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19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1 주님, 내가 주님께 피하오니, 내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나를 건져 주십시오.2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속히 건지시어, 내가 피하여 숨을 수 있는 바위, 나를 구원하실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십시오.3 주님은 진정 나의 바위, 나의 요새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오.4 그들이 몰래 쳐놓은 그물에서 나를 건져내어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피난처입니다.5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 진리의 하나님이신 주님, 나를 속량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6 썩어 없어질 우상을 믿고 사는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미워하시니, 나는 오직 주님만 의지합니다.
7 주님의 한결같은 그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주님은 나의 고난을 돌아보시며, 내 영혼의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8 주님은 나를 원수의 손에 넘기지 않으시고, 내 발을 평탄한 곳에 세워 주셨습니다.9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울다 지쳐, 내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내 몸과 마음도 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10 나는 슬픔으로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11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나를 비난합니다. 이웃 사람들도 나를 혐오하고, 친구들마저도 나를 끔찍한 것 보듯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12 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습니다.13 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14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NIV
Keep me free from the trap that is set for me, for you are my refuge(4절).
1. 우상을 미워하시는 분
시인은 주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주님의 구원하심, 피난처 되심이 절실했다.
안팎으로 고난이 심하니 어쩔 수 없다.
그 와중에 그는 하나님의 선호를 분명히 알고 있다.
하나님은 우상을 미워하시는 분이시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으로 썩어 없어질 것들이다.
진정한 구원을 만들 수 없는 존재다.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이 형상화된 것이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응축되어 숭배의 대상을 탄생시켰다.
그 두려움은 사실 사탄이 제공한다.
하나님은 두려움에 의해 압제당하는 히브리 민족들을 구출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두려움을 극복하기를 요청하신다.
두려움에 가두려는 우상을 버리길 원하신다.
우상은 중독을 일으킨다.
두려움으로 시작된 우상에 대한 의존은 중독과 숭배를 낳는다.
이성적, 상식적, 합리적 생각과 논리는 점점 배제된다.
사람의 감정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아 결국 중독에 빠지게 만든다.
가스 라이팅의 원조는 우상 숭배였다.
하나님은 중독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현실의 영성을 바라신다.
일상을 잘 살아내어 사람과 자연에 조화롭고 평화로운 환경이 만들어지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중독에서 사람들을 빼내어 자유로운 의지를 발휘하는 존재들로 만드신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신다.
그분은 우상을 미워하신다.
2. 비난 받을 용기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심지어 사랑해도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수 있다.
시인은 8-14절까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에 고통받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시가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라고 한다면, 해당 부분은 너무 처절하고 개인적이다.
이 노래는 다윗만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성가대의 노래를 듣거나 불렀다.
원수의 손, 울다 지쳐 시력조차 잃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흐른다, 근력이 마르고 뼈마저 녹았다…등의 표현을 보면 시인이 겪는 고통의 깊이가 얼마큼인지 알게 된다.
사람들의 비난과 협박이 끊이질 않는다.
대적자들이 시인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음모와 전략을 세운다.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 덕분에 항상 평온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많은 시간동안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협박을 받으며 살았다.
다윗 자신도 전장의 장수로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러니 당연히 많은 적들로부터 위협을 당하기 마련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비난 받는 경우가 있다.
어찌보면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난 받는 것이 불가피한 과정일 수 있겠다.
나는 오랫동안 비난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만큼 비난에 약하다.
아마도 비난 받을 용기가 별로 없을 것이다.
한 두 사람이라도 비난 하는 경우에 내면에 큰 상처로 남아 쩔쩔 맬 것이다.
목사로서는 어쩌면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선의 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운동가로서는 비난 받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운동가는 이상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복지부동의 사람들을 깨워서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그러니 비판과 비난이 찾아 올 수 있다.
그걸 못 견디면 운동을 할 수 없다.
목사는 그저 힘들고 지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도우면 된다.
그러나 운동가는 저항하는 사람들을 밀고 끌고 당겨야 한다.
난 어디쯤 있는가?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저는 용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비난과 비판에 금방 위축되고 자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찌보면 타인의 비난과 비판에 대해서도 용감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도가 아닙니다.
무조건 다른 사람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도 바르지 않습니다.
찬찬히 비판의 내용과 의도를 잘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러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담대해야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성적으로 여유있게 반응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이 대적자들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저도 비판에 유연하게 대처하게 하소서.
소명을 향해 끝까지 운동을 펼치셨던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게 하소서.
목사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이 가셨던 운동가의 삶도 포기하지 않도록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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