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13일 화요일
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1 십 광야의 주민이 기브아로 사울을 찾아와서 밀고하였다. “다윗은 여시몬 맞은쪽 하길라 산 속에 숨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2 그래서 사울이 일어나, 이스라엘에서 삼천 명을 골라 거느리고, 십 광야에 있는 다윗을 찾으러 직접 십 광야로 내려갔다.3 사울은 여시몬 맞은쪽 하길라 산 속으로 들어가 길 가에 진을 쳤다. 이 때에 다윗은 바로 그 광야에 있었기 때문에, 사울이 자기를 잡으려고 그 광야로 쫓아온 것을 알게 되었다.
4 다윗은 곧 정찰대원들을 파견하여, 사울이 와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를 확인하게 한 다음에,5 사울이 진을 친 곳으로 가 보았다. 다윗이 그 곳에 와 보니, 사울과 넬의 아들 아브넬 군사령관이 자고 있었는데, 사울은 진의 한가운데서 자고, 그의 둘레에는 군인들이 사방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6 그래서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인 아비새에게, 누가 자기와 함께 사울의 진으로 내려가겠느냐고 물으니, 아비새가 나서서, 자기가 다윗과 함께 내려가겠다고 대답하였다.7 이리하여 다윗이 아비새를 데리고 밤에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니, 사울이 진의 한가운데서 누워 자고, 그의 머리맡에는 그의 창이 땅바닥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군인들은 그의 둘레에 사방으로 누워 있었다.8 아비새가 다윗에게 자청하였다. “하나님이 오늘, 이 원수를 장군님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제가 그를 당장 창으로 찔러 땅바닥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이, 한 번이면 됩니다.”9 그러나 다윗은 아비새에게 타일렀다.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누구든지,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자를 죽였다가는 벌을 면하지 못한다.”10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주님께서 사울을 치시든지, 죽을 날이 되어서 죽든지, 또는 전쟁에 나갔다가 죽든지 할 것이다.11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이를 내가 쳐서 죽이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12 다윗이 사울의 머리맡에 있던 창과 물병을 들고 아비새와 함께 빠져 나왔으나, 보는 사람도 없고, 눈치채는 사람도 없고, 깨는 사람도 없었다. 주님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셔서, 그들이 모두 곤하게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NIV
Abishai said to David, “Today God has delivered your enemy into your hands. Now let me pin him to the ground with one thrust of the spear; I won’t strike him twice(8절).”
주석
11절. 다윗이 밤에 사울의 진영에 들어가 탈취한 창은, 왕의 직위를 상징하며 왕의 공식 의전에 사용되는 무기였습니다. 어떤 사람의 물과 무기를 빼앗았다는 것은, 그의 생명이 빼앗은 이의 손에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IVP 성경배경주석-구약, 450쪽).
[오늘의 묵상]
1. 아비새
다윗은 장차 왕이 될 인물이다.
그가 당하는 고통에 깊이 공감된다.
그는 잘못이 없다.
사울 왕의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고 있다.
나발이 무시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를 잘 보위하여 추후에 왕으로 옹립하는 것 그게 아비새 내가 할 일이다.
이 날도 사울의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웠다.
수천의 군사들이 코앞에 왔다.
느닷없이 다윗이 아히멜렉과 나 아비새에게 제안을 한다.
사울 왕의 진영으로 들어가자라는 것이다.
왜?
도대체 이 작전의 목적과 이유는 무엇인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수천의 군사를 뚫고 사울 왕을 잡자는 것인가?
아님 군사 동향을 파악하자는 것인가?
후자라면 세작을 보내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사울을 죽이자는 이야긴데, 과연 둘이서 가능한 일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다윗이 그동안 보여준 전략과 임기응변을 알기에, 무엇보다 그의 권위가 하나님과 맞닿아 있기에 따르기로 했다.
밤에 내려가니 모두들 아주 편하게 자고 있었다.
경계도 약했다.
싸움을 하러 온 사람들이 맞나 싶었다.
아마도 국가간의 전쟁이 아닌데다 쫓기는 신세인 다윗 일당이 무엇을 할까보냐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울 왕이 잠들어 있는 곳까지 손쉽게 찾아갔다.
진의 중앙에 있을 것이 당연했다.
아무도 불침번을 서지 않고 있었다.
왕과 더불어 모든 참모들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
절호의 기회다.
이건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기회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다윗 군대의 장군으로서 내가 적장을 벨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다윗이 시키기만 하면 이 지긋지긋한 도망자의 신세도 끝이다.
“장군님!! 제가 그의 목숨을 끊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울을 맡기셨습니다.”
작은 소리지만 단호했다.
“아니다. 주님께서 기름부어 주신 자를 죽여서는 안된다.”
와… 이런… 숨이 막힌다.
답답하다.
지난 번에도 사울을 살려 준 적이 있었다.
그 때 사울은 다시는 다윗을 뒤쫓지 않겠다 했다.
그런데 상황은 어떤가?
여전히 쫓고 쫓기는 상황 아닌가?
그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답답한 소리를 하다니…
순간 진절머리가 나고, 욱하는 뱃심이 올라왔다.
“창과 물병만 챙기고 가자”
이 아까운 기회를 이렇게 날리다니…
이 절호의 찬스를 이렇게 허비하다니…
2.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아비새는 아마도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다윗의 말을 과연 들어야 하는지, 아님 과감하게 이 상황을 종결해야 하는지..
그동안 겪은 역경을 생각하면, 다윗을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과감하게 결행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비새는 다윗의 말을 순종했지만, 나라면 좀더 과감했을 수도 있었겠다.
도망자의 신세를 모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너무나 아쉽다.
하나님의 뜻은 나의 욕망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정말 많다.
내가 바라는 것,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가 있다.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거대 서사가 있다.
또한 미시적인 바램도 있으시다.
그분의 거대 서사 속에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미시적인 뜻도 분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도가 필요한 이유다.
묻고 기다리고 행동하고 다시 묻고 기다리고 행동하고의 반복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거대한 이야기를 계속 바라보고 응시한다.
내면의 욕망의 소리를 들을 것인가?
하나님의 거대한 이야기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를 들을 것인가?
가끔 내 욕망의 소리가 너무 커질 때가 있다.
그 소리를 잠재워야 거대한 북의 미세한 떨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내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님의 뜻을 구한다.
[오늘의 기도]
지혜가 많으신 하나님,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 막막함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주님의 길을 걷게 하소서.
눈에 보이는 당장의 필요를 쫓기보다 거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계속 떠올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람들의 필요, 공동체의 필요를 잘 파악하고 필요한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학사 운동을 정립하고 그 기초를 잘 쌓도록 이끄소서.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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