회를 흩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실천이다.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모스 시절 이스라엘과 지금의 한국을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동체를 운영하는 원리라는 것이 있으며, 보편적 기준이 있다. 

아모스가 바라본 이스라엘의 죄악이 그야말로 끓는 점에 도달했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도자들의 죄악이 하늘을 찌른다.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짬짬이로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다. 

내로남불. 

가관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권력자라고 국민이 아닌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 공화국에서는 대통령도 국민이고 초등학생도 국민이다. 

그러니 제발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권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정의가 발동되어 걷잡을 수 없기 전에 스스로 돌이켜 정의를 지켜야 한다. 

그게 살 길이다. 

 

[오늘의 기도]

이사 준비에 한창입니다. 

포장 이사가 거의 다 하겠지만, 그걸 준비하는 것도 신경쓰입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니 긴장이 생깁니다. 

계획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니, 항상 긴장합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인도를 구합니다. 

모든 일이 순적하게 진행되게 하시되,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지혜롭게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도우소서.

 

한 집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이 집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추억의 장소입니다. 

당신이 일하셨던 곳, 임재하셨던 곳입니다. 

이 공간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장난치고 게임하던 그 모든 순간이 당신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주님, 감사의 마음으로 새로운 공간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도 주님의 임재를 느끼게 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더욱 깊이 경험하게 하소서. 

그곳에 오는 모든 자들이 주님의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이 나라와 교회를 고쳐주소서. 

하나님, 성령님을 거역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많은 것을 하기보다 진실되이 하나만이리도 잘 하도록 도우소서. 

겸손히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부르짖음이 주님 앞에 이르게 해주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1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가 전한 말이다. 그가 이스라엘에 일어난 일의 계시를 볼 무렵에, 유다의 왕은 웃시야이고, 이스라엘의 왕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었다. 그가 계시를 본 것은, 지진이 일어나기 이 년 전이다.

2 아모스가 선포하였다. “주님께서 시온에서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 큰소리로 외치시니, 목자의 초장이 시들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른다.”

 

주석

1절. 앗시리아는 퇴락의 시기로 접어들었고, 이로써 솔로몬이 통치하던 시절의 영토까지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여로보암에게 왔다. 이것은 다시 교역로를 장악하고, 그 결과로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그에게 주었다. 그 시대의 경제적 번영은 사회 지도층이 누리며 살던 엄청난 사치 속에서 확인된다. 대개의 경우 그렇듯이, 부유층의 사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착취와 병행된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오랜 마가복음의 묵상을 마치고 이제 아모스다. 

아모스는 드고아의 목자였다. 

 

드고아는 유다 광야에 있으며 예루살렘에서 남으로 약 15km 베들레헴의 남으로 약 10km의 위치에 있는 해발 1,000m 에 가까운 고지이다. 

계곡의 낮은 지대에는 소규모의 경작지가 있고, 또한 한때의 무성했던 산재한 식물의 부식토가 있다. 

이곳에서 감람열매와 시카모어열매(암 7:14)라고 불리는 과일이 재배되었다.

http://kcm.co.kr/ency/place/0202.html

 

남유다의 작은 마을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전했다. 

유다의 왕은 웃시야고 이스라엘의 왕은 여로보암 2세 때였다. 

여로보암 2세 때 북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번영의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그것도 북이스라엘 출신이 아닌 남유다 출신의 양치기 목자를 통해 전달되는 말씀이었다. 

북이스라엘에도 군사, 경제 전문가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은 여로보암 왕을 도와 번영의 시기를 만들었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여로보암 자신도 자부심이 대단했겠지만, 그런 번영을 일군 그의 참모진들도 못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신다.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의 관료들과 지도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다. 

저 남유다 작은 마을 양치기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 

하나님은 종종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당신의 말씀을 전하신다.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 우르, 그곳에서 아브람을 변방으로 가라 하신다. 

목동 다윗을 찾아내셔서 왕으로 삼으신다. 

예수님의 고향은 나사렛 촌동네였다. 

하나님 나라 운동은 작은 곳에서 시작된다. 

이걸 속 깊이 인정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겉으로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속 깊은 곳 중심까지 인정하기가 어렵다. 

변방에 있어도 중심으로 나아가고 싶어한다. 

사람이 그렇다. 

나도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위와 능력이 있다. 

주님의 말씀이 시온에서, 예루살렘에서 퍼져나오니 푸른 초장이 시들고 갈멜 산이 마른다. 

목자에게 푸른 초장은 삶의 근원이다. 

사람들에게 산은 삶의 자원이다. 

어떤 번영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쌓는 것은 오래지만 허무는 것은 순간이다. 

수 개월의 걸친 아름다운 도미노 아트도 1분만에 으스러진다. 

인간의 성공과 번영과 영광은 순식간에 폐허가 될 수 있다. 

그 옛날 여리고가 그랬다. 

예루살렘도 그랬다. 

자랑할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들어야 한다. 

변방의 소리, 그 소리에 노출되어야 한다.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계시는 곳이라 여기는 곳이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저기 작은 마을 드고아에서 들린다. 

 

어떤 공동체도 영원하지 않다. 

어떤 비전도 몇 십년을 넘지 못한다. 

사명과 비전도 매번 바뀐다. 

급속도로 바뀌는 사회 환경이 비전의 변화를 가속시킨다. 

겸손히 작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라. 

드고아에서의 외침을 들으라. 

양치기의 질타에 겸허하라. 

 

[오늘의 기도]

꽃은 시들고 풀은 마릅니다. 

오직 주의 말씀만이 영원하며 주님의 존재가 끝까지 빛납니다. 

빛나는 주님, 

주님의 빛을 비추소서. 

 

올 해 첫 눈이 내립니다. 

첫 눈의 낭만을 만끽하되, 추위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소서. 

그들의 고통에 눈 감지 말게 하소서. 

무엇보다 권력의 무능과 무책임과 무도함으로 인해 배가된 고통의 양에 짓눌리는 사람들을 구출하소서. 

이 땅을 치유하소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이끄소서. 

 

새로운 비전과 꿈을 안고 다시 달려가도록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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