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 금요일
여는 기도
내가 주님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벌리고 헐떡입니다.
7 주님께서 야곱의 자랑을 걸고 맹세하신다. “그들이 한 일 그 어느 것도 내가 두고두고 잊지 않겠다.
8 그들이 이렇게 죄를 지었는데, 어찌 땅이 지진을 일으키지 않겠으며, 어찌 땅 위에 사는 자들이 모두 통곡을 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강물처럼 솟아오르다가, 이집트의 강물처럼 불어나다가, 가라앉지 않겠느냐?
9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그 날에는 내가 대낮에 해가 지게 하고, 한낮에 땅을 캄캄하게 하겠다.
10 내가 너희의 모든 절기를 통곡으로 바꾸어 놓고, 너희의 모든 노래를 만가로 바꾸어 놓겠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 옷을 입히고, 머리를 모두 밀어서 대머리가 되게 하겠다. 그래서 모두들 외아들을 잃은 것처럼 통곡하게 하고, 그 마지막이 비통한 날이 되게 하겠다.
11 그 날이 온다.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사람들이 배고파 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다. 사람들이 목말라 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할 것이다.
12 그 때에는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찾으려고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헤매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떠돌아다녀도, 그 말씀을 찾지 못할 것이다.
13 그 날에는 아름다운 처녀들과 젊은 총각들이 목이 말라서 지쳐 쓰러질 것이다.
14 사마리아의 부끄러운 우상을 의지하고 맹세하는 자들, ‘단아, 너의 신이 살아 있다’, ‘브엘세바야, 너의 신이 살아 있다’ 하고 맹세하는 자들은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주석
11절. 여호와의 공정한 보상은 냉혹하다. 말씀이 무시되었기에 말씀이 사라진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오랫동안 무시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하나님의 심판의 날,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의 날이 다가온다.
그 날에는 교만하고 거짓되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의 죄악이 만방에 드러난다.
그 날에는 곡하는 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높였던 자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
빠져나올 길이 없다.
9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그 날에는 내가 대낮에 해가 지게 하고, 한낮에 땅을 캄캄하게 하겠다.
이 구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예고한다.
사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사탄의 권세를 심판했다.
사탄의 권세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마지막 심판이 기다린다.
십자가 심판 때, 해가 어두워지고 땅이 캄캄해졌다.
마지막 백보좌 심판 때, 온 우주가 결산을 맞이할 것이다.
우상을 따르던 자,
자기 욕심을 따르던 자,
무절제하게 자기 욕망에 충실했던 자,
온갖 귀신들과 잡신들을 섬겼던 자,
하나님의 공의롭고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구약 성경은 예수님에 의해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예수님이 구약 성경을 인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을 귀하게 여긴다.
구약은 예수님을 예언하고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다.
구약의 권위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한다.
구약이 여러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최종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편집되었던 고대 문학 작품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고대 문서들과 어떤 차별점을 가지는가?
다른 것으로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그 신적 기원과 권위를 부여하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고대 이집트 문서, 고대 수메르 문서와의 유사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학자들은 바벨론 포로기의 유대민족이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 제국들의 신화들을 빌려와서 구약을 만들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런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논증은, 구약이 가지는 독특함과 차별성이다.
유일신 하나님을 전제하며, 다른 신화들에 등장하지 않는 인간 창조의 의도성, 선악의 분명한 이분법, 높은 도덕적 덕목을 강조하는 법률 등은 그 차별성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 또한 다른 고대 문서의 발견에 의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고고학, 역사학은 새로운 발견에 의해 언제든지 바뀐다.
다른 접근이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을 신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신 예수님은 부활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해내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증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긍정하시고 인용하신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공증하신 문서로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구약에서 가장 큰 죄는 우상 숭배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구약은 계속 선포한다.
북이스라엘, 남유다가 멸망한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무속 신앙을 따르면서 국헌을 문란하게 한 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기독교를 따르면서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차피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따라 살며 그 누군가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국헌을 문란하게 했다면 그 국헌 문란에 대해서 비판해야지, 그가 무속 신앙을 따르는 것에 대해 비판해서는 안된다”
이런 입장이다.
맞다.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 기독교의 가치를 따라 국가의 중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대통령이 어떤 종교,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지를 비판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몇 가지 고려할 것이 있다.
1. 무속 신앙은 전근대적 신앙임은 상식적이다.
무속 신앙의 근본은 개인 욕망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그 추구를 위해 접신한다.
이는 계몽주의와 근대화에 의해 논파되었다.
인간의 욕망이 잡신들을 불러오고 그 잡신들에 의해 인간의 자유와 인권은 속박된다.
근대화는 인간 개인과 주체성의 발견 과정이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증대되는 과정으로의 변화다.
무속 신앙은 이런 근대화에 역행한다.
무속 신앙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위해 신을 부르고 신에 종속된다.
따라서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는 무속 신앙과 공공의 이익은 충돌한다.
그러기에 국가 통치자는 대놓고 무속 신앙을 따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2. 개인의 자유의 인권의 증대를 가져온 종교는 기독교다.
막스 베버의 책,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 발달에 기여했다고 본다.
계획적,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개인의 주체성을 발달시켰고, 초기 자본주의는 자유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지금 전세계의 자유와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 벌이고 있는 나라들은 기독교 국가임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런 기독교 국가들의 모든 노력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퇴행을 가져오고 또 다른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노예를 해방하고, 여성 인권을 높이는 일에 기독교가 기여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건 그대로 긍정하되, 현재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에 반해 무속 신앙은 사람을 귀신들에게 종속시킨다.
박수와 무당들에 의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인권을 스스로 제한한다.
3. 기독교에서 최악의 죄악은 잡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다.
기독교인들은 무속 신앙을 따르는 사람들을 지도자로 인정할 수 없다.
기독교인이면서 무속인을 국가 지도자로 지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의 공적 영역에서 현재 통용되는 종교는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포함)와 불교 정도다.
그들 종교는 공적 영역과 종교 영역의 적절한 거리를 두고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관계를 설정해 왔다.
그래서 종교활동과 정치, 경제 활동을 상식적인 선에서 구분한다.
서로 존중한다.
따라서 한국의 기독인은 최소한 가톨릭, 개신교, 불교를 따르는 지도자를 지지할 수 있다.
물론 특정 종교를 따른다고 해서 그의 공적 정책이나 정치 행보를 무조건 지지해서는 안된다.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문화 등에 있어서 각각의 정책 결정의 원리들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지도자의 인격이나 실력도 살펴야 할 것이다.
특정 종교를 믿는 것과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속 신앙을 따르는 자를 기독교인이 지지할 수는 없다.
사실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이 무속 신앙의 지도자를 따르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기독인이라면 우상숭배를 그토록 싫어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절대로 지지해서는 안될 것이다.
윤석열과 김건희, 천공, 건진, 노상원…
이 정권은 무속 정권임이 더욱 분명해졌다.
왕자를 새기고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에 참석할 때부터 알았어야 했다.
무속 신앙이 공적 영역으로 침범하고 있음을 빨리 알아챘어야 했다.
만방에 드러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 정권을 지지하는 기독인이 있다면, 그는 우상숭배를 긍정하는 자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가 없다.
신약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고 한다.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무당과 박수를 찾아다니고, 그들에게 신점을 보는 교인이 있다면, 그는 혼합주의에 빠졌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신앙 형태다.
제발, 극우기독교에서 벗어나라.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린다.
스스로 멸망하게 되어 있다.
마지막 심판을 두려워하라.
[오늘의 기도]
심판의 하나님,
우상을 섬기는 자,
무엇보다 공공의 이익을 쫓기보다 개인의 이익을 쫓아 사는 국가 지도자를 빨리 파면해주세요.
더 이상 참기가 어렵습니다.
내란 수괴가 여전히 체포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헌을 문란케 한 자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발광을 떨고 있습니다.
귀신들을 제압하여 주소서.
악한 귀신들을 막아주소서.
오직 성령께서 이 나라를 보호하소서.
저의 영혼도 주님께 맡깁니다.
분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분노하기보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계속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게 하소서.
아내의 질병을 고쳐주소서.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님의 역사적 개입을 강력하게 부르짖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냇가에 심은 나무 > 아모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 9:11-15_내가 사로잡힌 내 백성 이스라엘을 데려오겠다. (4) | 2024.12.31 |
---|---|
암 6:12-14_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서 너희를 치겠다 (1) | 2024.12.19 |
암 5:4-13_너희는 주님을 찾아라 그러면 산다 (3) | 2024.12.13 |
암 3:9-15_사마리아에 내리신 심판 (2) | 2024.12.06 |
암 2:6-16_이스라엘 자손아, 사실이 그러하지 않으냐? (1) | 2024.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