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12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악한 자들이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2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

3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여라.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

4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님께서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5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6너의 의를 빛과 같이, 너의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다.

7잠잠히 주님을 바라고, 주님만을 애타게 찾아라. 가는 길이 언제나 평탄하다고 자랑하는 자들과, 악한 계획도 언제나 이룰 있다는 자들 때문에 마음 상해 하지 말아라.

8노여움을 버려라. 격분을 가라앉혀라. 불평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오히려 악으로 기울어질 뿐이다.

9진실로 악한 자들은 뿌리째 뽑히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10조금만 참아라. 악인은 멸망하고야 만다. 아무리 있던 자취를 찾아보아도 그는 이미 없을 것이다.

11겸손한 사람들이 오히려 땅을 차지할 것이며, 그들이 크게 기뻐하면서 평화를 누릴 것이다.

 

시인은 악인의 형통함은 풀처럼 금방 사그라질 것이기 때문에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1-2).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를 의지하며 선을 베푸는 자들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그들의 의로움을 한낮의 햇빛처럼 나타내실 것입니다(3-6). 그러므로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되, 악한 자들의 잘됨으로 인한 분노와 격분을 가라앉히고 불평의 말을 그치십시오(7-8).

 

잠시 성공한 것처럼 보이던 악한 자들은 종국에는 멸망할 것입니다. 반면 주님을 찾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받고 주님이 주실 기쁨과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9-11). 악한 자들의 됨을 보면 우리도 부러움이나 원망, 불평이 생길 있습니다. 그럴 우리의 시선이 현재에만 머물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이루실 일들을 붙들 있길 기도합시다.

 

——

 

1. 속상함

시인은 속상해하지 말라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현실은 여전하다. 

투기로 타인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다. 

더러운 욕망은 한계가 없다. 

정당한 부의 추구를 넘어선다. 

투기와 투자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투기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속상하다. 

 

솔직히 나가는 악인이 부럽지는 않다. 그들 내면도 고통이다. 관계도 엉망이다. 

돈이라는 욕망의 화신에 매여 사는 삶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욕망에 굴종해 타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고, 자신의 배를 채우는 자들에 대한 연민이 있지, 시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속상하다. 

많은 , 많은 행복의 기회를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빼앗았다.

결국 기회의 박탈이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극단적인 생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조금 풍족했다면, 조금 친구들이 많았다면, 조금 사회적 돌봄이 있었다면,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속상하다. 

 

2. 애타다

시인은 애타게 주님을 찾으라고 권하고 있다. 

이건 내가 오랫동안 추구했던 바이다. 나는 우주의 주인을 애타게 찾아왔다. 

내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고,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집에는 책이 별로 없었다.  

나의 간절한 소망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었다. 

어렸을 , 그것만이 나를 지킬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나의 약점과 부족함을 극복할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어찌보면 아주 실용적인 이유로 하나님을 찾았다. 

 

실용성이 완전히 버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이유로 그분을 애타게 찾는다. 

그저 그분이 정말 존재하는지 더욱 확인받고 싶다. 

믿음이 아니라 확실성에 거하고 싶다. 

그래서 그분을 찾는다.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의 존재를 믿는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깊이 경험하고 싶다. 열망을 어찌 막을 있단 말인가!!

그분의 임재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그분의 일하심을 간절히 기다린다. 

 

악인이 어찌되는 것은 현재 나에게 중요하다. 

의인의 어떻게 빛나게 되는 것도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시인의 감정의 이유까지 내가 닮아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시인의 감정이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애타게 간절히 매일 매주 그분의 임재와 일하심을 추구한다. 

그게 나를 살린다.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 

 

3. 뿌리 뽑혀야

미얀마의 참상을 뉴스를 통해 듣는다. 

나를 죽여라젊은이들을 향해 발포하는 군경들 앞에 무릎을 꿇은 수녀의 외침. 

수녀는 살았으나, 그의 눈앞에서 청년이 포악한 총알에 목숨을 잃었다. 

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985952.html

 

수녀 또 무릎 꿇었지만…무자비한 미얀마 군경에 2명 사망

일부 군경도 수녀 앞에서 무릎 눈길군부, 대학 점령·주택가 무차별 총격여성단체, 전통치마 타메인 시위남부 카렌반군 무장하고 시위대 보호

www.hani.co.kr

21세기, 휴대폰, SNS… 일상의 실시간 중계가 가능한 세상이 되었건만, 역시 악은 성실했다.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 국부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국회의 일정 좌석을 항상 차지하게 하는 헌법에 보호를 받는다. 

군대, 정치, 경제막강한 권한이다. 마치 예수님 시대의 로마 제국을 보는 같다. 

대마불패, 그들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득권과 권한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순간, 이렇게 쿠테타가 일어난다. 피를 부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들을, 악을 참아야 하는가! 

 

오늘 시인이 현대에 살고 있다면, 분명히 거대악에 대항해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9진실로 악한 자들은 뿌리째 뽑히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나도 같은 마음으로 저주를 퍼붓는다. 

비무장한 시민들에게 발포한 군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를 

자연과 만물이 나서서 그들의 사지를 묶고, 입술을 꿰매기를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전국이 유혈이 낭자한 킬링필드가 되고 있다. 

막아 주실 분이 가만히 계시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희생자가 된다. 

이것도 속상하다. 

 

어쩔 없이 간절히 부르짖는다. 

주님, 악한 자의 뿌리를 뽑아 주세요!”

 

——

악의 뿌리를 뽑으시고, 새로운 세계를 여신 주님을 높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현실에서는 악이 판을 칩니다. 

인간의 악독함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자기보호가 살인을 낳고 살인이 전쟁을 낳습니다. 

미얀마의 악을 보고 계십니다. 

미얀마의 시민들을 주님께서 돌봐주세요. 

주님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1 04 05 월요일

 

여는 기도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1악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반역의 충동 있어,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습니다.

2그의 눈빛은 지나치게 의기 양양하고, 잘못을 찾아내 버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3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란 사기와 속임수뿐이니, 슬기를 짜내어서 좋은 일을 하기는 이미 틀렸습니다.

4잠자리에 들어서도 속일 궁리나 하고, 범죄의 길을 고집하며, 한사코 악을 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5주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하늘에 가득 있고, 주님의 미쁘심은 궁창에 사무쳐 있습니다.

6주님의 의로우심은 우람한 산줄기와 같고, 주님의 공평하심은 깊고 깊은 심연과도 같습니다. 주님, 주님은 사람과 짐승을 똑같이 돌보십니다.

7하나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어찌 그리 값집니까? 사람들이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여 숨습니다.

8주님의 집에 있는 기름진 것으로 그들이 배불리 먹고, 주님이 그들에게 주님의 시내에서 단물을 마시게 합니다.

9생명의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

10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친히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의를 변함없이 베풀어 주십시오.

11오만한 자들이 발로 나를 짓밟지 못하게 하시고, 악한 자들이 손으로 나를 휘두르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12 때에 악을 일삼는 자들은 넘어지고,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시인은 악인의 모습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교만한 , 거짓된 ,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악한 계획을 꾸미는 것으로 묘사합니다(1-4). 반면 하나님의 사랑은 넓은 하늘을 채울 만큼 가득하며, 주님의 의로우심은 바다처럼 깊습니다(5-6).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주의 사랑과 의로운 돌보심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7-9).

 

시인은 주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며, 악한 자들로부터 지켜주시길 기도합니다(10-11). 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며 악한 일을 일삼다 심판을 받지만(12),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살아갑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길 기도합시다.

 

——

1. 반역의 충동

시인은 악인들의 마음에 있는 충동에 대해 다룬다. 

충동은 본능적이다. 갑자기 튀어 나온다. 무조건적 반응이다. 

이면도로를 오손도손 걷다가도 뒤에서 갑자기 경적을 울려대면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온다. 

악인의 마음에 있는 충동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반역의 충동이다. 

누구에 대한 반역인가?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길 원한다. 

 

시인은 제대로 짚었다. 

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반역의 충동을 계속 안고 산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그분이 역사 속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학습하지 않았거나, 믿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 듣지 않는 , 들어도 거부하는 , 다른 신들의 이야기에 현혹된 자는 하나님을 업신 여기기 일쑤다. 

그렇게 반역의 충동을 방치하게 되면 악인이 되어간다. 

 

그들은 하나님에게만 반역의 충동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은 이웃에 대한 악행으로 이어진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속일 생각을 한다. 범죄의 길을 한사코 고집한다. 악을 고집한다. 

머리를 쓰는데 슬기와 지혜는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골탕먹이고 죽이는 일이다. 

 

2. 하나님의 신실하심

시인은 악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하나님에 대해서 노래하기 시작한다(5 이하). 

악인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자연스런 흐름은 의인에 대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께 집중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신실하심을 노래한다. 

유독 눈의 띄는 표현은 하나님의 공평하심에 대한 고백이다. 

 

6_주님의 의로우심은 우람한 산줄기와 같고, 주님의 공평하심은 깊고 깊은 심연과도 같습니다. 주님, 주님은 사람과 짐승을 똑같이 돌보십니다.

 

사람과 짐슴을 똑같이 돌보신다는 그의 고백에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에 대한 깊은 신뢰가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짐승을 돌보신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린다. 

나도 점점 동물에 대한 사랑이 커져가고 있다. 

개는 훌륭하다, 고앙이를 부탁해, 동물 농장 등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동물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은 자연 만물 전체를 사랑하신다. 

창조때부터 지금까지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시인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다. 

 

 3. 시인의 간구 

시인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주목했는가? 

시의 마지막 10-12절에 이유가 나온다. 

약간 유치하기도 하지만, 시인은 하나님에게 간청을 드린다. 

 

10_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친히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의를 변함없이 베풀어 주십시오.
11_오만한 자들이 발로 나를 짓밟지 못하게 하시고, 악한 자들이 손으로 나를 휘두르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12_ 때에 악을 일삼는 자들은 넘어지고,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시인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오만한 자들은 넘어지길 요청한다. 

시인의 진심이 드러난다.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다. 

하나님에 대한 묵상은 자신에 대한 보호와 자신을 해하려는 자들에 대한 저주로 이어진다. 

 

이게 시다. 기도다. 지극히 개인적인 요구요, 간청이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현실의 악에 맞설 힘이 없다. 

하루 종일 악한 생각과 계획을 짜는 사람과 어찌 맞설 있단 말인가? 

 

드라마 빈센조의 핵심 메시지는거악을 소악이 혼쭐낸다이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쓰레기이다.

거대한 악의 카르텔에 맞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악에 의존한다.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들이 악한 생각을 집요하게 이어나간다. 

규모와 깊이의 구조악에 맞서 사람들은 악을 이길 새로운 연대를 형성하지만, 그것이 선은 아니다. 

 

, 과연 일상의 신실한 사람들이 거대악에 맞설 있는가? 

매일 모든 시간에 악을 계획하고 치밀하게 디테일하게 공격하는 악인들에게 평범한 범부들이 어떻게 대적할 있는가? 

그렇다. 이제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 의지할 이다. 

신실하신 , 모든 자연을 사랑하시는 , 악인을 미워하시는 , 생명의 샘이 되시고, 쉼터가 되시고, 빛을 비추시는 , 그분께 집중할 밖에 없다. 

울분을 토로할 분은 밖에 없다. 

 

그렇다고 거대악에 맞서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다. 맞설 있다. 그러나 혼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의 도움을 힘입어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들이 있는 일이다. 

 

미얀마 군부의 유혈 진압을 규탄한다. 

미얀마 청년들의 울부짖음에 나의 외침을 덧붙인다. 

 

주님, 선량한 시민들의 목숨을 구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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