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09일 금요일

 

여는 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1 예언자 엘리사가 예언자 수련생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너는 허리를 단단히 묶고, 손에 이 기름병을 들고, 길르앗의 라못으로 가거라.2 거기에 가면, 그 곳에서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안에 들어가, 그의 동료들 사이에서 그를 불러내어 밀실로 데리고 들어가거라.3 그리고 기름병을 기울여 그의 머리에 부으며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하고 말하여라. 그렇게 말한 다음에 너는 문을 열고 속히 도망하여라. 지체해서는 안 된다.”

 

4 그리하여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가 길르앗의 라못으로 갔다.5 그가 도착하였을 때에, 그 곳에는 군대의 장군들이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장군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자 예후가 말하였다. “우리들 가운데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까?” 그 시종이 말하였다. “바로 장군님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6 예후가 일어나서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는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말하였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7 너는 네가 섬기는 상전 아합의 가문을 쳐라. 나는 내 종들인 예언자들의 피와 또 주님의 다른 종들의 모든 피를 이세벨에게 갚으려고 한다.8 나는 아합의 가문을 모두 다 멸망시킬 것이다. 그렇다. 아합에게 속한 사람은 매인 사람이건 놓인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남자는 누구나 이스라엘 안에서 끊어 버릴 것이다.9 나는 아합의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과 같이 만들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과 같이 만들 것이다.10 그리고 개들이 이스르엘 땅 안에서 이세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 그를 매장할 사람조차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뒤에 예언자의 시종인 그 젊은이는 문을 열고 도망하였다.

 

11 예후가 왕의 신하들이 있는 데로 나오자,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좋은 소식이었소? 그 미친 녀석이 장군께는 무슨 일로 왔었소?” 예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장군들께서도 그 사람이 누구고, 그가 쓸데없이 떠들고 간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을 것이라 믿소.”12 그러나 그들이 말하였다. “슬쩍 넘어가지 마시오. 우리에게 사실을 말해 주시오.” 예후가 대답하였다. “그의 말이, 주님께서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웠다고 말씀하시었다고 하였소.”13 그러자 그들은 황급히 일어나, 각자 자기의 옷을 벗어서, 섬돌 위 예후의 발 아래에 깔고, 나팔을 불며 “예후께서 임금님이 되셨다” 하고 외쳤다.

 

주석

1절. “너는 허리를 단단히 묶고”는 어떤 행동을 위해 준비하라는 것을 의미한다(IVP 성경주석)

3절. 예후에 대한 예언은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지시하신 명령이었고 아합 가문의 멸망은 엘리야가 했던 예언이었다(왕상 19:15-16; 21:20-28). 이 모든 것은 엘리사의 제자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1. 엘리사의 시종

엘리사 선생님이 갑자기 부르셨다. 

뭔가 중대한 말씀을 하려는 듯, 입술은 굳게 닫혔고, 양쪽으로 살짝 늘어졌다. 

시종을 바라보는 눈빛은 맑고 깊었다. 

잘 들으라며, 미리 언질을 주셨다. 

이미 그의 손에는 기름병이 들려 있었고, 시종은 혹시 자신에게 부으려고 하는지 순간 의심했다. 

“이 기름병을 들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길르앗 라못은 전쟁이 그치지 않는 곳이었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국경에 위치한 도시로 한동안 시리아의 점령 속에 있었지만 최근 요람(북이스라엘)과 아하시야(남유다)이 합공하여 시리아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만나라, 그를 밀실로 데리고 가서, 이 기름을 그의 머리에 부어라. 그리고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라고 말하여라”

시종은 다리가 풀렸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요람 왕은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왕의 휴양지였던 이스르엘에 머물고 있다. 

이스르엘 지역은 예전에 아합왕과 이세벨이 나봇으로부터 그의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았던 곳이다. 

부상당한 왕을 두고 전장의 장군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라니, 이건 반역이었다. 

시종은 정신이 아득했다.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전장의 장군을 불러 내기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은 엘리사 선생님이 직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왔고, 실제로 두려웠다. 

마지막 말이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말한 다음에 너는 문을 열고 속히 도망하여라. 지체해서는 안 된다.”

왠지 생명 걸고 하라는 말을 들렸다. 

 

길르앗 라못으로 가는 내내 걱정이었다. 

기름병을 들고 가는 것 자체가 부담 100배였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미션이었다. 

그동안 선생님의 심부름을 실수없이 수행해 왔다. 

순종이라면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결이 다른 심부름이었다. 

이렇게 중차대한 일을 시종에게 시켰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길르앗 라못에 도착하니 과연 전장터였다. 

곳곳에 전쟁의 흔적이 선명하다. 

나무들이 꺾여 있었고, 불에 그을린 자국도 분명했다. 

돌에 묻은 핏자국도 아직 그대로였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장군들이 모여 있는 지휘소가 어딘지 알려주었다.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몇번이나 증명해야 했다. 

 

장군들의 회의 장소에 들어가기가 몇번이나 주저되었다. 

하지만, 엘리사가 섬기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시종의 하나님이기도 했다. 

엘리사의 명령은 사람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용기를 내었다. 

과거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더 올라가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특히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담대함을 떠올렸다. 

엘리사 선생님의 굳은 입술과 단호한 말들을 기억해냈다. 

 

“장군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미 누가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인지 파악했다. 

그를 보며 말을 했지만, 그 자리에는 장군이 한 둘이 아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군사 회의 중에 낯선 사람의 침범을 용인하기 쉽지 않는 법이다. 

그럼에도 예후는 그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장군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조용한 곳으로 가 주시죠” 

낯선 젊은이의 요청은 무례했다. 

전투중인 장군을 혼자 불러낸다? 

신원 파악이 확실하지 않은 민간인 복장의 한 젊은이와 같이 둘만 있는다?? 

 

무기를 소지했는지는 이미 검색이 끝난 상황이었다. 

장군이 민간인 청년의 말에 겁을 낼 일은 아니었다. 

시종을 불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둘만 있는 공간에 접어들자, 시종은 엘리사의 표정을 따라했다. 

그리고 기름병의 기름을 장군에게 부었다. 

예후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그 행동의 기이함과 갑작스러움에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시종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당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합니다. 아합의 왕가를 진멸하십시오. 이세벨은 개에게 물어 뜯길 겁니다.’

엘리사의 예언을 그대로 읊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말하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예후 또한 그 말들을 들으면서 전율이 올랐다. 

하나님의 선택이 자신에게 온 것이다. 

 

시종은 부리나캐 달려 나갔다.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고 싶었다. 제발… 

시종은 그의 소임을 다했다. 

혹시 여기서 잡혀서 죽을 수도 있었다. 

요람의 신복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반역의 앞잡이인 이 시종을 가만 둘 리 만무하다. 

 

2. 왕이 된 예후 

다른 장군들은 갑자기 뛰쳐나와 빨리 사라져가는 시종을 보며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예후가 빨리 나오지 않았다면, 혹시라고 암살 시도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예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봤다. 

“좋은 소식이었소? 그 미친 녀석이 장군께는 무슨 일로 왔었소?” 

예후는 일단 시종의 말을 숨기고 싶었다. 

“장군들께서도 그 사람이 누구고, 그가 쓸데없이 떠들고 간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을 것이라 믿소.”

다른 장군들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쟁의 중요한 정보였을 수도 있었다. 

전황을 뒤집을 핵심적인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예후가 심어 놓은 정보원이었을 수도 있다. 

“슬쩍 넘어가지 마시오. 우리에게 사실을 말해 주시오.” 

예후도 더는 피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주님께서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웠다고 말씀하시었다고 하였소.”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장군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젊은이가 엘리사의 시종이라고 말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아합과 이세벨의 강압 통치에 안그래도 진절머리가 난 상황이었다. 

예후 같은 장군이 왕이 된다면 그동안 전쟁터에서 생사를 함께 했던 자신들을 외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후는 왕이 될만한 리더십과 성품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다들 공감하는 눈치였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갑옷을 벗고, 웃옷을 벗어 예후의 발 아래에 깔았다. 

병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나팔을 가져다가 불면서 이렇게 외쳤다. 

“예후께서 임금님이 되셨다.”

새로운 왕조가 탄생했다. 

하나님이 새로운 왕을 주셨다.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통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으셨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사울 왕을 대체하도로 하셨다.

그 전통이 다시 살아났다. 

예후가 북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되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에 다시 개입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람을 부르셔서 소명을 주시는 하나님, 

그 소명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임을 기억합니다. 

부담되고, 불편하고, 피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부르신 것이 확실하다면, 용기를 내겠습니다. 

엘리사의 시종이 그랬던 것처럼 죽음을 마다않고 최선을 다해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용기와 힘과 지혜를 공급해주세요. 

 

하나님의 개입을 간절히 구합니다. 

한국의 역사에 개입해주세요. 

세계의 전쟁 가운데 개입해주세요. 

평화의 시대가 오도록 이끌어 주소서.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한반도의 항국적인 평화의 땅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인도해주세요. 

자신의 이익과 분노에 의해 움직이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더 많아지도록 도와 주세요. 

 

설 연휴의 시작입니다. 

너무 풀어지지 않고, 제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서, 가정과 가족을 섬기도록 이끌어 주세요. 

잘 쉬고, 잘 먹고, 잘 섬기는 하루 하루 되게 해 주세요. 

달리면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달릴 때 주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6 10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5 압살롬은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였으며,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들어왔다.

16 때에 다윗의 친구인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을 찾아와서, 압살롬을 보고, "임금님 만세!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17 그러자 압살롬이 후새에게 물었다. "이것이 친구를 대하는 그대의 우정이오? 어찌하여 그대의 친구를 따라서 떠나지 않았소?"

18 후새가 압살롬에게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주님께서 뽑으시고 백성과 이스라엘 사람이 뽑아 세운 분의 편이 되어서, 그분과 함께 지낼 작정입니다.

19 제가 다른 누구를 섬길 있겠습니까? 당연히 부왕의 아드님을 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제가 전에 부왕을 섬긴 것과 같이, 이제는 임금님을 섬기겠습니다."

20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물었다. "이제 우리가 무슨 일부터 해야 될지 의견들을 내어 보시오."

21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말하였다. "부왕이 왕궁을 지키라고 남겨 후궁들과 동침하십시오. 이렇게 임금님께서 부왕에게 미움받을 일을 하였다는 소문을 이스라엘이 들으면, 임금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더욱 힘을 것입니다."

22 그리하여 사람들이 옥상 위에 압살롬이 들어갈 장막을 차려 주니,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압살롬이 자기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였다.

23 사람들은 아히도벨이 베푸는 모략은, 무엇이든지, 마치 하나님께 여쭈어서 받은 말씀과 같이 여겼다. 다윗도 그러하였지만, 압살롬도 그러하였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아히도벨도 함께 갔고, 다윗이 보낸 후새도 위장 전향하여 함께 했습니다(15-19절).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말을 따라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합니다. 이는 다윗을 미워하는 반란 세력이 더욱 결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20-22절). 패륜적인 행위였으나 아히도벨의 말은 압살롬에게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23절).

 

아히도벨은 다윗도 인정한 모략가 입니다. 압살롬에게 그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권위를 갖게 됩니다.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했습니다. 그 영향력 아래에 익숙해지면 주체적인 판단력을 상실하고 그 생각을 의존하게 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합니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목소리, 대상, 매체들은 무엇입니까?

 

——

 

이쯤 되면 반역은 성공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고 있다. 

예루살렘 사랃뜰은 어리둥절 자체이다. 

소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다윗의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다윗은 성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말을 처음으로 들은 사람들은 믿을 없는 표정이었다. 

어찌 다윗이 모양이 되었는가

민족의 영웅과도 같은 다윗이 어찌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단 말인가

매년 다윗을 따라 전장터를 누볐던 백성들은 세월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흘렀는지 격세지감을 느꼈을 것이다. 

세상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적응하기가 너무 어려운 순간이 왔다. 

혁명때로 세상의 변화는 도둑처럼 다가온다. 예측하기 어렵다. 

 

코로나가 그렇다. 

일대 문화대혁명을 가져왔다. 

그동안 생각만했던 것들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격세지감을 느낀디. 

정치적 혁명만큼이나 어마무시한 삶의 혁명이 그동안 있어왔다. 

마스크, 거리두기, 온택트 

세상이 갑자기 변하면 어찌해야 바를 모르는 사람들은 현자를 찾는다. 

그래도 지금 시기를 지혜롭게 넘길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을 찾는다. 

마치 압살롭이 아히도벨을 찾듯이 말이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할 없다. 

책사가 필요하다. 아히도벨이나 후새 같은 모략을 펼칠 있는 참모가 필요하다. 

어찌보면 세상은 2인자들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고 권력가들은 권력을 대표하기는 하지만, 참모들의 말을 듣지 않고서는 권력을 유지할 없기 때문에 2인자들을 의존할 밖에 없다.  

아히도벨은 다윗 왕에게도 많은 조언을 했던 인물이었다. 

혹시 압살롬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다윗에게 조언했었는지도 모른다. 

다윗의 정책에 대해 많은 부분 그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23절이 보여주고 있다. 

 

23 사람들은 아히도벨이 베푸는 모략은, 무엇이든지, 마치 하나님께 여쭈어서 받은 말씀과 꼭 같이 여겼다. 다윗도 그러하였지만, 압살롬도 그러하였다.

 

아히도벨은 여러모로 지혜와 모략이 넘치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실 조금 끔찍한 방식을 압살롬에게 조언하는 모습을 본다. 

다윗 왕의 후궁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 압살롬이 강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압살롬은 넘지 말아야 선을 넘었다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람들에게 확실히 편을 정하라고 압박할 있었다. 

다윗 편인지 압살롬 편인지 결정을 해야 했던 것이다. 

중도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입장을 정하라고 한다. 

괜히 어정쩡하게 있다가는 도리어 공격을 받을 있다.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할아버지이다. 

그는 다윗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윗에게 어떤 벌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는지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압살롬에게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을 범하라고 했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 매우 지혜로운 조언이었을 것이다. 

다윗의 죄를 부각하고, 그의 실각은 하나님의 심판이며, 그의 아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신적 대리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동시에 아히도벨은 그의 손녀 딸의 치욕을 갚을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아무리 어느 순간의 지혜로운 말과 책략이라도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압살롬은 돌아오지 못할 루비콘 강을 넘어버렸다. 

이제 압살롬은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정적을 죽일 있을 정도로 뜻이 강고함을 세상에 드러냈다. 아버지의 후궁들을 대낮에 범할 정도로 어찌보면 포악해 보일 정도로 사람들의 뇌리에 박혔다. 

이제 압살롬을 따를지, 아니면 도망자 다윗을 따라 도망자 신세가 될지를 결정해야 했다. 

이것이 예루살렘 백성들이 겪는 딜레마였다. 

 

세상이 바뀌면 딜레마에 빠진다. 

혁명이 일어나면 어느 편에 설지 고민이 깊어진다. 

잘못 결정하면 패가망신이다. 삼족, 칠족이 죽는다. 

정치적 혁명 아니라, 문화와 사회의 대혁명 속에서 사람들은 고심이 깊어질 밖에 없다. 

기존 질서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흐름에 속할 것인가.

어느 순간에는 결정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어떤 결정을 하는지에 따라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작년과 올해, 

나와 우리 공동체는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답을 아는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누구도 답을 없었다. 

다만 각자의 의견이 있었을 뿐이다. 

엄청난 변화 앞에 사역자로서 고심이 깊어진다. 

어떻게 사역을 만들어 있을 것인가.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변화는 불가피하다. 

예루살렘 성의 주인이 바뀌었 , 지금 세상의 중심이 바뀌었다. 

아히도벨이 아니라 예수님께 묻고 싶다. 

후새가 아니라 예수님의 인도를 받고 싶다.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는 없으나, 의견은 의견일 , 그들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아무리 지혜로운 조언 조차도 주님의 앞에 비추어야 것이다. 

 

최근 사역의 가시적 열매를 기대할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1) 하나님 분으로 기쁨을 누릴 있어야 한다. 

2) 이슬람 선교사의 마음과 태도로 사역에 임해야 한다. 

3) 열매보다 가지 표현에 의미를 두고 자기 표현의 아카이빙을 시도하면 좋다. 

4)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자. 

 

이렇게 가지 정도가 머리를 맨돈다. 

하나님 분만으로도 삶의 의미와 기쁨을 유지할 있는가? 

이것은 나에게 계속 던지는 질문이다.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할 있는가? 

 

이슬람 선교사분들은 10년을 사역해도 회심자 명을 얻는 일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분들이 사역에 임하는 자세는 열매에 있지 않다. 

지금 부르심에 자리에 자신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 

캠퍼스 현실이 지금 그렇다. 

회심자를 얻기가 점점 어렵다. 

년을 사역해도 여전히 맨땅일 있다. 

그럼에도 내가 부르심에 자리에 있다는 사실로 만족할 있다면 그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사역자는 어떤 기쁨을 추가적으로 추구할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자기 표현 있겠다 싶다. 

열심히 자기를 드러내라. 글로, 그림으로, 영상으로, 자기의 은사로 드러낼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의 자기 세계를 구축하라. 

누가 관심을 갖든 갖지 않든 자기 만족을 추구하라. 

수년 전에 달인의 리더십에 대해 말하고 다닌 적이 있다. 

그렇다. 미래의 리더십은 달인에게서 나올 있다. 미래의 영향력은 자기를 계속 표현하면서 명확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달인에게서 나온다. 

그러니 지금 당장 영향력을 미친다는 조급증과 결벽증에서 나와 느긋하게 예술가의 삶을 살자. 

 

하지만, 우리는 사역자이니 만큼 있는 전략은 해보는 것이다. 

열매가 있든 없든,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과 에너지와 전략으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과정이 즐거울 있다.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라. 

전략을 짜면서 즐거울 있다.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주변 동역자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보는 것이다. 

과정 자체가 열매가 되도록 하라. 

 

스스로에게 다시 다짐해 본다. 

 

——

하나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4 산업혁명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어떤 의견을 채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어떻게 사역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오늘의 일정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주님의 평안이 흘러가도록 인도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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