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30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 이것은 다윗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한다. 높이 일으켜 세움을 받은 용사, 야곱의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 이스라엘에서 아름다운 시를 읊는 사람 말한다.

2 주님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시니, 그의 말씀이 나의 혀에 담겼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다스리는 ,

4 구름이 끼지 않은 아침에 떠오르는 맑은 아침 햇살과 같다고 하시고, 비가 뒤에 땅에서 새싹을 돋게 하는 햇빛과도 같다고 하셨다.

5 진실로 나의 왕실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지 아니한가?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만사에 아쉬움 없이 갖추어 주시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어찌 나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시며, 어찌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랴?

6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아무도 손으로 움켜 없는 가시덤불과 같아서,

7 쇠꼬챙이나 창자루가 없이는 만질 수도 없는 , 불에 살라 태울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시인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노래합니다(1-2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장차 한 의로운 왕이 나타나 생명력 넘치는 햇살과도 같이 임할 것입니다. 그 햇빛은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낼 것입니다(3-4절). 자신과 언약을 맺으셨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반면 악한 사람들은 가시덤불 같이 불태워질 것입니다(5-7절).

 

다윗의 마지막 예언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의로 다스리는 왕, 장차 오실 메시아를 떠올립니다.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세상을 공의로 다스릴 진정한 왕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십니다. 이 땅의 모든 고통과 어둠을 물리치고 마침내 다시 오실 온전한 왕을 기다리며 본문을 묵상합시다.

 

——

 

다윗의 자기 정체성 

 

다윗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로 규정한다. 

높이 일으켜 세움을 받은 용사, 

기름 부어 세우신 , 

그리고 아름다운 시를 읊는 사람. 

용사, , 시인 

하나만 해도 인정받는 사람이 것이다. 

용사이기만 해도, 왕이기만 해도, 시인이기만 해도 

그러나 그는 싸움을 잘하는 용사면서 왕의 역할을 감당한다. 그에 못지 않게 시를 지어 노래를 지어 부르는 사람이었다. 전사, 통치자, 그리고 예술가였던 것이다. 

 

이런 정체성을 형성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은 지대했다. 다윗도 사실을 온전히 인정했다. 

높이 일으켜 세움을 "받은"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다. 자기 스스로 그렇게 것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용사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세워주신 것이다. 

기름부어 주신 것도 바로 하나님이시다. 스스로 기름을 부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이 것이 아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알기에 그는 감사의 , 찬양의 , 탄원의 , 도움의 시를 지을 수가 있었다. 

자시 스스로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사와 영광을 돌리기 위한 시를 것이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시인의 자리에 있게 했다. 

이것이 그의 정체성이 것이다. 

 

공의의 통치차,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 

 

하나님은 공의로 통치하는 왕을 원하셨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왕을 원하셨다. 

자기 맘대로 자기 유익을 위해, 자기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식 속에서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왕을 기대하셨다. 

다윗 왕이 그러하길 바라셨다. 

비록 시에서는 다윗 자신이 그런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충족되는 사람인양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윗은 어느 순간부터는 철저히 망가진 군주였다. 

하나님이 마치 안계신 것처럼 행동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계획적으로 죽일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그의 잘못은 역사에 길이 남아 후대에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시점에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자신의 잘못을 전혀 모르지 않고 있는 다윗이 기어코 하나님의 언약의 계승자임을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5 진실로 나의 왕실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지 아니한가?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만사에 아쉬움 없이 잘 갖추어 주시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어찌 나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시며, 어찌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랴?

 

비록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명예는 실추되었고, 사실 자신의 왕실은 엉망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현재의 모습이라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고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켜주실 것을 믿으면서 말이다. 

 

다른 몰라도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신실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들, 유다의 자손들은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영원한 왕을 그들에게 내려보내 주실 것이다. 완전한 , 공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 모든 인간의 딜레마를 해결 있는 . 메시야를 그들은 기다린다. 다윗은 실패했지만, 다윗과의 약속을 통해 진정한 왕이 도래할 것이다. 다윗은 약속을 신실하게 믿었고 신뢰했다. 다윗이 점이 있다면 바로 지점이다. 

 

——

주님,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강한 확신 속에서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의 약속에 깊게 뿌리내리며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립니다. 

저에게 확신과 용기를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6 02 수요일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쏠리는 것을,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알았다.

2 요압이 드고아로 사람을 보내어, 거기에서 슬기로운 여인 사람을 데리고 와서 부탁하였다. "그대는 초상당한 여인처럼 행동하시오. 몸에는 상복을 입고, 머리에는 기름도 바르지 말고, 이미 오랫동안, 죽은 사람을 애도한 여인처럼 꾸민 다음에,

3 임금님 앞으로 나아가서, 내가 일러주는 대로 호소하시오." 요압은 여인에게, 말을 일러주었다.

4 드고아에서 여인은 왕에게로 나아가서, 얼굴이 땅에 닿도록 엎드려서 절을 뒤에 "임금님, 저를 살려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5 왕이 여인에게 "무슨 일이냐?" 하고 물으니, 여인이 이렇게 하소연하였다. "저는 남편이 죽어서, 가련한 과부가 되었습니다.

6 여종에게 아들이 있는데, 들에서 서로 싸우다가, 말리는 사람이 없으므로, 아들 하나가 다른 아들을 죽였습니다.

7 그런데 이제는 집안이 들고 일어나서, 종에게, 형제를 때려 죽인 아들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죽은 형제의 원수를 갚고, 살인자를 죽여서, 상속자마저 없애 버리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저에게 남아 있는 불씨마저도 버려서, 남편이 땅에 이름도 자손도 남기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8 듣고 왕은 여인에게 말하였다. " 문제를 두고서는, 내가 직접 명령을 내리겠으니, 집으로 돌아가거라."

9 그러나 드고아 여인은 왕에게 아뢰었다. "우리의 높으신 임금님께서 무엇을 하시든지, 일에 있어서 허물은 저와 아버지의 집안에 있습니다. 임금님과 왕실에는 아무런 허물이 없습니다."

10 왕이 대답하였다. "누구든지 너를 위협하거든, 그를 나에게로 데리고 오너라.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다."

11 여인은 간청하였다. "그러면 임금님, 임금님께서 섬기시는 하나님께 간구하셔서, 저의 죽은 아들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집안 사람들이 살아 있는 저의 아들까지 죽이는 크나큰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막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왕이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

 

12 여인이 간청하였다. " 종이 높으신 임금님께 말씀만 드리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왕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

13 여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처럼 그릇된 일을 하셨습니까? 임금님께서는 임금님의 친아들인 왕자님이 나라로 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처사는 지금까지 종에게 말씀하신 것과는 다릅니다. 임금님께서는 그렇게 말씀만 하시고, 왕자님을 부르지 않으셨으니, 이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4 우리는 죽습니다. 땅에 쏟으면, 다시 담을 없는 물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않으시고 방책을 베푸셔서 비록 내어쫓긴 자라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되지 않게 하십니다.

15 높으신 임금님, 제가 지금 임금님을 찾아 뵙고서 이런 말씀을 드리게 까닭은, 제가 친척들의 위협을 받으면서, 문제를 임금님께 아뢰면, 임금님께서 제가 간구하는 바를 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입니다.

16 저의 집안 사람들이 저와 저의 아들을 죽이려 하고,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끊어 버리려고 하지마는, 임금님께서 저의 사정을 들어서 아시면, 구원하여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7 종은 , 높으신 임금님께서는 말씀으로 저를 안심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임금님은 바로 하나님의 천사와 같은 분이시니까, 저의 호소를 들으시고 선악을 가려내실 것이라고도 생각하였습니다. 임금님이 섬기시는 하나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18 마침내 왕이 여인에게 물었다. "너는 내가 묻는 말을, 앞에서 조금도 숨기지 말고 대답하여라." 여인이 대답하였다. "높으신 임금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19 왕이 물었다. "너에게 모든 일을 시킨 사람은 바로 요압이렷다?" 여인이 대답하였다. "높으신 임금님, 임금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높으신 임금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면, 오른쪽으로든 왼쪽으로든, 피할 길이 없습니다. 저에게 이런 일을 시킨 사람은 임금님의 신하 요압입니다. 그가 모든 말을 종의 입에 담아 주었습니다.

20 왕자님의 일을 되게 하여 보려고, 임금님의 신하 요압이 이런 일을 꾸민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임금님께서는 하나님의 천사처럼 슬기로우시므로, 일어난 모든 일을 아실 압니다."

 

 

압살롬이 떠난 지 3년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압살롬을 향하고 있으나 다시 불러오지 못합니다. 요압은 한 여인을 보내 다윗의 상황과 비슷한 사례를 실제 자신의 이야기처럼 말하도록 지시합니다(1-11절). 자신을 돕겠다는 다윗의 맹세를 들은 여인은 왕의 모순을 지적하며 압살롬을 데려 오라고 권합니다(12-17절). 다윗은 이 모든 말들이 연출에 의한 것임을 직감하고 배후에 요압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18-20절).

 

다윗에게 압살롬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을까요?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있었다면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로 실행에 옮겼어야 했습니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자신의 입으로 말해버렸으니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애매한 마음은 미지근한 화해로 이어지고 이는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킵니다.

 

——

 

역사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 

각자의 입장에 서면 판단이 바뀌기 마련이다. 

아버지로서 압살롬과 빨리 화해를 하는 것이 옳은가? 

아님 왕으로서 죄인에 대해 영구히 처벌하는 것이 옳은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다윗 왕에게는 여전히 많은 아들들이 있다. 

압살롬이 외모나 기개가 남다른 점이 있는 것은 사실(삼하 14:25)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 교활하고 폭력적이다. 

암논도 그렇고 압살롬도 그렇다. 

그들의 죄악이 가득하다. 

왕으로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왕은 아들에 대한 정당한 벌을 내렸어야 했지만, 다윗 왕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물쩡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압살롬은 큰형 암논을 죽이고 그술 땅으로 도망했다. 

평생 거기서 사는 것이 압살롬에게나 다윗 왕에게나 그리고 이스라엘 전체에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심각한 딜레마가 여기도 있다. 

좋은 아버지, 좋은 둘의 역할을 함께 있냐는 말이다. 

아무리 봐도, 인간은 왕이 없다. 

왕이 되는 순간, 왕국의 통치를 위해 사적 관계를 공적 원리로 재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왕이 되는 순간, 가정과 나라를 동시에 관리하고 보살피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차라리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가 도덕적 명분도 분명하고, 사람들도 많이 진심으로 따랐다. 

왕이 되어 여러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했을 , 그것을 해결할 의지와 지혜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왕은 오롯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분만이 진정한 왕이 되실 있다. 

사무엘상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백성이 왕을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싶지 않아서다.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인간 왕은 실존적 딜레마를 해결할 능력도 지혜도 없다. 

그러니 어쩔 없이 분열의 씨앗이 자라게 되고, 전쟁의 빌미가 제공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젊고 능력있는 정치인의 등장은 반갑다. 

청년 세대를 대변하면서 청년의 지지를 받아 정치권에 청년의 문제를 해결해 있는 대표주자가 된다면 그것도 좋을 일이다. 

물론, 개인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난관을 계속 만나게 것이기에, 그래서 온갖 딜레마 속에서 고통 받을 것이 분명하기에, 인간적으로 불쌍한 마음이 든다. 

 

지도자의 위치에 서는 것은 언제나 고통이다. 

부르심이 있지 않으면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자리다. 

공동체 지도자의 자리는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공동체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리더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분들이 있어야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많은 공동체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배제할 없기에, 항상 부딪히는 날까로운 이슈들을 다뤄가며 이루는 밤들이 늘어가게 된다.

공동체에는 항상 위기가 찾아오고, 위기 앞에 선봉장으로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기 때문에, 긴장이 끊이지 않는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직장에서도 책임있는 자리, 관리자의 자리에 승진하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한다. 

사토리 세대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의 젊은 청년들에게도 보이는 지점이다. 

책임지는 자리에 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그래서 바울은 권세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P4G 국제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개회식 장면을 보았는데, 사슴이 거닐고 나비가 나부끼는 소나무 숲에서 대통령 연설이 진행되었다. 

증강현실이 보여주는 회복된 자연이 모습이 성경이 꿈꾸는 자연과 닮았다. 

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Global Goals 2030 줄임말이 P4G이다. 

자연의 회복을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모아지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도자들이 어디에 힘을 모으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문제는 오랫동안 세계는 세계 평화를 위해 수많은 선언을 했지만, 아직도 요원하다는 사실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자연을 회복시키겠다는 지도자들의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대목에 우리의 기도와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한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지구의 미래를 위한 희망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믿기로는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이 영역에서도 분명히 필요하다. 

 

다윗의 딜레마를 이해한다. 

그의 어정쩡한 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태도도 이해한다. 

그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결국 분열과 전쟁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 

어찌보면 다윗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찾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기도할 밖에 없는 날이다. 

 

——

인간의 모순을 누구보다도 아시는 하나님, 

사람은 한계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자원과 능력은 제한되어 있는데, 수많은 이슈와 문제는 옴짝달싹 없이 만듭니다. 

하나를 결정하면, 결정에 고통받는 사람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결정하지 않으면 모두가 고통받습니다. 

고통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지만 고통을 줄이는 결정이 과연 공동체의 미래에 좋은지도 헷갈립니다. 

이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약점입니다. 

주님, 우리의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구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최종결정해 주시고, 주님께서 책임져 주세요.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예수님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5 27 목요일

여는 기도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1 주님께서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떤 성읍에 사람이 살았습니다. 사람은 부유하였고, 사람은 가난하였습니다.

2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3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다가 키우는 어린 암양 마리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어린 양을 자기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어린 양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어린 양은 주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주인의 잔에 있는 것을 함께 마시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함께 잤습니다. 이렇게 양은 주인의 딸과 같았습니다.

4 그런데 부자에게 나그네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 , 자기의 떼나 떼에서는 마리도 잡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다가,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대접하였습니다."

5 다윗은 부자가 못마땅하여, 몹시 분개하면서, 나단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서 맹세하지만, 그런 일을 사람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6 그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그는 마땅히 어린 암양을 배로 갚아 주어야 합니다."

7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하여 주었다.

8 나는 상전의 왕궁을 너에게 넘겨 주고, 상전의 아내들도 품에 안겨 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나라도 너에게 맡겼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무엇이든지 주었을 것이다.

9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너는 사람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하였다.

10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영영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집안에 재앙을 일으키고, 네가 보는 앞에서 내가 너의 아내들도 빼앗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어서, 그가 대낮에 너의 아내들을 욕보이게 하겠다.

12 너는 비록 몰래 그러한 일을 하였지만, 나는 대낮에 이스라엘이 바라보는 앞에서 일을 하겠다.’"

13 때에 다윗이 나단에게 자백하였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님은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14 그러나 임금님은 이번 일로 주님의 원수들에게 우리를 비방할 빌미를 주셨으므로, 밧세바와 임금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죽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그 자신을 향한 비유임에도, 다윗은 그 이야기가 자신을 두고 한 말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나단 선지자는 직접적으로 왕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윗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합니다. 다윗은 즉각 죄를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겠지만, 다윗이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절절합니다. 어떻게 네가 이럴 수 있느냐고 한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다 보고 계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가볍게 여겼음을 인하여 탄식하십니다. 다윗을 사랑했던 하나님의 마음, 그의 죄로 인한 일들을 너무나도 아파하시는 그분의 마음을 묵상합시다.

 

——

다윗에 대한 재고 

 

길고양이가 들어왔다. 

아이의 구조 작전을 지켜만 보던 , 많이 아파보이던 새까만 코리안숏헤를 데리고 동물 병원에 다녀왔다. 

고양이 감기 허피스로 콧물이 흐르고, 눈을 충혈되고,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생후 2-3개월 450g 아기였다. 

감기 주사를 맞히고, 원래 자리에 갖다 놓으려던 모든 계획은 이번 주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 때문에 완전히 벗어낫다. 

집근처 동물 병원에 다시 갔다. 귀에 있는 진드기를 제거하고, 구충제 주사를 맞고, 분변 검사도 하고일종의 종합검사를 거쳐 결국 우리집 아이 방에 자리를 차지했다. 

예상은 했지만, 밤마다 서럽게 울어서 일어나 먹이를 먹였다. 

아직 혼자서 밥을 안먹는다. 고양이 밥을 따뜻한 물게 개어서 전자렌지로 살짝 덮힌다. 

따뜻한 죽이 되면 고양이 입을 벌리고 떠먹인다. 다행히 먹는다. 

어제는 작은 플라스틱 스푼을 입에 댔더니 혀로 낼름낼름 먹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억지로 입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아직 4 밖에 지나지 않아서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생각이 나고 걱정이 된다. 

빨리 건강을 되찾아야 텐데 

아마 이렇게 정이 쌓이고 결국 임시보호만 하려던 계획이 무너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생명은 소중하고 생명의 빛은 언제나 따뜻하며 마음 속을 가득 채운다. 

 

가난한 사람에게 작은 암양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랑으로 키웠다. 가족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존재였다. 같았다. 

 

3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다가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어린 양을 자기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양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어린 양은 주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주인의 잔에 있는 것을 함께 마시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함께 잤습니다. 이렇게 그 양은 주인의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마저 빼앗는 부자의 욕심과 무자비함에 치가 떨린다. 

이기적이다. 자기에게는 많은 양과 염소가 즐비하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같은 암양을 빼앗아다가 죽여서 자기 손님 접대를 한다.  

욕이 나온다. 

 

다윗도 욕이 나왔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맹세까지 한다. “죽여야 합니다.”

나단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바로 당신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분개하고 저주한 것이 너무 유치하고 위선적으로 보인다. 

뺨을 날리고 싶다. ‘니가 너의 충성스런 신하 우리야를 죽인 것을 내가 알고 있어! 나쁜 XX

 

하나님은 보고 계셨다. 알고 계셨다. 저지하지 않으신 것이 계속 아쉽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의문으로 남지만, 인간의 결정 모든 것에 강제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련다.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권력자들의 야망을 모르실 없다. 

기득권자들의 속임수를 감지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나의 죄와 욕망과 거짓과 저열함을 모르시지 않는다. 

 

다윗의 죄의 댓가는 다윗의 죽음이어야 했다. 

그가 용서받았다는 것이 잘못에 대한 처벌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죄의 결과는 아들의 죽음과 집안 내부 혈전이다. 그리고 다윗의 아내들은 대낮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 욕을 당한다. 

그냥 다윗이 죽을 일이지만, 그는 살고 주변은 죽는다. 

죄의 결과가 참혹하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빠르게 인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지기 목숨을 잃지 않고 번째 기회를 받을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손빠른 정직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장면에서 다윗에게 배울 있는  

 

이번 다윗 때문에 마음이 어렵다. 

실망감이 크다. 

때로는 이런 실망감으로 다윗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윗이 너무 고평가되어 영웅처럼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약점을 지니고 있다. 

약점이 없는 것처럼 사람을 대하거나 평가하면 일이다. 

나단 같은 사람이 공동체에는 필요하다. 

실수 , 죄를 지을 , 분명히 실수라고 죄라고 말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

다윗을 사랑하셨던 하나님, 

당신도 얼마나 실망감이 크셨을지 상상해봅니다. 

다윗 같은 위대한 인물에게도 이런 약점이 있었다면

평범한 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약점과 실수와 죄가 있겠습니까.. 

주님, 겸손히 주님께 저의 죄를 인정하겠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너무 강한 처벌은 말아주세요. 

처음 수련회 , 조장으로부터 들었던 교만함에 대한 지적을 여전히 마음 속에 품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 05 26 수요일

IVP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년 5-6월호

여는 기도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14 다음날 아침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 써서, 우리야의 편에 보냈다.

15 다윗은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너희는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

16 요압은 적의 성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적의 저항 세력이 가장 강한 곳에 우리야를 배치하였다.

17 성의 사람들이 나가서 요압의 군인들과 싸우는 동안에, 다윗의 부하들 쪽에서 군인 사람이 쓰러져서 죽었고, 때에 사람 우리야도 전사하였다.

18 요압이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전쟁의 상황을 모두 전하였다.

19 요압은 전령에게 이렇게 지시하였다. "네가 이번 전쟁의 상황을 모두 임금님께 말씀드리고 났을 때에,

20 임금님이 화를 내시며 네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그토록 성에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적의 성벽 위에서 적병들이 활을 줄도 몰랐단 말이냐?

21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누가 쳐서 죽였느냐? 어떤 여자가 성벽 위에서 그의 머리 위로 맷돌 위짝을 던져서,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않았느냐? 그런 것을 알면서, 너희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성벽에 가까이 갔느냐?' 하시면, 너는 '임금님의 부하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22 전령이 떠나, 다윗에게 이르러서, 요압이 심부름을 보내면서 일러준 말을 모두 전하였다.

23 전령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적은 우리보다 강하였습니다. 적이 우리와 싸우려고 평지로 나왔으므로, 우리는 적들을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성문 가까이까지 적들을 밀어붙였습니다.

24 때에 성벽 위에 있는 적들이 임금님의 부하들에게 활을 쏘았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부하들 가운데서 사람이 죽었고, 임금님의 부하인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25 그러자 다윗이 전령에게 말하였다. "너는 요압에게, 칼은 편도 죽이고 편도 죽이기 마련이니, 이번 일로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여라. 오히려 성을 계속 맹렬히 공격하여서 무너뜨리라고 전하여, 요압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26 우리야의 아내는, 우리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자기의 남편을 생각하여 슬피 울었다.

27 애도하는 기간이 지나니,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서,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왔다. 여인은 이렇게 하여서 다윗의 아내가 되었고, 그들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이번 일은 아주 악하였다.

 

다윗은 이제 우리야를 죽이려 합니다.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한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였습니다. 다윗은 우리야를 전장에서 죽게 하라고 지시합니다. 자신을 죽이라는 교지를 본인 손으로 들고 가게 하는 잔인한 명령을 내립니다. 요압은 이를 실행하고(14-17), 우리야의 전사 소식을 들은 다윗은 전장에서 일어날 있는 일로 여기며 요압을 격려합니다(18-25). 그러자 다윗은 밧세바를 아내로 삼습니다(26-27).

 

성범죄가 살인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죄는 다른 죄를 낳고, 죄로 확장됩니다. 밧세바의 모든 것을 빼앗고도 부족해 애도 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아내로 삼아버립니다.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이전까지 왔던 다윗이라고는 믿기 힘든 양면성입니다. 죄의 무서움과 인간의 나약함을 묵상합시다.

 

——

참담함

 

결국 일이 이렇게 되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다윗의 악독함은 사울을 능가한다. 

이렇게 치밀하게 악을 시전하다니치가 떨린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니 믿기지 않는다.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은 아합보다 잔인하고 저열하다. 

자신이 살기위해 자신의 신복,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쳐 싸우는 우리야를 이렇게 죽였다. 

하늘에서 우리야는 억울하다고 하소연 할게다. 

 

중간 중간에 하나님은 개입을 안하셨을까? 

오늘은 이상하게 분노의 마음이 너무 크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보고만 있으셨나? 

다윗의 이런 극악무도한 행적을 보고만 있으셨나? 

다윗이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다.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그것은 같은 전우에게 전우를 죽이라고 것이다. 

중간에서라도 갓이든 나단이든 선지자들을 불러 다윗의 죄를 막았어야 했지 않았을까!!

 

다윗의 이런 모습에 실망스럽다. 

다윗은 이런 모습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 다윗,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랐던 사람 다윗, 

그도 이렇게 무너진다. 

처참하게 망가졌다. 

죄값을 치르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결국 그는 밧세바를 아내로 맞이한다. 

 

이런 젠장 

남편을 살해한 사람과 재혼하다니 

이런 치정이 어딨는가? 

권력형 치정 살인.

온갖 저주의 말로 저주하고 싶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로 떡하니 이름을 올린 것이 싫다. 

이런 사건 때문에 목회자들의 범죄에 변명할 꺼리를 제공한다는 것이 너무 싫다. 

다윗도 그랬는데…’

다윗이 그랬기 때문에 나도 너도 그래도 된다는 말인가!! 

참으로 시대 왕의 권한이라는 것이 이토록 막강했구나. 

 

나를 다시 돌아본다. 

인간사의 수많은 사건들을 돌아본다. 

어제는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 지존파 사건 이야기를 시청했다. 

부자들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한 살인이 빈자들을 죽였다. 

모순, 아이러니 

아이러니에 갇힌 인간들

 

——

하나님, 

다윗의 실패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런 사람을 신앙의 위대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기가 마음이 어렵습니다. 

 

저의 실패를 봅니다. 

여전히 실패하는 저를 돌아봅니다. 

다윗 같은 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죄로 인해 고민합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짓지 않고 살아가도록 도와주세요. 

선을 넘지 않도록 

옥상에 너무 머물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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