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12일 월요일
여는 기도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성전 봉헌가, 다윗의 시]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수렁에서 건져 주시고, 내 원수가 나를 비웃지 못하게 해주셨으니, 내가 주님을 우러러 찬양하렵니다.2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울부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습니다.3 주님, 스올에서 이 몸을 끌어올리셨고, 무덤으로 내려간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4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여라.5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6 내가 편히 지낼 때에는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 하였지만,7 아,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님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8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께 은혜를 간구하였습니다.
9 내가 죽은들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내가 죽어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한 줌의 티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한 줌의 흙이 주님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습니까?10 주님,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 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주님께서 나를 돕는 분이 되어 주십시오.11 주님께서는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갈아입히셨기에12 내 영혼이 잠잠할 수 없어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영원토록 주님께 감사를 드리렵니다.
주석
8절. 주님께 부르짖고, 은혜를 간구한 시인의 행동은 과거에 한 번 일어난 행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부르짖고 간구하기를 반복했다는 의미입니다(IVP 성경주석, 685쪽).
[오늘의 묵상]
1. 성전 봉헌가?
이 시는 성전 봉헌가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성전을 다 건축하고 하나님께 올려드리면서 드리는 찬송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내용이 성전 봉헌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성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시인이 고통 속에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응답하셨고 그에 대한 감사의 내용이 다다.
나 같으면, 성전을 완성하도록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 그동안 수고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축복을 비는 시를 쓸 것 같다.
다윗은 다른 생각을 가진 것 같다.
성정 봉헌가에 어울리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적고 있다.
게다가 울부짖다,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다, 죽은들 무슨 소용, 내 통곡, 슬픔의 상복 등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자기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하소연하는 듯 한 느낌이다.
물론 그는 그 슬픔과 고통이 결국 기쁨, 기쁨의 춤, 기쁨의 나들이옷 등의 단어를 통해 주님께서 하신 일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고통과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이런 내용들이 성전 봉헌가에 어울린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2. 다윗의 기쁨
다윗은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성전을 봉헌하는 이 순간 그는 자신의 그간의 고통과 슬픔이 어떻게 벗겨졌는지 고백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던 사람이다.
그냥 소원을 아뢰는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 울부짖고 눈물로 기도했던 사람이다.
환경의 어려움을 기도로 토로할 수 있었다.
자신 안에 꽁꽁 숨겨두고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말하고 토로하고 기도했다.
기도의 내용, 시간, 방법이 다 절절하다.
그는 죽음 같은 상황에 있었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밤새 기도했으니 기도 시간만 해도 8시간 이상이다.
눈물로 울부짖었으니 눈은 퉁퉁 붓고 기진맥진하여 더는 울 힘조차 없었을 것이다.
허나, 그 모든 고통의 시간들을 주님께서는 보고 계셨고, 그에게 도움을 주셨다.
주님이 다윗을 구원하셨다.
다윗의 기도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셨다.
그를 죽음에서 건지셨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이제는 기쁨으로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성전을 봉헌하는 것이 그에게는 큰 기쁨 중 하나였다.
그는 춤으로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다.
시인이자, 수금 연주자이자, 싸움의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그는 이제 주님 앞에 춤을 추고 있다.
인생은 등산 같다.
올라가는 길이 있고, 정상에 머무르는 순간이 있고, 내려가는 길이 있다.
올라가는 길은 고통스럽다.
숱한 계단 하나 하나 내딛고 몸을 올리려는 할 때마나 숨은 가빠지고 몸의 고통은 배가 된다.
그러나 그 고통을 이기고 정상에 다다르면 시원한 바람에 이끌린 눈동자에 비친 풍경은 그야말로 환희의 순간이다.
고통의 순간에 해야 할 일은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한 가지를 더 알아야 한다.
그 내딛는 걸음 걸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그 인생의 산을 오를 수 없다.
자기 혼자 오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도움 없이는 오를 수 없는 것이 인생 산이다.
그걸 아는 자들은 산 정상에서 감사와 기쁨의 춤을 출 것이다.
오늘도 그런 날이 되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인생 산을 오릅니다.
막막함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꺠닫게 하소서.
당신이 원하시는 산을 향해 걷게 하소서.
아무산이나 오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오르라는 산을 향하게 하소서.
그리고 그 산의 헐떡 고개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하소서.
고통과 고난이 기쁨의 춤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앞에서 춤을 추게 하소서.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소서.
악한 영의 계략을 막아 주시고, 힘없고 연약한 자들이 평안을 누리는 나라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을 공동체에 적용하려는 자들에게 힘을 주소서.
대선 정국에서 사회를 혼란케 하려는 자들의 시도를 막아주시고, 평화롭게 대선이 치러지도록 도우소서.
신변 안전의 위협을 느끼는 대선 후보자들을 지켜주소서.
이 나라를 향한 주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대통령이 뽑히도록 도우소서.
마지막으로 기도드립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나라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미움과 갈등이 켜켜이 쌓여 서로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이 상황을 보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화해의 하나님, 중재의 하나님, 막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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