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30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41 주님,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주님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내게 베풀어 주십시오.

42 그 때에 나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에게 응수하겠습니다.

43 내가 주님의 규례들을 간절히 바라니,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44 내가 주님의 율법을 늘 지키고, 영원토록 지키겠습니다.

45 내가 주님의 법도를 열심히 지키니, 이제부터 이 넓은 세상을 거침없이 다니게 해주십시오.

46 왕들 앞에서 거침없이 주님의 증거들을 말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47 주님의 계명들을 내가 사랑하기에 그것이 나의 기쁨이 됩니다.

48 주님의 계명들을 내가 사랑하기에, 두 손을 들어서 환영하고, 주님의 율례들을 깊이 묵상합니다.

 

[ESV]

I will also speak of your testimonies before kings and shall not be put to shame, for I find my delight in your commandments, which I love. I will lift up my hands toward your commandments, which I love, and I will meditate on your statutes(46-48절).

 

[주석]

41절. 다른 무엇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이는 여호와의 약속된 ‘인자하심’과 ‘구원’이다. 이 ‘인자하심’은 알고, 보살피고, 공급하고,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사랑이며, ’구원’은 필요한 모든 상황에서 건져내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다(IVP 성경주석). 

 

[오늘의 묵상]

시인은 율법을 기뻐한다. 

주님의 계명과 율법은 주님의 뜻의 반영이다. 

율법을 기뻐하는 것은 명령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주님의 뜻이 이뤄지는 통로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율법은 주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의 증거다. 

그분이 베푸신 은혜와 자비, 구원이 사회적으로 구현된 실체가 바로 율법이다. 

그분의 자비와 구원은 단순히 구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거룩히 살아가도록 안내한다. 

율법와 계명이 안내자가 된다. 

시인이 계명을 좋아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환영하고 묵상하는 이유다. 

구원받은 백성이 가야할 길이다. 

인자하심을 맛본 백성들이 따라야 할 길이다. 

그러니 시인은 규례를 간절히 바라고, 진리의 말씀을 입에 두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그곳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신약시대 하나님의 법은 산상수훈에 잘 담겨 있다. 

로마서의 12장 이후에도 분명히 등장한다. 

예수님과 성령님이라는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며, 따라야 할 명령이다. 

그 명령들을 과연 기뻐하는가? 

그 명령들을 과연 사랑하고 환영하고 깊이 묵상하는가? 

신약 백성들의 신앙 생활에도 이 시인의 마음이 묻어나야 한다. 

 

시인은 세상의 왕들 앞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언하려고 한다.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자랑하는 것이 수줍고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신들은 눈에 보이는 신상이 있고, 사람들이 원하는 축복을 대놓고 준다고 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물질의 축복이 아니라, 지극히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제시하시는 분이시다. 

시인의 자랑은 돈이 아니라, 율법이다. 

물질의 풍요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비전이다. 

경제가 아니라 국가 철학이다. 

왕들은 돈과 군사력으로 자웅을 겨룬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비전에 사로잡혀 그분의 뜻인 규례와 율법을 자랑한다. 

왕들은 비현실적인 시인의 집착을 비웃는다. 

그러나 시인은 계속 꿈을 꾸고 비전을 되씹는다. 

 

한낮에도 꿈을 꾼다. 

노동의 재료는 재즈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다. 

주변 상황과 환경을 뚫고 주님만 바라본다. 

강인한 의지, 자유로운 감정, 집중된 지성이 가져다 주는 선물은 상상 이상이다. 

주님께 순종하는 의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만 바라보는 생각이 시너지를 내는 사람에겐 두려움이 없다. 

온전한 신앙 인격으로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주목한다. 

응시한다. 

일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오늘 하루도 그런 날이 되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나라의 법을 알려주신 주님, 

당신의 비전과 꿈이 저의 것이 되게 해 주소서. 

주께서 바라보시는 것을 저도 함께 바라보게 하소서. 

한 낮에도 주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주님 바라보기를 기뻐하게 하소서. 

세상은 비현실적이라고 놀리더라도 제 영혼은 기뻐합니다. 

주님이 이루실 새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모두가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새로운 하늘과 땅을 봅니다. 

주님만이 홀로 영광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3년 10월 16일 월요일

 

여는 기도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찬송하여라.

 

25 내 영혼이 진토 속에서 뒹구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26 내가 걸어온 길을 주님께 말씀드렸고, 주님께서도 나에게 응답하여 주셨으니, 주님의 율례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27 나를 도우셔서, 주님의 법도를 따르는 길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이루신 기적들을 묵상하겠습니다.

28 내 영혼이 깊은 슬픔에 빠졌으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29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 주십시오.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30 내가 성실한 길을 선택하고 내가 주님의 규례들을 언제나 명심하고 있습니다.

31 주님, 내가 주님의 증거를 따랐으니, 내가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32 주님께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시면, 내가 주님의 계명들이 인도하는 길로 달려가겠습니다.

 

[ESV]

My soul clings to the dust; give me life according to your word!(25절)

My soul melts away for sorrow; strengthen me according to your word!(28절)

 

[오늘의 묵상]

주님을 부를 이유가 있다. 

시인의 영혼이 진토 속에 있고, 깊은 슬픔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분명히 등장하지는 않는다. 

허나 31절에 따르면, 시인은 수치를 당하는 일에 대해 예민하다. 

부끄러움을 겪으면 슬픔이 찾아온다. 

소외감을 느낀다. 

쥐구멍이라도 찾는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린다. 

점점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영혼이 메말라 간다. 

수치스러움, 부끄러움, 이런 감정들을 오래 갖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과 영혼은 병든다. 

 

시인은 주님을 부른다. 

주님의 도우심을 요청한다. 

‘새 힘을 주십시오. 나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시인에게 간절한 열망은 새로운 힘이다. 

부끄러움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힘. 

독수리와도 같은, 호랑이와도 같은 힘, 준마와도 같은 힘이 필요하다. 

 

수치스러움이 깊어지면, 주님의 율법을 지킬 힘도 점점 줄어든다. 

자신감은 상실되고, 율례보다 내 마음이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갇히면 외부에 주어진 어떤 의무도 거리끼게 된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려고 하니 문제가 발생한다.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다. 

주님의 율례를 배우고, 법도를 깨달을 수 있는 힘. 

그 율례와 규례와 법을 실천할 수 있는 힘. 

배우고 깨닫고 따르고 달려갈 수 있는 힘. 

그 힘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다. 

주님의 법은 주님의 뜻을 현실로 구현하는 장치다. 

그 법을 지키고 따른다는 것은 주님의 뜻을 구현하는 매개가 된다는 뜻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주님께 간구한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그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이걸 실현하고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성령님의 힘이다. 

그 힘이 있어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삶에 실천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율법 조문과는 다르다. 

예수님의 존재, 삶, 사역, 삶과 사역의 방식, 십자가, 부활 등 그분의 전체 삶이 새로운 규례요, 율법이다. 

성령님은 이 예수님을 기억나게 하시는 분이시다. 

구약에는 모세 율법을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면, 이제는 예수님을 마음에 새기고 그분의 말씀과 삶의 태도를 묵상하고 따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걸 하기 위해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오늘도 주님을 부른다.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기 위해서… 

 

[오늘의 기도]

율법의 완성이 되신 예수님, 

율법의 조문 자체보다 인격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

당신을 기억하고 묵상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삶과 말씀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배우게 하소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주님과 더욱 친해지도록 도우소서. 

 

주님, 당신을 따르려면 매일 매일 새로운 힘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소경 바디메오가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던 것처럼,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외쳐 부릅니다. 

제 내면에 깊은 갈망을 발견하게 하소서. 

주님과 더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가길 갈망합니다. 

그 교제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길 소망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5. 23. 김혁수 

[본문_야고보서 2:1-17] 

1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2이를테면, 여러분의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금반지를 끼고 들어오고, ,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합시다.

3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당신은 거기 있든지, 발치에 앉든지 하오하고 말하면,

4바로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6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제하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7여러분이 받드는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8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라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9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 받게 됩니다.

10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조목에서 실수하면, 전체를 범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11“간음하지 말라하신 분이 또한살인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인을 하면, 결국 사람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12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13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설교]
0.
들어가며
역시 야고보서는 난해합니다. 때로 성경 저자가 명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가지 관점으로, 딜레마 혹은 트릴레마 없이 평이하게 이해되는 글로 적혀 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 말이죠. 

 

바울의 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야고보의 글은 너무 단도직입적입니다. 바울의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에서 보이는 신학적 진술, 그리고 토대 위에 설계된 생활 윤리, 공동체 윤리이렇게 집을 지어가야 이해가 그나마 쉬울 텐데, 야고보는 단도직입적으로 시험에 인내하라, 분노하지 말고 조심하라, 그리고 차별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서 같기도 하고, 규정집 같기도 하고, 여튼 신학이 정확히 노출되지 않아 익숙하지 않고 어떤 토대에서 말하는지 흐릿해서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전문맥도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자유를 주는 율법같은 개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적용되는 상황에서도 율법의 기능을 강조하는 야고보의 언급이 빨리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교회의 초기 지도자 야고보는 복음과 율법의 관계에서 특별한 갈등과 긴장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둘을 통합해서 조화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한번 따라가 보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 차별 노노

확실히 야고보서는 개인의 윤리가 아니라 공동체 윤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세계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편지입니다. 공동체 내외부의 위기를 겪고 있음을 초대 교회 지도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박해와 같은 외부의 핍박과 시련을 인내하라고 편지의 1장에서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의 사람들의 말을 듣고 분노의 말을 삼가며 성경 말씀을 실천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1장의 내용입니다. 정제되지 않은 분노의 말은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야고보는 그걸 알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고보가 눈여겨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동체내에 존재하는 차별입니다. 2-4절을 읽어봅시다. 

 

2이를테면, 여러분의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금반지를 끼고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합시다. 3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거기 서 있든지, 내 발치에 앉든지 하오” 하고 말하면, 4바로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야고보는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비슷한 경우가 발생했음을 우리는 충분히 추측할 있습니다. 왜냐면, 당시에 편지를 쓴다는 것은 오늘날 이메일을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며 비용도 많이 드는 일입니다. 필요한 내용만 넣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예를 들었다는 것은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2. 모범 되신 예수 그리스도 

기독 공동체에 암암리에 녹아 있는 차별을 보았습니다. 야고보는 그냥 넘어갈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원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차별이 사라져야 했습니다. 부자와 빈자 사이에 놓인 차별의 간극을 메워야 했죠. 야고보가 사용한 논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1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차별해야 하지 않아야 하는 번째 이유는, 야고보의 형제 자매가 우리가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영광의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부자/빈자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우 단순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들은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야고보가 경험한 예수님에 관한 충격적인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12제자들을 뽑았습니다.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더니 갑자기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원래 이런 소문은 삽시간에 번지잖아요.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먹을 시간조차 없습니다. 밀려오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자리에 앉히고 순서를 정해서 병도 고쳐 주시고, 귀신도 내쫓으십니다. 그런데 너무 갑자기 인기를 얻으니 사람들의 시기 어린 가짜 뉴스가 돌기 시작합니다.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 것입니다. 혹은 악한 귀신이 들려서 귀신이 벌이는 기이한 행동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런 소문이 누구의 귀에 들어갔냐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가족 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형님을 찾으러 갑시다. 가서 더이상 외부활동을 하지 않도록 집에 가둬둡시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갔고, 결국 어머니와 동생들, 특히 야고보를 필두로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사람들이 가득해서 그냥 가까이 오기엔 불가능해보였죠. 그래서 사람을 시켜서 예수님의 가족들이 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지난 30 동안 함께 보냈던 형님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자매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마가복음 3: 33-35)

 

그렇습니다. 야고보는 알았습니다. 예수님에겐 혈통/혈육 조차도 특혜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권력이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와 여인들을 선대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친가족이라고 해도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모든 사람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그의 동생 야고보는 보았던 거죠. 충격적인 예수님의 말에 당시에는 분개했지만, 나중에는 알게 되었죠. 그분은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으로서 사람들의 외모, 외형, 권력과 돈의 유무로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 적을 있었던 겁니다. 

1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본받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건 노인이건, 남자건 여자건, 부자건 빈자건 간에 공평하게 대합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입니다. 최근 서울시장, 부사시장 보궐선거 이후에 남녀의 성갈등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십대 남자들이 대거 국민의힘을 지지하게 되면서 이유에 대해 궁금함이 많이 커졌습니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염려가 되는 부분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과 감정의 골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베, 메갈 등의 단어가 서로를 향한 혐오를 드러냅니다. 

 

3. 인생역전

야고보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 차별하지 말아야 번째 이유도 적고 있습니다. 5절입니다.

 

5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세상을 다스리면서, 혹은 개입하시면서 사용했던 방식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빈자를 택해서 믿음의 부요한 사람들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게 아이러니 한데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능력있고 부유한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시기 보다는 볼일 없어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이입니다. 

 

여러분, 부자들은 쉽게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곤 합니다. 부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 빈자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운영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으로 많은 결정을 내려왔고, 많은 일들을 왔습니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이고, 보수적이고, 이기적이며, 자기애적입니다. 어쩔 없습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그렇게 밖에 없습니다. 가진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죠. 생각의 메커니즘, 행동의 방식이 고착화됩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추진하게 됩니다. 부자의 논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한참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 하나님 나라는 빈자들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동일한 권리가 생겼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통치하고 관리하고 경영하는 권리가 생긴 것이죠. 부자들에게만 주어졌던 권리가 이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업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실 있습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말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바울이 빌레몬서에 드라마틱하게 등장합니다.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주인의 돈에 손해를 입히고 도망자가 됩니다. 우연히 로마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게 되죠. 그리고 바울의 사역에 동참합니다. 그럼에도 노예 도망자의 신분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죠.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대하라고 말이죠. 나중에 오네시모는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어 바울의 편지를 모아 정경화 하는 과정 속에서 빌레몬서를 신약 성경에 포함시키게 되죠. 

 

야고보는 알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생역전의 드라마가 곳곳에 넘쳐납니다. 그러니 결코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참고)  서종현 선교사의 삶과 사역

https://www.youtube.com/watch?v=yv6mgVT0sLM

http://www.gospel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51

 

 

4. 율법 순종

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야고보는 생각보다 치밀합니다. 논거들을 가지나 드는 것을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야고보가 생각하는 차별하지 말아야 번째 이유는, 율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8-12절입니다. 

 

8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9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10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한 조목에서 실수하면, 전체를 범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11“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이 또한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인을 하면, 결국 그 사람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12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율법의 주요 강령은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으뜸가는 율법을 지키는 중요한 방법이 바로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자와 빈자를 구별해서 다르게 대우하지 말라는 것이죠. 율법의 정신을 제대로 살아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혼자 산다면 굳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요? 그저 하나님께 시기에 맞춰 예배하고 찬양하면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공동체적, 사회적 존재이기에 법이 필요하고, 법과 규정은 개인과 공동체를 자유하게 합니다. 자유란 무엇이든지 있는 자유가 아니라, 서로를 해하지 않을 있는 자유까지 포괄하죠. 죄를 짓지 않을 있는 자유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욕구대로 하면, 자유를 얻을 없습니다. 욕구대로 하면, 이웃 아니라, 가족과 자기 자신조차도 해를 입게 됩니다. 그러니 법은 포괄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와 사람들을 용서하고 은혜가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율법이 가져다 주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이 죄인을 용서한다해도, 여전히 율법이 필요합니다. 복음이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주나요?  율법도 그렇습니다. 물론 억압과 부자유의 율법이 있을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주는 율법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율법이 바로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같은 것이죠. 

 

저는 사실 순종하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순종은 비판적인 생각이 없는 사람들의 변명같은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가 드니까 율법에 순종하라는 말의 중요성을 점점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지성은 한계를 가집니다. 정보는 쌓이고 게다가 방대해집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해를 최신의 지식으로 하려고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육체는 늙고 지력은 줄어듭니다. 이상 혁신적인 생각을 받아들이는 한계를 느낍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보편적이고 절대 불변의 말씀에 귀의하고 싶어 집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직 육체는 젊고 생각이 싱싱하기에 무엇이든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할 있다고 믿으시죠? 좋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때로는 필요합니다. 젊은 자기만의 생각을 갖는 , 포스트모던 시대에 주체적인 신앙의 자아를 형성하는 , 너무도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일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순종의 의미를 재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우리 나름 각자의 방식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5. 나가며_차별하지 않는 공동체 

야고보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기독 공동체가 빈부의 차이를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하게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셋째, 율법이 이웃 사랑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공동체를 꿈꿔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단순히 개인 윤리의 책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책입니다. 차별이 없는 공동체가 되도록 지속적인 리플렉션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를 계속해서 돌아보고 잘못한 것은 뉘우치고, 잘하는 것은 더욱 잘하도록 격려하며, 부족한 것은 서로 채워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개인도 일기를 쓰지만 공동체도 그렇게 일기를 내려가야 합니다. 

 

부자와 빈자가 차별받지 않는 공동체, 남녀가 차별대우 받지 않는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 있을까요? 

어떻게 주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있을까요? 

이건 혼자의 고민, 혼자의 기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의 고민,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어야 것입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우리 공동체의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면 어떨까 논의 중에 있습니다.  급한 재정적 필요가 있는 분들은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공동체 모두가 함께 기금을 마련해서 돕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주도 오늘의 말씀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1. 우리 안에 있는 편견이나 차별의 모습이 없는지 돌아보고, 제거할 있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2. 우리 주변에 고난 받은 사회 경제적 약자들을 도울 있는 우리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생각해 문제 & 기도] 

1. 차별 대우를 받은 적은 없었나요? 때의 마음은 어떠했나요?  

 

2. 나와 우리 공동체가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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